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무브 Writing/인-무브 서교연47

커먼즈와 사회 전환 커먼즈와 사회 전환 권범철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커먼즈(commons)라는 말이 자주 보이고 들린다. 아무래도 생소한 말이니 — 한국어가 아니다 —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커먼즈라는 운동 혹은 삶의 양식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인류에게 공통적인 것이다.[1] 그럼에도 그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외국어여서만은 아니다. 그 용어가 가리키는 삶의 양식이 우리에게 낯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우리는 공통의 삶보다는 각자도생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 하지만 커먼즈는 사라졌다기보다는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며 가끔씩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선 그 .. 2025. 1. 16.
교차성 개념을 통해 바라본 이주노동자 속헹씨 산재사망 사건 교차성 개념을 통해 바라본 이주노동자 속헹씨 산재사망 사건 쏠(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2020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농장 숙소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1] 속헹씨가 발견된 공간은 이름만 숙소일 뿐 비닐하우스 내에 있는 조립식 가건물이었다. 해당 가건물에 속헹씨와 함께 거주하던 동료 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속헹씨가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해당 장소의 전기 공급장치가 고장 난 상태였고,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난방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속헹씨가 발견되기 전날 포천 일대의 기온은 영하 19도로 한파 경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속헹씨의 1차 부검 소견은 ‘간경화에 의한 혈관파열과 합병증’인데, 법의학 전.. 2024. 9. 22.
강제가 아닌 설득의 모험을 향하여: 화이트헤드의 평화론에 관한 연구 강제가 아닌 설득의 모험을 향하여 : 화이트헤드의 평화론에 관한 연구 박기형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 서론 평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평화에 대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실천에 관한 논의는 인류의 오랜 과제였다. 하지만 평화에 관한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전 세계 각지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은 그 자체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지역 간 불평등을 조장하는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맞서 공동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임에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국가들 사이의 협력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2024. 1. 30.
국제질서의 변동과 사회운동의 공간(2/2) 국제질서의 변동과 사회운동의 공간(2/2)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계속) *** 요컨대, 신냉전론은 일말의 진실과 일말의 획책을 담고 있다. 이를 면밀하게 구분함으로써 우리는 미국의 정치 엘리트와 바이든 행정부가 그리는 국제질서 재편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유럽과 비서구 국가들에 제기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신냉전론은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신냉전론의 여러 버전 중 이념 대결과 진영 대결에 초점을 두는 주장의 경우, 가치 외교나 이념 논쟁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가치 외교에 반대하면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쪽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주장은 누구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오직 ‘국익’이라는 말로 포.. 2023. 12. 18.
국제질서의 변동과 사회운동의 공간(1/2) 국제질서의 변동과 사회운동의 공간(1/2)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 글은 에서 발표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다. 왜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사회운동은 국제질서의 변동을 예의주시해야 하는가? 세계를 돌아보면,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온갖 상품을 교역하고 금융시장은 분주하며 국민국가와 국제기구 시스템이 건재한 듯 보인다. 하지만 2023년 현재 국제질서는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전쟁과 학살, 에너지·식량 위기, 바이러스의 창궐 등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국제질서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이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다는 일종의 불안감일지도 모른다. 그런 막연함 속에서 우리 사회운동은 .. 2023. 12. 14.
민주공화국이라는 종교적 대상: 스피노자 『신학정치론』의 종교-정치적 전략(2/2) 민주공화국이라는 종교적 대상: 스피노자 『신학정치론』의 종교-정치적 전략(2/2) 김강기명경희대학교 비교문화 연구소 전임연구원  (계속) IV. 다른 신앙을 가진 동료 시민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또한 종교의 외적 실천, 즉 도덕적 행위, 공적 예식 등의 영역 역시 통상적인 해석에서처럼 단순히 국가가 교회나 신앙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가지고 무언가를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영역으로 볼 수는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가 “참된 종교”라고 부른 성서의 도덕 신학에 대해 설명할 때, 사랑, 정의, 순종이라는 계명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의하는 것을 피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학정치론』에 명시적인 이유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스피노자는 도덕 신학의 .. 2023.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