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산재사고는 오랜 기간 근본적인 해법이 마련되지 않은 채 반복되어왔다. 그 결과 산재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은 채 산재은폐가 구조화되었다. ‘숨겨진 산재’는 산재 피해자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감춘다. 산재 당사자뿐만 아니라 산재사망으로 남겨진 유가족 그리고 피해노동자의 동료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죽거나 살아남았다.
한국사회 산업재해 해결의 실패는 산재 원인 규명의 실패이자, 산재 피해자 지우기의 결과다. 이 과정을 통해 산업재해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의제가 아니라 산업활동에 따른 부수적 피해로 정당화되어 왔다.
다만 몇몇 사례들이 균열을 일으키고 '사회적 사실'로서 산업재해를 드러냈을 뿐이었다. 문송면군 사망사고,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사고가 그렇게 사회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IMF 위기를 틈타 비정규직 노동이 증가했고, 나아가 위험의 책임을 합법적으로 털어낼 수 있는 외주화가 진행되면서 불안정 노동자들의 위험이 증폭되었다.
2016년 구의역 ‘김 군’ 사망사고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산재 사망사고가 증가하던 와중에 2014년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시민들의 위험인식이 증가하던 시점과 맞물려 사건화되었다. 또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면에 등장한 유가족들의 활동은 구의역 사고 이후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을 추동하게 된다.
본 연구는 2000년부터 산재사망 사고에서 유가족들의 사회적 활동을 조사하여 2016년 이후 본격화된 유가족 활동의 내용과 의미를 조사, 연구했다. 구의역 사고 이전에도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은 존재했다. ‘진상규명’을 전면에 내걸고 노동조합과 시민대책위와 함께 주체적으로 투쟁에 참여한 ‘유가족운동’의 처음은 무엇일까?
1999년 산재노동자 이상관의 자살로 시작된 ‘이상관 투쟁’에서 유가족(아버지)은 대책위(〈산재노동자 이상관 자살 책임자처벌과 근로복지공단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160여 일이 넘는 투쟁의 처음과 끝을 지켰다. 5개월에 걸친 공단 앞 농성투쟁에 참여하며, 4~5차례 이뤄진 농성장 침탈을 시민대책위와 함께 막아냈다. 투쟁에 참여한 김재광은 “유가족이 훌륭했던 것은 회사 측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혼자 결정하지 않고 대책위와 늘 상의했고, 결국 대책위 전체의 의견에 따라준 것”(인터뷰)이라고 회고했다. 이후 삼성의 백혈병 피해를 세상에 알린 황유미의 유가족 황상기(아버지)의 싸움이 있었고 황상기 유가족은 유가족-활동가로서 10여 년간 삼성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산재 유가족운동을 연구하고자 하는 바는 첫째, 산업재해 피해자가 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과 의미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다. 오랫동안 산재 유가족은 회사 측의 가장 처음의 회유 대상이면서 합의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법적 책임과 사회적 발언이 금지되었다. 산재 유가족은 거대 회사와 고립된 개인의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사적합의’를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사회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회사 측의 산재은폐의 시도가 폭로되는 과정이자, 피해의 범주가 개인에서 동료 노동자 전체로 확장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둘째, 유가족이 사회적으로 등장할 때 필요한 충분조건으로서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유가족의 결기와 결의가 사회적으로 조명되는 만큼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현장 동료들의 행위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유가족을 피해자화하는 또 다른 잘못된 시선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유가족은 주체로 나설 때조차 영웅화된 희생양으로서 굴절되기 쉽다. 싸움의 과정에서 사회운동의 역량과 만나지 못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란 단편적이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비롯해 사회운동이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유가족의 활동과 목소리의 결이 달라지며, 유가족의 활동에 따라 투쟁의 양상이 변화한다. 이러한 상호관계성에 기반해 유가족운동의 의미를, 전체 노동자 건강권 싸움의 역사적 과정에 ‘위치’ 지우고자 했다.
셋째, 원인규명을 중심으로 한 진상조사활동, 진상규명 활동의 중요성이다.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기술적이고 표면적인 원인에 국한되고 이에 대한 해결과정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유가족과 결합한 산재투쟁은 구조적인 원인규명과 사고 이후의 전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과정에서 산재사고는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