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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Writing/인-무브 서평

멀리 가는 이야기로서 재난과 애도: 『재난 이후, 사회』 서평

by 인-무브 2026. 3. 13.

멀리 가는 이야기로서 재난과 애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기획, 『재난 이후, 사회』(나름북스, 2024)

 

 

천주희 (『문화/과학』 편집위원)

 

* 글은 『문화/과학』 121(269-280) 실린 글입니다. 인용  해당 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4 12 29, 제주항공 7C 2116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 추락했다. 비상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는 활주로를 이탈하면서 안전시설과 담벼락에 잇달아 충돌했고, 탑승 중이던 181 179명이 사망했다. 참사 직후 제주항공사는 무안공항 사고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 안내문을 게시했다. 그런데 사과문은 참사를 사고 축소하고 항공사 이름 대신 무안공항이라는 지역을 내세우면서 기업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전가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사들은 초기에 무안공항 참사 지칭하던 보도 내용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바꿔 부르기 시작했고, 추모 현수막도 지역명 대신 항공사명이 적힌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 10 이번 참사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공식화되었다.

 

이처럼 재난은 그것의 명명 과정에서부터 의미투쟁을 겪는다. 재난을 참사또는 사고 부를지, 피해자를 희생자또는 사망자 부를지, 지역명 또는 날짜로 부를지에 관한 논쟁은 사회가 재난을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고,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재난은 피해 규모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려는 주체 구성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명명의 정치는 중요하다.1) 일례로, 10·29 이태원 참사 그랬다.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재난은 물리적 공간으로서 지역을 넘어 장소에 거주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만든 문화를 내포한다. 이태원이라는 장소에 덧대어진 사회적 편견, 규범, 혐오 때문에 이태원 참사또한 10·29 참사 불렸다가,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이태원이라는 장소성이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명명 속에 기입되었다.

 

이러한 의미투쟁의 과정을 통해, 재난은 사회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며, 고통을 겪는 이들을 살피거나 애도에 동참하면서 개인을 사회적 존재로 요청한다. 이때 사회적 존재라는 감각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는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룬 후에도 다시 무안공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참사에서 진상규명이 중요한지, 나와 우리는 재난을 어떻게 느끼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있는지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존재라는 감각은 형성된다. 이런 맥락에서 『재난 이후, 사회』2) 그동안 우리가 마주한 재난을 사회가 어떻게 지나왔고 사회에 어떤 질문이 필요한지 묻는다. 그리고 이는 재난을 단지 개인의 불운으로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노력이자 사회적 재난에 관한 의미투쟁의 기록이다.

 

책을 기획한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이하, 서교연) 학술 제도 안팎에서 공부하는 이들이 모여 연구활동을 통해 사회적 의제에 개입하고 비판적 담론을 형성하는 학술운동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서교연은 사회·문화·정치 이론을 비롯해 페미니즘·철학·예술·정치경제 등을 공부해왔다. 연구실에 소속된 다섯 명의 저자들은 책을 우리의 지식이 과연 한국사회의 재난에 어떤 답을 있는지고민하며 대질했던 결과물이라고 소개한다. 2022 10 29 이태원 참사 이후, 서교연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재난 컨퍼런스를 열고 각자 연구물을 발표했다. 책에 수록된 글은 다섯 저자가 각자의 이론과 현장에서 길어올린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서교연이라는 공동의 지식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낸다.

 

 

이야기의 혼합으로서 애도, 시작

 

책은 서교연 회원인 배경진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대에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배경진은 이십 대에 이태원 참사를 경험했다. 십대 후반 여행대안학교에 다녔고 그곳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세월호를 기억할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이십 대가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무실을 오가며 홀로 이태원 참사를 마주한다. 프롤로그를 전주희는 무엇이 그에게 참사를 다르게 감각하도록 만들었는지, 자신의 삶과 대비해서 풀어내고 있다. 전주희는 배경진이 대안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충분한 애도의 경험(12) 했던 세월호와 달리 고립되고 고단한 비정규직으로 이태원 참사를 경험한 것에서 재난의 이해와 감정이 달라졌음을 읽어냈다. 이러한 독해는 전주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참사들을 떠올리게 했고, 자신은 여러 참사 속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애도할 없었는지 자문하게 만들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참사를 경험한 사람의 서사는 2023 서교연 컨퍼런스에서 애도 매개로 만난다. 전주희에게는 배경진의 발표가 답을 찾는 실마리가 되었고, 배경진에게는 홀로 마주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 불가능성을 다른 이에게 언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애도는 오히려 다양한 감정과 기억, 이야기가 혼합되어 쌓이는 과정이다.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쌓이기도 전에 슬픔을 느끼고 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말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계속 쌓아갈 수 있으면 한다.—「프롤로그: 재난 이후, 쏠의 십 대 그리고 경진의 이십 대」, 13, 배경진의 발언에서 재인용.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다 것에서 시작되는 애도, 전주희는 이것을 애도는 이야기가 혼합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14)라는 문장으로 풀어낸다.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나에게 애도의 과정에 동참하기를 권하는 듯했다. 지난 30 동안 목격한 한국사회의 참사 풍경이 스쳐 지나갔고, 그때 나는 어떤 감정과 위치에서 재난을 마주했는지, 이후에는 어떤 이들과 애도의 과정을 보냈는지 떠올렸다.

 

프롤로그 이후에 전개되는 여섯 편의 글은 저자들이 통치’‘인정’‘외상’‘’‘서사’‘시민권등의 이론에 기대어 각자의 지식이 어떻게 재난을 이해하는 틀이나 관점으로 해석될 있는지 풀어낸다. 프롤로그 같은 형식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다소 학술적인 언어와 구성에 당황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현실은 때로 치열한 이론적 언어와 삶의 언어를 통과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재난을 이해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독자라면 번은 읽어봐야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이론과 관점에 자신의 경험을 대비시켜보기도 하고, 저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회 있다면 빈자리를 채우면서 읽기를 권한다. 그럴 재난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멀리 가는 이야기가 되고, 여러 이야기의 혼합으로서 우리의 애도가 시작될 것이다.

 

 

다섯 명의 저자가 마주한 재난

 

가장 먼저 1장에 배치된 정정훈의 「재난과 통치」는 미셸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경유해 재난과 국가 통치의 관계를 소개한다. 정정훈은 리스본 대지진을 통해 국가가 재난 관리의 책임주체로 등장하고, 재난이 국가 통치의 중요한 대상이 되는 변화를 읽어낸다(21). 그러면서 17, 18세기 유럽에서 형성된 통치성과 자유주의의 결합이 어떻게 현재의 통치성에 이르게 되었는지 계보를 그려낸다. 자유주의 통치성에서 재난은 국가가 관리해야 위험이 된다. 여기에서 자유를 보장하고 관리하는 권력 기술로서 안전장치 발명되는데, 이는 위험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며 국가의 정상적 상태 유지하기 위한 제도·지식·실천 등의 배열로 나타난다. 핵심은 국가의 정상적 상태가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상 정규분포가 유지되는 한에서 보호하며, 정규분포 바깥에 있는 사람을 내버려둔다는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통치는 안전 확보 통치 패러다임(사토 요시유키) 속에서 행정명령이라는 수단으로 법을 발명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업가적 주체를 내면화해 서로 경쟁하도록 만든다. 정정훈은 이러한 ()자유주의 통치가 인간의 삶과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48-49). 삶은 존재론적으로 취약성을 지니며 타자와 얽히는 상호의존성에 기반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한 재난 관리의 통치성은 폭력적이고 억압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체제 재구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사회운동은 상호의존성에 기초한 연대를 통해 사회적 삶을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으로, 공통의 인프라를 방어하고 구축하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6).

 

정정훈의 글은 이후 저자들이 주목하는 현장이 어떠한 통치성에 기초하는지에 대한 틀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책을 관통하는 의제 하나로 국가에 대한 비판이 참사와 재난에서 중요한지, 국가의 책임 회피와 위험 관리 통치의 실패가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이해하는 도움을 준다. 또한 정정훈을 비롯해 책의 저자들은 국가폭력, 애도, 인정,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대안을 모색할 정치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와 낸시 프레이저의 사유를 중요하게 참조한다. 이는 서교연이 지향하는 이론적 입장과 실천의 방향성이 정치적인 둘러싸고 형성되는 사회운동에 있음을 드러낸다고 있다.

 

이어지는 2 「인정 이론의 관점에서 재난참사 유가족 운동」(백선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행정부의 회피 과정에서 어떻게 유가족 운동 사랑, 권리, 가치 부여라는 사회적 인정 대신 폭력, 권리 부정, 가치 부정의 형태로 무시당하는지 해석한다. 백선우는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을 통해 도덕적-규범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무시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한편, 유가족 운동을 인정투쟁의 맥락에서 다시 도덕적-규범적 측면으로 기입하고자 한다. 그에게 재난참사는 원인이 사회적-구조적이며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사고와 구별된다. 특히 유가족 운동의 관점에서 재난 참사는 희생자들의 안전권에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사건이며, 사회적 고통을 동기로 하는 인정투쟁은 결국 안전이라는 권리에 대한 규범적 기대의 훼손에서 발생하는 규범적 투쟁 특징을 보인다(75).

 

백선우의 글은 유가족 운동을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에 대한 과한 해석과 비중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인정과 고통을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해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인정 이론이 포괄하지 못하는 한국 유가족 운동의 특징과 이론적 한계, 이를 도덕적-규범적 차원으로 확장하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위치와 역할이 모호했다. 그렇지만 이런 아쉬움은 3 「사회적 문화투쟁의 장으로서 재난참사의 외상: 재난참사와 외상의 문화정치학」(김현준) 6 「피해 당사자의 권리로부터 모두의 안전권을」(전주희)에서 보완된다. 그런 의미에서 2, 3, 6장이 공통으로 제기하는 물음은 사회적 인정이 필요  한가? 요약해볼 있다. 2장이 이론화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3장은 외상이라는 구체적 고통에, 6장은 재난 피해자라는 지위에서 인정 문제에 주목한다.

 

김현준은 재난 이후에 사람들이 경험하는 외상은 고통이나 상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판단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외상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속성을 통해 규정되기에 사회적 인정을 만드는 사회적 과정이 중요하다(95). 또한 외상이나 고통은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과정의 효과(제프리 알렉산더)이자 집단적 정체성과 사회적 연대성에 (해석되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 고통이 파고든 사회적 결과(97). 이처럼 외상을 하나의 사회적 과정으로 이해할 경우,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들도 생존자, 목격자, 또는 증언자로 재난의 주체로 연루된다. 그러면서 외상은 집단의 행위자들이 고통을 집단의 자기 정체성이나 사회의 도덕적 규범에 대한 위협으로 재현하기로 결정하고, 재현 수단이나 매체 들을 선택함으로써 사회적인 실재’” 되는 것이다(97).

 

김현준은 재난의 고통에 접근할 행정적 대처나 개별 고통에 대한 규정, 치료를 넘어 사회가 어떻게 고통에 연대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질문 내포해야 비로소 고통이 사회정치적 의미와 정당성을 얻을 있다고 말한다(96). 또한 과정에서 외상을 다룰 , 사회문화적이고 관계적인 차원을 은폐하려는 사회 없는심리/정신 치료의 강요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101). 그렇지 않으면 재난참사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외상이자 사회성과 분리된 개별적 상흔으로 치환되기 때문이다(105). 정리하면, 김현준이 분석 틀로 삼는 문화적 외상 이론은 사회적 책임 공중의 죄책감 드러내고 상처가 개별적인 상흔으로 남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다. 그동안 비가시화되거나 은폐되는 참사의 다양한 고통이 사회적 증언으로 의미를 획득하려면, 사회적 인정은 정치적 실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장과 3장에서 사회적 인정과 재난의 사회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6장에서는 반대로 인정 부정의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작동하는지 기민하게 포착한다. 전주희는 유가족들이 재난 피해자라는 지위를 얻는 시점에 시작되는 사회적 무시에 주목하며, 유가족의 지위에서 시민성(civility) 일부가 박탈되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사람들은 재난을 겪으면 유가족이나 피해자가 당사자로서 대표성을 얻게 되고, 그로 인해 피해자로서 권리를 주장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여러 재난에서 재난 피해자들은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알지 못한 피해자가 된다(193). 이들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지 알지 못하며,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어떻게 모여야하는지, 모일 권리 보장받을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재난에 대처하게 된다. 전주희는 유가족들이 이러한 대표 불능 상태에서 무시를 경험하고, 권리가 부재한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재난 피해자 권리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고 분석한다(194).

 

다음으로 살펴볼 편의 글은 국가 부재 속에 국가주의는 어떻게 강화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4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법적 책임의 정치적 확장: 편의 탄핵 의견서를 중심으로」(조지훈) 참사의 책임을 국가에 묻는지, 재난 대응 과정에서 법은 어떻게 기능하는지 묻는다. 조지훈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에서 제출한 편의 탄핵 의견서와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기각 과정을 주목한다. 저자는 현재 국내 체계가 참사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다룰 그것이 법률을 위반한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되어왔고, 법적 책임을 결과책임 아닌 행위책임에서만 다루는 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는 그동안 재난 구조에 실패한 국가가 대처 과정에서 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 법적으로 면책받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해왔다(131). 결과 재난 이후에 국가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졌다. 이상민 장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대표적이다.

 

조지훈은 생명권 보호 의무에 대한 결과책임을 다루는 유럽인권재판소의 체계와 비교하며, 만일 국내 체계가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여부를 결과책임에 준하여 판단했다면 다른 판결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재난참사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은 방기되었고, 조지훈은 앞으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생명권의 차원에서 적극적인 정치적 책임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그럴 애도는 관제 중심이 아닌 희생자와 유가족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있고, 애도의 권리는 죽은 자를 위한 권리를 넘어 살아 있을 때에도 애도받을 만한 생명으로 인정되고 평등한 애도의 가능성 실현될 있다.

 

이어지는 5 10·29 이태원, 재난은 어떻게 서사화되었나: 국가주의 재난 서사 비판」(전주희)에서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주의 재난 서사가 힘을 발휘할 있었는지 비판적으로 다룬다. 전주희는 국가가 재난이나 전쟁 상황에서 국가 위기 극복을 우선으로 삼고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화하는 패턴을 분석한다. 과정에서 국가주의 서사는 국가의 정당성을 피력하기 위해 자기방어적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165). 특정 집단이나 인물을 범죄화함으로써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재난의 피해와 가해의 위치를 역전시켜 국가를 책임지는 주체가 아닌 해결의 주체로 바꿔놓는다. 희생양 만들기, 일인칭 중심의 재난 서사, 국민 성금과 국가 애도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주의 재난 서사를 비판함으로써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전주희는 국가주의 재난 서사의 반대항에서 유가족과 시민운동이 주도하는 대항적 재난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항적 재난 서사는 운동의 측면에서 국가 부재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요구할 수밖에 없는 곤란함 내포한다(183). 따라서 대항적 재난 서사에서 재난 반대항에 놓인 안전 의미를 성찰하고, 생명권력을 약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아닌 대안적인 생명정치를 구성하기 위한 생존권’‘애도’‘삶과 죽음 언어들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에서 안전을 다룰 누가 배제되고 희생되지 않는지, 방식이 민주적인지 통제적인지, 위계화되지는 않는지 지속적인 담론 형성을 통해 안전을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184).

 

 

재난 이후, 사회

 

『재난 이후, 사회』에는 국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문제와 이를 폭로하거나 대항하는 유가족 주체, 현장의 이야기, 문제를 사회화하려는 저자들의 이론적 사투가 있다. 그리고 재난 이후 사회 생명권 담보된 안전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염원도 담겨 있다.

 

그러나 저자들이 강조하는 국가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필요성이 실태를 이해하는 도움을 주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재난 이후의 사회 상상함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이 비대해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또한 짚어야겠다. 뿐만 아니라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동시대 사회 구성원으로 재난을 함께 목격하고 경험한 사회 구성원들의 자리나 역할이 드러나지 않으며, 글에서는 마치 인정없는 사람들로만 위치 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은 팽목항에서 국가는 없었지만 사회는 있었다 말했다. 참사가 일어나고, 국가가 안전 관리나 진상 규명에 대한 책임을 방기했을 자리를 대신해 많은 시민들이 함께 울고, 먹고, 서로를 살피며 애도에 참여했다. 이태원 참사 때도 피해자와 희생자를 폄훼하고 낙인찍는 익명의 시민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었고, 이태원역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과 헌화,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는 국가가 애도를 금지할 때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10·29 참사 이태원이라는 장소를 돌려놓음으로써 10·29 이태원 참사 되는 기여했다. 2024 12, 무안국제공항에도 유가족과 추모객을 위해 많은 봉사자들이 모였다. 참사를 겪은 이들을 위해 여성 농민들이 밥을 지어 왔고, 다른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찾아와 위로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말처럼, 재난은 닥쳐보지 않으면 남의 여겨진다(189). 하지만 참사를 목격한 사람들은 일을 완전히 일처럼 대하지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저자들이 바라는 재난 이후, 사회 생명권과 안전으로 향한다면, 과정에 어떠한 주체들이 함께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하는 운동은 여러분의 사회운동과 다릅니다. 여러분은 잘 살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잘 죽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유가족 운동에 대한 나름의 정의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또 다른 토론 자리에서 다른 유가족에 의해 기각되었다. “우리는, 나는 잘 살기 위해 유가족 운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15)

 

죽기 위한 운동 살기 위한 운동사이에서 유가족 운동은 새로운 사회운동으로서 재난참사 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운동의 방향이 모두를 살리는 보편적 안전권을 위한 저항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저자들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앞으로 사회에서 재난이 애도, 안전권, 생명권을 향한 걸음이 되기 위해서, 이야기는 혼합 애도 속에서 출발하고 멀리 가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이론적 치열함과 현실의 부정의 앞에서 재난을 통해 생명권 안전권 말하고, 사회적 질문과 답을 찾고자 했던 저자들의 노력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목숨을 잃은 179명의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1) 정원옥, 「애도를 위하여: 10·29 이태원 참사」, 『문화/과학』 113, 2023, 55.

2) 김현준·백선우·전주희·정정훈·조지훈, 『재난 이후, 사회: 참사 다음의 삶과 권리를 위하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기획, 나름북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