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긍심에 국경은 없다.
Pas de frontière dans nos fiertés Ruban tauupo
번역: 임하은
‘pédé’의 경험
처음으로 « pédé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이유는, 베네수엘라 이민자의 아들로 프랑스에 막 도착한 어린 청소년이었고, 프랑스어를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님은 여느 이민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자신들과 자녀들을 위해 더 자유로운 삶을 찾아 프랑스로 왔어요. 그들은 점점 윤곽을 드러내던 독재 체제를 피해 떠나고자 했고, 그 체제는 전 세계로 600만 명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프랑스에 도착한지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고국을 떠난 많은 이민자들처럼, 나 역시 지금까지도 뿌리 뽑힘이 남긴 고통, 가족과 문화로부터의 거리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어요. 동시에 “이곳에서는 삶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말해 주던 부모님 덕분에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막 벗어난 청소년이었을 때, 저는 ‘pédé’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pédé’로서의 나는 체육 수업 시간 축구공과 함께 그 욕설이 내 얼굴로 날아오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이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 프랑스에서 비로소 내 ‘pédé’ 정체성은 분명해졌고, 서구 사회가 정의하는 동성애의 개념 안에서 의식화되었습니다. 나는 이를 « pédé의 경험 »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특정한 역사적 순간과 문화 속에 위치한 경험이며, 개인적인 삶을 넘어 폭력과 기쁨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으로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된 수많은 현실을 포괄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나는 그 경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내가 어떻게 ‘pédé’가 되었는지,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pédé’였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적 지향 이전에, 젠더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배적인 남성성 규범에 부합하는 문제는 늘 학습의 대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 과목에 그다지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고, 그 대가로 수많은 체벌을 받았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첫 번째 체벌 중 하나는, 아버지가 욕실에서 어머니의 하이힐과 가운을 입고 있던 나를 발견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나는 다섯 살쯤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또래 아이들이 나의 행동 속에서 ‘문제 삼아야 할 무언가’를 알아보고, 그것을 지적하고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여성성의 흔적이었어요. 살아남기 위해, 나는 이후로 여성성과 연관된 몸짓이나 취향을 숨기고, 억누르고, 미워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pédé’들은 결코 ‘진짜 남자’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 여자 같은 놈 », « 겁쟁이 »로 불려요. 상대적인 안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남성성을 연기하도록 강요받으며, 나는 나 자신이나 나의 pédé 형제자매들에게서 보이는 모든 여성성을 증오하고 감시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비로소 나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끌어안기 시작했을 때, 젠더라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가장이며, 얼마나 많은 환상을 유지시키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거주하기로 선택했을 때, 나는 pédé가 되었습니다. 젠더의 이분법과, 어린 시절부터 사회가 나를 바라본 시선 사이의 이 개인적인 갈등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과연 pédé는 남자인가?
Monique Wittig는 『La Pensée straight』에서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여성이란 이성애 체계가 부여한 역할을 기준으로 정의된다고 주장해요. 그렇기 때문에 레즈비언은 그 체계가 요구하는 역할―복종, 재생산 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여성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레즈비언은 내가 아는 유일한 개념으로, 성별 범주(남성과 여성)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레즈비언이라는 주체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 논리를 따라간다면, pédé는 과연 남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지배적인 남성성, 즉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전투적이고, 무감각하고, 폭력적인 그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이성애 사회가 우리를 ‘열등한 남자’로 만들고 인식해 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것이 과연 놀라운 일일까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pédé는 늘 주변화되어 왔습니다. 모두에게 해당된다고들 말하는 ‘남성 특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렇다면 pédé로서, 우리가 이성애 남성들과 동일한 권리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특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박해받고, 조롱당하고, 모욕당하고, 폭력을 당하며, 정체성이 드러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살로 내몰릴 때 그 특권은 어디에 있나요? 일부 pédé들이 ‘남자답게’ 굴거나, 그 남성성을 흉내 내고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도, 사회의 눈에는 우리는 여전히 pédé이며, 결국 진짜 남자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남자가 아니라면, 우리의 젠더는 ‘pédé’인 걸까요?
몸의 이야기
남성에게 끌리는 감정과, 성적 경험은 내 청소년기에서도 비교적 늦게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혹은 왜 시작되었는지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의 나는 남성에게 끌리는 가능성 자체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 시절 내 주변에서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거나, 철저히 금기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성 간의 섹스를 거대한 금기로 여기는 사회에서 pédé로서 자유롭고 충만한 성생활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는 시점에 Mediapart는 한 정치인과 성 노동자 사이의 성관계가 어떻게 동성애 혐오와 결합되어, 생테티엔 시청 내에서 ‘섹스테이프 협박 사건’이라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었는지를 폭로했습니다. 몇 주 뒤에는 감염내과 의사 Eric Caumes이 HIV 예방 수단인 PrEP을 공격하는 책을 아무런 제재없이 홍보하기도 했어요. 그는 그 책에서 동성애자들이 “방탕한” 성생활로 사회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암시했습니다. 이러한 담론과 관행 뒤에는 공통된 의도가 있습니다. 바로 pédé들을 다시 ‘수치의 벽장’으로 밀어 넣으려는 의지입니다. 잘 알려진 내면화된 동성애 혐오의 메커니즘을 통해, 일부 pédé들 역시 “존중받을 만해야만 용인될 수 있다”고 믿으며 PrEP 사용자들의 성적 실천과 PrEP 자체를 공격하는 데 가담합니다. 나에게 있어 전환점은, 수치심이 점차 사라지고 내 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 그 몸을 탐구하고 받아들이며 돌보는 기쁨이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다른 남성들과 나누는 감각적이고 에로틱한 쾌락에 온전히 몸을 맡기게 되었을 때, 타인이 상상하는 나의 ‘방탕한 성생활’에 대한 시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나는 pédé가 되었습니다. 나는 문제의 핵심이 성적 실천의 양이나 성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동성애 혐오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pédé이자 이민자: 인종의 차원
프랑스가 이 단어를 얼마나 싫어하든 간에, ‘인종’은 나의 pédé 정체성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2018년 헌법에서 삭제되었듯이, 이 단어는 프랑스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담론 속에서도 지나치게 자주 지워집니다. 새로운 수용 국가에서 내 자리를 찾는 일은 길고, 값비싸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암묵적인 열등한 지위를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끊임없이 ‘잘 통합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으며,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통해 외국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씨, 피부색, 억양 등 ‘이국성’을 암시하는 표식들로 인해 언제든 신뢰를 박탈당할 수 있는 위험 속에 놓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경우, 언제나 성적인 요소를 동반하는 인종차별은 남성들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시스템은 이민자를 성적으로 고정된 이미지 속에 가둡니다. 그는 포식자이자 위협이거나, 욕망과 혐오의 대상이거나, 혹은 마초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후진적 존재로 간주됩니다. 그 결과, 나의 성적 탐색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남성들이 품고 있던 인종차별적 상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라틴계’라고 불리는 몸들에 덧씌워진 식민주의 이후의 환상 어린 시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열정적이고”, “잘한다”, “크다”, “지구력이 있다”, “음탕하다”, “창녀 같다”는 식으로 묘사됩니다. 이 모든 표현은 남성 간의 섹스와 사랑에 대한 나 자신의 인식을 형성해 왔습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인종화된 pédé 남성들이 자유롭게 소비 가능한 쾌락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내면화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비인간화되며, 식민 역사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몸으로 구현하도록 요구받습니다. 이 상상력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 우리는 상황에 따라 더 큰 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언제나 남성들로부터 옵니다. 나는 청소년기 이후 지금까지 구애나 성관계의 맥락에서 겪은 수많은 비동의적 행위와 몸짓을 더 이상 셀 수도 없습니다. 이중으로 소수자가 된 우리는, 그것이 성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이런 폭력을 축소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웁니다.
pédé이자 이주민: 성적 지향, 젠더, 인종의 교차성
이러한 이중의 소수자 경험―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pédé이자 인종화된 이주민으로 성장하고 형성되어 왔다는 경험―과 점점 커져가는 분노를 바탕으로, 나는 프랑스의 이주 정책이 인종화된 LGBTQIA+ 형제자매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공포에 가까운 감정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나는 이주민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이주민 환영 및 동행 사무국(BAAM)에서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활동의 일부는 성적 지향 때문에 본국에서 박해를 받아 프랑스로 망명을 신청한 LGBTQIA+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와 이주 경로를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나 역시 이주 경험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 만남들을 거치며 나는 서구 사회의 규범과 실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나의 pédé 정체성이 망명 중인 동료들의 정체성과는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할 때 반드시 “동성애자”나 “pédé”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로 묶는 공통점은 존재했습니다. 바로 정치적 체계로서의 이성애가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만들어내는 동성애 혐오와 폭력이었습니다. 북반구 국가들에서 지배적인 동성애의 표상, 혹은 특정한 ‘동성애자 정체성’의 관념은 다른 국가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와 실천들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를 넘어, 이러한 표상의 충돌은 박해를 피해 망명을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아프리카 출신 남성들의 동성애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도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비정당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네크로폴리틱스와 2015년 이후 유럽연합의 수용 위기
국제이주기구(OIM)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약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유럽으로 이동했습니다. 맥락을 보자면, 유엔난민기구(HCR)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억 명의 강제 이주민이 존재합니다. 이들 중 72%는 인접 국가에서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이는 정치권에서 흔히 말하는 “이주 물결” 담론을 상당 부분 상대화합니다. 따라서 2015년 이후 유럽으로 향한 이동은 전 세계적 상황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 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인 이동 경로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들 중 3분의 2는 시리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처럼 전쟁과 만연한 폭력, 혹은 억압적인 정권에 의해 황폐화된 국가 출신입니다. 2014년 이후 지중해에서만 2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인구 이동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 특히 프랑스가 취한 정책들은 1951년 제네바 난민 협약에 따라 보장되어야 할 인권 존중을 전혀 담보하지 못했습니다. 이 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대규모 인구 이동 이후 체결된 것으로, 유엔난민기구가 반복해서 상기시키는 핵심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강제송환 금지 원칙에 따르면, 난민은 생명이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국가로 되돌려 보내져서는 안 된다. 이는 이제 국제 관습법의 규칙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제네바 협약은 복잡한 문서이기 때문에, 그 원칙과 기준, 절차들은 서명국의 사법기관에 의해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HCR이 정기적으로 해석 지침을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별 망명 심사의 불균등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이주민 정보·지원 그룹(Gisti)은 「이주민 환영 가이드」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 위기는 프랑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환영하고 제도를 조정하려 하기보다는(초기 수용 시설, 현청 접수, 충분한 숙소, 실질적인 권리 보장 대신)…”
이 맥락에서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이주민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Ardhis는, 프랑스가 동성애가 불법인 기니 코나크리로의 추방을 결정한 바바카르(Babacar)의 사례를 보고했습니다. 그는 동성애자임을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고, Ardhis의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단체에 따르면, 최초 심사에서 당국은 그가 자신의 동성애를 말하기 어려워했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본국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를 살 수 없었던 상황과 그로 인한 박해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의 폭력과 지속적인 위협을 입증하는 새로운 자료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방 결정은 유지되었고 바바카르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국가로 돌려보내졌습니다. 결국 위기의 본질은 인구 이동 그 자체가 아니라, 북반구 국가들―특히 유럽연합과 프랑스―이 이를 인간적으로 대응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주 경로와 프랑스의 행정 장치
많은 LGBTQIA+ 사람들이 자유롭게, 박해의 위험 없이 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폭력적인 이주 여정을 감수합니다. 프랑스로 와서 망명을 신청하는 이들은 특히 취약하며,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기 쉽습니다. 2020년, 행정·정치 과학 연구센터(Cersa)가 인권 옹호 기관인 Défenseur des droits와 공유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동성애가 범죄로 간주되는 국가 출신 사람들은 종종 ‘교정적’ 폭력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강제적인 강간, 강제 결혼, 정신과 입원, 강제 의료치료 등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성적 지향이나 젠더를 대상으로 한 전환 치료가 금지된 법이 2022년 1월에야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인권 선진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에 비해 매우 뒤늦은 조치입니다. 직접적인 폭력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조차, LGBTQIA+ 정체성을 가진 채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야 합니다. 가족, 이웃, 학교, 직장 등 모두가 차별과 박해, 스트레스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프랑스와 같이 동성애가 범죄가 아닌 국가에서도 존재하며, 도착한 후에도 행정 절차와 여러 함정 때문에 망명 권리를 확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인종화된 LGBTQIA+들은 성적 지향과 관련해 동시에 인종적·문화적 편견에 직면합니다. 예를 들어, “라틴계 남성은 열정적이고, 성적이며, 지구력이 있다”는 식의 고정관념 속에 갇히게 됩니다. 이러한 편견은 그들의 성과 사랑을 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피해자가 자신을 오브젝트처럼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망명을 신청할 때 핵심적인 서류는 ‘생활 기록서(récit de vie)’입니다. 이 서류는 신청자가 성적 지향 때문에 보호를 요청하는 이유를 상세히 기술해야 하고, 프랑스 난민보호청(Ofpra)과 국가난민법원(CNDA)에서 심사받게 됩니다. 생활 기록서에는 박해의 이유와 본국에서의 위험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LGBTQIA+ 특히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소수자로서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미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은, 행정기관이 신청자의 동성애를 진짜로 믿도록 설득하는 데 있습니다. 결국, 동성애임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심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셈입니다.
서구적 pédé 정체성과 다른 문화권의 충돌
어떻게 한 사람의 동성애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동성애자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프랑스 난민보호청 심사관들은 종종 스테레오타입으로 가득 찬 매우 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이 바로, 각 국가마다 다른 동성애적 관념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BAAM에서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젊은 망명자 모스타파(Mostafa)를 지원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는 Ofpra에서는 망명이 거부되었지만, CNDA 항소에서 변호사의 도움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모스타파는 다음과 같은 매우 사적인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로 생각합니까?”
“남성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언제 인식했는지 이야기해주십시오.”
“그 끌림이 처음으로 나타난 순간은 언제입니까?”
“수년간 좌절을 겪으며 살아온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관계 중 상대방은 당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까?”
이 질문들은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사실 매우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언제 동성애를 깨달았는지 정확히 날짜를 특정하는 것은 많은 pédé들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질문들은 심사관이 프랑스적 기준에서만 동성애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어떤 심사관은, 남성이 몇 년 동안 여성과 관계를 가졌음에도 후에 동성애자로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는 동성애와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다는 서구 중심적 사고를 전제로 한 판단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심사관들이 동성애 혐오적 스테레오타입을 사용해 질문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018년 Têtu 잡지 인터뷰에서 BAAM 자원봉사자와 변호사들은, 한 판사가 망명자에게 “성관계 시 당신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반복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LGBTQIA+ 커뮤니티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도 자주 나옵니다. 마레 지구(파리의 LGBTQIA+ 밀집 지역)를 아는지, 어떤 장소를 다니는지 등을 물으며, 이를 근거로 망명 이유의 신빙성을 판단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답변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행동, 태도, 성격의 진정성, 답변 속도까지 평가하는 등 심사 자체가 연극처럼 진행되기도 합니다. 모스타파의 사례에서, Ofpra는 첫 심사에서 그의 이야기가 충분히 설득력 없다고 판단해 거부했습니다. 이런 거부는 흔히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사실상 산업화된 절차처럼 규격화된 느낌을 줍니다. 많은 거부 사례에서, 신청자는 겉으로 보이는 동성애적 징후를 보여야 하는 동시에, 사회적 ‘클로젯’ 안에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요구받습니다. 완전히 모순된 요구입니다. 이야기의 불일치는 다양한 이유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기억의 오류, 적절한 어휘 부족, 혹은 통역 문제 등이 그 예입니다. 또한, 박해와 종교적 억압 속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지 못한 경험 자체가 불일치를 만들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에서 매년 수많은 LGBTQIA+ 망명 신청이 거부되며, 신청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LGBTQIA+ 망명 신청자의 정확한 거부 건수는 알 수 없지만, 통계상 대다수 신청이 거부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0년 유로스타트(Eurostat)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는 226,890개의 체류 허가증을 발급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0.33%에 해당합니다. 유럽연합 내에서 프랑스는 경제력 2위임에도 불구하고, 망명 정책 측면에서는 가장 비우호적인 국가 중 하나입니다. 참으로 참담한 성적입니다.
pédé들의 연대: 우리의 자긍심에는 국경이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합니다. LGBTQIA+ 이주자의 망명 거부 이유는 성적 지향의 진실 여부보다는, 인종적 배경과 더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pédé’, ‘퀴어’, ‘게이’, ‘LGBTQIA+’로 먼저 인식되기 이전에, 먼저 인종화된 시선 속에서 평가받습니다. 프랑스의 이주 정책은 구조적으로 인종차별적이며, 우리를 백인 중심의 가부장적·이성애적 질서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LGBTQIA+인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정치적·사회적 담론 속에서 종종 도구화됩니다. 이 현상은 사회학자 자스비르 푸아(Jasbir Puar)가 정의한 ‘호모내셔널리즘(homonationalism)’과 연결됩니다. 이 개념은, 인종화된 LGBTQIA+를 대상으로 한 차별적 담론이, 그들이 ‘서구식 권리’의 수호자로 포장되는 방식으로 이용됨을 지적합니다. 결과적으로 LGBTQIA+ 권리 운동조차 인종차별과 이주 반대 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곤 합니다. 극우 단체들은 모순적인 메시지를 보냅니다. 한편으로는 남반구 출신의 인종화된 LGBTQIA+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외국 남성을 추방해 프랑스와 서구 개인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우리는 pédé로서,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변화되는 현실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교차성의 관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것이 어렵습니다. 성적 지향을 단순히 ‘성적’·‘낭만적’ 문제로 축소하면, 성별과 인종이 우리의 경험과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간과하게 됩니다. LGBTQIA+가 세상의 구조적 인종차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 운동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백인 중심의 이성애 체계가 우리를 수세기 동안 억압해 온 현실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주 정책의 근본적 인종차별적 구조를 없애야 합니다. 아무도 ‘불법’으로 낙인찍혀서는 안 되며, 누구도 수용 과정에서 감금·추방될 위험을 안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pédé, 게이, 퀴어, 탑, 바텀, 뒤틀린 존재로서, 특히 향후 몇십 년간 기후·경제 위기 등으로 발생할 이주 흐름에 대응해, 이주민 수용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하고, 인종차별 정책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둘째, 프랑스에서 더 이상 동성애 혐오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일부는 여전히 이를 외부에서 들어온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투쟁에 큰 장애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성애 체계와 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성별과 젠더, 따라서 이성애적 구조를 허물고자 한다면, 남성 중심적 폭력과 인종적 권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백인 남성이 유색인종 남성을 노예화하며 ‘진정한 남성다움’을 정의해 온 사실은, 우리 pédé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단기적·실용적 차원에서,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LGBTQIA+ 이주민 수용 문제를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시점에, 내무부 장관 제랄드 다르마냉(Gérald Darmanin)이 추진하는 새 망명 관련 법안이 검토하고 있지만 이 법안이 망명을 쉽게 만들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pédé들의 단합과 행동은 지체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LGBTQIA+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며, 백인 중심· 이성애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자긍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1] 동성애자, 특히 게이들을 향한 혐오 표현

- 도서정보: Pédés, collectif, 2023, Points.
https://www.editionspoints.com/ouvrage/pedes-florent-manelli/9791041410224
- 엮은이: Florent Manelli
- 지은이: Jacques Boualem, Camille Desombre, Adrien Naselli, Julien Ribeiro, Ruben Tayupo, Nanténé Traoré et Anthony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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