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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Translation/트랜스레이팅 페미니즘

리디야 세이풀리나, <타냐> (3)

by 인-무브 2026. 9. 12.

타냐

 

리디야 세이풀리나

번역: 장은재

 

소비에트 초기(1920-1930년대) 여성과 젠더 문제를 다룬 짧은 소설들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타냐»는 소비에트 시기 러시아의 작가 리디야 세이풀리나(Л. Н. Сейфуллина)가 쓴 단편소설로, 소비에트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자라난 소녀 '타냐'의 내적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날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피오네르의 날(5월 29일) 기념일. 1965년, 칼리닌그라드. (사진: 보리스 스턴)

 

3

 

 일주일이 지. 피오네르들 막심 고리키[1]에게 편지를 쓰는 중이었다. 기관의 공식적인 글을 쓸 때면 늘 그러하듯 편지 쓰기는 이고르 세레브랴코프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는 팔을 넓게 뻗은 탓에 거의 책상 위에 누워있는 것 같았고, 오른쪽 뺨은 잉크로 더럽혀져 있었다. 이고르는 왼손으로 땀범벅이 된 이마의 주름을 폈다. 알렉세이 막시모비치[2]에게 평어와 경어 중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에 대 기나긴 논쟁이 이어지던 참이었다. 이고르가 주장했다. 

 어쨌거나 그는 우리에게 있어 일단 한 명의 공산당원이잖아. 심지어 부르주아 시인도 자기 작품에서는 허울 뿐인 경어보다는 다정한 느낌의 평어를 쓰는 걸.”

 레온티나 코체르기나가 이고르의 등 뒤에서 가느다랗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그건 로맨스일 때 얘기잖아. 그 분께서는 불쾌해 하실 거야.”

 이고르는 성을 내며 그녀를 팔꿈치로 밀쳤다.

 귀에 대고 바람 불지마, 로맨스에서나 하는 것처럼! 어제는 왜 머리를 꼬불꼬불 말았던 거야?”

 호리호리한 탓에 원래 키보다 커 보이는 어두운 머리칼의 소녀가 그의 팔 세게 잡았다.

 이고르, 피오네르 동지들이 있는 데서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이야?”

 무례하게 군 적 없어. 회의 좀 하자! 만약 경어를 쓴다면, 이렇게 말해야 겠지. ‘우리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이게 좀 더 정확할 거야.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완전하고 온전하게 믿기 때문입니다.”

 타냐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야! ‘사랑합니다 믿습니다는 너무 지식인 같아. 이렇게 쓰는 게 아마 더 나을 거야. ‘우리는 당신의 모든 단어들을 귀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이고르가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귀기울여 들을 것까지 있어? 어지간히 허튼 말은 안 하시겠지…”

 킴이 일부러 악의를 품고 물었다.

 타냐, 정말 그 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야?”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진 타냐는 자리에서 일어나 킴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가장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작가, 우리의 작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니!

 네가 어떻게 나를 모욕할 수 있어?”

 킴은 본성이 악하지는 않았지만, 타냐를 놀리는 데에서 만족감을 얻곤 했다.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그녀는 화를 낼 때도 열성을 다했다. 지금 킴은 자신이 타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킴은 그녀의 원피스를 잡아당기더니 비웃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놀라울 것도 없지! 너희 아빠는 다른 쪽인 것 같으니까.”

타냐는 자신에게 무언가 불행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아빠'의 존재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기억하는 한, 타냐는 살면서 어떤 일에 대해 설명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고르 옆에 그대로 선 채 타냐는 점차 창백해지더니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조금 전 이고르가 레온티나에게 함부로 말하던 것을 제지했던 어두운 머리칼의 키 큰 소녀가 타냐에게 다가갔다. 마치 타냐를 다른 아이들의 시선으로부터 감추려는 듯, 그녀 앞에 바짝 다가섰다. 

동지들, 타냐 루사노바는 흠결 하나 없는 우리의 동지야. 타냐는 스스로 옳은 결정을 내릴 거고,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직접 알려줄거야. , 너는 너무 섣불리 아버님을 비난했을 뿐 아니라…”

타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우리 아버지를 비난했다는 거야?”

소녀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리더니, 화를 내는 듯 속삭였다. 

너 오늘 «프라우다»[3] 안 읽었어?”

미약한 희망, 그래서 더욱 달콤한 희망이 타냐의 마음을 아주 잠깐 안심시켰다. '이 아이들은 내가 매일 신문을 읽게 만들려고 은근슬쩍 몰아붙이는 거구나.' 그녀는 킴에게 다가가 애써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너는 좀 바보 같아.”

어떤 면에서?”

그냥 전체적으로.”

타냐는 아이들의 의도를 추측하고선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이고르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타냐에게 «프라우다»를 건넸다. 아이들은 평소 교내 신문의 편집실로 쓰이던 작은 방 안에 문을 잠그고 모였다. 총 다섯 명이었다. 피오네르 지도원 리자, 이고르, 타냐, 그리고 꼭 닮은 쌍둥이 활동가 크리츠키 형제였다. 이고르는 타냐가 긴장한 탓에 신문 속 문장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타냐에게 신문을 읽어주었다.

정부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면서도 그는 자신의 농장을 보호하고자 했다. 물론 이 농장 그의 개인 농장이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것은 그가 속한 트러스트[4] 산하의 국영 농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 조합원들에 대한 감사는 더 자주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업무는 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물론 그를 국고 횡령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결심에서 그 어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익이 발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국영 농장의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숨겼다. 그럴 경우 정부의 몫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알다시피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변명이 될 수 있다. 알다시피 그는 명백한 기회주의자이다.”

얼핏 보기에 타냐는 침착해 보였다. 떨리던 그녀의 손은 갑자기 멈췄고, 회색 눈동자는 엄숙하고 곧은 시선으로 동지들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의 얇은 피부 아래에는 혈색이 사라졌고, 입술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으로 피가 요동치듯 밀려들어와 몸이 떨리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불안으로 가득 찼던 타냐의 수많은 감정들은 하나의 생각으로 합쳐졌다. 

아버지는 무사할까, 아니면 무사하지 못할까?”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물질적 궁핍에 대한 공포, 타냐는 이것들에 관한 생각을 타냐는 단 한번도 무의식 중에라도 입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었다. 타냐는 자신이 성인이 아닌 만큼, 어른들이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녀는 어른들이 언제나 자신을 먹여주고 입혀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신의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타냐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가 가진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단 한번도 타냐를 그의 협동조합용 차에 태워 어디든 간 적이 없었다. 그의 아내 역시 태워준 적 없었다. 다만 가끔 그가 너무도 피곤할 때, 그들과 함께 한 시간 정도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갔을 뿐이다. 한번은 타냐가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에게 학교에 들고갈 합판 하나를 협동 농장에서 구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는 크게 화를 냈다. 

책임감 있는 딸인 척하지 마라! 네 학교는 이런 식의 경로로는 나에게서 그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을 거야.”

이 말은 어느정도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가 엄격한 책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타냐에게는 이런 규칙들이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모두가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생각한 적도, 심지어는 그것을 두려워한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무사하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의미였다. ‘아버지가 당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것. 타냐는 삶의 많은 시간을 집단 속에서 보냈다. 그녀의 가족은 사적 공동체라는 비좁은 세계에 갇혀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비당원이란 사회적 삶 속에서 아주 연약하고 혼자인 존재처럼 생각되었다. 어떻게 아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럴 순 없다, 그런 일은 있을 리 없다! 아니, 아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모든 것이 꿈 속에서 일어난 것만 같았다. , 거리, 현관, 익숙한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젊고 생기가 넘치는 그녀의 가슴은 그리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타냐를 맞이하던 옐레나 미헤예브나는 그녀를 나무라며 말했다. 

 왜 아줌마들처럼 스타킹이 내려가 있는거죠? 올려입어요.”

 옐레나 미헤예브나의 불평섞인 말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타냐를 그렇게 대했다. 그러나 엘레나 미헤예브나의 말은 타냐에게 난생 처음으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타냐는 이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남아있을 수만 있기를! 그녀는 언제나처럼 섬세한 몸짓으로 스타킹을 팽팽히 잡아당기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방으로 들어갔다. 침울한 낯빛의 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는 왠지 모르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하고선 그녀의 맞은편에 섰다. 그러더니 공연히 허겁지겁 다른 의자에 앉았다. 소냐가 창가에서 울고 있었다. 평소에 그녀는 눈물을 빨리 그치지만, 지금 그녀의 코는 부어 있었다. 오랫동안 울고 있었던 것이다. 타냐의 엄마인 나탈리야 베르게예브나가 키가 큰 몸을 살짝씩 움직이면서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쁜 일이 생긴 날 로사노프 부부를 방문하거나 그녀 자신이 슬픈 일을 들고올 때면 늘 그러했다. 나탈리야 베르게예브나는 자신의 개인적 삶에도, 예술가로서의 삶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주 고통스러워 했고, 그것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녀에게서는 항상 꽃병에 담긴 시든 꽃들에서 나는 것만 같은 와인의 슬픈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딸에게 입맞췄다.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타냐는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너무도 지쳐서 창백해진 타냐는 문기둥에 바싹 몸을 붙였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가 약간 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다녀왔니?”

 타냐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다정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진 소냐는 이 소녀의 영혼 속에 지금 믿음과 희망 같은 개념들의 대대적인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갑작스럽게 창백해져 빛을 잃어버린 아이의 얼굴보다 쓰라린 것이 있을까! 그녀는 재빨리 타냐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안은 채 방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타냐는 더욱 불안한 듯 떨더니 문기둥에 붙었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어색한 듯 담배를 피우다가, 내키지 않은 듯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린애인 척 하려는 게구나. 뭔가 말하고 싶거나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물어봐라.”

 나탈리야 세르게예브나가 화를 냈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타냐랑 무슨 얘길 한다는 거야? 타냐는 아직 어린애야. 타냐, 나가렴. 씻고 잘 준비 해. 아버지가 어떻게 될 지는 네가 상관할 일이 아냐.”

 타냐는 어머니를 향해 몸을 휙 돌렸다.

 어떻게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저는 아빠에게 단 한번도 거짓말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우리 반 애들 모두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 순간 바로 들키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빠는 왜 저에게 거짓말을 하신 거죠?”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화가 나서 가래를 뱉은 뒤, 최대한 침착하고 건조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나는 너에게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가르쳤지, 바로 내가 말이야! 나는 너에게 거짓말 한 적도 없고, 거짓된 사람도 아니다. 언젠가 너에게 힘든 일이 닥치게 되면, 너는 그제서야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오랫동안 참았던 타냐의 눈물이 갑자기 터져나왔다. 얼굴이 눈물로 뒤덮였다. 그녀는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정말 저에게는 아무 힘든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리자 보르셴코바가 피오네르를 대표해서 자기 아버지에게 사회주의 경쟁[5]에 참여하라고 제안했어요. 그 분은 설비공인데 일을 잘 못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 얘길 듣자마자 갑자기 욕을 했대요. 아주 나쁜 욕이요. 그러더니 종이에 서명도 안 하고 찢어버렸대요. 그리고 심지어 리자를 때렸대요. 리자가 말했어요. ‘동지들, 나는 대체 어떻게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차라리 아빠가 저를 때렸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렇지만 아빠는 기회주의자의 편에 서 버리셨네요.”

 나탈리야 세르게예브나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어른들이 너희를 책임져야지, 너희들이 어른들을 책임질 필요 없어.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니?”

 큰 소리로 흐느끼더니, 타냐가 한결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요. 우리는 혼자 제각각 살아가는 자본주의자들이 아니니까요…”

 

 

4

 

 최근 두 달은 타냐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당원 자격을 잃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 회의에서도, 기관에서도, 노동조합에서도 그의 행동에 관한 말들이 오갔다. 신문들은 매일같이 루사노프에 대해 비난하는 말을 실었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여위어갔다. 그의 머리에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이 그를 제명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한결 안심했다. 무료한 남는 시간을 어떻게든 때우고자 그는 열심히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대중소설도 많이 읽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그가 어린 시절 널리 퍼졌던 태도인 냉정한 사람들만이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냐에게 설명해주려 했던 날 이후에 더욱 그러했다. 소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의 실수의 근원은 언어적 설명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타냐는 그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본질적으로 우파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런데 그녀의 법칙은 확고했다. 만약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적발되고, 스스로를 우파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은 적인 것이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의 잘못된 행동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 안에서 이 새로운 세계, 타냐의 세계에 이미 불필요한 것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것이 된 많은 것들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찾아내곤 했다. 그것들은 가끔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를 테면 간신히 발견할 수 있는 슬라브주의의 그림자, 애수를 불러 일으키는 애처롭고 구슬픈 러시아 민요들을 향한 사랑. 그가 톨스토이의 플라톤 카라타예프[6]과 같은 농민들을 좋아한다는 사실, 개간되지 않은 그 옛날 러시아의 광활한 토양을 그리워한다는 사실, 무성한 숲을 따라 비뚤게 선 채 비실거리며 돌아가는 제분소의 풍차를 볼 때 그가 즐거운 눈빛을 한다는 사실과 같은 것 말이다. 이 모든 잘못들은 말로 표현되자 투박해졌다. 그는 세상과 삶의 다채로운 색이 바래져간다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피오네르들에게는 가끔 이런 단순하고 평화로운 풍경마저 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타냐와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그녀는 이 모든 복잡한 감각들을 아직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전처럼 평온해졌지만, 이제는 마치 그들 사이에 투명한 장벽이 세워진 것만 같았다. 타냐가 자신의 피오네르 단체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고, 얘기하기도 전에 피곤해한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전체적으로 그녀는 갑자기 어른 같아졌다. 그녀 앞에 펼쳐진 세상은 더 이상 확실한 경계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빛과 그림자가 복잡하게 얽힌 것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의 사건은 그녀가 예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보게끔 했다.

 두 달이 지나고, 마침내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을 받았다. 그는 해외로 나가 무역 업무를 맡게 되었다. 모스크바공산당위원회는 소냐의 전출을 허가하지 않았고,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는 혼자 가게 되었다. 그가 떠나는 날, 나탈리야 세르게에브나가 그를 배웅하러 왔다. 그녀는 웬 종이를 흔들었다.

 그거 알아? 당신은 이번에 운 좋게 발령받은 거야. 거기서 내 오페라가 공연하거든. 당신이 날 도와줄 수 있을테지. 나는 소비에트 작곡가잖아. 무대에서 연설도 해야 할 거야.”

 타냐가 손을 저었다.

 , 엄마, 그러지 마세요. 엄마는 또 뭔가 소부르주아적인 얘기를 해버릴 거예요. 여기서 미리 말씀하시고, 우리가 교정해주는 게 나아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따라가서, 그곳에서 교정해주면 되겠구나. 올 거지? 너는 날 잊지 않을 거지?”

 타냐가 정직한 눈을 들어올려 그를 바라보았고, 아주 나직하게 말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도 저는 아빠를 절대 잊지 않았을 거예요. 다만 제 인생이 불행했겠죠.”

 그는 그녀가 이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도라는 말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타냐의 기억 속에서 얼마나 그녀를 괴롭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의 눈이 눈물에 젖어 반짝거렸다. 그는 그녀의 볼에 세게 입맞췄다. 타냐가 방에서 나갔을 때, 그는 방 안의 여자들에게 부탁했다. 

 아이를 잘 보살펴줘. 특히 당신, 나탈리야 세르게예브나. 당신은 가끔 그 애를 너무 서툴게 대해. 당신은 틀렸어. 아이들은 우리를 판단할 권리가 있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원칙에 따라 살아가야 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새로운 토대를 세울 거야…”

 타냐가 방으로 되돌아온 것을 보고서 그는 밝은 모습으로 말을 마쳤다.

 우리는 명예로운 피오네르의 빨간 넥타이를 받거나, 삼베로 만든 깃발로 보상받을 거야.”

 여름이 되어, 타냐는 아버지를 보러 해외로 나갔다. 출발 전날 저녁, 그녀는 이고르와 함께 모스크바를 산책했다. 이고르가 가르치듯 말했다. 

 쓸데 없이 돌아다니지마. 그곳에는 잔인하게 박해받는 피오네르들이 있대. 그렇지만 어쨌거나 우리 단체를 잊어선 안돼. 그렇지 않으면 여자들은 모자니, 옷감이니 하면서, 싸구려 크레이프 비단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에휴…”

 타냐가 타이르듯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고르, 내가 정말 그래 보여?”

 타냐의 깨끗하고 곧게 뻗은 이마와 코가 만들어내는 선을 흘끔거린 후, 이고르는 곧바로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빛나는 회색 눈동자를 보았다.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타냐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타냐의 집앞에 도착했다. 이고르가 그녀의 손을 꽉 잡고선 떨리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는 좋은 사람이야. 특히 나한테 너는 세상 그 어떤 여자들보다 좋은 여자야. 그리고 언제나 최고일 거야…”

 타냐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조심스레 잡은 손을 빼냈다. 이고르가 휙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타냐를 쳐다보지 않은 채, 그가 소리쳤다.

 내일 기차역에서 봐! 가는 길에 나한테 꼭 편지 써!”

 귀퉁이를 돌며 그가 사라졌다. 타냐는 그 자리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떠나갔다. 현관문 안으로 그녀가 모습을 감추자, 이고르가 귀퉁이에서 다시 나왔다. 그는 달콤한 고통을 느끼며 텅 빈 보도를 바라보았다. 그 느낌은 그가 성숙해진 후에야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지만, 그 최초의 순수한 느낌이란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고르는 이동 중인 타냐의 편지를 받았다. 조그만 종이에 연필로 쓴 필기체의 글자들이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편지의 내용도 두서없었다. 그 중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이고르, 반드시 외국어를 배워야 해, 열심히 공부하고, 다른 아이들도 공부하도록 만들어! 나에게 얼마나 나쁜 일이 있었는지 아니? 나와 함께 가는 외교 행낭 우편원이 아침식사를 안 먹고 싶어했어. 그래서 나는 식권을 들고 혼자 식당칸에 갔지. 그리고 앉았는데, 웬걸, 유니폼을 입은 그곳의 웨이터가 음식을 주지 않고 뭔가를 계속 말하는 게 아니겠어. 나는 앉아있었고,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어. 창피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앉아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그때 러시아어를 약간 할 줄 아는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나에게 설명해주기를, 내가 가진 식권으로는 좀 더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거야. 나는 앉은 채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붙들고 옛날에 배운 것만 괴롭게 떠올리려 애썼어: 데르 오펜, 다스 펜스테르, 디 딜레, 생각만 해도 허리가 쑤시는 거지 부탁이니까, 공부해야 해! 왜 전세계 부르주아들에게 우리를 비웃을 기회를 줘야 하는 거야?”

 그 옆에는 아주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에게도 너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

 

 

원문 출처: Сейфуллина Л.Н. Таня // Собр. соч.: в 3 т. Т. 4. М.: Художеств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69. С. 26–45.

사진 출처: https://www.kaliningrad.kp.ru/daily/27394.3/4589431/

 



[1] 20세기 초 러시아 및 소련의 대표적 리얼리즘 작가. 대표작으로는 «어머니»(1907)가 있다.

[2] 막심 고리키를 가리킨다. 고리키의 본명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에서 존칭의 호칭으로 이름과 부칭으로 부르고 있다. 

[3] 소련 및 러시아의 일간지로, 소련 시절에는 공산당 기관지이기도 했다.

[4] 소련 시기 국영 산업 기업.

[5] 노동자들의 작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1929년부터 1987년까지 소련 정부의 주도 하에 시행된 중앙 캠페인. 노동자들은 주어진 기간 동안 부과된 생산 과제를완수해야 했으며, 과제를 초과 완수한 집단에 대한 대대적인 보상이 이뤄졌다.

[6]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