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무브 Project/니 비니! нi вiйнi!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에서 미래를 디자인하기

by 인-무브 2026. 9. 30.

팔레스타인에서 미래를 디자인하기

Designing the Future in Palestine

 

누라 에라카트 Noura Erakat

번역: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

 

 

 

비비안 산수르Vivien Sansour는 밀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산수르의 설명에 따르면, 1만 년도 더 전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앞을 내다본 이들이 밀을 길들였고, 오늘날 세계를 먹여 살리는 크루아상과 피타, 바게트로 바꾸어 가기 시작했다. 산수르가 종자를 연구하는 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그랬던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설계design”하기 위해서다. 2014년 산수르는 재래 종자 보관소Heirloom Seed Library을 세웠고, 이후 4년 동안 보존하고 증식할 재래 품종을 찾아다녔다. 모두 팔레스타인 토착종인 이 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의 땅과 삶에 가해지는 식민 규제 탓에 위협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효율과 규모를 위해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게 다른 품종을 강요해 왔지만, 정작 아라바 연구소Arava Institute에는 가장 큰 재래종 종자 보관소 중 하나를 두고 있다. 연구소는 실험용 과수원을 운영하면서도, 종자 자체에는 농민들이 손댈 수 없다. 산수르는 정착민 주권자가 “우리에게서 종자를 빼앗아 갔어도, 그 종자에 얽힌 이야기와 지식 체계까지 가진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산수르가 재래 품종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한 친구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친구는 이스라엘의 폭력이 삶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했다. 집을 밀어 버리고, 아이들을 납치해 군에 구금하고, 숨 막히게 감시하고, 팔레스타인 도시들 사이를 검문소로 가로막고, 정착민들이 점거해 들어오고, 가옥을 철거하고, 팔레스타인의 상징적 인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암살하는 바로 그 폭력 말이다. 미칠 듯이 깊은 고통에 잠긴 산수르를 보고, 친구는 도전장과 다를 바 없는 물음을 던졌다. “비비안, 네 힘power은 어디에 있어?” 산수르는 그 힘을, “고통을 달래 줄 약”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조상들의 이야기와, 조상들이 함께 살아온 종자에 이르렀다. 산수르의 말에 따르면, 종자는 “사람과 땅의 공진화를 이야기한다.” 이 일을 하던 중에, 자두이Jadu’i 수박 종자[1]를 6년 동안 찾아다닌 적도 있다. 산수르는 마침내 한 팔레스타인 농부의 잡동사니 서랍에서 그 종자를 찾아냈고, 이후 다른 농민 스무 명과 더불어 위협받는 다른 세 품종과 함께 자두이 종자를 심어 다시 재배할 수 있게 했다.

 

산수르의 여정은 “아름다운 검은 수염”을 지닌 독특한 밀, 엘 히테예 엘 소다el hiteyeh el soda의 사회사로도 이어졌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밀을 아부 삼라Abu Samra(검고 잘생긴 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관개 없이도 자라고 사막에서도 잘 크는 아부 삼라를, 이스라엘은 강제로 범용 품종으로 바꿔 놓았다. 범용 작물과 달리, 아부 삼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배만 채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사회생활과 서로 간의 유대까지 빚어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산수르에게 이 밀을 가리켜 “오래전에 잃어버린 사랑”이라 묘사했으며, 어느 비스킷에서 나던 이 밀의 독특한 맛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자기 사람들과 땅의 유대를 북돋우고 싶었던 산수르는 젊은 팔레스타인 음악가 자이드 힐랄Zaid Hilal과 함께 “우리 밀 유산과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담은 쓰고 제작했다. 〈아부 삼라〉라는 이 노래는 유튜브에 올라 와있다.[2] 이 노래를 듣고, 평소 패스트푸드 체인에 빠져 있던 젊은이들까지 “우리 [팔레스타인] 역사를 맛보”게 해 달라고 청하게 되었다.

 

산수르는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환경에서 자랐던 터라, 자신이 찾아가는 전통 농촌 사회에서는 생활방식 때문에 이따금 이질적인 존재가 되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당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을 찾아갈 때, 세계적 디아스포라라는 도가니 속에서 길러진 규범들로 이뤄진 자신 또한 그곳에 속한다고 믿는다. 산수르는 재래 종자로 땅을 일구며 “사람들이 다른 무언가도 가능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땅 위에 다정함tenderness을 만들어 내려” 한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 “이 아름다운 팔레스타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은 땅만큼이나 무성하고 풍요로운 팔레스타인,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품을 자리가 있고 언어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팔레스타인이다. 산수르는 이런 사회적 다양성을 “생체-흉내내기bio-mimicry”라 부른다. 그것은 산수르가 기꺼이 싸워 이뤄내려는 사회를 반영한다.

 

산수르가 이 땅에서 자기 사람들의 역사를 찾는 일은, 사실 새로운 미래를 짓는 데 알맞은 벽돌을 찾는 일이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주권으로 향하는 하나의 가능한 길이자, 이스라엘 국가와의 잔혹한 거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 거래에서 토착민은 정착민의 지배에 순응하고 그 대가로 조금씩 특권을 얻지만, 그 특권은 아무리 쌓여도 자유가 되지 못한다. 이 주권의 덫sovereignty trap에서 빠져나갈 길은 뚜렷하지 않지만, 앞으로 나아갈 실마리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산수르의 활동에는 국가에 대한 끈질긴 집착에 지친 팔레스타인인들이 최근 들어 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있다는 점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원주민 재기Indigenous resurgence에 점점 더 힘을 쏟고 있는 다른 원주민 공동체들과 발맞추어 움직이고 있다. 체로키 정치학자 제프 콘타셀Jeff Corntassel의 설명에 따르면, 원주민 재기는 국가로부터 눈을 돌려 “원주민 국민됨Indigenous nationhood, 장소에 기반한 관계들, 그리고 쇄신과 재생의 일상적 행동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공동체 중심의 실천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더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탈식민화의 틀을 새롭게 짜는 현상이다. 이 전환은 국가중심적 외교를 거부하는 것도, 정착민 주권자에 맞선 투쟁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관여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은 근시안적일 뿐 아니라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여전히 자기 땅에서 강제로 쫓겨나 있거나 군사화된 게토 안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원주민 재기는 다른 접근들과 나란히 원주민의 삶과 통치 체제를 중심에 둔다. “고향 땅, 문화,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여, 식민화가 낳은 소외의 힘을 해체undo하려는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인들과 관련해, 연구자 누르 주다Nour Joudah, 타레크 라디Tareq Radi, 디나 오마르Dina Omar, 란다 와흐베Randa Wahbe는 재기가 “자기-인정self-recognition”을 가능하게 하고, 이 자기-인정이 “분열fragmentation을 강도strength로”, “갖가지 모습으로 겪은 상실의 경험들”을 “돌봄의 정치”로 바꾸어 낸다고 설명한다.

 

탈식민화가 흔히 땅을 둘러싼 투쟁에서 토착민과 정착민을 맞세운다면, 원주민 재기는 서로에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땅에 가장 윤리적으로 속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종자를 보존하고 증식하는 일은 바로 그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지금 산수르를 온통 사로잡고 있는 것은 이 벅찬 과제이지, 이스라엘이 아니다. 산수르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아주 깊이 알고 싶어요. 우리가 그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요. 우리는 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거예요.”

 

원주민 재기의 실천들이 팔레스타인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땅 위에서, 그리고 여러 세대가 어우러진 팔레스타인인 모임들 사이에서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이 개인과 조직들은 식민 이전의 역사 전반에 걸친 팔레스타인의 전통에 기대어, 탈식민적 미래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와 정치, 지도력의 형태를 상상한다. 산수르와 마찬가지로, 이들 가운데 누구도 잃어버린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자유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만 손 놓고 기다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국민 해방national liberation의 틀 안에 젠더 해방을 심어 넣고 있는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콜렉티브Palestinian Feminist Collective(PFC)의 여성들이 있고, 귀환할 디아스포라가 살 수 있도록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다시 설계하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이 있다. PFC와 이 설계자들은 재기의 실천들이 앞을 내다보면서도visionary 땅에 발 딛고 있음grounded을 보여 주며, 국가 독립national independence 너머의 팔레스타인 해방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실지로 보여준다.

 

비비르 산수르

 

***

팔레스타인의 해방투쟁은 언제나 탈식민적이고 혁명적이었다. 국민적 프로젝트로서—혁명적 국민주의와 달리—국가주권에 집착하는 경향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다. 1968년 무장한 팔레스타인 정파들은 아랍 민족주의 엘리트들에게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주도권을 빼앗은 뒤, PLO 헌장을 개정해 다음과 같이 못 박았다. “무장투쟁은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은 단순한 전술적 단계가 아니라 전체 전략이다.” 목표는 “팔레스타인에서 정상적인 삶을 누리고, 그곳에 대한 자결권과 주권을 행사할 권리”였다. PLO는 그 땅에 대한 원주민 주권을 회복하려 했지만, 그 반제국주의적 지향은 국민주의nationalism의 틀을 넘어섰다. 헌장은 시온주의를 규탄하고, 이스라엘을 “세계 제국주의의 지리적 기지 (…) [이자] 중동과 전 세계의 평화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근원”으로 규정했다. 해방운동은 스스로를 그 지배 체제를 뒤엎으려는 세계 모든 인민을 대신해 제국주의에 맞서는 전위로 여겼다.

 

이 반제국주의적 합의는 1973년 10월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직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은 두 가지 요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판도를 드러냈다. 첫째, 이집트와 시리아는 점령당한 영토를 외교적 수단으로 되찾기를 원했다. 이제 그 어떤 유력한 아랍 군대도 이스라엘을 상대로 재래식 해방전쟁을 벌이지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둘째, 아랍 군대는 전쟁에서 졌는데도 이스라엘에 상당한 군사적 손실을 입혔고, 세력균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했다. 이 두 요인이 계기가 되어 팔레스타인 혁명세력은 깊은 자기성찰에 들어갔고, 결국 그들의 정치사상은 분열되었다.

 

1974년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교the American University of Beirut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는 팔레스타인의 가장 주요한 정당 지도자들이 나섰는데, 그 자리에서 이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편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땅을 해방하려고 시온주의에 맞서 무장 해방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몇몇 정당은 조건이 맞으면 단계적 투쟁, 곧 땅을 점진적으로 해방해 가는 투쟁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해방으로 가는 전술적 경로로서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그 무렵, 일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점진적 해방이 해법the solution이 될 수도 있음을 수긍하고 있었다. 즉 축소된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을 수용한 상태였다.

 

1974년만 해도 팔레스타인 소(小)국가 구상the Palestinian statelet은 소수 입장이었다. 해방투쟁에 불을 지피고 그것을 세계 곳곳의 반제국주의 봉기와 연결해주던 혁명적 열기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15년이 채 지나지 않아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alestinian National Council(PNC)는 축소된 팔레스타인 국가를 해방의 모델로 채택했다. 이 결정으로 PLO는 수십 년 동안 지켜 온 입장, 즉 분할을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 제181호와, 영토와 평화를 맞바꾸는 틀을 세워 이스라엘을 정치적 기정사실로 굳혀 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242호를 규탄해온 입장을 뒤집었다. 실제로 PNC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승인하자, 1970년대 후반부터 국가주의적 접근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학자이자 활동가, 외교관인 왈리드 칼리디Walid Khalidi는 이를 팔레스타인 사상의 혁명적 전도reversal라고 평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의 운명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애초에 사산된 것이 아니었다 해도, 오슬로 협정이 조인된 뒤 30년 가까이 이스라엘이 그것을 무너뜨려 온 것만은 분명하다. 우스꽝스러운 기념사진 행사와 요란한 외교적 팡파르를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대표해 협정에 서명한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최고위 관료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잇달아 공언해 왔다. 더 최근에는 당시 총리였던 나프탈리 베네트Naftali Bennett가 2021년 여름 미국 방문을 바로 앞두고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이 정부는 병합도 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국가도 세우지 않을 것이다. (…) 이스라엘은 자연 성장natural growth라는 기존 정책을 이어 갈 것이다.” 다시 말해, 점진적이고 꾸준한 정착민 식민 확장은 군사적 필요라는 법적 허구 아래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으며 계속될 것이다.

 

주류 단체 대부분은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에 걸친 이스라엘의 영토적 야심과 단일한 관할권을 최근에야 알아차렸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2000년대 초 평화 프로세스가 붕괴된 뒤로 사실상 하나의 억압적 국가와 맞서 왔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줄곧 해 온 주장을, 몇몇 전통 있는 인권단체들이 인정하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이미 이스라엘이 2018년 국민국가법Nation State Law을 통과시켜 유대인의 우월성을 헌법적 원칙으로 못 박고 자결권을 유대인만을 위한 배타적 권리로 만든 뒤였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예시 딘Yesh Din, 베첼렘B’tselem, 휴먼라이츠워Human Rights Watch,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모두 이스라엘이 법률상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보고서를 냈다. 이들 단체는 모두 실질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헌법 개혁을 촉구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 유대인의 90퍼센트 이상은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여야 한다고 믿는다. 유대국민기금the Jewish National Fund에 따르면, “비유대인 소수자”는 “평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이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 정의하는 것을 폐기하는 일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이 시민권을 내주지 않는 한편으로, 팔레스타인인들도 시민권이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연구자 라에프 즈레이크Raef Zreik에 따르면, 시민권은 기껏해야 “법에 대한 정착민 프로젝트의 독점”을 끝낼 가능성을 지닐 뿐이고, 프로젝트 자체는 여전히 계속해서 번성할 수 있다. 인류학자 아리즈 사바그-쿠리Areej Sabbagh-Khoury가 지적했듯이, 북부의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 이크리트Ikrit와 비르임Bir’im 출신 같은 국내 실향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시민이지만, 아직도 박탈당한 상태에 놓여 있고 원래의 땅으로 돌아갈 권리 또한 거부당하고 있다.

 

이렇게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탈식민화를 둘러싼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탈식민화란 국가주권과 인권을 모두 대체하는supersedes 과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분석의 초점을 되돌려, 문제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시온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재현하는 데 있다. 2021년 5월 통합 인티파다Unity Intifada 당시, 분절된 모든 지리적 공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엄과 희망의 선언문」(Manifesto of Dignity and Hope)에 이러한 생각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시온주의는 우리를 통제하려 해왔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의 정치적 의지를 분절하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인종주의적 정착민 식민주의에 맞선 하나 된 투쟁을 가로막으려 했다. (…) 지금 우리는 새로운 장, 단 하나뿐인 우리의 목표를 추구하는 통합된 인티파다의 장을 쓴다. 그 목표란, 팔레스타인 사회의 서로 다른 모든 부분을 다시 하나로 합하는 것, 우리의 정치적 의지를, 그리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온주의에 맞설 우리의 투쟁 수단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문제는 헌법 개혁이 내놓는 법적 접근을 넘어 시온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다. 팔레스타인이 제국주의 지배의 전형이라기보다 잔재인, 이른바 탈식민 이후의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독특한 관점을 지닌다. 이들은 20세기에 전 세계 식민지 인민들에게 독립을 가져다준 탈식민화의 물결에서 뒤처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탈식민화가 미완에 그쳤음을 목격할 수 있다. 오늘날 탈식민 이후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식민 지배를 토착민의 지배로 바꾸는 데 성공했으나, 지배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흑인 다수Black majority 가 권력을 잡았음에도 식민주의의 해악, 곧 극심한 경제적 계층화와 젠더 기반 폭력, 외국인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돔 게타추Adom Getachew가 일깨우듯이, 국민 독립은 탈식민화의 전제 요소에 불과했다. 궁극의 목표는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대안적인 사회와 경제, 정치적 통치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국민 해방의 역사들을 돌아보면, 정착민을 몰아내고 원주민 주권을 되찾는 것이 과연 탈식민 투쟁의 정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독립국가도 완전한 참정권도 가망 있어 보이지 않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오늘날 이 물음들에 답하려는 이들 가운데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어떠한 탈식민적 비전이든 집안home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새로이 떠오르는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조직들은 1988년 이전의 해방적 비전을 되찾고, 과거를 밑거름 삼아 강건한 해방투쟁을 길러 내고 있다. 이들은 정착민 주권자에 맞서는 일 못지않게, 그 억압의 그늘 밖에서 팔레스타인 사회를 새로운 모습으로 만드는 일에도 애쓴다.

 

***

2019년 8월 말, 베들레헴 외곽 출신의 스물한 살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스라 그라이예브Israa Ghrayeb가 가족에게 입은 상처로 알후세인 병원에서 숨졌다. 척추는 부러져 있었고, 얼굴과 몸은 멍투성이였다. 형부는 병원과 현지 언론에 이스라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집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증언과 소셜미디어 게시물, 이스라의 비명이 담긴 녹음을 보면, 이스라는 약혼하기로 한 남성과 함께 공공연히 밖을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오빠들과 형부에게 심하게 폭행당했다.

 

팔레스타인 여성 법률지원·상담센터의 기록에 따르면, 그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 살해를 포함해 적어도 스물네 건의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스라가 살해되기 훨씬 전부터 팔레스타인 사회에서는 여성살해가 늘고 있었고, 그 때문에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미 더 공세적으로 조직화에 나서고 있었다. 2019년 활동가들은 팔레스타인 사회 안에서 페미니즘에 찍힌 낙인에 맞서려고 팔레스타인 전역과 디아스포라에 걸쳐 비공식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페미니즘은 프랑스와 영국, 미국이 젠더 정의라는 이름으로 벌여 온 전쟁의 유산 때문에 서구의 식민 폭력과 결부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는 여성 권익 옹호 활동이 이스라엘 NGO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페미니즘 활동을 공동체에 기반한 접근에서 떼어 내자, 여성의 안전이 증진되는 동시에 시온주의도 정상화되었고, 그렇게 젠더 정의와 정치적 정의는 둘로 갈라졌다.

 

대서양 양편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이스라가 살해되었을 때 곧바로 결집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탈아트Tal’aat(나서는 여성들)는 팔레스타인에서 여성살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참가자들은 “명예살인에 명예는 없다”, “자유로운 여성 없이 자유로운 조국은 없다”, “젠더는 국민 해방의 문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북미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전통 속에서 페미니즘을 자리매김하려고 1년 동안 함께 학습한 여성들이 PFC를 만들었다. PFC와 탈아트는 묻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말할 때, 거기에는 누가 포함되는가? 모든 팔레스타인인이라면, 성폭력과 가정폭력, 공적 공간에 대한 제약, 친족 살해를 끝내는 일은 자유를 위한 팔레스타인의 투쟁에서 중심적인 문제다.

 

산수르처럼 PFC도 반식민적 접근과 탈식민적 접근을 구별했고, 두 접근 모두에 힘쓰고자 했다. 반식민적 노력이 억압적 구조를 허물려 한다면, 탈식민적 노력은 대안을 만들려 한다. 이 콜렉티브의 공동 창립자인 루브나 쿠타미Loubna Qutami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PFC와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들이 말하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75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아왔고, 우리가 생각하는 해방이란 사회해방을 민족해방보다 부차적인 것으로 밀쳐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해방의 에토스와 원칙,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 우리는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해방하는 게 먼저이고 사회를 밑바닥에서부터 재창조하는 건 그 다음이라는 생각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쿠타미는 여성을 중심에 두면 흔히 가려져 온 여성들의 지도력이 드러나기 때문에, 정치의 의미도 새롭게 정의된다고 강조한다. 쿠타미는 이렇게 설명한다. “투사와 정치이론가만 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젠더화된 노동이라 불리는 일을 하는 여성들도 정치를 가능하게 합니다. 바로 그 노동 덕분에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굳건히 버팀이란 팔레스타인 국민 저항의 핵심 요소인 수무드sumoud의 실천, 곧 고난을 견디고, 인내하고, 쫓겨나기를 거부하는 일을 가리킨다. 수무드는 이 콜렉티브가 과거와 미래를 잇고자 여성 원로들matriarchal elders에게서 되찾아 온 실천 가운데 하나다. 그 밖에도 술흐sulh—국가기관이 아니라 공동체가 매개하는 회복적 정의 모델—를 통해 갈등을 푸는 일, 서로를 돌보는 일, 가족의 기틀을 다지는 일,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 있다. 젊은 세대는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이 콜렉티브의 특성 덕분에 가능해진 비공식적 교류를 통해 이와 같은 실천들을 배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은 권력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쿠타미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오슬로 이후 우리 인민이 권력을 되찾는 일”이다. 국가주의적 접근은 권력을 정치·경제 엘리트에게 몰아주면서 대중적 기반의 힘을 빼앗는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바로 그 기반을 말이다. 페미니즘적 접근은 모두가 앞장서기를 권한다. 쿠타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정치를 그려 가는 envisioning 방식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자리나 자원을 두고 다투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떠안긴, 우리 모두가 지도자로 설 자리가 어떤 식으로든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 낸 희소성 모델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 엘리트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게 이런 접근은 위협적이다. 2021년 여름, 자금도 중앙의 통치 구조도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통합 인티파다를 이끌었다. 1936년 대봉기와 1987년 인티파다 이후 가장 중요한 팔레스타인 대중 동원이었다. 이 운동은—분산되어 있었고 유기적이었으며 겉보기에는 자발적으로 일어난 듯했다—분절된 모든 지리적 공간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결집시켰고, 팔레스타인 투쟁을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역사적 전환을 가져왔다. 그사이 PA는 허를 찔려 휘청거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보였다. 봉기가 끝나자마자 지배력을 다시 틀어쥐려고 서두른 PA 보안요원들은, 공식 지도부를 거침없이 비판하는 것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반체제 언론인 니자르 바나트Nizar Banat를 붙잡아 살해했다. (오슬로의 발명품인) PA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구조와 얽혀 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PA 보안요원들은—서방 공여자들이 국가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내려준—곤봉을 팔레스타인인들의 몸을 향해 휘둘렀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잠복해 있는 latent 팔레스타인 지도세력에게는 권력power과 잠재력potential이 있을지 모르지만, 공식 지도부에게는 총과 감옥이 있다.

 

Les Femmes D'Alger, Asad Faulwell, 2012

 

***

PFC와 탈아트 같은 페미니스트 조직들은 다른 지도력 모델을 앞장서 일구며,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조직화를 바꿔 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내비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특히 강인하면서도 분절되어 있어 국민주의만으로는 온전히 하나로 꿰어 낼 수 없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에게 필요한 미래를 약속한다. 이처럼 내부로 눈을 돌리는 프로젝트들이 팔레스타인인의 삶 곳곳으로 번져 가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자체를 다시 건설하려는 네트워크들도 그 가운데 있다.

 

라나 바라카트Rana Barakat는 예루살렘 바로 인근에 있는 리프타Lifta 출신이다. 리프타는 파괴되었지만 완전히 밀려 사라지지는 않은 마을이다(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정복하면서 500여 개 마을을 허물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도 사람이 살지 않거나 폐허로 남아 있다). 천연 샘이 있는 리프타는 “토착민이 되어 보려는” 이스라엘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국가가 리프타 위에 현대식 건물을 세우고 조경을 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팔레스타인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항의가 일었다. 논란 끝에 리프타를 보존할 박물관을 짓자는 제안이 나왔다. 바라카트는 이 방식이 팔레스타인 삶이 물리적으로 삭제되는 것은 막아 주지만, 그럼에도 “리프타를 박물관화와 보존을 넘어 번성하는 살아 있는 마을이 아니라 죽은 과거의 상징으로” 못 박아 버린다고 지적한다. 바라카트는 이에 저항하려면 “샘을 상징과 죽음의 은유의 세계에서 훔쳐 내어 삶과 살아 있음의 세계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바로 그런 탈취가 젊은 팔레스타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이다.

 

누르 주다Nour Joudah는 팔레스타인과 하와이의 원주민 대항지도화를 연구하는 지리학자다. 주다는 이 과정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공간적 표현을 상상하는 방식 (…) 재기의 한 형태이자 선형적인 정착민 시간의 서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설명한다. 정착민 주권자는 원주민의 삶을 되찾을 수 없는 과거로 밀어 넣어 왔지만, 원주민 공동체들은 대항지도화 실천을 통해 “날마다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속박되지 않은 시간성을 끌어안는다.” 주다는 박탈이 계속되는 조건 하에서 선형적 시간은 원로들이 남긴 유산과 어린아이들이 지닌 잠재력을 지워 버리고, 그렇게 “원주민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거부한다고 강조한다.

 

주다의 연구 자료 가운데 하나는 팔레스타인 토지협회Palestine Land Society(PLS)가 해마다 여는 설계 공모전이다. 연구자이자 활동가이며 난민인 살만 아부 시타Salman Abu Sitta가 이끄는 PLS는 전 세계의 팔레스타인 건축·도시계획 전공 학생들에게 파괴된 팔레스타인 마을을 재건해보라고 제안한다. 의욕에 찬 참가자들은 50~100개 마을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고, 마을마다 그 땅에 관한 자료, 곧 주민, 주요 지형지물, 성소, 경제, 식생에 관한 자료가 함께 주어진다. 설계안들은 교통 체계와 주거, 공원, 광장을 갖춘, 상상력 넘치는 프로젝트다. 주다는 지난 3년 동안 출품작들을 연구하고 참가자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모든 설계에 가장 흔히 등장하는 시설은, 방문은 하되 머무르지는 않기로 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재회 호텔”이다. 이는 설계자들이 원주민의 미래가 지닌 역동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계자들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건설하면서도 보존할 수 있도록 직접 조사 해볼 것을 권유받는다. 이 조사는 많은 경우 구술사 채록 형태로 이뤄진다. 참가자 대부분은—이스라엘에 가로막혀—마을 터를 직접 찾아갈 수 없다. 그래서 구글 지도로 지금의 경관을 살피고, 전화와 스카이프, 왓츠앱으로 살아남은 마을 주민들과 연락한다. 재건 설계가 이루어진 수흐마타Suhmata 마을처럼, 젊은 건축가들이 레바논으로 강제 추방된 그 마을의 생존 주민과 후손들을 만나 줌으로 설계안을 발표하는 일도 늘고 있다. 이들은 공간과 시간, 트라우마에 가교를  놓음으로써,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을 긍정한다.

 

공모전 자체가 하나의 발생적 generative 과정이다. 귀환과 가능성의 비전들, 역사들과 살아 있는 현재를 아우르고, 디아스포라를 서로 이어주면서, 공모전은 희망의 원천이 된다. 원주민의 삶은 하나의 열망이지, 과거를 향한 낭만적 그리움이 아니다.

Jisr Az-Zarqa, A tapestry of Community, Land and Sea, Suzan Abd-Aljawwad & Mohammad Khattab, 2024 https://www.architecturegraduationprojects.com/jisr-az-zarqa-a-tapestry-of-community-land-and-sea/

 

***

팔레스타인 국민의 역사는 비선형적이고 우연적이었으며, 거기에는 분석의 쇄신도 정치적 균열도 있었다. 전간기에 세계질서에 편입되려 했던 국민 엘리트가 있었는가 하면 1936년 대봉기 때 무기를 들고 대영제국을 보이콧한 혁명적 대중이 있었고, 1970년대 내내 단계적 해방을 최종 해법으로 추구한 국민주의가 있었는가 하면 무장투쟁을 고수한 국민주의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봉쇄된 조그만 언덕 위에서라도—국가를 세우려 여전히 안달하는 국민 엘리트주의 경향이, 다시 한번 시온주의를 문제로 지목한 대중운동과 부딪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 투쟁을 돌아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때는 정착민 주권자에게서 등을 돌려 서로에게로 향했을 때였다. 예컨대, 대봉기와 제1차 인티파다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식량을 나누는 상호 교환 네트워크, 서로의 가족에 대한 돌봄, 지하 학교, 대안 경제를 일구었다. 그 잠재력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살아 있다. 우리는 종자의 사회사를 되살리는 보존 활동가들에게서, 세대를 이어 가는 생존을 계속해서 떠받치는 여성들에게서, 그리고 말 그대로 미래를 건설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서 그 잠재력을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억압자에게서 눈을 돌려 행동으로 향하면, 땅 그리고 서로에 대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새로운 물음들이 중심에 선다. 이런 원주민 재기는 국민 독립 이후 언젠가로 미뤄 두었던 쇄신의 과정을 되찾아와, 지금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앞세운다. 땅을 돌본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기후 재앙 앞에서 재건된 마을들은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가? 추방 당시보다 열 배로 늘어난 난민 인구는 어떻게 귀환하고 번성할 수 있는가? 언제나 해방투쟁을 떠받치고 비공식적으로 이끌어 온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자유를 가로막는 조건들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국민주의적 틀의 한계를 오래전부터 인식해왔다. 이들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상호 돌봄의 모델을 다시 만들고, 회복적 정의를 활용하자고 강조한다. 그 강조를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은 제국주의 열강에게 자기 것의 뒤틀린 한 조각을 내어 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자신들이 바라는 세계를 짓는 쪽으로 향한다. 이 작업은 잔혹한 지배를 끝내려는 해방투쟁에서 주의를 흩뜨리기는커녕, 자유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준다. 탈식민화에 힘을 실으면, 모두가 바라지만 아직은 온전히 상상하지 못하는 대안을 창조해 낼 수 있다.

 

1994년 사파티스타 운동이 멕시코의 지방정부 청사 일곱 곳을 점거하고 최대 170만 에이커의 땅을 되찾았을 때, 대변인 마르코스Marcos 부사령관은 이렇게 선언했다. 권력에 변화를 요청ask할 때가 있고, 권력에 변화를 요구demand할 때가 있으며, 권력을 행사exercise할 때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조직가들은 지금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PFC의 말처럼, 해방을 향해 내딛는 걸음마다 사랑을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Post-Catastrophe Architecture – Temporary shelters of displaced people, Asala Abdelnabi & Hala Nasereddin, 2024 https://www.architecturegraduationprojects.com/post-catastrophe-architecture-temporary-shelters-of-displaced-people/


 

*저자 소개:

누라 에라카트Noura Erakat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인권 변호사이자 법학자다. 미국 럿거스대학교 뉴브런즈윅 캠퍼스의 아프리카나학과와 형사사법 프로그램 교수로 있으며,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 국가안보법, 비판적 인종이론, 팔레스타인학을 연구한다. 학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미국 하원 소위원회의 법률 고문, 팔레스타인 난민·거주권 자료센터 바딜Badil의 법률 활동가, 이스라엘 점령 종식을 위한 미국 캠페인의 전국 조직가로 일했다. 저서 『일부만을 위한 정의: 법과 팔레스타인 문제』(Justice for Some: Law and the Question of Palestin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9)는 국제법이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어떻게 정치적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추적하며, 법은 그 자체로 정의를 보장하지 않지만 정치 운동이 전략적으로 쓸 수 있는 도구라고 주장한다. 이 책으로 팔레스타인 도서상을 받았다. 무인 라바니Mouin Rabbani와 함께 『유산된 국가? 유엔 이니셔티브와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국면』(Aborted State? The UN Initiative and New Palestinian Junctures, 2013)을 엮었다. 중동 전문 온라인 매체 『자달리야Jadaliyya』의 공동 창립 편집자이며, 다큐멘터리 〈맥락 속의 가자Gaza in Context〉를 공동 제작했다.

 

*원문: Noura Erakat, “Designing the Future in Palestine,” Imagining Global Futures, Boston Review Forum 24 (2022), pp. 84–100.

++책으로 출간되기 전 온라인에 게시된 글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bostonreview.net/articles/designing-the-future-in-palestine/

 

Designing the Future in Palestine

Palestinian women and feminist organizations are reimagining what liberation can look like beyond national independence.

www.bostonreview.net


[1] 옮긴이: 자두이(Jadu'i) 수박 종자는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제닌(Jenin) 지역에서 유래하고 오랫동안 재배된 토종(Heirloom) 수박 품종의 종자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파괴에 따른 토지 황폐화와 상업용으로 개발한 교배 개량 종자의 보급과 자본주의 기업식 영농의 확산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팔레스타인 농업가 비비안 산수르가 설립한 팔레스타인 재래 종자 보관소(Palestine Heirloom Seed Library) 등을 통해 극적으로 발굴 및 보존되었다. 그 이후 세계 각지의 종자 보호 운동가들에 의해 다시 심어지고 길러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재래 종자 보관소 홈페이지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palestineheirloomseedlibrary.myshopify.com

[2] 옮긴이: 다음의 링크에서 자이드 힐랄의 <아부 삼라>를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Bq0USgjMwLM?si=ef_LcLzDuPrAq9Q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