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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Writing/인-무브 서평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세미나를 마치고

by 인-무브 2026. 5. 21.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세미나를 마치고

 

김강현

 

 

 

세미나를 돌아보며

 

6주간 도시 읽기 세미나를 했다. 도서는 1961년 미국에서 출간된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다. 주에 다섯 챕터를 두 사람이 나누어 발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많지 않은 인원 덕인지 집중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생각보다 많은 비판이 오갔고 결론에 이르러서 다음 도서인 <정크 스페이스 | 미래도시>를 읽기 위한 계기가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예를 들어, 제인 제이콥스는 헤겔적 의미에서의 역사의 간계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녀는 다양한 형태의 도시 및 건축 모더니즘에 대항하여 진정한 도시 경험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옹호하며, 그 요소들을 나열한다. “그 요소들을 통해 쇼핑은 도시성을 대신하면서 미국의 병든 도심 지역을 소생시킬 수 있는 모델로서의 ‘가벼운 도시'를 창조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심할지도 모르겠으나, 제이콥스는 많은 건축가와 도시연구자들로부터 포스트모던적 혁명을 향한 방아쇠를 당겨준 인물로서 추앙받을지라도, 자본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가 (소규모) 상업 분야를 강조한 것은 당연했다.

 

제인 제이콥스는 건축에 대항한 상징적 인물로서 포스트 모던의 효시로 평가되지만, 여전히 근대적 이항 대립의 논리로써 각 항의 동일성에 대한 비판을 미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구조-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남성 중심적 도시 설계를 비판하면서도 젠더 규범 자체는 부정 않는 식이다.

 

도시 건축설계자와 계획가는 대부분 남성이며, 이들은 이상하게도 통상적인 낮 시간에 남자의 존재를 배제하는 쪽으로 계획하고 설계한다. 이들은 주거 생활을 계획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할 일 없는 가정주부와 취학 전 아동의 일상적 요구를 가정하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이러한 모계제 사회의 이상은 주거가 생활의 다른 부분과 고립되는 도시계획을 수반한다. 하지만 적절한 보도 관리와 감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일상생활의 일부인 남자들, 도시 어린이들 주변에 존재하면서 일터와 상가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p.125)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 본인이 그러한 젠더 규범의 반례라는 점에서, 위와 같은 한계는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강력히 작용한 까닭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이 책이 출판된 후에 부상하였을뿐더러 냉전 시대 미국에서 자본주의에 결탁한 가부장제를 부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프레드릭 제임슨이 지적하듯 자본주의에 관해서라면, 제인 제이콥스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도시 설계의 궁극적인 목표란 도시를 ‘고밀하고 활기차게’, 다시 말해 소비와 생산이 종일 반복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아래서 어떤 대안을 제시한다 한들 "미래의 철학자, 의사인 철학자는 상이한 징후들의 배후에서 동일한 병이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할 것이다."(질 들뢰즈, <들뢰즈의 니체>, 철학과 현실사, p.36)

 

 그럼에도 이 책에는 남근로고스적 ‘시선’에서 벗어나 세상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담겨있다. 현대 사상의 개념어들로 서술되지 않은 이전 세대의 관념들이 퇴적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열린 텍스트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혹자는 그러한 방식이 지나치게 상대주의적이라거나 책임을 회피한다고 그를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가가 어떻든 그것이 타자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때문에 이러한 그의 환대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독서의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읽기

 

(1)   기존의 도시 설계 이론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는 놀라운 기계 장난감이었다. 게다가 하나의 건축 작품으로서 그의 구상에는 눈부신 투명성과 단순성, 조화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질서정연하고 눈에 쏙 들어왔으며 이해하기 쉬웠다.’

 

제인 제이콥스는 책의 서론부터 지속적으로 하워드의 ‘전원도시’와 그 뒤를 잇는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를 비판한다. ‘빛나는 도시’로 대표되는 기존의 교조적 도시 이론에 반하여 ‘좋아서 좋다’ 식의 자기 충족적 명제(혹은 예언)들에 반론을 제시한다. 그가 가장 먼저 기술한 문제는 안전이다. 그동안 놀이터나 공원은 ‘안전해서 안전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안전에 필요한 것은 ‘자연적 감시’이다. 사람(=감시자)이 많을수록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도시적인 관점이다. 사회 규범을 내면화한 개인들은 일탈에 대해 모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경찰조차 과잉 진압으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아동 양육에 필요한 이런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인력을 낭비하고, 이런 필수적인 일을 지나치게 방치하거나 (… ) 돈을 주고 대체물을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식으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123) 공터가 존재하고 도시계획가와 설계가들이 이용을 원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도시의 공터를 이용하지는 않는다.(133) 공원의 행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또한 공원이 부동산을 안정시키고 지역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그릇된 확신을 버릴 필요가 있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p.135)

 

요지는 놀이터, 공원, 녹지 같은 ‘좋음’의 대체물과 실제 효용의 차이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물’이라는 표현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로 야기되는 소외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공원이 부동산을 안정시킨다는 확신’은 대한민국의 ‘녹지 조성’에 대한 믿음과 결을 같이 한다.

 

 

(2) 다양성

 

***다양성을 위한 네 가지 조건***

1) 지구와 그 내부의 가능한 많은 지역이 하나 이상, 가급적이면 둘 이상의 주요 기능에 이바지해야 한다.

2) 대부분의 블록이 짧아야 한다.

3) 햇수와 상태가 각기 다른 건물이 지구에 섞여 있어야 한다.

4) 사람들이 충분히 오밀조밀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다양성이 파괴되는 경우***

-다양성이 스스로 파괴되는 경향.

-규모가 큰 단일 요소들이 다양성을 악화시키는 경향.

-인구의 불안정성

-공공 및 민간 자본이 발전과 변화를 좌지우지하는 경향

“가장 수익성이 좋은 용도가 여기저기 중복되면서 그것이 가진 매력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다양성의 자기 파괴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의해 야기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성공 자체로 귀결되고 성공에 필수 불가결한 작용을 한 바로 그 경제적 과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그리하여 한동안은 건전하고 이로운 기능을 하다가 결정적인 시점에서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여 기능 불량이 되는 과정이 나타난다. ”

 

“이웃한 건물의 수익성 증가를 이유로 도시 부동산의 평가액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과도한 중복을 강요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 자기 파괴의 힘에 맞서 버티려면 도시 지역의 공급 자체가 늘어나야 한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 성장 방식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것이지만, 그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대신 위 네 가지 조건을 갖춘 가로와 지구를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요구로 돌아간다. 하지만 조건 3과 그간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탈역사적인 도시 계획과 조성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3) 도시 공동체

 

제인 제이콥스는 대도시를 행정 지구로 나누는 것, 그리고 지구 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시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도시 공동체는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시 설계와 경제적 활기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억압 구조 자체에 대한 저항을 말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의 활동가로서의 경력이 강조되는데, 직접 경험한 행정적 악습에 비판적이면서도 실천으로 나아가려는 열의를 보인다. 이를태면 슬럼가로 낙인찍힌 동네는 대출을 받기 어려워 탈슬럼이 더욱 어려워지는 경제적 악순환에 빠져있는데, 도시 공동체가 이러한 낙인과 평가에 대항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 제시된 어느 마을 공동체는 뱅크런을 빌미로 은행을 압박해 받은 대출로 자생에 성공했다고 한다. 어쩌면 책에서 언급된 가장 극단적인 사례인 뱅크런은 그가 정말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대로 ‘자본주의의 하수인’이었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가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도시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도시 재생과 재개발을 오가는 소모적인 정쟁은 만연한 현실이다. 도시 설계 이론을 근거로 들기도 하나 대부분 ‘전 정권 지우기’라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다. 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의 도시 재생(또는 개발) 사업은 흐지부지되고, 이때 주민들의 실질적인 효용은 묵살되거나 부동산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복속된다. ‘주민 주도’ 타이틀을 내건 일부 공공개발 사업조차 상황은 마찬가지다. 별다른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 중인 광명시에선 ‘소방차도 못 들어 가는 곳에 화분 놓아’준다며 도시 재생과 개발 사업 사이에 방기된 주민들의 불만을 토로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선 수익성을 위해 용적률을 가득 채운 아파트와 상가 단지만 세워질 뿐이다.

 

물론 제인 제이콥스 역시 수익률을 비롯한 경제적 활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가 주장한 것은 빽빽한 아파트 숲이 아니다. 그는 단일 용도의 대규모 건축물들을 비판하며 핵심은 용도가 아닌 규모라는 사실을 꾸준히 지적한다. 큰 부지가 단일한 용도로 사용된다면 도시는 단절되고, 그러한 단절을 메꾸기 위해서 도로와 주차장을 비롯한 대형 건축물들이 더욱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는 높은 건폐율을 바탕으로 유연해진 용적률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유연한 용적률은 한 건물의 일부가 도시 가로나 공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도시의 유기적 순환을 유도하는 것으로 답답한 건폐율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도시 계획’이 단순히 녹지나 아파트라는 단일 ‘상품’을 도시에 편입시키는 것으로 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도시는 그것이 인공적인 만큼이나 유기적이며, 열린 전체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결론에 이르러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쓴다. 모임장인 건우님은 예술을 ‘선언’으로 바꾸어 읽어도 되지 않느냐고 했고, 나는 농담조로 ‘조감도’라고 말했지만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다. 아파트와 ‘녹지 포르노’, ‘빛의 도시’가 목적하는 계몽의 건축이 실은 교환가치, 대체물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익숙해진 이러한 문제들을 이 책은 무엇보다 도시의 언어와 관점에서 다룬다. 도시는 전문 지식을 넘어 삶의 문제로서, 도처에 등장하는 모티프로서 강력한 수사적 함의를 지니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파트 단지가 되었든 의자가 되었든 대부분의 사람이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을 구매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더 다양한 층위에서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살 수 없는 집과 앉을 수 없는 의자가 널린 세상에 환대의 장소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지 않을까?

 


광명시의회 청원:

광명6구역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공공재개발 할 수 있게 도와 주세요!

https://council.gm.go.kr/kr/requestBBSview.do?uid=75B00B3A82C01479F82CCE7B5E50BFA3&schwrd=&flag=all&page=3&list_style=

 

이미지 출처

 

제인제이콥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4/Jane_Jacobs.jpg

 

빛나는 도시

https://www.archdaily.com/411878/ad-classics-ville-radieuse-le-corbusier?ad_source=search&ad_medium=projects_tab

의자

https://www.ebay.com/itm/257447642917?_skw=lc2+chair&itmmeta=01KQRMP4V06AFVDX6Q18HDVKTT&hash=item3bf1134725:g:ewAAAeSw8QRoNane&itmprp=enc%3AAQALAAAA8GfYFPkwiKCW4ZNSs2u11xAj58J%2Fz5b7PgoykibOYpUsEow2ha74wxJdI%2FyvLcy6jkl2l4SwRZlhtV7rJM%2FHsWDBH165Ir3oMLqPFivmdUiSPtgkOZBibG2VaNpX3kcjEQKEKH%2Fj028XpDLAmXUw8OS0mVDdTAchPv%2BZXhUxl7JdoBK6Dps2%2Fv3NYQ1UWlp2VEHev7uEa7et3juCJmmBkoqIFxviJcxdOC8Dx90e6wbz6tzr3vSV1rYWsC7ifILnm8W4%2F9uaWBOk8DcDXm6fQ3Z%2BKpzUa%2F2Ah75clf5TUclgo%2FfuXwYCD%2FPJV%2FSi9vu4WA%3D%3D%7Ctkp%3ABk9SR-zN2JS-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