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다중
: 바셀 압바스 · 루안 아부-라흐메 (톰 홀러트와의 대화)
번역: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원문: The Archival Multitude, Journal of Visual Culture 12(3), 2013, pp. 345–363
https://doi.org/10.1177/1470412913502031
The Archival Multitude - Basel Abbas, Ruanne Abou-Rahme, 2013
Previously ascribed the position of meta-archivist in a culture marked by remembrance and retro-vision, the contemporary artist has been relocated arguably by t...
journals.sagepub.com
<초록>
기억과 회고적-시선retro-vision이 두드러진 문화 속에서 현대미술가는 한때 메타-아키비스트meta-archivist라는 위치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소셜미디어의 실천과 기술 안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아카이브 활동archival activity이 급진적으로 분산되면서, 현대미술가는 다른 자리로 재배치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젊은 시청각 실천가 바셀 압바스, 루안 아부-라흐메와 나눈 이 대담은, 예술과의 관계에서 아카이브적인 것the archival이 이처럼 재배열된 데 깔려 있는 이유 가운데 몇 가지를 드러낸다. 압바스와 아부-라흐메는 지난 몇 년 동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등장한 ‘아카이브 다중archival multitude’을 성찰하면서, 디지털 영역의 네트워크화된 아카이브들을 능동적으로 평가할 필요성을 논의한다. 이러한 평가는 두 사람 자신의 예술적 방법론에도 상당한 변화를 수반한다.
*주요어: 아랍의 봄 · 아카이브적인 것 · 현대미술 · 팔레스타인 · 소셜미디어
현대미술의 실천은 끊임없이 확장되는 아카이브적인 것의 관념에서 큰 영향을 받아왔다. 이 관념은 수집, 큐레이팅, 편찬, 편집, 민족지적으로 기술하기 등의 작업 방식modes of operation을 선호하고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실천은 대부분 고쳐 쓰는revisionary, 흔히 상상적이며, 때로는 유토피아적인 기획에 참여한다. 기존 아카이브를 심문하고, 아카이브의 기반시설적 임무와 접근 (불)가능성을 조사하며, 대안적 용도를 제안하거나 새로운 (대항)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은 전시와 퍼포먼스에서 으레 구사되는 전략들에 속한다. 따라서 문서, 곧 아카이브의 내용을 재-맥락화하고, 재-배치하고, 재-조직하고, 재-연하고, 재-평가하거나 재-도입하는 일, 그리고 아카이브의 존재론, 곧 아카이브적인 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오늘날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실천의 초석임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일반적 경향은 검색엔진과 소셜미디어의 디지털 문화 앞에서 아마도 한층 더 손에 잡힐 듯 뚜렷해진다. 이 디지털 문화의 아키텍처는 아카이브적 논리(그리고 점점 더 개인화되는 데이터 저장·검색의 ‘알고리즘’)에 의해 내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95: 17)가 1995년의 글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에서 말했듯이, “아카이브하는 아카이브의 기술적 구조는, 아카이브 가능한 내용의 구조 또한 결정한다. 심지어 그 내용이 생겨나는 바로 그 과정에서도, 그리고 그 내용이 미래와 맺는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따라서 “아카이브화archivization는 사건을 기록하는 만큼이나, 그것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사건과 아카이브는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Roberts, 2009: 296). 이는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텀블러 같은 새로운 아카이브 독점체들의 시대인 오늘날 특히 분명하다. 이들은 전통적인 아카이브와 달리, 접근을 통제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아카이빙 자체를 기본값으로 삼음으로써, 데리다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남긴 ‘아카이브 폭력archival violence’을 행사하는 듯하다. 이처럼 언제나 이미 아카이브된 사건성eventfulness이 자아와 주체됨subjecthood의 개념과 경험에 미치는 효과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한 익명의 블로거가 다소 서툰 영어로 말했듯이, “아카이브로서의 페이스북은 … 사생활을 억누르고, 사교를 장소와 시간에서 공간으로 옮겨 놓으며, 자아와 타인의 개념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그 사이의 관계들을 바꾼다”(The Cunning Linguists, 2012).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대기업, 구글 제국을 떠받치며 급속히 커가는 아카이브들, 또는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있는 개인 간(P2P) 네트워크의 공유·무단복제 관행은 으레 이용 가능한 정보의 확대와 증가라는 관점에서 묘사된다. 그러나 유료 장벽과 그 밖의 접근 차단 장치들은—인터넷 거대 기업들 스스로가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대중이 문화적 재화(글, 이미지, 음악 등)의 광범위한 영역을 이용하지 못하게 막으며, 개탄스럽게도 공유의 공동체적 윤리와 정치를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런 슈워츠Aaron Swartz의 「게릴라 오픈 액세스 선언문」(Guerilla Open Access Manifesto, 2008), 이어 그가 2010년과 2011년에 학술지와 학술서의 디지털 저장소인 JSTOR에서 자료를 대량으로 내려받은 일, 그리고 2013년 1월 그의 자살(그에 대한 기소와 소추가 원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은 데이터와 지식에 대한 접근 통제와 상업화에 맞선 가장 가시적이고 비극적인 대응이었다. 슈워츠는 2008년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어 있든 그것을 가져와 우리의 사본을 만들고 세상과 공유해야 한다.”
우리는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벗어난 자료를 가져와 아카이브에 더해야 한다. 우리는 비밀 데이터베이스를 사들여 웹에 올려야 한다. 우리는 과학 학술지를 내려받아 파일 공유 네트워크에 올려야 한다. 우리는 게릴라 오픈 액세스를 위해 싸워야 한다.
두 젊은 팔레스타인 예술가 바셀 압바스Basel Abbas와 루안 아부-라흐메Ruanne Abou-Rahme는, 대대적으로 분산되고 통제되는 아카이브들로 포화된 환경의 현실들을 예리하게 의식하면서도(또 우려하면서도), 동시에 소셜미디어와 휴대전화의 즉각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아카이브 활동이 지닌 유토피아적 힘들에 관해 그리고 그 힘들을 가지고 사변하면서, 작업 방식으로서의 아카이브적인 것에 대한 강도 높은 성찰 속에서 자신들의 실천을 이끌어 왔다. 특히 2011년 이래의 아랍 봉기의 사건들은 압바스와 아부-라흐메가 진행 중인 최신 프로젝트 《미래의 아키비스트(들)》(Future Archivist(s))을 형성했고, 이 프로젝트를 ‘아카이브 충동archival impulse’(Foster, 2004)의 변화하는 지형에 대한 숙고로 바꾸어 놓았다. 그 지형에서는 “사건과 이미지, 문서와 기념비 사이의 불확정적인 지대에서”(Enwezor, 2008: 47)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artist as archivist가 맡는다고 상정되어 온 역할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아래의 이메일 대담은 2013년 2월과 3월에 이루어졌으며, 이 대담이 제기한 물음들을 두고 앞으로 이어질 협업들의 시작을 알린다.
톰 홀러트
빈의 TBA21(Thyssen-Bornemisza Art Contemporary)과 협력해 실현하려는 《미래의 아키비스트(들)》 프로젝트는 정치적 행동주의, 미디어 실천, 사회기술적 기반시설, 현대미술이 이루는 장이 크게 재구성되는 현상을 성찰하고 다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분은 소셜미디어 사이트들의 분산되고 확장된 아카이브에는 중심의 아키비스트가 부재하고 그 부재가 유령처럼 이 아카이브를 따라다니며, 바로 그 부재가 모든 사람의 아키비스트-되기becoming-archivist에 의해 메워지고(그리고 극복되고)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대화를 시작하며 여쭙고 싶습니다. 이른바 아카이브 활동의 편재(遍在)omnipresence로 추정되는 이 상황 속에서 두 분은 자신을,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 현대 (시청각) 예술가라는 직업을 어디에 위치시키겠습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어떤 의미에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아카이브에 대한 우리의 위치와 관계가 여러 차례 변형을 겪어 왔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다른 이들의 호소와 마찬가지로 애런 슈워츠의 호소도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싸움이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안에서 벌어지는 중대한 투쟁 가운데 하나이며, 인터넷이 통제와 저항 사이에서 이 투쟁이 벌어지는 장소로 부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의 시선을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서 온갖 형태의 창조적 저항에 참여하고 있던 온라인 이용자들과 활동가들에게로 돌려놓았습니다. 이것이 잠정적으로 《미래의 아키비스트(들)》이라고 이름 붙인 우리의 최신 프로젝트의 추동력이었습니다. 어쩌면 《미래의 아키비스트(들)》은 인터넷 시대 아카이브 활동의 편재와 관련해, 우리가 우리의 실천을 다시 생각하고 우리 자신을 다시 자리매김하려는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톰 홀러트
이 프로젝트의 지정학적·미학적 배경을 조금 그려 주시겠습니까? 두 분은 이미지 제작과 시각적인 것에 기본적으로 어떻게 접근하십니까? 그 접근은 특정한 정치적·문화적 환경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으며, 앞서 말씀하신 아카이브 활동에 대한 관심과는 어떻게 연결됩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형식의 측면에서 보면, 변형 가능성malleability이라는 생각과 ‘샘플링’의 방법론들에 관여해 온 시청각 예술가로서 우리는 언제나 주변부의 자료, 곧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s, 변이된 복제물 mutated copies, 재-기입re-inscriptions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도 더 전, 공동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미디어와 ‘팔레스타인 산업Palestine Industry’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이 내놓은 그토록 많은 팔레스타인 재현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활성화하기보다는 비활성화하기 시작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게토화와 구성된 특이성singularity도 거부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팔레스타인의 견딜 수 없는 삶의 조건은 언제나 전 세계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영화, ‘아카이브 영상들’, 음악 샘플에 이르는 기존 자료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작업하기로 하고, 이 자료를 서로 다른 장소와 시대에서 구해 온 것도 대체로 그 때문입니다. 《욕망의 잃어버린 대상들》(Lost Objects of Desire, 2010; 도판 1·2)을 비롯한 여러 설치 작업과 우리의 퍼포먼스 그룹 타슈위시Tashweesh에서, 우리의 의도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이미지들이 이미지의 부재와 현재의 순간을 대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상상들imaginaries 사이의 연결을 가시화하는 음향적·시각적 언어를 발전시키려 해 왔습니다.

도판 1.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욕망의 잃어버린 대상들》(2010). ©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도판 2.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욕망의 잃어버린 대상들》(2010). 라말라의 S:in/festival of Video Art and Performance에 전시된 설치작품 전경. ©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톰 홀러트
타슈위시 웹사이트에서 방문자를 맞이하는 짧은 영상은 MC이자 작곡가인 보이컷Boikutt과 두 분의 협업을 소개하는 뮤직비디오 클립의 형식을 매시업mash-up 방식으로 ‘변주take’한 것입니다. 이 영상은 (2010년에) 아마도 1950년대나 1960년대의 것으로 보이는 세속적인 아랍 세계의 여가와 오락 이미지를 보여 주는 흑백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푸티지로 만들어졌고, 보이컷과 바셀 압바스의 음악에 맞춰 장난스럽게 편집되었지요. 이 클립과 이후 타슈위시의 라이브 세트(도판 3)[1] 에는 아카이브적 감수성이 드러나는데, 그 감수성은 가벼운 향수 어린 멜랑콜리아에서부터 자료를 포착하고 재맥락화하는 과정의 어떤 즐거운 맹렬함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당히 다르고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하는 감정emotions과 정동affects을 활성화하는 듯합니다.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점점 더 아카이브와 씨름해 왔습니다. 아카이브가 우리에게 이 순간의 잠재성을 읽어 내는 방법, 그리고 아직-물질적이지-않은 것not-yet-material과 이미 결정된 것의 한가운데에 동시에 놓여 있다는 불안한 감각을 헤쳐 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는 한에서 말입니다. 그 감각은 ‘영구적’인 듯 보이는 것—자본주의적-식민적 현재의 반복—과 ‘비영구적’일 수 있는 것 사이의 시간적 긴장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 갈 미래가 지금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면서 또한 믿지 않습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퇴행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상상과 언어를 찾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맹공을 퍼붓고, 어떤 실질적 해방도 오기 전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기술관료적 안보 기구로 폭력적으로 탈바꿈하고, 식민적 팽창이 갈수록 거세지는 한가운데에서, 아카이브는 우리가 현재의 상상의 위기와 새로운 주체성들의 생산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우리의 작품 《더 존》(The Zone, 2011)에서 그랬습니다.

도판 3. 타슈위시, 베이루트 ‘더 케이브The Cave’에서의 라이브 공연(2011). © 사진: 타냐 트라불시Tanya Traboulsi.
톰 홀러트
팔레스타인 상황에 관한 이 아카이브의 특수성들, 그리고 두 분이 《더 존》으로 아카이브를 읽고, 바라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거inhabit하고자 했던 위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시각적 아카이브—주로 포스터와 팸플릿, 벽화—를 현재 생산되고 있는 시각적 아카이브—광고, 캠페인, 새로운 상업시설과 주택 개발사업—와 대조해 다시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담론/욕망들의 탄생을 그려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좌절된 팔레스타인 투쟁의 잔해에서 소비주의 체제가 등장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체제는 점령을 ‘넘어선’ 듯 보였지만 언제나 점령과 스치며 부딪쳤고, 점령은 새로 등장한 이 신자유주의적 ‘꿈의 세계’의 디스토피아적인 외적 한계였습니다. 2011년 초에 선보인 이 작업은, 갑작스러운 절박함 속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직접 기록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작업에서도 새로운 잠재성의 한가운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료를 문서화하고 이어 비판적으로 ‘불안정화’하여 이 새로운 체제의 일상적 시각 언어를 낯설게 만든 우리의 행위는, 그 순간 어느 정도 정치적·미학적 효력을 얻었습니다(도판 4·5). 지금의, 곧 펼쳐지고 있는 이 순간의 주관적subjective이고 비판적인 아카이브를 반항의 몸짓으로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분명해졌고, 이는 우리를 서안지구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와 정면으로 맞서게 했습니다. 이 시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탄압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이전까지 비판적이던 목소리들이 침묵하게 된 때였습니다. 우리의 의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생산하고 있던 ‘아카이브’에 도전하기 위해 그 순간의 아카이브archive of the moment를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작업의 첫 부분을 마쳤을 때(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에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이미 봉기가 일어난 뒤였습니다.

도판 4.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더 존》(2011). ©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도판 5.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더 존》(2011). 노팅엄의 뉴 아트 익스체인지New Art Exchange에 전시된 설치작품 전경. ©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톰 홀러트
아랍 봉기의 미디어 실천들은 아카이브에 대한 당신들의 관념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신들 자신의 아카이브 실천을 어떻게 형성했습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리에게 중대했던 것은, 아랍 세계에서 혁명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아카이브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일어났던 근본적인 변화가 굳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유튜브와 트위터 같은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던 자료를 통해 이 운동들을 경험하고 그 운동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2]은 문화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아랍 세계와 가깝지만, 식민 체제의 지배를 받는 탓에 그곳과, 나아가 세계의 나머지 지역과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끊임없는 스트림에 어느 순간에든 갑자기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글과 이미지로 전하는 이야기들accounts의 스트림과 라이브 피드를 통해, 그 기간 동안 이곳과 저곳 사이의 거리는 유예되었습니다. 우리는 튀니지에서 눈을 뜨고 잠들었고, 그다음에는 이집트에서 그랬습니다. 우리에게는 전기가 흐르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국가의 재현들을 전복할 인민의 잠재성이 갑자기 손에 잡힐 듯했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living archive와 얼굴을 맞대게 되었습니다. 타흐리르[3]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증언하며 그 증언을 서버에 올려 우리가 동시에 듣고, 읽고, 보고, 경험할 수 있게 했을 때, 그것은 정확히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아카이브로 느껴졌습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자료가 여과 없이 나타나는 플랫폼들 말고는 어떤 매개자도 없었습니다.
톰 홀러트
여기서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는 관념이 핵심적인 듯합니다. 이 개념은 지금 미술계의 순회로를 돌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살아 있는 노동’ 개념과의 공명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아카이브는 어떻게 해서 자신을 ‘살아 있는’ 무언가로 바꾸어 놓는 그런 생생함이나 활력을 얻게 됩니까? 이 ‘살아 있는 아카이브’ 담론은 어떤 생명정치적 함의를 가지며, 그 가운데 무엇이 문제적일 수 있을까요?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무엇이 아카이브를 ‘살아 있게’ 만드는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아카이브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아카이브를 변형할 가능성에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카이브는 아주 오랫동안 권력이 삶 자체를 생산하는 동시에 억압하는 방식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오로지 권력을 통해, 권력에 의해 쓰이는 아카이브는 닫혀 있고, 정적이며, 심지어 죽어 있는 아카이브입니다. 지난 30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예술가들은(그리고 그 이전에는 작가들이) 아카이브를 재활성화하고 그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에 관여해 왔습니다. 우리 작업의 상당 부분도 지금 여기에 관해 말하기 위해, 잊혀진 하찮은 자료, 파편, 흔적을 재활성화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몸짓들만으로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를 창조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어쩌면 그 토대를 놓을 수는 있겠지만요). 우리에게 아카이브를 살아 있는 무언가로 바꾸어 놓는 활력은 정치적 되기의 한 순간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주관적인 몸짓이나 행위를 통해 공통의 순간의 일부가 되고 다중의 잠재성을 드러내는 순간 말입니다. 여기서 주관적이고 수평적인 아카이브들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행위 자체는 바로, 살아 있는 공통 아카이브common archive를 아래로부터 집요하게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일입니다. 새로운 아카이브 다중의 표현으로서, 그리고 공통 아카이브들(의 일부)로서 이 주관적 아카이브들은 해방적 잠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권력의 헤게모니 바깥을 향한 욕망을 표현하는 창조적 활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를 가장 환히 밝혀 준 순간은 아랍 세계의 혁명들이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다만 이 해방적 잠재성이 봉기의 순간에서만이 아니라(이 경우가 더 눈에 띄기는 하지만) 여러 방식과 여러 순간에 드러난다는 점은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잠재성의 첫 번째 표현은 수평적 아카이브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에 있습니다. 2011년 혁명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매 순간 사건을 기록하고, 그 순간의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비공식 아카이브를 생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봉기의 아카이브 활동은 사람들이 발언할 권리를 되찾고 자신의 정치적 삶과 미래에 대한 행위주체성agency을 떠맡는 일의 불가결한 일부였습니다. 놀랍게도 정권은 사건을 서술하고 아카이브를 생산하는 중에, 바로 그 생산의 순간에, 그것도 대규모로 도전을 받았습니다.
톰 홀러트
봉기자들의 대항 아카이브는 비전문가 아키비스트들의 유토피아적 아카이브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적 생산양식의 디지털 기반시설 덕분에 어디서나 일어나는, 탈숙련화된 (그리고 탈숙련화하는) 아카이브 작업과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는 거대한 기획의 일부로서 말입니다. 거리의 소리와 이미지를 포착해 상업적 인터넷 플랫폼에 올리고 공유하는, 대체로 ‘비물질적인’ 노동은 정치적 행동을 점점 더 콘텐츠 제공과 현행화된 아카이빙의 영역으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나 문화 실천가는 어디에 자리합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미래의 아키비스트(들)》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근본적인 모순 속에 놓였습니다. 디지털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의 교차intersection는 새롭게 민주화된 증언 형태들과 자발적으로 구성된 아카이브들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더 새로운 정보로 대체되는 정보의 과잉은 기억상실을, 이해 불가능성을 낳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은 웹의 블랙홀에서 사라지고 잊혀질 운명에 처할 위험에 놓입니다. 때로 이 과잉은 온라인 스트림의 완전한 범람으로 이어져 스트림을 더 이상 해독할 수 없게 만듭니다. 트위터가 그런 경우로, 혁명 기간의 어떤 시점들에는 특정 해시태그(이를테면 #Tahrir, #Jan25, #Tunis)를 단 트윗의 양이 스트림을 너무 가속한 나머지 어떤 트윗도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자료는 스트림 속에서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그 흔적은 불안정하며 때로는 사라집니다. 자료를 다시 찾아낼 수 있을 때조차, 예컨대 유튜브의 경우, 그 자료는 이용자가 이미 내렸을 때가 많고(특히 정치적으로 전복적인 자료라면),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판정되면 사이트가 내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컬렉션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문제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역시 전통적으로 구성된 아카이브들이 지닌 바로 그 문제들을 재생산할 위험에 놓여 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술가라는 우리의 위치 때문에 우리는 이처럼 증식한 아카이브의 선별적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었고, 어쩐 일인지 이 아카이브들의 중심에 새로운 아키비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들뜨게 한 것은 이러한 누구나의 아키비스트-되기becoming-an-archivist가 위계적 아카이브에 도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터넷을 둘러싼 싸움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거나, 가상적인 것이 감시와 프로파일링의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아카이브를 아카이브하려는 우리의 재귀적 충동이, 아카이브가 우리의 일상 경험 속으로 확장되는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던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가 그만큼 중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아키비스트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토록 분명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아카이브보다 아키비스트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키비스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도래할 아카이브들archives to come을 능동적으로 다시 빚어내고 있다고 우리가 느낀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말씀하셨듯이 그 가능성은 자아의 개념들 또한 깊숙한 곳에서부터 완전히 다시 빚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느새 획기적인seminal 일에서 범상한mundane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아카이브하고 있게 되는 이러한 변형들이 새로운 존재 방식들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예술가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카이브 활동의 이러한 편재 자체가 지닌 함의를 성찰하고 끝까지 사유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던져야 할 물음은 아카이브의 이 새로운 형태들이 ‘아카이브 가능한 것the archivable’을 앞으로 어떻게 계속 다시 빚어 낼 것인가입니다. 우리의 자아 감각 자체, 우리의 상상은 이 아카이브 활동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으며, 이 활동과 어떻게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톰 홀러트
분명 현대미술의 실천 속에서 하나의 트로프trope로 자리한 아카이브와의 관계는 달라졌습니다(혹은 옮겨 갔습니다). 권력의 아키-텍처archi-tecture로서의 아카이브에 대한 후기구조주의적 비판이 전성기를 누리고, 아카이브의 배제적이고 헤게모니적인 기능에 맞서는 특히 예술적인 작업 방식으로서 아카이브적인 것이 발견된 이래로 말입니다. 두 분의 관심이 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로서의-예술가라는 형상에서 벗어나, 네트워크에 기반해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키비스트들과 그들이 낳는 아카이빙의 ‘새로운 형태들’(이는 새로운 삶-형태들 및 주체성의 지구적 재배열reconfiguration과 관련지어야 할 것입니다)로 옮겨 갔다는 말씀에서, 저는 바로 그 ‘아카이브 활동의 편재’에 대한 어떤 우려를 읽는 동시에, 아카이브적인 것의 확산과 내재성이 커지는 데 대한 일종의 열의도 읽습니다. 두 분을 걱정하게 하는 듯한 것은 무엇이며, 아카이브 다중이 어디로 가기를 기대하거나 바라십니까? ‘아카이브를 위한 새로운 형태들’이라는 두 분의 관념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새로운 형태들은 아랍 세계의 정치적·문화적 상상들을 어떻게 빚어냅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 순간의 급진적 잠재성을 잃게 될 가능성입니다. 온라인 아카이브 활동의 급증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첫 관심이 현장에서 사람들의 정치 활동이 급증한 일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아카이브 활동, 또는 ‘아카이브 다중’이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전복적인 담론을 생산할 잠재성은, 도래할 아카이브들의 가능성의 장field of possibilities을 빚어내고 있는 하나의 조류일 뿐입니다. 또 다른 조류는 여러 면에서 현대 자본의 논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피드의 속도는 때때로 이해 불가능한 범람을 만들어 냅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지금’, 곧 즉각적인 것에 대한 현대 자본주의의 집착을 재생산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막대한 양의 자료를 생산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바로 다음 순간 그것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뿐입니다. 말씀하셨듯이, 누구라도,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공개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 사이트 가운데 상당수는 이제 거대 기업이 소유하고 있거나 스스로 거대 기업으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정보경제 속에서 이 아카이브 활동들이, 이 형태들의 급진적 잠재성이 자본에 의해 어떻게 도구화되는지 우리는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들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히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지 ‘빈곤한 이미지’(Steyerl, 2009 참조), 곧 크기가 작고, 변형 가능하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이미지—이를테면 우리에게 도달할 무렵이면 이미 여러 차례 업로드되고, 다운로드되고, 다시 업로드된 저화질 영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끝없는 블로그 사이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영상 응답들을 통해, 트윗과 리트윗과 밈의 스트림을 통해 이 영상들에 대한 논평이자 그 영상들의 재맥락화이기도 합니다. 현장의 사건은 일단 문서화되어 온라인에 업로드되고 공유되면, 이 갖가지 다양한 형태들을 통해 일련의 덧없는 응답과 발화의 스트림들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최근 트위터에서 마주친 해시태그 하나를 생각해 봅시다. #LoveInTimeOfApartheid는 연출된 시위, 곧 모의 결혼식 퍼포먼스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서안지구 신분증을 지닌 팔레스타인인(67년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신분증을 지닌 팔레스타인인(48년 팔레스타인인)이 다닐 수 있는 영토의 같은 구역들을 ‘합법적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물리적 행위, 곧 수많은 검문소 가운데 한 곳에서 그렇게 서로 다른 신분증을 지닌 ‘커플’의 결혼식을 연출하는 일로 시작되었습니다. 검문소 양쪽의 시위자들이 반대편으로 건너가려 하자, 그 행동은 필연적으로 이스라엘군과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이 일이 벌어지는 동안 현장의 사람들은 트윗을 올리고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하며 현장 소식을 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시 이를 리트윗하고 댓글을 달았으며, 댓글을 통해서든 현장 사진에 글을 덧붙인 뒤 다시 업로드하고 트윗하는 방식을 통해서든 저마다 개입했습니다. 이렇게 올라온 것들이 다시 리트윗되고, 이런 과정이 계속 이어집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서로 다른 여러 개인이 그 사건의 만들어지고-있는-아카이브archive-in-the-making에 수행한 다수의 기입들inscriptions입니다. 여러 면에서 이런 종류의 덧없는 정치적 행동들은 바로 이 모든 형태로 재생산되기 위해 연출됩니다. 우리는 이 형태들이 새로운 종류의 행동주의를 형성한다고까지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톰 홀러트
그렇지만 정치적 수행성의 이 새로운 형태들은 디지털 네트워크에 단단히 둘러싸여 있다entrenchment는 점에서, 따라서 온갖 종류의 포획capture에 예속subject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물론입니다. 정보의 가단성(可鍛性)malleability과 속도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상당히 궤를 같이합니다. 게다가 개방적인 교환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장소가 감시, 추적, 프로파일링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문서화되고 있으며, 어떤 반체제 활동dissidence이라도 있으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페이스북 게시물과 공유, 심지어 ‘좋아요’까지, 그리고 트윗과 영상들이 정치적 선동가, 반체제 인사, ‘안보 위협’을 겨냥한 증거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아카이브들의 미래, 곧 이러한 형태들 자체의 미래를 둘러싸고 결정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보와 글, 이미지, 영화, 음악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그 모든 문화와 정치 속에서도, 사람들이 디지털적인 것/가상적인 것을 활용해 지식을 상품으로 생산하라는 자본의 집요한 요구를 전복할 가능성 자체가 끊임없는 위협과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정보 흐름과 교환을 통제하려는 입법을 둘러싼 투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무엇이든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뿐 아니라 그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이유만으로도 제거되고, 삭제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아카이브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빚어내는 데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 투쟁일 것입니다.
아마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아카이브 다중이 어디로 가기를 우리가 바라는지 분명히 보여 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 투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카이브 다중이 때로 다양한 형태의 일상적이고 작은 저항을 촉구하고 수행하는 이질적인 정치적 신체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위들—앞서 #LoveInTimeOfApartheid로 언급한 것과 같은 행위들—이 앞으로도 계속 실행 가능하기를, 이 새로운 형태들의 급진적 잠재성을 알아보고 활용하며 지켜 내기 위한 투쟁을 통해 다른 정치적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랍 세계로, 혁명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사람들의 아카이브 활동, 그들이 현장에서 그 순간을 증언한 일, 그리고 이 증언을 대거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권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대한 수단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봉기에 나선 시민들[4]은 현장에서 사건을 빚어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같은 순간에 이미지와 영상, 소리와 글을 통해 대항서사들counter-narratives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있었습니다. 시위자들이 타흐리르 광장을 떠나던 무렵의 한 영상에서 누군가가 그들에게 의미심장하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여러분이 촬영한 모든 것을 온라인에 올리는 걸 잊지 마세요. 그래야 우리가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없는 새로운 이집트에서 눈을 뜰 수 있으니까요.”[5] 이 역동적인 그-순간의-아카이브archive-of-the-moment는 아주 손에 잡힐 듯한 방식으로 국가의 상징권력에 균열을 냈습니다. “스펙터클의 시대에 국가의 상징권력이라는 건축물에서 그토록 핵심적이었던 외양들appearances에 대한 통제 자체가 치명적으로 위태로워졌다”(Abou-Rahme and Jayyusi, 2011: 627)는 것입니다.
톰 홀러트
인민의 이미지를 집단적으로 재전유한 이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건들에 대한 검열되지 않은, 포스트-스펙터클적 재현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권력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습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아랍 세계의 흩어진 ‘공중public’—적어도 정권 편에 서지 않은 이들—은 그 순간 그 아카이브 활동을 통해, 전기가 흐르는 듯한, 변화를 향한 인민의 의지의 맥동을 경험했습니다. 아직-상상할-수-없는 것not-yet-imaginable이 아직-물질적이지-않은 것the-not-yet-material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두려움과 통제라는 억압적인 중압 아래에서 지내 왔고(이는 아랍 세계 전역에서 느껴지던 것입니다), 권력 남용에 맞서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도 없었던 터라, 그러한 정권이 붕괴하는 순간을 상상하거나 전망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물며 평범한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과 봉기가 불러온 붕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던 것이 거의 기적처럼 물질화된 그 순간이 아랍 세계의 정치적·문화적 상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그 순간은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느껴 온 상상의 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다른 정치적 지평, 정치적·문화적·사회적으로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아주 오랫동안 위태로운 상태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정치적 삶을 거머쥐고 사회정의를 향한 아직-물질적이지-않은 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느낌은, 온전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해도, 손에 잡힐 듯 명료했습니다.
톰 홀러트
아랍 세계에서 새롭게 발견된 변화의 행위주체들(행동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이들)이 벌인 투쟁과 시위, 저항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즉각 아카이브될 만한 것으로 만들기archivalization는 여러 차원을 지니며, 다양한 공중들을 향합니다. 그 순간의 아카이브가 봉기에 나선 시민들 사이에서는 동원의 수단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 사건을 지켜보는 현지와 전 지구의 시청자에게는 (대항)정보의 매체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갑자기 획득한 정치적 행위주체성이 주는 흥분과 신체적 상해나 죽음이라는 극심한 위험 사이에서 예외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삶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아카이브될 만한 것으로 만들고 유통하는 활동이 반드시 어떤 간극을 메우는 것은 아닙니다. 나세르 아부라흐메Nasser Abourahme와 메이 자이유시May Jayyusi(2011: 627)가 강조한, 재현이나 매개를 거치지 않은 복종 거부의 충동과 이미지·소리·글을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더 널리 유포하는 순간 사이의 간극 말입니다. 아니면 두 분은 디지털 미디어와 인터넷이 가능하게 한 아카이브 작동들archival operations이 정권의 상징적 헤게모니의 균열에 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위와 반체제 활동 자체를 구성하며 아직-물질적이지-않은 것을 실현하려는 인민의 의지를 북돋운다고 주장하십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한 것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질문을 향한 어떤 흥분과 주저함을 표현합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는 그렇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봉기에 나선 시민들의 아카이브 활동은 그 자체로 시위와 반체제 활동을 구성합니다. 그것이 시위자들에 ‘의한 행위’ ‘act by’ protestors이자 시위‘의 수행하기’ ‘performing of’ protest인 한에서 그렇습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봉기에 나선 시민들은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증식한 아카이브들을 생산하는 행위 자체를,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이 아니라 권력의 스펙터클에 균열을 내는 근본적인 방법으로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순간 그것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되며, 그 자체로 반체제적인 정치적 힘을 구성합니다. 그들이 아카이브를 파편화함으로써 권력에 반항한다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반항은 마찬가지로 바로 그 아카이브 행위를 통해 수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신중하게 접근하려 합니다. 이 아카이브 활동은 오직 물질적·신체적 봉기의 반복들iterations 가운데 하나일 때에만 시위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상호연관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동시에 이 아카이브 활동이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상상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긍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정치적 되기를 향한 의지의 표현이며, 그렇게 하여 아직-물질적이지-않은 것을 향한 구체적인 몸짓입니다.
톰 홀러트
하위문화와 서발턴의 정치가 역사적·이론적 설명account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점점 더 중심에 놓게 되면서, 지난 20년 동안 아카이브와 아카이빙에 관한 정교하고 세심한 이론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폭넓게 인정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퀴어 연구와 퀴어 행동주의 분야에서는 불편부당한disinterested 아키비스트의 권위가 해체되어 왔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아카이브를 제약하는 조건들”을 심문하는데, 이는 “아카이브와 아카이브적 관계의 새로운 양식들을 위한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입니다(Danbolt, 2009: 34). 선도적인 퀴어 문화이론가 주디스 핼버스탬Judith Halberstam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카이브는 보관소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이 문화적으로 유의미한가에 관한 이론이자, 집단기억의 구성construction이고, 퀴어 활동에 관한 복합적인 기록이기도 하다”(Danbolt, 2009: 35에서 재인용). 따라서 아카이브 권력archival power을 탈취하고, 탈식민화하고, 재분배하는 일은 권리를 침해당한 집단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아카이브주의archivalism를 행동주의로 (그리고 그 역으로; Danbolt, 2010를 참고) 새롭게 규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두 분은 아카이브 활동과 정치적/대항문화적/하위문화적 행동주의가 교차하는 이러한 지점들을 어떻게 경험하고 분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전투적 아카이브militant archive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 온 공통 아카이브들이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매우 전투적인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아카이브’를 권력의 체제들, 그리고 진리와 지식의 생산에 대한 통제와 본질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본다면, 누구나 아키비스트가 될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지극히 전투적입니다. 어쩌면 전투적인 제3시네마third cinema가 실현하려 했던 것이 아카이브의 이러한 급진적 재배열을 통해 이제야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Steyerl, 2009: 7). 동시대의 순간이 아카이브주의와 행동주의의 교차로 정의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인민의 권력 되찾기는 부분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자신들만의, 스스로 결정한 증언을 위한 장소로서 아카이브를 되찾는 것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로든 소리로든 글로든, 증언으로서의 기록이 지닌 정치와 힘이 이토록 공개적으로 파악되거나 논쟁의 대상이 된 적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불과 며칠 전 우리는 바위의 돔에서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군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 여러 개를 보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스마트폰과 플립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이스라엘 병사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시위의 본질적인 일부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말해 온 의미에서의 아카이빙이란 단순히 기록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수행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로, 아카이브 활동과 정치 활동의 교차가 권력의 생산적 담론을 탈신비화하는 능력을 이집트의 경우만큼 부여받은 적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인민의 아카이브는 스펙터클의 바깥에서가 아니라 스펙터클과 정면으로 대립하며 봉기의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권력의 상징적 질서가 어지럽혀unhinged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카이브 행동주의 archival activism는, 그렇지 않으면 사유화되는 지식을 이용 가능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공통 아카이브라는 관념 자체를 위한 투쟁, 가치증식valorization의 논리를 통해 삶의 모든 측면을 포획하는 자본주의 문화와 어긋나는, 다르게 존재하고 관계 맺는 방식들의 가능성을 위한 투쟁입니다.[6] 우리에게 이것들은 모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상상의 각성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전투적 아카이브들입니다. 특히 정치적 상상이 그토록 오랫동안 위기에 처해 있었던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안보를 구실로든 저작권을 구실로든) 사람들 사이의 정보 흐름과 교환을 통제하고 감시하려는 최근의 온갖 입법을 보면, 권력의 중심 노드들이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합니다.[7]
톰 홀러트
왈리드 라드Walid Raad나 아크람 자타리Akram Zaatari 같은 중동 출신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에서, 흔히 허구화와 역사적 사변이라는 전략을 구사하며 아카이빙의 실천들이 해 온 두드러진 역할을 돌아볼 때,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두 분이 아카이브적인 것의 문제와 아키비스트들의 수행performance으로 방향을 돌린 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수반합니다. 이 최근의 아카이브 행동주의들은 어느 정도까지 어떤 (두 분의) 예술적 시선, 곧 그러한 ‘파라픽션적parafictional’(Lambert-Beatty, 2009) 아키비스트 실천들에 의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큰 시선의 대상이 됩니까? 타흐리르 광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스마트폰을 든 활동가-아키비스트들은 현대예술 실천들 안에서 여전히 그토록 강렬하게 고동치는 ‘아카이브 충동’의 재배열을 어떤 식으로 필요로 하게 만듭니까?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리의 위치와 실천은 우리보다 앞서 활동한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왈리드 라드와 아크람 자타리 등이 아카이브와 ‘문서’의 관념 자체와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해낸 방대한 작업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아카이브와 씨름할 수 있을 만큼 해방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파라픽션적’ 아키비스트 실천들은 분명 ‘실제적인 것’과 ‘상상된 것’,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가시화된 것과 가시화되지 않은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형성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소리와 음악의 세계에서 온갖 것을 샘플링하고 리믹스한 음악의 선구자들, 백남준과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 같은 초기 비디오 예술가들, 그리고 파운드 푸티지에서 인포머셜infomercial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재활성화한 자키들jockeys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자료에 두 번째 생명을 불어넣었고, 뒤이어 올 음향·영상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와 애덤 커티스Adam Curtis 같은 정치영화·실험영화 감독들의 영향도 있습니다. 이들은 후기 작업에서 담론과 이미지의 생산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아카이브 자료를 샘플링하고, 다시 자르고, 이어 붙였습니다. 이 다양한 실천들 사이의 교차들이 우리를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새로운 아카이브 다중으로 시선을 돌리고, 예술가로서 우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는 곳으로 말입니다. 《미래의 아키비스트(들)》은 이 모든 사람의 아키비스트-되기와, 여전히 펼쳐지고 있는 그것의 정동들을 직접적으로 성찰합니다.

도판 6.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발적인 봉기자들》(2012), 영상 스틸. ©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도판 7.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발적인 봉기자들》(2012). 예루살렘의 알 마아말 현대미술재단(Al Maamal Foundation for Contemporary Art)에 전시된 설치작품 전경. ©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우리가 가장 최근에 완성한 작업 《우발적인 봉기자들》(The Incidental Insurgents, 2012)은 바로, 이 순간의 언어를 찾으려는 우리 자신의 탐색이자 공통의 탐색을 표현하는 정치적 되기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작업에서 우리는 도적bandit이라는 형상을 탐구하면서, 도적으로서의 아나키스트, 예술가, 반란자가 지닌 가능성들과 불충분성들을 깊이 파고듭니다(도판 6). 이는 우리가 아직 볼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고 느끼는 것, 곧 새로운 정치적 상상과 언어를 지닌 도래하는 반란을 향한 강박적인 탐색처럼 보이는 데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억압된 아카이브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심지어 그것들을 재활성화한다는 의미에서의 아카이브 충동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순간과 도래할 순간의 아직-물질적이지-않은 잠재성을 추적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설치작품의 한 부분은 우리 자신의 작업실을 한층 과장하여 재현한 공간이며(도판 7), 아마 지금까지 우리가 한 작업 중 가장 개인적인 작업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작업의 안팎을 뒤집음으로써 주관적인 것the subjective/실제적인 것the actual /물질적인 것과 공통적인 것/상상된 것/아직-물질적이지-않은 것 사이의 교차들을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활동가-아키비스트들은 분명 우리 자신의 아카이브 실천을 재배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쩐 일인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밝혀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카이브들의 새로운 되기 한가운데 있다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한때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가 차지했던 위치를 이제는 아키비스트로서의 활동가가 차지해 가고 있습니다. 활동가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생활, 곧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의 기록들을 모으고 업로드하는 모든 개인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아카이브 야심들archival ambitions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증식하고 있으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살아 있는 아카이브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와 작가들이 대항-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전념해 온 아카이브에 대한 심문은 이제 이 새로운 아카이브 다중의 실천들을 통해 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를 이 순간의 전조(precursor)로 읽어냅니다. 이제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예술가-아키비스트로서의 우리 자신을 넘어 이 압도적인 아카이브 활동의 가능성들로 옮겨 갔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미래의 아키비스트(들)》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분명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아카이브 활동을 우리 나름대로 읽어내고 그 위에 기입하는 일에 분명 연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몰아대는 것은 확장된 아키비스트들의 기입들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이 거대한 아카이브 다중의 작은 일부라는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 소개:
바셀 압바스·루안 아부-라흐메
바셀 압바스(Basel Abbas, 1983년 키프로스 니코시아 출생)와 루안 아부-라흐메(Ruanne Abou-Rahme, 1983년 미국 보스턴 출생)는 뉴욕과 팔레스타인 라말라를 오가며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예술가 듀오이다. 2007년부터 사운드, 영상, 텍스트,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식민주의와 일상 속 반식민적 저항, 집단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탐구해 왔다. 이들의 작업은 욕망과 재난의 정치, 공간의 정치, 주체성, 현대 권력의 부조리를 다루며, 실제적인 것과 상상된 것, 기억된 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공간적 공명을 탐색한다. 기존 아카이브에서 발굴한 자료와 직접 제작한 사운드·이미지·텍스트를 수집하고 샘플링하여 새로운 서사와 감각적 경험으로 재구성하며, 점차 사운드와 이미지, 장소의 몰입적·경험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복합매체 설치작업과 라이브 시청각 퍼포먼스로 실천을 옮겨왔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리버풀, 이스탄불, 광주, 상파울루, 샤르자, 부산, 베를린 비엔날레 등 여러 국제 예술행사에 참여했다. 2015년 샤르자 비엔날레상과 2016년 아브라즈 그룹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주요 개인전은 뉴욕현대미술관과 미그로스 현대미술관(2022), 아스트룹 페른리 미술관(2023),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센터와 코펜하겐 컨템포러리·뉘 칼스베르 글립토테크(2024), 노팅엄 컨템포러리(2025~2026),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과 로테르담 쿤스트인스티튀트 멜리(2026) 등에서 열렸다.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샤르자 아트 파운데이션, 무담 룩셈부르크, 티센보르네미사 아트 컨템포러리 등에 소장되어 있다.
2020년부터 진행해 온 장기 프로젝트 《망각이 우리의 입에 입 맞추지 않기를》(May amnesia never kiss us on the mouth)은 폭력과 이주, 상실을 경험한 공동체들이 노래와 춤, 몸짓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와 집단적 삶을 다시 주장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뉴욕현대미술관과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커미션한 이 프로젝트는 여러 작품과 전시로 확장되었다. 그 일부인 《우리가 불이 되고 불이 우리가 될 때까지》(Until We Became Fire and Fire Us, 2023)는 샤르자 비엔날레 15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2026년 9월 서울 누화 컨템포러리의 개관전이자 작가들의 한국 첫 개인전에서 새로운 형태로 선보였다. 또 다른 최근작 《사랑의 수감자들: 자유의 태양이 올 때까지》(Prisoners of Love: Until the Sun of Freedom, 2024~2025)는 팔레스타인 전 수감자들의 목소리와 증언, 노래와 시를 바탕으로 감금과 억압 속에서도 지속되는 저항과 집단적 상상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 작품은 2025년 노팅엄에서 처음 선보인 뒤 2026년 바르셀로나와 로테르담에서 전시되었다.
톰 홀러트
톰 홀러트(Tom Holert, 1962년 독일 함부르크 출생)는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미술사학자이자 문화연구자, 비평가, 큐레이터, 예술가다. 『Texte zur Kunst』와 『Spex』의 전 편집자이며, 2000년 쾰른의 시각문화연구소(Institute for Studies in Visual Culture, ISVC)를 공동 설립했다. 빈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Vienna)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후 미술이론·문화연구 명예교수로 활동해 왔다. 쾰른 세계예술아카데미(Academy of the Arts of the World)의 창립 회원이자, 2015년 설립된 베를린 하룬 파로키 연구소(Harun Farocki Institut)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현대미술과 후기 모더니즘 미술을 비롯해 시각문화, 정치, 전쟁, 이동성, 대중문화와 통치성의 관계를 연구해 왔으며, 특히 현대미술의 지식생산과 인식론적 정치, 예술교육과 연구의 제도적·공간적 조건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주요 저서로 『이미지 공간에서 통치하기』(Regieren im Bildraum, 2008), HBO 드라마에 관한 연구서 『데드우드』(Deadwood, 2013), 『개입들: 현대미술의 상태와 권한』(Übergriffe: Zustände und Zuständigkeiten der Gegenwartskunst, 2014), 『자기 밖의 지식: 현대미술의 인식론적 정치』(Knowledge Beside Itself: Contemporary Art's Epistemic Politics, 2020), 『학습의 정치, 공간의 정치』(Politics of Learning, Politics of Space, 2021) 등이 있다. 2024년에는 『“ca. 1972”: 폭력·환경·정체성·방법』(“ca. 1972”: Gewalt – Umwelt – Identität – Methode)을 출간하고 라이프치히 도서전상 논픽션·에세이 부문을 수상했다.
예술가이자 큐레이터로서 《Manifesta 7》(2008), 《Modernologies》(2009~2010), 제8회 광주비엔날레(2010), 《Animism》(2012) 등에 참여했으며, 안젤름 프랑케와 함께 《Neolithic Childhood》(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2018)를 기획했다. 이후 1960~1970년대 교육의 공간적·정치적 변화를 탐구하는 《Education Shock》(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2020)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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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컨대 2011년 10월 5일 베이루트의 ‘더 케이브The Cave’에서 녹화한 《베이루트 라이브》(Live in Beirut)(https://vimeo.com/30768897), 그리고 2012년 5월 21일 라말라의 ‘베이트 아니세Beit Aneeseh’에서 녹화한 《라말라 라이브》(Live in Ramallah)(https://vimeo.com/44609871)를 보라.
[2]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군사통치 아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직접적인 관할권에 속하는 예루살렘, 하이파, 나사렛 같은 지역, 곧 이스라엘 ‘본토’ 내부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경험이다.
[3]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은 2011년 이집트 혁명의 중심지였다.
[4] 이처럼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혁명이 극도로 탈중심적이고 이질적이었으며 때로는 익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이용자들이 당시 정권에 맞서 봉기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우리는 그들의 구체적인 정치적 소속을 알지 못한다.
[5] 영상의 제목은 「이집트 혁명: “내일 봐요!”」(Egyptian Revolution: “See you tomorrow!”)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Y2Akb1V4oMI.
[6] 분명히 이러한 측면들을 사유하면서 우리는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빠올로 비르노Paolo Virno 및 다른 포스트-오페라이스모post-operaist 사상가들의 저작에 빚지고 있다. 이들은 포스트-포드주의와 인지자본주의의 형성과 존립에서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과 언어적 능력이 하는 역할을 통해 구성되는 저항과 봉기의 잠재성을 강조한다.
[7]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좌절된 SOPA(온라인 해적행위 방지법, Stop Online Piracy Act)다. 이 법안은 저작권 침해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방어권조차 보장하지 않은 채, 저작권자에게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되는 자료만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웹사이트 전체를 폐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려 했다. 이 법안은 대규모 동원으로 저지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위키피디아 같은 사이트들이 하루 동안 운영을 중단한 SOPA 블랙아웃이었다. 물론 그 국제적 변형이라고 할 만한 ACTA(위조품의 거래 방지에 관한 협정, The Anti-Counterfeiting Trade Agreement)도 있다. 이 협정은 역시 대규모 동원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거부되었다. 그러나 협정의 초안을 작성한 일본과 미국, 그리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싱가포르, 한국, 멕시코는 이 협정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이 이를 거부했음에도 협정이 앞으로 추진될지는 분명하지 않으므로, ACTA의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다. 이제 미국 의회에는 새로운 법안인 CISPA(사이버 정보 공유 및 보호법, Cyber Intelligence Sharing and Protection Act)가 제출되어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은 위협을 ‘식별’한다는 명목으로 이용자들의 사적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며, 사실상 모든 사람의 온라인 활동이 영장 없이도 그들에게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미 몇몇 재판에서 페이스북의 ‘좋아요’와 게시물이 증거로 사용되어 법적 선례가 만들어졌다. 아랍 세계 일부 지역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국가/군주제의 검열이 분명한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관련 법률이 별로 없는데도 일이 자의적으로 처리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간주된 페이스북 게시물과 댓글, ‘좋아요’를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체포되었고, 최근에는 경찰을 비판하는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렸다는 이유로 튀니지의 래퍼 두 명이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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