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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Project/니 비니! нi вiйнi!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아무것도 정상일 수 없다

by 인-무브 2026. 9. 30.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아무것도 정상일 수 없다

 

샤리 플론스키 (Sharri Plonski)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원문: Sharri Plonski, "Until Palestine is free, nothing is normal", Radical Philosophy 221 (Summer 2026), pp. 82–85. https://www.radicalphilosophy.com/reviews/until-palestine-is-free-nothing-is-normal

 

*서평 대상 도서: Adam Hanieh, Robert Knox, Rafeef Ziadah, Resisting Erasure: Capital, Imperialism and Race in Palestine (London: Verso, 2025), 128pp.

 


 

나는 지금까지 애덤 하니에, 로버트 녹스, 라피프 지아다의 『말살에 저항하기: 팔레스타인에서의 자본, 제국주의, 인종』을 세 번 읽었다. 처음 통독한 것은 지난해 9월(2025년)이었다. 제노사이드가 가자의 대지를 계속 불태우고 다시 만들어내고 있던 때였다. 휴전이 발표되기 5주 전이었고, 책이 출간된 지 몇 주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가자 재구축, 경제 가속 및 전환'(Gaza Reconstitution, Economic Acceleration and Transformation, 'GREAT') 계획이 유출된 시점과도 겹쳤다. 나는 이 둘을 함께 읽었다. 『말살에 저항하기』의 설득력 있고 명료한 분석은 파국적(apocalyptic) 폭력에 관한 저 38쪽짜리 구상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프레임을 제공했다.

 

미국계 이스라엘 사업가 마이클 아이젠버그(Michael Eisenberg), 이스라엘의 전 정보 지휘관에서 기술기업가로 변신한 리론 탄크만(Lyron Tancman), 그리고 금융 모델링 싱크탱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이 공동으로 작성한 트럼프의 가자 'GREAT' 계획은 수십 년에 걸친 개발계획 이니셔티브가 축적된 결과처럼 느껴졌다. 하니에, 지아다, 녹스는 이 계획의 공간적·금융적 전망을 보증하는 논리들을 가능케 하는 구조에서 출발하며, 가자를 본래적인 역설(inherent paradox), 곧 위협적이고 위험하며 악몽의 블랙홀이면서, 동시에 누군가가 가능성으로 채워 넣기 전까지는 언제나 비어 있고 비생산적이며 살아갈 수 없는 곳으로 다룬다.

 

저자들이 인종자본주의(racial capitalism),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 제국을 한데 엮어냄으로써, 우리는 가자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어떻게 비어 있고 치워져 있으며 아무런 방해물이 없는(unencumbered) 공간이라는 이러한 비전에 의존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 전망은 '제로(zero)'에서 출발하며, 가자의 가치는 자본투자, 과잉노동력, 산업자재, 추출적(extractive) 생태계의 새로운 순환과 짝지어진다. 심지어 한 페이지 전체가 공간적 평정(spatial pacification)에 할애되어, 가자의 '다루기 힘든' 인구가 이루는 사회적 짜임새(social fabric)를 어떻게 재설계하고—또 억누를 것인지—에 관한 지침까지 제시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가자 점령 첫 10년과 다르지 않다. 1971년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바로 같은 목적에서 난민캠프에 불도저를 투입하라고 명령했던 시기다.

 

이 첫 번째 독해에는 새롭게 이름 붙여진 '아브라함 회랑'(Abrahamic corridors)에 관해 내가 진행 중인 연구도 영향을 미쳤다. 이 회랑들은 저 계획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수단이 체결한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아키텍처 차원에서 실제로 작동시킨다.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것은 하니에, 지아다, 녹스가 미국의 '새로운 중동'이라고 지목하는 바다. 그 지향에서는 미국과 걸프, 이스라엘 자본이 이음매 없는 인프라·에너지·금융의 흐름 속에서 서로 한데 꿰매어진다. 다시 말해, 정상화(normalisation)의 궁극적인 프로젝트가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나는 거의 10년 동안 중동의 무역·운송·물류 통로들이 서서히 인프라 차원에서 재편되는 과정을 추적해왔다. 이는 이스라엘–미국–걸프 자본을 서로 엮고 매듭짓기 위해 회랑 지리(corridor geographies)가 개조되어온 과정이었다. 그동안 내가 주목한 것은 이 물질세계의 상대적으로 덜 화려한 배치들(assemblages)이었다. 서로 맞지 않는 철도 궤간들의 재정렬, 항만 기술의 효율화, 선박 통항의 모듈성, 통관의 관료적·법적 접합, 그리고 저들을 갈라놓는 끈질긴 공백들과 초크포인트들, 임시방편들을 이어주는 위험관리 중개자들 말이다. 이것들은 봉쇄, 외교협정, 군사개입이라는 훨씬 더 공적으로 드러나는 지배권(dominion)을 떠받치는 상대적으로 덜 가시적인 중추다. 제노사이드가 시작된 이후, 이 새로운 '중동'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새롭게 관심이 쏠리면서, 호르무즈, 홍해, 수에즈 운하 같은 발화점들도 점점 우리의 주류적 인식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내 연구는 『말살에 저항하기』와 많은 공통 지반을 갖는다. 나는 인프라의 연결과 단절이라는 물질적 작업이 뒷받침하는 이스라엘의 이동성(mobility)과 팔레스타인의 폐쇄(containment)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인프라는 팔레스타인에게 언제나 핵심적인 것이었다. 팔레스타인은 지역적 흐름에 역사적으로 뿌리내려 있었고, 중동의 정치·경제 관계에서 정상적인 한 부분이었다. 적어도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expulsion)한 토대 위에서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출현하면서, 이스라엘은 봉인된(sealed) 요새가 되었다. 유일한 출구인 바다에 의존한 채, 그것은 애초에 의도한 바 그대로 작동했다. 범아랍 저항과 사회주의 민족주의의 물결에 맞서는 서구의 프런티어 구축자들(frontier-makers)을 위한 하나의 고립지구로서 말이다. 팔레스타인은 글로벌 사우스 급진운동의 핵심 고리가 되었고, 사회적·정치적 의식의 직물(fabric)를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은 서구/자본주의 질서에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저자들이 주장하듯, 이스라엘은 언제나—그리고 언제나 그래야만 했다—이 지역에서 적대적인 존재였다. 곧 처음에는 유럽의, 이후에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한 (그들로부터 자금을 제공받고 지지를 받아 세워진) 군사 거점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끝없이 결실을 맺어왔다. 지난 30년 동안 이스라엘은 경계 지어진 존재에서 겉보기에는 한계가 없는 존재로 옮겨갔다. 이제 이스라엘은 중동의 인프라·물류·에너지·금융망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갈수록 봉쇄에 맞도록 그 스케일이 조정되고 있다. 왜곡된 현실처럼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이제 팔레스타인은 지역의 이윤과 번영을 교란하는 존재로 간주되며(적어도 이 지역의 지도자들에게는), 새로운 지역 비전 속에서 점점 더 육봉(陸封)된 채(landlocked)로 고립되고 있다. 이는 나크바 이후 지중해로 통하는 마지막 지점이었던 가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20년 동안 가자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포위에 의해 봉인되었고 사방을 에워싸였으며, 그 바다와 하늘, 땅은 이스라엘의 폭력과 봉쇄(blockade)라는 변덕(whim)에 전적으로 좌우되어 왔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지려면,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존재가 되려면—그리고 팔레스타인이 천시되고 위협적이며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려면—, 글로벌 파트너와 협력자가 필요하다. 『말살에 저항하기』가 매우 분명하게 지적하듯, 이스라엘의 정상화와 제노사이드가 불처벌(impunity) 속에서 다뤄지는 방식을 하나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위치짓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와 기업 모두로부터 과도할 정도의 헌신과 확신, 그리고 직접적인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투자를 요구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기여 가운데 하나는 이 정상화 프로젝트를 그 계보학적 기원까지 거슬러 추적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은 현재를 이 지역 화석자본주의의 더 긴 이야기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제노사이드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하고 심화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토록 필수적인 부동산(real estate)이—즉 군사적·식민적 행위자가—되는지를 이해하려면, 20세기와 21세기의 공급망에서 중동이 차지해온 중심적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석유의 발견만이 아니라, 글로벌 순환의 핵심 축인 이 지역의 수로들(waterways)을 통해 사물들이 이동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제된 상태로 유지하는 데 폭력은 언제나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폭력은 미국의 공급망뿐 아니라 이 지역의 권위주의적 권력을 교란하는 위협에 대비하는 보험이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다른 해방 프로젝트에 희망이자 지평과 같다.

 

더욱 통찰력 있는 것은 저자들이 이 역사를 오슬로 협정을 경유해 짚어가면서, 제노사이드적 폭력과 자유주의적 외교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2025년의 가자를 1990년대 오슬로의 결과로 보는 것—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끝없는 협상과 거버넌스 개혁, 신자유주의적 제도로 빨려 들어간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은 바로 이 고요한 순간에 제노사이드의 인프라가 심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동시에 이는 휴전 이후에 무엇이 다가오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날카로운 경고이기도 하다. 오슬로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은 확대된 정착촌 프로젝트, 서안지구의 반투스탄화(bantustanisation, 곧 A·B·C 지역으로의 분할), 검문소, 군사적 급습, 분리장벽의 건설을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우리를 다른 경로로 이끈다. 이들은 분할(fragmentation)보다 얽힘(entanglement)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프레이밍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봉쇄한 것은 콘크리트 장벽이 아니라 오슬로가 만들어낸 정상화의 지형(normalisation terrain)이다. 특히 파리 협정(Paris Agreement)[1]을 지목하면서, 저자들은 오슬로가 팔레스타인의 경제·금융·무역 회로를 이스라엘의 관세 및 세금 수입 시스템에 연동시켰고, 새롭게 만들어진 행정기구를—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길들였으며, 이스라엘 자본주의가 제1차 인티파다의 성과를 확산시켰던(proliferated) 경제적 보이콧들에 맞서 앞으로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후 PA가 공동 안보체제와 에너지 그리드(grids), 심지어 인터넷 네트워크에까지 더욱 깊이 통합되고 얽혀 들어가면서, 그들은 그 안에 봉인되었고, 이는 다시 아랍 국가들이 이 과정에 합류할 길을 닦았다.

 

내가 『말살에 저항하기』를 두 번째로 읽은 것은 2026년 1월이었다.[2] 내가 일하는 런던 퀸메리대학교(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에서 「팔레스타인을 통해 글로벌 정치 읽기」(Reading Global Politics through Palestine)라는 새로운 학부 3학년 대상 강좌를 시작하기 며칠 전이었다. 나는 샤흐라자드 오데(Shahrazad Odeh), 제임스 이스트우드(James Eastwood)와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이 강좌를 구성했다. 팔레스타인을 그들 자신의 관점에서(its own terms) 다루는 동시에 글로벌 정치의 행위자로 다루기 위해, 그들의 지적·정치적 개입을 중심에 놓았다. 『말살에 저항하기』의 첫 문장들은 모함메드 엘쿠르드(Mohammed al-Kurd)를 인용하며 "팔레스타인은 세계의 축소판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글로벌 억압 시스템의 단층선(fault line)이 되는지, 그에 따라 그 시스템들에 대한 저항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대가 되는지를 세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과 식민주의, 인종자본주의가 우리의 현재 국면을 구조화한다는 저자들의 프레이밍은 우리가 시온주의의 정치경제적 역사에 닻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의 노동과 공간을 불균등하게 편입시켜온 과정이 지역 생태계의 글로벌 재편에 내장되어(integral) 있음을 볼 수 있게 했으며, 정착민 식민주의를 팽창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언제나 인종적 경계선을 따라 작동하는데, 그 경계선은 시온주의 우월주의(Zionist supremacy)를 통해 만들어지는 만큼이나 다른 곳에서 이미 그어진 선들을 따라간다. 그리고 역사적이든 현재적이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본주의적 제국 권력의 지원에 의존한다는 점도 보게 했다.

 

저자들은 또한 팔레스타인의 분노와 비참함, 그 평범함과 파열을 모두 볼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의 프레이밍을 따라가면, 팔레스타인은 결코 마법 같은 장소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도 마법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 마법을 걷어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역사에 뿌리내린 존재가 되고, 그제야 그들의 현재를 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하니에, 녹스, 지아다만 따로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 라비아 에그바리아(Rabea Eghbariah), 라나 바라카트(Rana Barakat), 나데라 샬후브-케보르키안(Nadera Shalhoub-Kevorkian)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 어떻게 귀 기울일지,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학생들과 어떻게 나눌지를 배웠다. 이는 지속되는 구조로서의 박탈을 말할 언어를 찾고, 해방을 언제나 지속되는 귀환의 정치와 결부된 것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은 최근이었다. 이번에는 숙독(熟讀)을 했고, 앞선 두 번의 독서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세계의 시선을 이란과의 불법적인 전쟁으로 돌리고, 수천 명을 죽이며, 세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무역/운송 동맥 가운데 하나에서 놀라운 저항-봉쇄(resistance-blockade)를 촉발하는 가운데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이스라엘이 다시 레바논을 겨냥해 거듭해서 폭격과 대량의 죽음, 파괴를 개시하고, 남부 레바논에서 실향(displacement)과 재점령이 벌어지는 가운데 읽었다. 나는 서안지구에서 정착민과 군인의 손에 사람들이 날마다 죽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읽었다. 나는 이른바 휴전이(이는 매일같이 깨지고 있다) 가자에서 위험한 뉴노멀(new normal)을 다시 관철시키는 동안 읽었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현장의 기정사실'(facts on the ground)이 군사작전과 아키텍처의 봉쇄 장치를 위한 지형을 획정하고 있다. 새로운 옐로우 라인(yellow line)[3]은 레바논 안으로도 뻗어가고 있으며, 아브라함 회랑은 계속 탄력을 받고 있다. 나는 2026년 다보스에서 가자 계획이 회자되고, 아랍에미리트가 OPEC을 탈퇴해 미국과 이스라엘 쪽으로 한층 더 다가가며, 에너지 흐름을 운송하고 확보하는 다른 방식을 요구하는 공개적 목소리가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가운데 이 책을 읽었다.

 

이처럼 갈수록 확대되는 참화(devastation)의 순환 속에서, 『말살에 저항하기』가 지적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글로벌 이데올로기적·구조적 헌신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 두드러진다. 이곳에서는 '반유대주의로부터의 보호'라는 베일을 쓴, 독성이 강한 새로운 변종인 반(反)팔레스타인 인종주의가 등장했다. 팔레스타인 운동들과 인종화된 공동체를 똑같이 여기도록 가스라이팅하는 방법으로 인해, 그 운동들은 이 나라가 지금껏 본 '가장 심각한 유행성 전염병(greatest epidemic)'을 만들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극우 정당들은 거리와 주류 정치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얻으려 노력하면서, 이미 뒤섞인 논의들에 자기들만의 담론까지 더하고 있다.

 

저자들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이러한 연결들을 알아볼 수 있는 도구를 쥐여준다. 그들은 이주민을 '불법'이라 부르며 희생양 삼는 데서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를 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안보 위험과 인종화된 공중(racialised publics)을 엇갈려 이어 붙이는(intersplice) 언어, 친팔레스타인 구호와 시위 속에서 반유대주의를 찾아내는(locate) 언어,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국가폭력에 맞선 자신들의 투쟁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노동자와 교사, 활동가를 규율하기 위해 대테러 정책과 '프리벤트'(Prevent)[4] 정책을 부추기는(unleash) 언어를 파고들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이 자신의 자위권을 둘러싼 담론을 형성해온 방식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9·11 이후의 '선한 자 대 악한 자'라는 브랜딩으로, 그 안에서 갈색 피부의 아랍인과 무슬림은 언제나 위협적이고 언제나 테러리스트다. 저자들은 이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다. "반팔레스타인 인종주의는 이스라엘에게 큰돈이 되는 사업이다." 나는 저자들이 이것을 또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말하고 있음을 안다. 이스라엘의 안보산업(security industry)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삶과 죽음 위에서 시험되었다—은 역시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동시에 이것이 중동의 호전적인 정착민 국가의 정상적 작동을 한층 더 지탱하는(sustain) 지원 시스템과 그리드의 인프라 가운데 일부가 된다는 점도 지적한다.

 

내가 이 책을 세 번 읽은 과정에는 내가 쓰려고 애쓰는 서로 다른(그러나 언제나 겹쳐지는) 세 개의 모자가 있었다. 연구자, 교사, 연대자다. 나는 아마도 저자들이 바로 이것을 희망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여러 지형에서 정치교육을 위한 하나의 플랫폼이 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내가 활동하는 모든 장소—강의실, 연구, 내가 속한 노동조합과 여러 단체, 그리고 내가 걷고 부모로 살아가고 먹고 생활하는 일상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이 지금 여기 존재하며 그 모든 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내가 찾도록 도와주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팔레스타인과 그 너머에서 비자유(unfreedom)를 형성하는 구조들을 더 깊이 이해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바랐을 테다. 저자들은 이 국면의 필수적인 투쟁들을—제국에 맞선 투쟁, 인종주의에 맞선 투쟁,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서로 얽혀 있는 것으로 보고 그에 대항(encounter)해야 한다는 점을 상세하게 풀어낸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연대를 시스템적으로, 즉 "우리 모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자고 요청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단계, 곧 벌써부터 '그 여파로(an aftermath)'라 불리고 있는 국면으로 들어서는 지금, 먼지를 가라앉히고, 시신들을 지워버리며(erase), 잔해와 피를 우리가 알아보지도 감당하지도 못할 어떤 것으로 휘저어놓는 것들과 함께, 새로운 질서들이 서서히 스며들고(filter) 있다. 저자들은 그럼에도 계속 일하고, 계속 조직하고, 사라져간 이들에게 계속 빛을 비추라고 말한다. 휴전은 관심이 잦아들고 '정상'이 자리 잡는 때이기에, 가장 위험한 순간 중 하나다. 우리가 마주한 현재 국면에 대해 『말살에 저항하기』가 펼쳐 보이는, 아름답고, 가슴 아프며, 언제나 엄밀한 계보 전체를 통해, 저자들이 거듭 상기시키듯이. 팔레스타인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아무것도 정상일 수 없다.

 

 


[1] 옮긴이: 공식 명칭은 파리 의정서(Paris Protocol)다.

[2] 옮긴이: 원문은 "2025년 1월"로 적었으나 시기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필자는 첫 번째 독서를 2025년 9월이라 밝혔고, 세 번째 독서를 서술하면서 2026년 다보스 회의를 언급한다. 두 번째 독서는 2026년 1월이어야 세 차례 독서의 순서가 성립한다. 그래서 번역본에서는 날짜를 수정했다.

[3] 옮긴이: 2025년 가자 휴전 합의에 따라 그어진 이스라엘군 통제선을 가리킨다.

[4] 옮긴이: 영국 정부의 대테러 전략 가운데 하나로, 교사와 의료인 등에게 의심되는 사람들을 신고하도록 의무 지우는 등 사전에 ‘불온한’ 조짐을 보이는 개인들을 식별해 단속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무슬림 공동체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