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되기
: 미래의 아카이브적 상상을 향하여
길 Z. 호흐베르크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원서 정보: Gil Z. Hochberg, Becoming Palestine: Toward an Archival Imagination of the Future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21) https://www.dukeupress.edu/becoming-palestine
Becoming Palestine: Toward an Archival Imagination of the Future
“Becoming Palestine offers a treasure of insights, challenging the reader to keep up with the radically new temporalities and aesthetic forms in which archives are being called upon to carve out a new Palestine, to imagine what its political space might
www.dukeupress.edu
| 목차 서문 감사의 말 서론 미래의/미래를 위한 아카이브적 상상 제1장 오리엔탈리스트 아카이브 재방문하기: 주마나 만나가 재-매핑한 팔레스타인 음악 아카이브 제2장 이스라엘 푸티지 속에서 잃고 찾기: 카말 알자파리의 ‘야파 3부작’과 식민 시각 아카이브의 생산적 위반 제3장 ‘과거와 미래 사이에 유예된’: 라리사 산수르의 과거-미래 시제 속 SF 고고학적 아카이브 제4장 ‘문명의 조상들과 얼굴을 맞대고’: 루안 아부-라흐메와 바셀 압바스의 복제물 아카이브 제5장 저항을 향해 몸짓하기: 파라 살레흐의 몸짓 아카이브 후기 참고문헌 |
*저자 소개:
길 Z. 호흐베르크(Gil Z. Hochberg)는 컬럼비아대학교의 히브리어·시각연구, 비교문학, 중동연구Hebrew and Visual Studies, Comparative Literature, and Middle East Studies 교수이다. 정치와 미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재현과 권력, 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를 연구해왔으며, 특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시온주의를 문학과 영화, 비디오아트,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문화적·예술적 실천을 통해 탐구한다. 초기에는 히브리어·아랍어·프랑스어권의 식민주의·탈식민주의 문학에 주로 천착했으나, 이후 시각문화와 예술로 연구영역을 넓혔으며, 퀴어 정치, 기억과 아카이브, 인종과 종교, 젠더와 성적 소수자들의 반식민 저항 역시 주요 연구주제로 다루어왔다. 주요 저서로 유대인과 아랍인을 서로 독립되고 배타적인 정체성으로 구분하는 ‘분리주의적 상상’을 비판하고 현대 유대·아랍 문학에서 두 정체성이 서로의 내부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분석한 『분할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아랍인, 그리고 분리주의적 상상의 한계』(In Spite of Partition: Jews, Arabs, and the Limits of Separatist Imagination, 2007),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가시성·감시·목격 그리고 ‘시각적 권리’의 불균등한 배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예술가들이 지배적인 재현방식을 어떻게 교란하는지를 살핀 『시각적 점령들: 분쟁 지역의 폭력과 가시성』(Visual Occupations: Violence and Visibility in a Conflict Zone, 2015), 팔레스타인 예술가·영화감독·무용가·활동가들의 작업을 통해 아카이브를 과거의 숨겨진 진실을 회수하는 저장소가 아니라 식민주의적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난 미래를 상상하는 장소로 새롭게 사유하는Becoming Palestine: Toward an Archival Imagination of the Future(2021)가 있다. 호흐베르크는 또한 2010년 『GLQ』 특별호 「퀴어 정치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편집하는 등 퀴어 정치와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2026년에 출간한 회고록 『나의 아버지, 메시아』(My Father, the Messiah)에서는 통계학자로 활동하다 이스라엘로 돌아가 자신이 메시아라고 확신하게 된 아버지와의 관계를 편지를 비롯한 개인 기록들을 통해 되짚으며, 친밀성과 상실, 정신질환, 비규범적 가족, 퀴어 정체성, 유대교와 시온주의가 개인과 가족의 삶 속에서 어떻게 얽히는지를 성찰한다. 현재는 <기독교 시온주의: 세계 질서의 장기 형성>(Christian Zionism: The Long Making of a World Order)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간략히 이 연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전 세계 시온주의자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이다. 이는 과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현상에 대한 기존의 학술적·대중적 서술 대부분이 여전히 시온주의를 오직 유대교하고만 연관 짓고 있다. 이 연구에서 호흐베르크는 시온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온주의를 21세기에 이르러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 동아시아, 유럽,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세계적인 기독교 프로젝트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참고: 호흐베르크의 홈페이지: https://gilhochberg.com/
Gil Z. Hochberg — Scholar, Author, and Prof. of Comparative Literature
gilhochberg.com
서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언제나 팔레스타인인-되기의 과정에 있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소피아 아제브Sophia Azeb, 「우리가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누구일 것인가? (Who Will We Be When We Are Free?)」[1]
『팔레스타인-되기』는 미래의, 그리고 미래를 위한 아카이브적 상상archival imagination에 관한 책이다. 팔레스타인과 아카이브들에 관해 쓴 많은 글이 있지만, 아카이브를 향한 천착investment은 과거 지향적이었다. 곧 과거(또는 과거 이전의 과거)로 통하는 관문을 열어 ‘증거proof’를 발견하거나, 현재를 치유하는 데 쓸 ‘것the stuff’을 되찾으려는(또는 적어도 정당한 배상을 시작하기 위해 상실의 장소들을 식별하려는) 탐색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나크바(대재앙)가 일어났음을 입증하고 잔혹행위의 세부사항을 제시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찾는다(이는 베니 모리스Benny Morris, 일란 파페Ilan Pappé 등이 수행해온 ‘신역사학파New Historians’의 탐구 노선이다).[2] 다른 이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아카이브 자료archival material를 약탈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카이브로 눈을 돌린다. 그들은 탐정처럼 훔쳐간 물건들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의 여러 아카이브를 샅샅이 뒤진다.[3] 또 자신들만의 대안적 아카이브를 창조하여, 과거에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함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던—또는 잠재적으로 그렇게 살 수도 있었던—더 나은 시기와 선택지들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려는 이들도 있다. 나는 이 마지막 유형의 아카이브 작업을 ‘그 순간 이전의 순간’을 찾는 일이라고 부른다.[4] 이를 비롯한 여러 작업은 중요한 아카이브적 시도들efforts이다.[5] 그러나 나는 아카이브가 알려진 과거들과 알려지지 않은 과거들, 현행적actual 과거들과 잠재적potential 과거들 모두로 통하는 관문으로 남아 있는 한, 발견의 감각sensation이 금세 희미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한 개입의 정치적 영향력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팔레스타인-되기』에서 아카이브로의 회귀는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로 더 향한다.
이 책은 역사적 지식의 원천으로서 아카이브에는 구원적인 것이나 약속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본다. 더 이상 찾아내거나 입증할 것은 없다. 비밀들은 폭로되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카이브 시도들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정치적 변화를 거의 가져오지 못하며 미래 잠재성의 새로운 배치들configurations을 거의 혹은 전혀 만들어내지 못한다. 역사학자 에프라임 카르쉬Efraim Karsh는 신역사학파의 작업을 검토하면서 “국가 문서들이 공개된 뒤에도 우리의 이해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충격적이다”라고 썼다.[6] 카르쉬는 아카이브에서 나온 발견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새로운 것,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고 주장할 뿐이다.
역사학자들은 아카이브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며, 우리 모두는 진실을 드러내고 확증한다는 아카이브의 약속에 익숙해져 있다. 그 생각, 그 착각은 이렇다. 어떤 기록(문서 한 장이나 아마 몇 장의 사진)만 찾아내면, 우리는 비로소 진실(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을 알게 되고 마침내 진상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해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이며,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에 관한 아카이브적 지식archival knowledge이 변혁적transformative일 수 있다고 믿는다. 『팔레스타인-되기』는 아카이브의 약속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훨씬 덜 낙관적으로 본다. 나는 다른 역사적 사례에서 아카이브적 발견들archival findings이 정의를 실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반화하는 것은 삼가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경우 (아카이브적 발견들에 제한적인 역사적 방식manner으로 접근하는 한, 다시 말해 아카이브를 과거로 통하는 문으로 간주하는 한) 그 발견들이 현재와 미래를 형성하는 데 거의 혹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상당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아카이브적 정보archival information에 포화되어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추방과 폐허화를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적 사실들은 모두 알려져 있고, 기록되어 있으며, 공표되어 있다. 이스라엘 국가 아카이브가 1980년대에(혹은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공개된 이래 그곳에서 찾아낼 비밀은 더 이상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나크바에 수반된 잔혹행위의 전 범위를 문서로 기록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폭로는 윤리적·정치적 변화를 거의 가져오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이스라엘과 그 동맹들이 부인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들’에 대한 부인이 아니다(따라서 추가적인 아카이브 폭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의 도덕적·윤리적·정치적 함의와 중대성을 부인하는 데 있다. 아카이브를 계속해서 역사적 사실, 데이터, 정보의 원천으로 보는 역사적 방법론으로는, 아카이브가 지닌 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아카이브에 대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해진다. 이제는 아카이브가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며, 아카이브의 비밀은 대개 공공연한 비밀이고 따라서 사실상 비밀이라고 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깨달을 때다. 이를테면 베니 모리스가 이스라엘의 국가 및 군사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자료에 전적으로 근거하여 나크바의 참상에 관해 쓴 획기적인 저서를 처음 출간한 지[7]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두 차례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가 일어난 이후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조건 아래에서는 추방이 전쟁범죄가 아니다. 나는 1948년의 추방이 전쟁범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 손을 더럽혀야 한다. … 당신을 죽이려는 사회는 당신으로 하여금 그 사회를 파괴하도록 강요한다. 파괴하느냐 파괴당하느냐가 선택지라면, 파괴하는 편이 낫다. … 역사에는 인종청소를 정당화하는 상황들이 있다. 나는 이 용어가 21세기의 담론에서는 완전히 부정적인 용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인종청소와 제노사이드—당신의 민족your people을 절멸시키는 것—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인종청소를 택한다prefer.[8]
아카이브적 발견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유죄guilt를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인종청소라는 범죄조차 거리낌 없이 정당화하는, 이미 주어진 ‘우리 대(對) 그들’의 다윈주의적 이데올로기(이를 메타-아카이브라 부르자)를 통해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읽힐 때면, 그것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쉽게 잃는다.
이러한 윤리적 붕괴는 내가 ‘아카이브 피로archive fatigue’라고 부르는 것, 곧 아카이브에서 발견된 것은 새롭다는 주장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래 이 폭력과 인종청소를 증언해왔다. 요컨대 진정한 돌파구가 있었던 적은 없으며, 정말로 ‘새로운’ 것이 드러난 적도 없다. 아카이브가 ‘드러낸’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미 알고 있던 것, 그리고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도 알고 있었지만 부인하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 맥락에서, 그리고 어쩌면 다른 많은 맥락에서도, 아카이브에서 나온 발견들은 새로운 발견이기보다 이미 알려진 역사적 정보를 거듭해서 확증하는 데 더 가깝다. 같은 정보와 같은 사실을 거듭 발견하고, 폭로하고, 공유하는 일—같은 잔혹행위들, 같은 수치들(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공공연한 비밀들을 똑같이 다시 드러내는 일—은 사람을 무감각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카이브 피로에 맞서고 아카이브가 실제로 중요성을 갖게 하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발전시켜야 한다—상상, 미래 비전, 유희playfulness, 창의성, 사변speculation, 그리고 사이디야 하트만Saidiya Hartman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화 지어내기fabulation에 기초하는 접근법이다.[9]
내가 이 책 전반에서 다루는 예술작품들에서 발견하는 아카이브적 상상은 더 이상 과거에 행해진 일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거나, 상실을 기록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증언하는 데 관한 것이 아니다. 이 아카이브적 상상은 현재 속에서 미래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아카이브의 시간성temporality을 뒤집는다upturn. 현재 자체를 하나의 아카이브로 읽을 때, 요점은 과거의 흔적들을 찾으려고 뒤를 돌아보는 데만 있거나 주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중요하게는 미래의 흔적들을 “도래할 약속으로서가 아니라 정착민 식민주의적 현재 안에 내재하는 것으로서” 찾는 데 있다.[10]
나는 이처럼 미래지향적인 아카이브적 상상이 많은 동시대 팔레스타인 예술 프로젝트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이 아카이브적 상상은 두 가지 사실을 인식할 것을 강조한다. 역사적 팔레스타인은 이미 파괴되었다는 것. 이것이 미래에 제기될 시정repair·귀환·변화의 요구들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발명되고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말 그대로,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빚지고 있는 사실적factual 정보의 역사적 원천으로서 아카이브가 부과하는 한계들을 넘어서서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술작품들에서는 기록하기와 증언하기가, 다르게 상상하기 위해 현재를 하나의 아카이브로 대하려는 유인으로 대체된다. 더 넓은 의미에서 나는 이러한 아카이브적 상상이, 많은 팔레스타인 예술가와 작가들이 아카이브를 향한 역사적 천착(사실을 찾고, 잔혹행위를 기록하는 일)에서 벗어나 더 실험적인 접근으로 이동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접근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요청했던 “서술할 권한permission to narrate”[11]을 따르던 이전의 표현 방식에서, “서사를 거부할 권한permission to refuse narrative”으로 묘사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적 표현과 정치적 개입 양식으로의 전환을 반영한다. 이러한 서사의 거부는 대체로 익숙한 담론적 프레임들(예컨대 “국민the nation”, “인민the people”)과 미래가 동어반복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기원·상실·회복의 계보적 서사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혁명의 목적론(상실·귀환·회복)에 대한 미학적 응답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한 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이유들이 있다.[12]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인터뷰한 예술가들 대부분은 국민적 정치national politics에 불편함을 표했다. 몇몇은 심지어 “국민적 프로젝트의 붕괴”를 말하면서, 미래를 과거와 연결하고 혁명을 1948년의 단절 이전 시점으로 물러나게 하는 일과 연결하는, 향수 어린nostalgic 심지어 낭만적인romantic 서사의 프레임들을 암시하는 미학적 표현 양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새로운 경향 또는 미학적 어법의 또 다른 측면은 초기 표현 양식의 “인가permission”라는 측면에서 벗어나는 것과 관련된다. 내가 이 책에서 논의하는 작품들은, 젊은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의 다른 많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의 사정을 세상에 알릴 필요에 예전보다는 관심을 덜 기울인다(그 작업은 이미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내거나, 인정받아서 기존 서사 형식들 속으로 옮겨지는 데에도 관심을 덜 두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민이라는 형식에 대해 그러하다.[13]
이 새로운 아카이브적 상상은 숨겨진 순간들을 발굴하려는 제국적 욕망(그처럼 숨겨진 것들이나 역사들은 없고, 오직 공공연한 비밀들만 있을 뿐이다)을 따라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를 과거와 동일시하는 것 자체에 도전함으로써 접근한다. 과거의 수호자로 가정된 아카이브의 역할은, 아카이브를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수호자로서 이해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내가 예술작품들과 예술적 상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더 통상적이고 권위 있는 역사적 관여들engagements이 행사하는 독점과 권력power에 맞서, 실험적이고 유희적인playful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활성화하는 데 깃든 비판적 잠재력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아카이브를 예술적으로 활성화하는 일은, 그 밖에도 여러 일을 하지만, 역사적 관여들이 과거와 현재, 사실과 상상을 분리하고 미래를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에 대한 대안을 제공한다. 예술은, 사고의 구조이자 지식 생산의 양식으로서 아카이브라는 형상에 예술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우리가 (1) 역사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을 부수고 예측되지 않은 미래의 배치들을 열어내도록, (2) 현재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확장해 현재는 언제나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도록 돕는 데 특히 생산적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되기』는, 1931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처음으로 제기한 ‘좌파 멜랑콜리’ 비판을 따라서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이 오늘날 좌파가 몰락한 주된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에서 벗어나자는 요청에 합류한다. “그것은 자신이 결실을 맺을 잠재력potential fruitfulness보다 그 불가능성impossibility에 더 애착을 갖게 된 좌파다 … [그것은] 자신의 죽은 과거의 한 갈래에 대한 멜랑콜리적 애착의 구조에 사로잡혀 있다.”(26)[14] 상처 입은 애착들, 상실, 불가능성에서 벗어나 미래의 잠재성에 천착하는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르게otherwise 상상하는 능력이다. 즉 위험을 감수하고, 익숙한 정치적 범주들(국민-국가, 민족성ethnicity, 토착성nativity 등)로 배열된 미리 규정된predefined 집합체들에 대한 천착을 내려놓으며, 그 대신 미래의/미래를 위한 새롭고 아직은 알아볼 수 없는 집합체들을 택하는in favor of 능력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의 아카이브적 지식 생산의 정치와, 아카이브에 관한 대부분의 이론이 물질적 역사성의 벤야민적 메시아주의 논리를 따르는 일반적 경향 모두에 비판적으로 관여한다. 나는 미래를 위해 아카이브하려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애착과 메시아의 도래에 거는 구원적 희망을 버리고,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되기들becomings을 향하는 더 급진적인 상상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되기들은 알려지지 않았고 불확실하지만, 잠재적으로는 더 정의로울 수 있다. 나는 아카이브의 예술적 활성화들activations에서 그러한 급진적 상상을 발견한다. 그것들을 통해 나는 잠재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사유하도록 아카이브가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의 손아귀에서 해방된 아카이브는 정치적 되기의 한 순간과 연결된 미래지향적인 사회적 힘force과 결합할 수 있다. 우리가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는가”를 찾으려고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닫힌 틀들, 심지어 막다른 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아카이브는 과거의 집합체들, 승리들, 상실들, 잔혹행위들, 성과들을 정체된 방식으로 재절합rearticulation하는 것이 아니라, 되기의 과정으로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팔레스타인-되기』가 제안하는 바에 따르면, 아카이브의 정치적 잠재성은 그 모든 가시적·비가시적 잠재성들을 지닌 현재로 돌아감으로써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원천이 될serve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팔레스타인-되기』는 애정을 쏟은 작업이자,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깊이 헌신한 결과다. 이 책은 문화, 상상, 정치에 관한 책이다. 즉 정치적인 것의 상상적 배치들과 상상의 정치에 관한 책이다. 예술작품들은 나의 주요한 이론적 제보자informants이자 영감의 원천이며, 이는 이전에 출간한 두 책의 토대가 되었던 것과 유사한 정독close reading 방법론을 따른 결과다. 나는 이 책을 거의 완성할 무렵에야 『팔레스타인-되기』가 팔레스타인에 관한 삼부작의 세 번째 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삼부작은 계획하지 않았던 순차적 배열을 따른다. 나의 첫 번째 책 『분할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Partition, 2007)는 과거와, 우리가 역사에서 잃어버린 것(아랍-유대인the Arab-Jew, 곧 ‘우리였던’ 것)에 관한 책이다. 나의 두 번째 책 『시각적 점령들』(Visual Occupations, 2015)은 현재의 정치적 윤곽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팔레스타인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는 시각 정치를 탐구한다. 『팔레스타인-되기』에서 나는 시선을 미래로 옮긴다. 이 책은 있을 수 있는 미래, 즉 우리가 먼저 상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미래에 관한 책이다.

[1] Sophia Azeb, “Who Will We Be When We Are Free? On Palestine and Futurity,” The Funambulist, no. 24, “Futurisms” (July–August 2019): 22–27.
[2] 신역사학파(그중에는 베리 모리스Benny Morris, 일란 파페Ilan Pappé, 아비 슐라임Avi Shlaim이 있다)는 이스라엘 아카이브에 이전까지 숨겨져 있던 1948년 전쟁과 나크바에 관한 사실들을 자신들이 밝혀냈다고 주장해왔다. 앞선 역사가들은 1980년대에 이용 가능해진 새로이 기밀 해제된 방대한 문서들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들이 실제로 얼마나 새로운지 의문을 제기한 비판자들은 언제나 있었다. 특히 베니 모리스Benny Morris의 “폭로”를 논평하면서 에프라임 카르쉬Efraim Karsh는 밝혀진 사실들(추방, 폭력)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들의 새로움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 [이스라엘군에 대한 비난]은 욘Jon과 데이비드 킴체David Kimche의 Both Sides of the Hill, 로니 가베이Rony Gabbay의 A Political Study of the Arab-Israeli Conflict, 나다브 사프란Nadav Safran의 From War to War 같은 저작들에서 수십 년 전에 이미 알려졌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숨겨진 비밀 정보의 “원천”으로서 아카이브가 제공한다고 여겨지는 새로움이다. 다음을 참고하라. Efraim Karsh, Rethinking the Middle East (London: Frank Cass, 2003), 175.
[3] 기시 아미트Gish Amit은 다음 글들에서 팔레스타인과 미즈라히의 유물과 도서관 전체가 약탈된 역사를 기록한다. “Salvage or Plunder: Israel’s ‘Collection’ of Private Palestinian Libraries in West Jerusalem,” Journal of Palestinian Studies 40, no. 4 (2011): 6–23; “The Destruction of Palestinian Libraries,” [히브리어] Mita’am: A Review of Literature and Radical Thought 12 (2007): 41–52; “Ownerless Objects? The Story of the Books Palestinians Left Behind in 1948,” Jerusalem Quarterly 33 (2008): 7–20. 로나 세라Rona Sela는 이스라엘 당국이 분실 또는 실종되었다고 선언하면서도 이스라엘 아카이브 안에 봉인해둔 팔레스타인 영화와 그 밖의 시각 아카이브 자료를 식별하고 찾아내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Sela, “The Genealogy of Colonial Plunder and Erasure—Israel’s Control over Palestinian Archives,” Social Semiotics 28, no. 2 (2018): 201–229 을 참고하라. Sela는 약탈된 영화와 사진을 원래의 팔레스타인 소유자들에게까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Looted and Hidden—Palestinian Archives in Israel (2017, 46분)»도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에밀리 자시르Emily Jacir의 예술적 노력, 특히 기시 아미트의 연구에 기초한 2010–2012년 작업 “ex libris”도 중요하다. 아밋의 발견을 바탕으로 자시르는 약탈된 팔레스타인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 예루살렘 이스라엘 국립도서관(ha-sifirya ha-leumit)을 여러 차례 방문해 휴대전화로 책들을 촬영했다. 이 이미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역사상 가장 큰 약탈 도서 재분배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독일 카셀의 오펜바흐 기록보관소Offenbach Archival Depot에서 열린 «dOCUMNETA 13» 기간에 처음 전시되었다. 따라서 이 전시는 팔레스타인 책들을 원소유자들에게 유사하게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Eva Sharrer, “Emily Jacir: ex libris,” Nafas, Universes in Universe, 2012, accessed April 25, 2020, https://universes.art/en/nafas/articles/2012/emily-jacir-documenta 를 참고하라.
[4] 아리엘라 아줄레이Ariella Azoulay는 아카이브 자료가 이해되는 정치적·시각적 조건을 바꾸고 대안적 역사 논리를 촉진하려는 시도로 여러 아카이브를 만들어왔다. 그 가운데에는 사진 전시 «From Palestine to Israel: A Photographic Record of Destruction and State Formation, 1947–1950 (London: Pluto, 2011)», «Constituent Violence 1947–1950 (Tel Aviv: Resling, 2009)», 그리고 2007년 6월 텔아비브 Minshar Art Gallery에서 열린 «Act of State: A Photographed History of the Occupation 1967–2007»이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지배적인 아카이브 조건에서 벗어나려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아카이브는 그녀의 영화 «Civil Alliances»다. 아줄레이는 이 영화를 만든 동기를 설명하면서, “그 시민적 동맹들을 기록하는 것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공유하던 세계가 거의 되돌릴 수 없게 두 쪽으로 갈라지기 전의 영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다”라고 말한다. Ariella Azoulay, “Potential History: Thinking through Violence,” Critical Inquiry 39, no. 3 (2013): 554를 참고하라. 이 영점(Ground Zero)이 내가 “순간 이전의 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5] 신역사학파가 1980년대에 이전까지 폐쇄되어 있던 이스라엘 군사·정부 아카이브를 연구했을 때, 그들은 1948년 전쟁에 관한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 서사에 급진적으로 도전했다. 이 학자들은 이전에는 자기들의 “자유의지”로 “도망쳤다”고 서술되던 팔레스타인인들이 강제 추방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스라엘을 범죄화하는 이러한 발견과 다른 발견들은 1990년대 내내 이스라엘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베니 모리스Benny Morris의 Birth of the Palestinian Refugee Problem, 1947–1949 (1987), 그리고 Ilan Pappé, 톰 세게브Tom Segev, 힐렐 코헨Hillel Cohen, 이디트 제르탈Idit Zertal 등의 후속 저작들은 나크바를 가시화하고 이스라엘의 공식적이고 왜곡된 서사를 뒤집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스라엘 아카이브에 접근하기가 훨씬 어려운 팔레스타인 학자들 역시 아카이브 연구를 통해 나크바를 계속 폭로하고 기록해왔다. 이와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역사가 살림 타마리Salim Tamari, 아델 만나Adel Manna, 라시드 칼리디Rashid Khalidi가 있다. 나크바에 관한 증거와 세부사항을 찾아 이스라엘 아카이브와 씨름해온 학자들 외에도, 대안적 역사 문서화의 한 형식으로 구술증언을 수집하는 데 주로 기초하여 대안적이고 유익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중요한 생성적generative 프로젝트들이 있다. 그 가운데 나는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교(AUB)의 “Palestinian Oral History Archive (POHA)”(https://www.aub.edu.lb/ifi/Pages/poha.aspx)를 들고 싶다. 도르 구에즈Dor Guez의 The Christian Palestinian Archive도 또 하나의 흥미로운 아카이브 소스로, 하드드라이브에 저장된 역사 이미지들의 디지털 스캔으로 이루어져 있다. https://www.visibleproject.org/blog/project/the-christian-palestinian-archive/ 을 참고하라.
[6] Efraim Karsh, “Debating Israel’s History,” Middle East Quarterly 3, no. 2 (1996): 19.
[7] Benny Morris, The Birth of the Palestinian Refugee Problem, 1947–1949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8] 강조는 저자가 표시하였다. Ari Shavit, “Survival of the Fittest: Ari Shavit Interviews Benny Morris,” Ha’aretz, January 8, 2004. “파괴하라” 아니면 “파괴당하라”라는 모리스의 설명은, 그가 “죽이려 한다”고 비난하는 아랍인들이 제노사이드를 저지를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성장 중인 정착민 식민주의 운동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9] 사이디야 하트만은 대서양 노예무역의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자신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비판적 우화 지어내기critical fabul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나는 사건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권위를 인정받은 설명을 밀어내며, 일어났을 수도 있는 무언가, 말해졌을 수도 있는 무언가, 행해졌을 수도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고자 했다. ‘무엇이 언제 일어났는가’를 위기에 빠뜨리고, ‘출처들의 투명성’을 역사의 허구들로 이용함으로써, 나는 (대서양 노예무역에서뿐 아니라 역사학이라는 분과학문에서도) 폐기처분 가능한 삶들의 생산을 가시화하고, ‘대상의 저항’을 묘사하고자 했다.” “Venus in Two Acts,” Small Axe: A Caribbean Journal of Criticism 12, no. 2 (2008): 11. 보다 최근에는 하트만의 뒤를 이어 타비아 니옹고Tavia Nyong’o가 저항을 서술하는 원천으로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 그리고 허구와 역사 사이의 긴장과 양가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화 지어내기를 동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Tavia Nyong’o, Afro-Fabulations: The Queer Drama of Black Life (New York: NYU Press, 2019)를 참고하라. [옮긴이: 사이디야 하트만의 “Venus in Two Acts” 한국어 번역은 다음을 참고하라. 두 행위의 비너스(1/2) & (2/2), 정규식 옮김, 웹진 인-무브, https://en-movement.net/436 & https://en-movement.net/437. 그리고 하트만의 비판적 우화 지어내기 개념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다음 참고하라. “[글로벌사우스] 사이디야 하트먼의 ‘비판적 패불레이션(critical fabulation)’ : 아카이브 윤리”, 아이테르, https://aither.kr/118/?bmode=view&idx=169386955 ]
[10] Kiven Strohm, “The Sensible Life of Return: Collaborative Experiments on Art and Anthropology in Palestine/Israel,” American Anthropologist 121, no. 1 (2019): 249.
[11] Edward Said, “Permission to Narrate,” Journal of Palestine Studies 13, no. 3 (1984): 27–48.
[12] Jumana Manna, “As Told to Lara Atallah,” Artforum, September 8, 2015, https://www.artforum.com/interviews/jumana-manna-speaks-about-her-latest-feature-length-film-54890.
[13] 이 문제에 관해 나와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눠준 나세르 아부라흐메Nasser Abourahme에게 감사를 표한다. 팔레스타인 문학을 성찰하면서 아부라흐메(그의 할머니 살마 카드라 자이유시Salma Khadra Jayyusi는 1992년 Anthology of Modern Palestinian Literature—최초는 아니더라도 최초의 근대 팔레스타인 문학 앤솔러지 가운데 하나—를 편집하고 서문을 썼다)는 “사이드Said 같은 비평가 대부분은 전성기의 팔레스타인 문학을 장르나 문체를 넘어 서사에 대한 의지 a will to narrative에 의해 압도적으로 규정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인정받을 때까지 이야기를 거듭해서 말하려는 일종의 충동 말이다”라고 지적한다(이메일 교환, 2020년 2월 29일). 1948년 이후 최근까지의 팔레스타인 예술에 대해서도 분명 유사한 주장을 할 수 있다. 저명한 예술가이자 미술비평가 사미아 할라비Samia Halaby가 대표 저서 Liberation Art of Palestine: Palestinian Painting and Sculpture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New York: H.T.T.B. Publications, 2001)에서 지적하듯,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예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묵살당하고muted 침묵당했던silenced 한 민족의 역사를 보일 수 있게,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문학과 예술에서 다큐멘터리와 증언하기에서 벗어나 실험적이고 수행적인 것으로 이동한 변화를 추적하는 것에 관련한 논의로는 Ihab Saloul, “‘Performative Narrativity’: Palestinian Identity and the Performance of Catastrophe,” Cultural Analysis 7 (2008): 5–39; Shir Alon, “No One to See Here: Genres of Neutralization and the Ongoing Nakba,” Arab Studies Journal 27, no. 1 (2019): 91–117; Esmail Nashif, “Mawt al-Nas” (Death of the People), [아랍어] Majallat al-Dirasat al-Filastiniyya 96 (2013): 96–117을 참고하라.
[14] Wendy Brown, “Resisting Left Melancholy,” Boundary 2 26, no. 3 (199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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