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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기고

'극우파'의 인류학을 실행하기 - 『영원의 전쟁: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 서평

by 인-무브 2025. 8. 25.

'극우파'의 인류학을 실행하기

- 『영원의 전쟁: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

(벤저민 R. 타이텔바움 저, 김정은 역, 2024, 글항아리)

 

 

임인호*

 

“사형 선고 정도는 받아야 세계적 인물로 하나님이 사용한다”[1], “주사파를 다 잡아 넣고, 목사님을 석방시키는 그날까지 우리는 더 뜨겁게 기도하고 우리는 더 간절하게 기도합시다”[2].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극단적인 종교-정치적 수사는 이제 주변부 사상적 아웃사이더나 극우 종교적 급진파의 금방 타오르고 쉽게 흩어져 버리는 단발성의 극단적인 종교적 레토릭이 아니라 제도권 정치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어, 심지어는 수용되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그저 커뮤니티 모퉁이나 소규모 급진파 지하 그룹, 이단적 종교 집단에서만 순환하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극단적 정치 담론이 아니라 제도권 정당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러한 담론을 생산하는 집단의 지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전면화됨으로써 이들에게 ‘기회의 공간’이 열린 것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각종 우익 문화 엘리트, 종교 지도자, 이데올로그들이 ‘우리’와 ‘그들’을 선명하게 나누고, 악마화된 타자를 우리 사회의 부적격자이자 ‘안전’과 ‘기회’, ‘위생’,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명명화한 뒤 이들의 제거와 정화가 가져올 ‘잃어버린 영광’ 내지는 ‘상상된 혹은 발명된 노스텔지어’를 낭만화하고 이상화하는 정치, 바로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을 한국 사회의 중심적인 정치 무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극우’ 혹은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개념화는 그 개념이 포괄하는 범위와 대상, 그 개념 정의와 사용에 있어서의 모호함과 느슨함 때문에 여전히 문제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라브달과 비외르고(Ravndal, J. A., & Bjørgo, T, 2018)는 극우 테러리즘과 정치적 폭력에 관해 쓰여진 문헌들에 대한 리뷰 논문에서 관련 전문 학술지 내에 게재된 극우 테러리즘 및 정치적 폭력 관련한 문헌들에서 이 개념들이 느슨하게 정의되어 서로 다른 뉘앙스를 띈채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익 테러리즘(right-wing terrorism)”, “인종주의적 폭력(racist violence)”, “네오-파시스트적 폭력(neo-fascist violence)”, “급진적 우익 폭력(radical-right violence)”, “극우 폭력(far-right violence)” 등의 개념이 극우의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을 묘사하고 정의할 때 교차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연구를 수행한 정치학자인 카스 무데(카스 무데·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 2018; 카스 무데; Mudde, C, 1995)는 극우(far right)의 구성원들이 권위주의적 성향, 즉 다양성과 개인적 자율성에 대한 불관용, 토착주의(nativism)와 종족적 민족주의의 형식으로 귀결되는 동일성, 하나됨, 집단 권위에 대한 본질적인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내리면서 “급진적인 우익 행위자(radical-right actors)”와 “극단적인 우익 행위자(extreme radical-right actors)”를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급진적인 우익 행위자는 민주주의적 경계 내에서 정치적 행위를 실천하는 반면 극단적인 우익은 공공연히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광범위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비관습적이거나 폭력적인 수단을 활용한다. 그러나 이 둘 모두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불평등, 권위주의, 토착주의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스프린작(Sprinzak, E, 1995)은 우익 테러리즘(right-wing terrorism)에 대해 수행한 자신의 연구에서 우익 극단주의 집단이 어떻게 그들의 목표 집단을 탈정당화(Delegitimization)함으로써 테러리즘적인 정치적 폭력을 스스로 정당화하여 실천하는지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극우의 윤곽과 그들의 행위 전략을 그려낸다. 특히, 이 극우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과 폭력에 대해 후회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에, 잔인한 폭력 행위자가 되기 위해 심오한 심리적-정치적 변형을 겪을 필요가 없다. 스프린작은 이 극우의 형성과 그들의 정치적 폭력을 동기부여하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1) 극단적인 감정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갑작스럽고 강렬한 불안정성의 감각, 2)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으로부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극우 리더들의 신념, 3)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undesirable people)”을 향한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 대중들이 점차 지지한다는 감각, 4) 개인적-심리적인 이유로 테러리즘에 대한 의존이 만들어 지는 폭력적인 인성구조의 존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극우의 인성 행위 전략, 행위가 이루어지고 그것을 조건화하는 사회 구조 등이 얽히면서 극우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위의 논의를 포함하여, 사회적 지위의 손실과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타자에 대한 광범위한 극우적 폭력이 비롯된다는 설명(바버라 F. 윌터, 2025; Willems, H, 1995)이나 제도권 밖의 극단적인 하위문화와 정치적 행동주의 서클, 그리고 내부의 누적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극우가 배양된다는 설명(Koehler, D, 2018), 극우적 세계관에 대한 낮은 수준의 사회적 낙인과 다양한 담론들이 수용될 수 있는 개방적 환경이 극우적 폭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논의(Due Enstad, J, 2018) 등은 공통적으로 특정한 ‘타자’에 의한 ‘위협’을 극우 포퓰리즘의 구성요소로 보고 있다. 즉, 개념 정의와 사용에 있어서 연구마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극우’가 구성되는 핵심적인 조건으로서 동질적이고 폐쇄적인 ‘우리’와 매 순간 우리의 무엇인가를 약탈해가려고 은밀하게 잠입하고 침투하는 ‘그들’이라는 정치적 경계가 극우가 만들어지는 구성적인 핵심 중 하나인 것이다. 

 

『영원의 전쟁: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은 전통과 ‘타자’가 배제된 순수성, 그리고 민족적/국민적 원형을 향한 갈망을 드러내는 바로 이 극우 포퓰리즘이 어떤 정신적 기반 아래 구성되고 번영하고 있는지를 민족지적으로 탐구한 텍스트다. 책의 저자이자 인류학자인 벤저민 R. 타이텔바움은 북유럽 급진 우익 내셔널리즘 단체를 중심으로 ‘극우파의 인류학’을 연구하는 민족지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재 극우 지하 운동권의 표면화와 영향력 확장이라는 시의성에 응답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지만, 극우파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문제 제기가 나름의 철학적 기초를 가진, 불안정하지만 일관된 사상적 기저 위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다는 점을 현장연구를 통해 밝힌다는 점에서 현장성과 이론적 탐구가 합쳐진 민족지학적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책은 한 명의 핵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극우의 사상적·인적 네트워크가 제도적 정치 공간과 서로 얽히고 분리되었다가 다시금 거칠게 엮이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방식으로 쓰여졌는데, 여기서 나열되는 문제적인 사건들은 서로 상관성이 없는 듯 보이지만 ‘전통주의’라는 사상적·정신적 토양 위에서 자라났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이 핵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현장 연구 수행 기록을 분석하여 보여주기 전에 먼저 일상적인 맥락에서 사용되곤 하는, 소문자 t로 시작하는 ‘전통주의자(traditionalist)’와 저자가 현장연구를 통해 발견하고 개념화한 대문자 T로 시작하는 ‘전통주의자(Traditonialist)’를 구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자는 단순히 낭만적인 과거와 전통, 관습을 이상화하고 현재를 비판하지만, 후자는 세속주의, 이성, 합리성, 진보, 과학, 민주주의, 보편적 인권 등 현대성이 성취 해낸 여러 보편적 가치들을 과격하게 공격하고 영적·문화적 고유성과 민족적·인종적 순수성과 ‘원형적 영성’을 결합하여 숭상한다. 즉,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가치관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초월적이고 영적인 상태가 존재했는데, 그것이 인도 유럽 계통의 종교들이고 여기에는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전파 이전 유럽 파가니즘등이 속한다. 이 세계관에서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영적 순수성과 신성성에의 귀의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세계는 물질성과 세속성에 집착할수록 무의미와 텅빈 공간으로 드러나고, 순환적 시간관에 따라 세계가 파괴된 뒤 ‘참된 세상’의 도래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러한 얼치기 사상을 가지고 제도권 정치와 극우 운동권의 경계 지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적인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스티브 배넌이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 수석 전략가이자 국가안보보좌관이면서도 극우 운동권과 출판, 미디어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스티브 배넌을 중심으로 ‘전통주의’와 ‘극우 포퓰리즘 정치적 행동주의’의 심오한 상호관계를 탐색한다. 먼저 저자는 스티브 배넌의 독서의 궤적과 지적 영향의 관계를 추적한다. 수차례에 걸친 현장 연구와 인터뷰를 통해 그가 읽었던 책과 문헌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극우 파시즘에 사상적 자양분을 공급했던 그농과 에볼라의 저작들, 베단타 학파와 신비주의, 오컬트주의와 영성주의 등 차분히, 그러나 치밀하게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사고의 지층을 탐색한다.

 

배넌은 이와 같은 사상적·정신적 자원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설계와 지정학적 전략 수립에 관여한 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반이민주의와 고립주의 노선, 자국민 우선주의와 인종과 젠더 역할 구별, 내셔널리즘에 대한 강조는 저자와 배넌의 대화 속에서 쉽게 드러나는데, 바로 이 사상의 영향력이 현실에서 발현되는 지점이라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제도권 중앙으로 진입할수록 정치적 수완와 전략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전통주의와 영성에 대한 편집증적 믿음은 편집되어 은은하게 발산되거나 위장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민국가와 토착적 시민에 대한 우선주의, ‘순수한 미국성’에 대한 암묵적인 갈망과 ‘위계질서의 회복’이라는 관념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노선 속에서 쉽게 드러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류학자인 저자는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나름대로 조직화된 종교적 신념체계가 극우적 이해와 얽히고, 이 세계관을 통해 사회를 재조직하려는 욕망이 위장되거나 편집되어 제도적 정치 공간에 침투하는 과정을 문제화한다.

 

이 스티븐 배넌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극우 지하 운동권의 괴짜 리더나 소수파 오컬트 초자연주의 신봉자나 극단적 교파의 교주가 아니라 백악관의 핵심 요직을 꿰차고 대통령 및 행정부 핵심 인물들과 직접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 위치에 있는 인물로 서술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관계가 실제 세계,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국내외 정책을 조정하고 지정학적 전략을 수립할 때 미칠 파급력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배넌과 수차례 인터뷰를 이어가면서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터뷰 기록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휘의 목록들, 영성, 신성성, 가치의 위계질서, 초월성과 내재성 등을 되새기고 그가 했던 말들의 파편들을 조립해 가면서 민족지적 통찰력과 저널리즘적 탐사보도의 날카로운 비평적 시선 사이를 오간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배넌이 말했던 내재성과 영적 순수성, 그리고 위계질서의 논의를 따라가다 그가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 특히 민중 계급이 허무하고 세속적인 음란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 않고 형이상학적이고 영적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계급이라고 언급했던 지점을 떠올린다. 그리고 트럼프가 유세 마지막 기간에 미시간 주에서 블루칼라 노동자 계급의 잃어버린 권리와 이익에 호소했던 장면을 병렬적으로 서술한다.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 지역에서 노동계급과 그들의 잃어버린(혹은, 상실되었다고 ‘상상된’) 권리와 이익을 상기시키고 이들의 기회와 부를 약탈해간 상상적 타자를 호명하며 ‘우리’의 경계를 확장해 내는 공화당 대선후보의 유세 전략이 배넌의 민중에 대한 세계관과 교차 서술되는 지점은 독자로 하여금 정세와 독서를 연결지어 사고하도록 돕는다. 사실 이 책이 주는 강점, 더 나아가서 민족지학적 텍스트가 주는 강점은 바로 이런 지점들이다. 추상적인 이론과 개념을 딱딱하게 설명하거나 경험적 사례들을 별다른 연결 없이 느슨하게 나열하여 주장의 논거를 두텁게 하려는 건조한 서술과는 달리, 제시하는 이론과 개념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구현되는지, 특히 현장이나 현장이 속한 구조와 제도 속 문제화된 이슈와 관련하여 어떻게 연결되거나 그 이슈들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지를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단순히 한 사람의 ‘정신의 사회적 삶’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와 영향을 주고 받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추가적으로 인터뷰하고 극우 포퓰리즘의 지형도를 그린다는 점이다. 백악관의 핵심 인물이자 전략가였던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배넌이 영향을 주고 받은 인사들 또한 평범한 극우 인사는 아닐 거라는 추측을 독자는 쉽게 할 수 있는데, 저자가 따라가서 추적하고 대화를 나눈 인물들은 바로 이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인물들로 소개된다. 푸틴의 브레인이자 크렘린의 사상적·정신적 지도자이며, 러시아의 지정학적 전략 수립에 막강한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있는 알렉산드르 두긴이 바로 그 인물이다. 저자에 분석에 따르면 극우의 지적 운동 중에서도 상당히 급진적인 편인 두긴도 전통주의와 사상적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다문화주의와 페미니즘, 자유주의와 서구적 진보, 세계시민주의, 민주주의와 ‘단극성 세계 질서’ 등 현대성의 성취로 이해되고 상상 되어온 것들이 세계의 붕괴와 물질적 타락을 불러왔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두긴은 각자의 민족과 인종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과 원형을 중심으로 경계 지어진 개별 국민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하는 ‘다극성 세계 질서’를 강조하면서 전통주의와 결은 다르지만 묘하게 이해를 같이한다.

 

저자는 두긴이 동구권의 반서구적인 극우 내셔널리스트들을 암암리에 지원하면서 극우 행동주의가 확장되는데 공모한다는 점을 그와의 인터뷰와 각종 자료 분석을 통해 드러내는데, 특히 배넌이 가진 지식과 앎의 지형을 탐사했던 것과 동일하게 인터뷰와 여러 기록 및 자료 분석을 통해 그가 어떤 문헌과 자료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배넌과 어떤 지적·인적 교류를 주고 받았는지를 중점적으로 탐색한다. 두긴과 배넌은 개별 국민국가와 민족적·인종적 경계, 그리고 모호하더라도 영성과 반세속성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긴 하지만, 배넌이 ‘유대 기독교적 서양’의 문화적 기초를 순수한 상태로 영속화하고자 한다면, 두긴은 유럽연합을 해체시키고 슬라브족 국가들의 문화적·정치적 위상을 되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양자가 다르다는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이렇게 극우 전통주의 사상과 신념체계라는 것이 국가 별로, 맥락 별로 조금씩 비틀리고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추상적이고 느슨한 면이 있어서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면 허술하다는 점, 또 그렇게 추상적이고 느슨하기 때문에 각자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끼워 맞춰서 하나의 일관된 교리로 재조립하기 쉽다는 점을 몇몇 곳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저자와 배넌과의 인터뷰 담화 기록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듯, 배넌은 인종주의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교리 자체의 논리에 숨어있는 원형적 민족·인종에 대한 논의는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출몰했다. 예를 들어, 배넌은 파시즘이 편집증적으로 소환하고 강조하는 육체적 인종보다는 영성과 신성에 집중하여 ‘정신적 인종/민족’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결국 현실의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반이민주의 정서와 결합 될 때는 이 노골적인 인종주의 문제는 언제든지 돌출되곤 했다.

 

이는 두긴의 철학에도 다분히 드러난다. 저자가 독해하고 정리한 두긴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영적·문화적 공동체, 특히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통해 특정한 의미체계와 계보를 공유하는 공동체다. 그러다 보니 원형적인 민족·인종에 대한 집착적 강조와 민족의 영원성에 대한 예찬이 전통주의와, 삐걱거림과 마찰이 있긴 하지만, 맞물리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통주의의 사상적 기초는 극우 포퓰리즘 정치운동에 유령처럼 배회하면서 잃어버린 영원성과 순수성이라는 노스텔지어를 확장하고, 이 운동의 정치적 상상력을 장악한다.

 

저자는 다른 한편에서 극우 전통주의 정치운동의 전략 중에서 ‘메타 정치’를 이들의 문화적·담론적 전략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공공 교육과정의 개편, 미디어·방송·출판을 통한 선전·선동, 극우 지식인들의 강의와 관련한 교육, 컨퍼런스와 세미나 등 이른바 ‘문화적 전략’을 통해 대중에게 이들의 괴짜 사상을 좀 더 전문적이고 설득력있게 소개하려는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도 배넌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는 “브라이트바트 뉴스”라는 ‘대안 우파(Alt-right)’ 중심의 컨텐츠를 생산하는 뉴스 플랫폼의 수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는 “악토스 출판사”도 이 대안우파 계열의 출판사로 주로 백인 국가 우월주의와 대안적 우파 정치의 저작과 논고들을 편집하고 출간한다. 저자가 현장연구를 통해 밝힌 전통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의 연결고리가 추상적이라 잘 와닿지 않았던 한국의 독자들이 있다면, 이 극우 포퓰리즘 행동주의의 ‘메타정치학’은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현실감있게 다가올 수 있다. 남성성과 커뮤니티의 혐오정치, 젠더 갈등과 인터넷 담론의 보수화와 극단화라는 이슈가 첨예한 현재의 한국 사회의 상황이 이 저자가 분석한 미국 극우파의 메타정치의 맥락에서 기시감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브레이트바트 뉴스는 반이민주의 정서, 공화당 중심 제도권 보수 정치에 대한 환멸,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청년 대안우파의 급진성와 과격성에 제대로 공명할 줄 아는 미디어 플랫폼이었고, 다양한 밈과 짤, 인터넷 방언 등을 사용하는 젊은 온라인 대안우파의 입맛에 잘 맞아 떨어지기도 했다(앤절라 네이글, 2022). 이러한 메타정치는 극우 행동주의의 문화적 기반과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기여했고,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존재감 없이 흩어지고 뭉쳤던 아웃사이더 사상가들이 ‘좀 더 친근하게’ 사회의 중심부로 진입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좋든 싫든 공론장의 침입하여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적절하게 공모했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배넌이라는 인물을 현장에서 추적하면서 인적·사상적·문화적 네트워크를 발견하고, 지하 운동권과 지상의 제도권을 연결하는 여러 ‘선’들을 확인하며, 여기에 전통주의라는 사상적 기저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가 보여준 극우 포퓰리즘과 그 사상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럽 곳곳에서 들리는 극우정당의 출몰과 내셔널리즘이라는 유령의 재/출현은 이 텍스트가 생명력을 가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일뿐더러 극우파의 출현이라는 쟁점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의 돌출점이자, 특정한 집단의 불만이 기형적으로 조직되고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징후/증상이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제도권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정치의 무대가 이들의 응답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는 그 현상을 집요하게 붙들고 분석해야 할 긴급한 필요를 요청한다. 특히, 본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특정한 체급의 정치인이 분열과 갈라치기를 주된 정치적 전략으로 삼으면서 특정 세대와 성별에게 매력적인 방식으로 호소하면서(타자에 대한 이해방식와 태도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며)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기형적인 방식으로 조직하고, 일부 극단적인 종교 지도자가 적나라하게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을 행사하며 낡은 냉전시대의 어휘집을 다시금 펼쳐서 영적 권위와 뒤섞어버리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의 지형 내에서도 타자에 대한 배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영원성’과 ‘상상적 전통’을 향한 갈망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도 그렇다.

 

나는 이와 같은 내용적인 측면 외에도 이 텍스트를 여러번 정독하면서 인류학자로서 그가 보여준 현장에서의 방법론적인 치밀함과 집요함에도 주목했다. 그는 스티븐 배넌이라는 까다롭고 문제적인 인물을 연구한 인류학자다. 극우 지하 운동권의 거물이자,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던 인물로서, 이 책을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대답하기 까다롭거나 스스로가 설정한 공적 이미지와 자아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질문들을 유연하게 피해가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에게서 얻어낸 제한적인 정보들과 단서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그 정보와 단서들이 어렴풋하게 그려주는 관계와 영향의 그물망과 사상의 지형을 집요하고 철저하게 탐색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극우파’와 비슷하게 비협조적이거나 문제적인 현장연구를 시도하고자 하는 민족지학자에게 유익한 방법론 텍스트를 제공한다.

 

특히, ‘극우’와 같은 ‘비호감 신념(unlikeable beliefs)’을 가진 집단들을 연구한 다는 것이 주는 부담감은 방법론적인 딜레마를 포함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그들과 현장에서 상호작용 하면서 그들의 세계관과 행위 전략을 내재적이고 심층적으로 탐구한다는 질적 연구의 기획은 단순히 타당성 있고 신뢰할 만한 경험적 데이터 수집이 어렵고 접근 자체도 제한적이라는 점(Pasieka, A, 2019; Ravndal, J. A., & Bjørgo, T, 2018)뿐만 아니라, 터무니없고 배타적이며 부조리한 극단주의 사상에 발언권을 쥐어주고 마치 진지하게 들을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 파시에카(Pasieka, A, 2019)가 지적하듯이, 비호감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그들의 다종다양한 맥락과 배경을 적절하게 고려하면서 상호작용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그들의 사상 그 자체를 혐오감을 발산한다는 이유로 무시해버린다거나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것을 넘어, 그러한 연구 대상을 축소하여 환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완전한 복잡성 속에서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인류학적·질적 연구가 수행하고자 하는 본래의 방법론적 충실성을 적절히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극우의 세계/관이라는 것도 곤경과 다양한 위해의 위험이 도사리는 사회적 삶의 궤적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행위자들의 마음과 행동 안팎에서 전략적 선택, 이해관계와 가치, 도덕적·규범적 교리/믿음이 계속해서 절충되고 협상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극우적인 이데올로기와 신념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게 되고, 특정한 범주와 프레임으로 틀 지어진 개인들의 독특한 배경과 서사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추상화된 관념적 범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겠지만, 다양한 배경과 맥락, 조건 아래 행위하는 복수의 삶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친구보다도 더 모르게 될 수 있다.

 

참고문헌

<도서>

네이글, 앤절라 (김내훈 역). (2022). 『인싸를 죽여라』. 오월의봄.

무데, 카스·칼트바서, 크리스토발 로비라 (이재만 역). (2019). 『포퓰리즘』. 고유서가.

무데, 카스 (권은하 역). (2021).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위즈덤하우스.

이세희. (2021). 왜 ‘우리’는 분노하는가?: 온라인 인종(차별)주의 담론 정치와 민족주의. 비교문화연구, 27(1), 299-355.

타이텔바움, 벤저민 R. (김정은 역). (2024). 『영원의 전쟁』. 글항아리.

앨버타, 팀 (이은진 역). (2024). 『나라, 권력, 영광』. 비아토르.

Due Enstad, J. (2018). The modus operandi of right-wing militants in Putin’s Russia, 2000-2017. Perspectives on Terrorism,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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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뉴스1』, 2025. 3. 16일자 “전광훈 "尹, 하나님 뜻으로 구치소 다녀와… 이번 주 돌아올 것” (김종훈), https://www.news1.kr/society/incident-accident/5720471(2025. 5. 25. 접속)

『한겨레』, 2025. 5. 12일자 “김문수, 전광훈 구속에 눈물 콧물 “우리 목사님” (심우삼)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95706.html(2025. 5. 25. 접속)

 

[각주]

 *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석사과정 수료, 임인호

[1] 김종훈(뉴스1), “전광훈 "尹, 하나님 뜻으로 구치소 다녀와…이번 주 돌아올 것”, https://www.news1.kr/society/incident-accident/5720471 (2025. 5. 25. 접속)

[2] 심우삼(한겨레), “김문수, 전광훈 구속에 눈물 콧물 “우리 목사님”,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95706.html (2025. 5. 25. 접속)

 


 

"인-무브 기고" 코너는 공개 모집을 통해 접수된 원고를 게재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를 지닌 필진들과 함께하기 위한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원고에 담긴 의견이나 입장은 필자의 개인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서교연의 공식 입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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