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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와 정동의 지정학

by 인-무브 2026. 10. 9.

가자와 정동의 지정학

 

누리 가나 (Nouri Gana)

번역: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원문: https://www.parapraxismagazine.com/articles/gaza-and-the-geopolitics-of-affect

 

Gaza and the Geopolitics of Affect — Parapraxis

Nouri gana

www.parapraxismagazine.com

 

 

 

카우타르 벤 하니아(Kaouther Ben Hania)의 《힌드의 목소리》(The Voice of Hind Rajab)는 2026년 제98회 아카데미상에서 후보 지명(nod)[1]을 받았다. 그러나 끝내 인정(acknowledgment)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갖춰야 할 존엄을 얻지는 못했다. 이 구별은 단지 수사의 문제가 아니다. 끄덕임(nod)은 무언가가 보였고, 눈에 띄었으며, 어쩌면 잠시 느껴지기까지 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표시한다. 하지만 [끄덕임은] 아무런 귀결도 낳지 않는다. 끄덕임은 스쳐 지나가는 알아챔의 몸짓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요구(claim)를 일축하려는 충동을 품고 있어, 겉으로만 존중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바로 그 요구를 해결된 것으로 여기며 털어내버린다. 반면, 인정은 목격자를 목격된 대상에 묶어 둔다. 인정한다는 것은 들은 바가 하나의 요구가 되어 그에 대해 응답하는 게 의무로 지워지며, 현 상태의 일상적 흐름을 중단시키면서 그 안에 시정의 가능성을 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끄덕임의 정치는 이미 한 해 전에 연출된 적이 있다. 2025년 《노 어더 랜드》(No Other Land)는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지만 끝내 미국 배급사를 구하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스물네 나라에서는 어렵지 않게 배급사를 찾았으나, 미국의 주요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업체들은 이 영화를 외면했다. 결국 미국 극장 개봉은 제작진이 직접 배급해야 했다. 오스카 시상식 직후, 이 영화의 팔레스타인인 공동감독 함단 발랄(Hamdan Ballal)은 점령지 서안지구의 마사페르 야타에서 정착민들에게 폭행당한 뒤 이스라엘군에 구금되었다. 아카데미는 신중하게 시간을 끌었고, 짐짓 경건한 척하며 말끔히 다듬었으며, 끝내 핵심을 비껴간 우려 섞인 성명을 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그의 이름조차 성명서에 밝히지 않았다. 아카데미는 이를 질책하는 서한에 회원 수백 명이 서명한 뒤에야 사과했다.

 

오스카 트로피는 실제로 수여되었든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기만 했든 관계없이, 끄덕임의 정치를 무대에 올린다. 앎을 시인하면서도 그 밑바탕에는 인정의 부정(denial)이 깔려있는 정치다.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은 이 구별을 잘 포착했다. 그가 보기에 인정이 단순한 앎을 넘어서는 까닭은 “그 앎을 근거로 내가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를 드러내기를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인정 없는 앎은 “한낱 무지, 무언가의 부재, 하나의 공백”이 아니라 “무언가의 현존, 혼란, 무관심, 무정함, 탈진, 냉담함이다. 영적 공허는 공백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끄덕임이란 바로 인정을 가장한 앎이다. 둘 사이에는 심리적·정동적이면서 동시에 지정학적인 간극이 놓여 있다.

 

벤 하니아의 영화 한가운데에는 목소리, 곧 공포와 관료적 지연, 조여 오는 위험 속에서 몇 분이고 이어지는 한 하이의 구조 요청이 있다. 그 순간에 이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들은 이들이 부족했던 적은 없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널리 유통되었고, 여러 플랫폼에서 되풀이 재생되었으며, 맥락을 넘나들며 번역되었고, 가까우면서도 먼 고통의 전 지구적 아카이브 속으로 흡수되었다. 긴급 구조 전화는 아마도 아직 응답책임(answerability)을 전제하는 마지막 발화 장르일 것이다. 구조 요청을 받는 접수원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은 위급한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든 그 목소리에 응답(response)할 의무를 진다는 확신 위에 세워진 인프라 전체를 호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힌드 라잡(Hind Rajab)의 전화는 그저 고통이 들리게 된 한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말 건넴의 장면(scene of address)이다. 그 전화를 듣는다는 것은, 아무리 잠깐이고 아무리 내키지 않더라도, 응답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힌드의 전화가 흘러들어간 오늘날의 미디어장은 응답을 의무로 지우지 않은 채 듣기만 증식하도록 짜여 있다. 미디어장은 증폭하고, 되풀이 재생하고, 기념하고, 유통시킬 수 있다. 그러나 느낌을 행동에 묶는 일만은 좀처럼 해내지 못하거나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사이디야 하트먼(Saidiya Hartman)은 『예속의 장면들』(Scenes of Subjection)을 시작하면서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의 자서전 『서사』(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손세호 옮김,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에 나오는 헤스터 이모의 매질 장면을 되풀이해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 자체가 바로 이 역학에 대한 경고였다. 고통의 장면을 으레 되풀이하는 일은 그 장면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 하트먼이 보기에 그런 장면들은 분개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너무 익숙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를 고통에 무디게 만들고 목격자와 구경꾼 사이의 불확실한 경계를 허물 위험이 있다. 힌드의 녹음이 거쳐 온 행로가 그 우려를 뒷받침한다. 버클리에서는 학생 조직가들이 캠퍼스에서 가장 붐비는 곳 가운데 하나인 세이더 게이트 근처에서 이 녹음을 크게 틀어 놓고 되풀이 재생했다. 행동을 촉발하려고 튼 녹음은 점차 대학의 배경 사운드스케이프에 섞여 들어 수많은 신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2025년 2월 25일,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 리야드 만수르(Riyad Mansour)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같은 녹음을 틀었다. 안보리는 바로 그런 부름에 응답하라고 세워진 기구다. 힌드의 목소리는 회의장을 가득 채우고 공식 기록에 올랐지만, 돌아온 응답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다. 힌드의 전화에 응답하지 못한 바로 그 기구가 훗날 그 전화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의 상영회를 열게 된다. 요점은 학생 조직가들이나 팔레스타인 대사를 탓하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은 되풀이하다 보면 마침내 그 말 건넴이 듣는 이에게 박히리라는 것에 함께 내기(wager)를 걸었다. 요점은 오히려 대학 캠퍼스에서든 유엔 회의장에서든 아무리 날카로운 말 건넴의 장면이라도 순환하는 웅웅거림 속으로 얼마나 빨리 빨려 들어갈 수 있는지를 짚는 데 있다. 아래로부터의 포화와 위로부터의 절차주의 모두가 긴급히 희구하던 바로 그 인정을 대신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인정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 영화는 가자가 세계 속에서 차지하게 된 더 큰 지정학적 형상을 잔혹하리만치 선명하게 압축한다. 가자는 이미지와 소리가 과잉으로 투여되고 목격으로 포화된 공간이지만, 응답이라는 존엄은 끈질기게 거부당하는 공간이다. 가자는 보인다. 들린다. 논의된다. 기록된다. 공유된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응답받지 못한다. 문제는 가자가 비탄과 경악, 분노, 피로를 낳는다는 데만 있지 않다. 이 느낌들이 고르게 순환하지 않고, 지정학적 맥락에 따라 같은 무게나 같은 귀결을 지니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형태의 느낌은 증폭되어 판독 가능한 것이 되지만, 어떤 느낌은 일축되고 억압되고 범죄화되거나 지나친 것, 연출된 것, 선동적인 것, 위협적인 것으로 재부호화된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함께 나누는 감정의 지형이 아니라 권력 격차(power differentials)가 구조화한 차등화된 정동 경제(a differentiated economy of affect)다. 이 경제에서는 어떤 삶은 애도할 만한 삶으로 셈해지고 어떤 삶은 그렇지 못하며, 어떤 상실은 중요하게 여겨지고 어떤 상실은 그렇지 못하며, 어떤 목소리는 요구로 들리고 어떤 목소리는 소음으로만 들린다.

 

돌비 극장을 유령처럼 맴돈 것은 바로 이 침묵과 누락의 폭력이다. 힌드 라잡의 “목소리”는 할리우드의 위신이 울리는 사운드스케이프를 지나가도록 허락받았지만, 이 영화의 팔레스타인인 주연 배우 모타즈 말히스(Motaz Malhees)의 몸은 비자 발급 거부로 시상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이중의 움직임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미학화된 목소리는 동정, 나아가 연민의 대상으로 인지되지만, 감각하고 숨 쉬는 정치적 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잠재적 교란으로 간주되어 미리 억제되고 단죄된다. 후보지명[끄덕임]은 탁월함을 제도적으로 등재하는 일이었다. 절차적이고 자기완결적이며, 내미는 순간 이미 끝나버리는 일이었다. 존엄을 부정한 것은 비자 발급 거부에서 북미 주요 배급사들의 조심스러운 침묵에 이르는 구조적 장벽들이었다. 이 장벽들은 영화를 인간의 증언이 아니라 정치적 부담으로 다루었다.

 

정동의 지정학

 

《힌드의 목소리》를 통해, 정동과 지정학적 정렬이 얽혀 있는 모습이 축소판처럼 무대에 상연된다. 목소리가 들리면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고통이 널리 보이는데도 여전히 구조적으로 응답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들은 그저 윤리적인 물음이 아니다. 느낌 자체가 조직되는 방식에 관한 물음이다. 곧 정동이 어떻게 옮겨 다니고, 어디에서 멈춰 서며, 전 지구적 권력장 안에서 언제 구속력을 갖도록 허용되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정동의 지정학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이 용어는 지난 20여 년 동안 서로 다른 용법과 맥락으로 유통되어 왔고, 흔히 집단 감정을 지역이나 문화, 문명 위에 지도로 그려 넣으려는 시도들과 결부되어 왔다. 이런 시도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도미니크 모이시(Dominique Moïsi)의 『감정의 지정학』(The Geopolitics of Emotion)을 꼽을 수 있다. 모이시는 세계가 여러 정동적 권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본다. 서구의 공포 문화, 아랍과 무슬림 세계의 굴욕 문화, 아시아 일부의 희망 문화가 그것이다. 모이시는 “이프란에서는 굴욕, 뭄바이에서는 희망, 런던에서는 공포”라고 짧은 장면들로 소묘한다.

 

이러한 지도 그리기는 유혹될 정도의 명료함을 제공한다. 몇 안 되는 지배적인 감정 성향을 통해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모이시 스스로도 “인상주의적”이라고 시인한 이 틀이 어느 정도 서술을 늘리는 힘(the descriptive purchase)을 지닌다 해도, 가자의 정동적 장면에는 놀라울 만큼 들어맞지 않는 것이 입증되었다. 여기서 관건은 지역의 경계 안에 묶인 안정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여러 스케일에 걸친 정동의 불균등한 순환과 규제, 승인(recognition)이다.

 

모이시의 도식이 시사하듯, 가자를 그저 굴욕의 장소로 규정하는 것은 아예 틀렸다기보다는 불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복잡한 느낌의 장을 평평한 하나의 층위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가자는 그에 못지않게 슬픔과 멜랑콜리아적 애착의 장소이며, 견딤과 끈기, 분노와 사랑, 돌봄과 냉소, 공포와 희망, 절망과 저항의 장소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정동들이 그 지역에만 붙들려 있지 않고 언제나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 정동들은 전 지구적 미디어 환경을 가로질러 공유되고, 전달되고, 증폭되고, 경합된다. 그리고 그 미디어 환경은 이 정동들을 강화하기도 하고, 침묵시키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지금 이 국면이 드러내는 것은 서로 구별되는 감정 문화들의 지리가 아니라 차등화된 정동 경제다. 느낌은 그저 어떤 문화나 지역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느낌은 제도와 권력관계를 통해 통치되며, 이 제도와 권력관계가 어떤 정동은 판독 가능한 것이 되고 어떤 정동은 위험한 것이 되는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정동의 지정학은 지배적인 감정을 식별하는 일이라기보다, 정동이 어떤 조건에서 정치적으로 작동하게 되는지를 추적하는 일에 가깝다. 비탄은 언제 인식을 강제하고, 언제 억제되는가? 공감은 언제 의무로 전환되는가? 오스카의 후보지명은 어떻게 죄의 고백이 아니라 죄의 부인이 되는가? 이런 물음에 답하려면, 전 세계의 정동 순환을 통치하고, 서로 동떨어진 지리와 사회와 지정학적 정치체들에 걸쳐 정동 지도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비대칭적 구조들을 분석해야 한다.

 

가자는 이러한 비대칭을 유달리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가 들리지 않거나, 보이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제노사이드는 이미지와 증언의 포화를 낳고, 이 이미지와 증언은 전 세계로 유통되며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벤 하니아의 영화와 나란히 축적되어 온 아카이브만 떠올려보아도 그렇다. 알시파 병원 밖에서는 아이들이 즉석 기자회견을 열고 영어로 “우리는 살고 싶어요”라고 호소했다. 비산 오우다(Bisan Owda)는 현장 소식을 전할 때마다 “여기는 가자, 비산입니다. 저는 아직 살아 있어요”라는 후렴 같은 인사로 시작했고, 이 인사는 생존 자체를 연재 뉴스로 만들어버렸다. 리파트 알아리르(Refaat Alareer)가 2011년에 쓴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If I Must Die”)은 그가 공습으로 살해된 뒤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시 속의 흰 연은 그 시가 미리 내다본 바로 그 비탄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대대적으로 유통되었고 저마다 느낌을 불러일으켰지만, 어느 것도 자신이 요청한 응답을 강제하지는 못했다. 가자가 낳는 정동은 맥락이 달라지면 같은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어떤 공간에서는 증폭되고 다른 공간에서는 부인되며, 결정적으로, 자신이 포착하는 바로 그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응답의 형태로 전환되지 못하도록 자주 가로막힌다.

 

그러므로 모이시의 지도 그리기를 넘어서려면 분석의 틀부터 바꾸어야 한다. 어느 지역이 굴욕이나 공포, 희망을 느끼는지 묻는 대신, 정동 자체가 어떻게 차등적으로 허가되고, 제약되고, 포섭되고, 도구화되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다시 말해, 과제는 감정을 세계 위에 지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적 권력들과 정착민 식민주의 체제들, 그리고 이들과 노선을 같이하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정동을 어떻게 지도로 그려내고 관리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곧 이들이 공적으로 느끼고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특정한 통로로 흘려보내고 걸러내며 때로는 아예 차단하거나 범죄화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허용될 수 있는 느낌들

 

끊임없이 생중계되는 제노사이드라면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서든 동정 이상의 것, 역겨움 이상의 무언가를 불러일으켜야 마땅하다. 또 다른 재앙의 폐허 위에서 글을 쓴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그 이상의 무언가에 형이상학적 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인간으로서 인간들 사이에는 연대가 존재하며, 이 연대는 세상의 모든 잘못과 모든 부정의, 특히 내 앞에서 또는 내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질러진 범죄에 대해 각자가 공동으로 책임지게 한다. 그것들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죄가 있다.” 대량살육과 기반시설의 파괴, 민간인을 체계적으로 겨냥한 공격의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면서, 역사적으로 구경꾼들을 전시의 잔혹행위로부터 가려주었던 공간적·시간적 거리는 무너지고 있다. 그와 함께 무지라는 알리바이도 무너진다. 이제 모든 일은 모두의 눈앞에서, 모두가 아는 가운데, 그리고 모두가 드러내는 괴로움이나 묵시적 순응, 혹은 노골적인 공모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포위되고 끊임없이 강제이주되는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이토록 극악한 잔혹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북미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중동 전역에서 가자 주민들과 연대하는 시위와 행동에 가해진 탄압의 규모와 강도다.

 

이스라엘, 미국, 독일 같은 국가들은 정동의 관리를 정책의 문제로 삼아왔다. 이들이 가자 제노사이드에 대한 격분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일을 위협으로 취급하는 것은 바로 정동이 정치적 동원으로 결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시위가 금지되었고, 경찰은 베를린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회의(Palestine Congress)를 회의 도중 해산시켰다. 프랑스에서는 제노사이드 초기부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전면 금지되었다. 영국에서는 시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미국에서는 진압경찰이 농성장을 철거했고, 학생들이 정학·퇴학 처분을 받았으며, 합법적 체류자들은 자신들이 벌인 정치적 옹호 활동의 내용 때문에 구금되고 추방 위협을 받았다. 그사이 신상 공개(doxxing) 트럭들이 시위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내건 채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이처럼 정동의 규제는 위협과 범죄 혐의 부과, 선제적 통제의 한 형태로 작동한다. 그러면서 이견을 억압하는 동시에, 공유된 고통이 연대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는 조건을 차단한다. 이런 식으로 정동의 규제는 현대 국가폭력의 중심적인 양식이 되었다.

 

그 결과 정동은 통치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정동을 그 정치적 귀결로부터 끊어 내려는 시도 속에서, 공적 애도와 장례 행렬, 추모 집회, 깃발 게시는 제한과 감시,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다. 동시에 기쁨의 순간들, 특히 생존이나 재회,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석방과 결부된 기쁨은 정당하지 않거나 위협적인 도발로 프레이밍된다. 기쁨이 의심받는 것은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가 기쁨을 표현하는가에 따라 의심받는다. 인질 석방을 맞이한 이스라엘인의 기쁨은 미국 주류 미디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하며 재회와 안도의 장면으로 방송된다. 반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석방을 맞이한 팔레스타인인의 기쁨은 이스라엘에 의해 금지되고, 이스라엘 안팎에서 그와 노선을 같이하는 공중들에 의해 병리화된다. 풀려난 수감자 가운데 많은 이들이 기소조차 되지 않은 채 구금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여성과 아동도 있었다.

 

비탄을 억누르고 기쁨의 자격을 박탈하는 이 이중의 움직임은 허용 가능한 정동이 구조적으로 경계 지어져 있음을 드러낸다. 곧 어떤 느낌이 나타날 수 있는지,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귀결을 수반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련의 규칙이 존재한다. 팔레스타인인의 정동은 단순히 억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밀하게 관리되고, 분류되고, 위계화된다. 어떤 표현들은 알아볼 수 있는 고통의 각본에 부합하는 한 허용되는 반면, 다른 표현들은 지나치거나 부적절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심지어 그 자체로 반유대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규제는 공식적인 법적 장치를 통해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징적 프레이밍과 미디어 재현을 통해서도 수행된다. 팔레스타인인은 “죽는” 반면 다른 이들은 “살해당하는” 헤드라인의 수동태 문법이 대표적이다. 거리두기용 따옴표(scare quotes)는 팔레스타인인의 증언을 한 발짝 떨어뜨려 놓는다. 그 결과 정동은 표현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판독 가능성의 수준에서도 통치된다. 정동의 의미는 미리 구조화되고, 그 정당성은 미리 판단된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공유지, 곧 소셜 미디어를 갈수록 세게 움켜쥐고 있음에도, 이 규제는 결코 전면적(total)이지는 않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주류의 프레이밍이 차단하는 정동의 온전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였다. 천막의 스토브에서 임시변통의 요리를 만들어 가자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요리사 가운데 한 명이 된 열 살 레나드 아탈라(Renad Attallah), 폐허 속에서 열린 결혼식, 농담과 놀이, 구호와 춤, 가족들이 천막촌을 집으로 만들어가며 강제이주의 삶을 완강하게 일상으로 길들이는 모습이 그렇다. 굳건함, 심지어 기쁨까지 스스로 써 내려간 이 아카이브들은 허용 가능한 정동의 경제에서 벗어나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 역시 규제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제 그것들을 규제하는 것은 편향된 편집자나 비자 담당관이 아니라, 편견에 사로잡힌 소셜 미디어 인프라다. 휴먼라이츠워치와 팔레스타인의 디지털 권리 단체 함레(7amleh, Arab Center for Social Media Advancement)는 메타 플랫폼에서 팔레스타인 콘텐츠가 체계적으로 억압되어온 실태를 기록했다. 게시물은 삭제되고, 계정의 노출은 억제되며, 도달 범위는 소리 없이 옥죄어진다. 기쁨은 정치적으로 의심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에 의해서도 강등된다. 허용 가능한 정동을 집요하게 경계 짓는 일은 전적으로(totally) 무력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일은 뻔뻔스럽게도 코드에 위임되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폭력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그 폭력이 어떻게 포착되고 전달될 수 있는가에서도 제약받는 상황이다. 앞서 확인한 끄덕임과 인정 사이의 간극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정동의 통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팔레스타인의 고통이 널리 인지되면서도 구속력 있는 응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역적 차원에서는 애초에 그러한 응답을 요구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 자체가 자주 차단된다. 목소리는 호소하지만, 그 가청성의 조건은 제약된다. 비탄은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일 은 단속된다. 두 경우 모두 차단되는 것은 정동이 구속력을 갖게 될 가능성, 곧 그것을 마주한 이들로 하여금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 할 가능성이다.

 

따라서 정동의 통치는 더 넓은 지정학적 지형의 결정적인 한 차원을 이룬다. 문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가시지 않는 슬픔에서 스쳐 가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일상적 감정의 표현 자체가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 공동체들의 기본적인 애도 의례조차 정동과 행동 사이에 놓인 폭발성을 띤 문턱으로 취급된다. 이 문턱은 “중동 유일의 민주주의”이자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를 자랑한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상을 떠받치는 서사와 강제적 장치들을 교란하지 못하도록 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식으로 정동을 통치한다는 것은 주체성 자체의 수준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가시화할 수 있는지까지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동의 관리는 점령과 봉쇄의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관리와 분리될 수 없다.

 

정동의 철회

 

이처럼 정착민 식민주의 체제는 마치 느끼는 것 자체에도 허가가 필요하다는 듯 팔레스타인인의 정동 표현을 적극적으로 제한한다. 그 체제와 지정학적 친연성을 맺고 있는 아랍세계 일부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정동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철회된다. 즉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거나 아예 차단된다. 2020년과 2021년에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여러 아랍 국가들—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뒤이어 모로코와 수단—사이에 체결된 정상화 협정들,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은 지정학적 전환뿐 아니라 정동적 전환을 표시하며, 팔레스타인 문제가 오랫동안 이해되어온 동일시의 구조를 재구성한다.

 

내가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말할 때 뜻하는 것은 공감(empathy)과 상당히 다른 것—실은 그 반대에 더 가까운 어떤 것이다. 여기서도 하트먼의 논의는 시사적이다. 하트먼은 구타당하는 노예의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놓음으로써 노예제의 참상을 더 잘 느끼려 했던 백인 노예제 폐지론자 존 랭킨(John Rankin)의 편지들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대체가 지나치게 성공해버리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노예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랭킨은 노예가 된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느끼게 되고, 포로가 된 몸은 관람자 자신의 감각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로 축소된다. 공감은 일시적인 것, 대체해버리는 것, 구경꾼에 머무는 것, 불안정한 것이 된다. 공감은 고통의 장면을 찾아갔다가 제 몸집만 불려서 집으로 돌아온다. 공감은 정확히 타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든다.

내가 여기서 의도하는 동일시는 다른 질서에 속한다. 그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퇴적된 지속적인 리비도적 투여(investment)로서, 공통의 생활세계와 공유된 사회문화적 지형 안에서부터 주체를 구성한다. 다이애나 퍼스(Diana Fuss)의 표현을 빌리면, 동일시는 “타자를 경유하여 자기를 규정하는 우회”이며, 바로 “역사와 문화가 주체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주체는 외부 세계와의 모든 마주침 그 하나하나의 흔적들을 빠짐없이 지녀야 한다.”이다. 수십 년 동안 아랍세계 전역에서 팔레스타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느낌 자체가 인식되고 전달되는 하나의 대의로 기능했다. 즉 정치적 헌신과 도덕적 지향의 집단적 지평으로서, 아랍인들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기본적 책임에서 결코 면제해주지 않는 대의였다. 정당성을 추구하는 정권들이 이 투여를 수사적으로 아무리 자주 이용했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근본적 기대, 즉 팔레스타인의 고통이 팔레스타인의 것이기를 그치지 않으면서도 가까운 것으로, 자신의 것으로 와닿으리라는 기대를 지탱했다. 공감이 고통받는 이의 자리에 목격자를 대신 앉힐 위험이 있다면, 동일시는 둘을 서로에게 묶어 둔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러한 동일시의 구조를 뒤집어 놓았다. 이 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승인을 보류해왔던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또한 직접 교역과 투자, 관광, 기술 협력, 그리고 갈수록 더 명시적인 안보 공조의 길을 열었으며, 미국은 정상화에 동참한 여러 국가에 양자 간 유인책을 제공했다. 아랍에미리트에는 F-35 전투기 접근권을, 모로코에는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미국이 승인하는 것을, 수단에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해주는 것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협정의 가장 급진적인 혁신은 순서에 있었다. 2002년 아랍평화이니셔티브(Arab Peace Initiative)는 정상화를 정의의 종착점으로 삼았다. 점령이 끝나고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된 뒤에야 이스라엘에 대한 승인이 뒤따르는 것이었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 순서를 뒤집었다. 곧 정상화를 먼저,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시행했고, 팔레스타인은 전제조건에서 뒷전의 고려사항으로 격하시켰다.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 대의와 동일시해온 오랜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도, 그것을 다시 협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 역사를 아예 밀어내 버린다. 팔레스타인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의 지역 통합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나타나는 것은 느낌의 재조정이다. 동일시에서 벗어나 관리된 거리로 옮겨가는 전환이며, 여기서는 물려받은 연대의 형태보다 전략적 계산이 앞선다. 이러한 구도에서 가자에 대해 지나치게 강하게 느끼는 것은 과도하거나 재편된 지역 지형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 연대는 정동적 과잉으로 다시 부호화되고, 부정의와 저항의 언어는 부분적으로 안정과 안보의 언어에 자리를 내준다.

 

이러한 변형은 연민의 재분배를 수반한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은 더 넓은 관심사의 장으로 흡수되고, 그곳에서 더는 구속력 있는 요구를 제기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지정학적 전략상의 분리다. 가자는 여전히 보이고, 그 이미지와 목소리는 이전처럼 유통되지만, 가자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정동적 유대는 느슨해진다. 사람들은 보고, 듣고, 심지어 우려를 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거기에 의무가 따르지는 않다.

 

따라서 정상화는 버림을 인정하지 않는 저버림에 다름 아니다. 저버림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상실로 인식하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수치와 대면한다는 뜻일 것이다. 대신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부인(disavowal)이다. 스스로를 포기라고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는 포기다. 프로이트가 일깨우듯, 보통 동일시의 대상을 포기하려면 애도, 즉 총계(reckoning)하고 협상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상화로의 도약은 애도 실천 없는 애도라는, 애도의 일그러진 형태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상실이 계속 자신을 주장하고 있는데도 이미 해결된 것으로 취급된다.[2]

 

그 결과로 하나의 정동 경제가 형성된다. 그 안에서 애착은 충분한 훈습(working through)을 거치지 않은 채 끊어지고, 과거의 요구들은 대담하고 실용적인 미래라는 이름으로 괄호 쳐진다. 따라서 아브라함 협정은 정치적 재정렬뿐 아니라 정동의 재조직을 나타낸다. 동일시에서 분리로, 의무에서 재량으로, 인정에서 무력화로의 전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협정은 앞서 추적한 전 지구적 역학을 다른 조성으로 되비춘다. 정동은 자신이 닿은 이들을 구속하지 못한 채 증식하고, 인정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회피된다.

 

멜랑콜리 내기

 

가해자와의 정상화로 뛰어드는 일에서 당혹스러운 것은 애도를 단락(short-circuiting)시켜버린다는 점만이 아니라, 그 일을 치르는 도덕적 가벼움이다. 아브라함 협정의 서명국들이나 이들과 노선을 같이하는 공중들에게서는 도덕적 동요도 멜랑콜리아적 부적응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이라면 역사적·지정학적 동일시가 이토록 급진적으로 재정렬될 때, 설령 그것이 곧바로 자기기만적 합리화를 통해 수습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도덕적 죄책감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팔레스타인 대의의 상실이 상실로서 인정되었다면, 그것은 협정 이후 우리가 목격한 그 어떤 것보다 더 깊은 정신적 동요를 요구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고전적 설명에서 애도는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분리(detachment)해내려는 투쟁이며, 그 과정은 고비마다 저항에 부딪힌다. 프로이트가 일깨우듯, “사람들은 리비도적 위치(libidinal position)를 결코 기꺼이 포기하지 않으며, 실제로 대체물이 이미 손짓하고 있을 때조차 그렇다”(SE 14:244).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멜랑콜리아는 애도에서 벗어난 병리적 일탈이라기보다 애도의 기저 조건으로 나타난다. 주체들이 자신의 애착을 “결코 기꺼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리비도적 투여의 지속은 분리 작업에 앞선다. 「애도와 멜랑콜리아」(“Mourning and Melancholia”, 1917)에서 멜랑콜리아는 처음에는 도덕적 자기비난과 저하된 자기존중감을 특징으로 하는 병리적 상태로 등장하지만, 『자아와 이드』(The Ego and the Id, 1923)에서 프로이트는 자아가 “포기된 대상 집중들(object-cathexes)의 침전물”이며, 상실한 대상과의 동일시는 일탈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신 작용이라고 주장한다(SE 19:29).

 

따라서 멜랑콜리아는 상실을 내면화하고 지속시키는 방식일 뿐 아니라 주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면화는 끊임없는 자기검토를 낳지만, 그럼에도 멜랑콜리아적 주체에게 “진실을 더 예리하게 보는 눈”을 부여한다(SE 14:246). 멜랑콜리아적 주체가 안으로 향하는 것은 정상화된 주체라면 그와 달리 부인했을 것을 드러낸다. 이러한 비판적 잠재력은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 결정적이다. 상실이 정착민 식민주의적 수탈에 의해 초래될 때, “앞으로 나아간다(move on)” 것은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의 조건에 굴복하는 것이다. 멜랑콜리아는 상실을 정상화하거나 강제로 빼앗긴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부정의를 직시하고 시정하라는 윤리적·정치적 요구다. 이러한 멜랑콜리적 내기는 1948년 나크바 이후 아랍세계가 팔레스타인과 동일시해온 방식을 구조화해왔으며, 상실을 탈식민 비판의 장소이자 놓아버리거나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장소로 지속시켜왔다.[3]

 

모든 정동적 성향 가운데 멜랑콜리아는 특히 윤리적 무게와 도덕적 명료함을 지닐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상실한 대상에 대한 충실함은 그 대상이 산 자들에게 제기하는 요구에 대한 충실함이기도 하다. 멜랑콜리아적 주체는 스스로를(herself) 응답책임으로부터 놓아주기를 거부한다. 상실을 개방해 둠으로써 자신을 그 요구에 계속 노출된 채로 남겨둔다. 카벨의 표현을 빌리면, 인정의 실패는 결코 공백도 단순한 부재도 아니며, 무언가의 현존, 곧 무관심, 냉담함이다. 죄책감은 바로 그 현존이 내부에서 감지된 것이다. 보류된 응답이 남긴, 느껴지는 잔여이자, 요구를 듣고도 응답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 요구가 남기는 흔적이다. 조지프 위니카-라이든(Joseph Wiinikka-Lydon)은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을 독해하며, 이것을 가리켜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이라 부른다. 도덕적 손상이란 “변화를 요구하며 지속되는 고통, 타인 및 세계와 자신이 맺는 관계에 관해 품고 있던 기존 관념을 산산이 깨뜨리는 고통에 붙이는 이름”이다. 결정적으로 도덕적 손상은 “가능한 한 빨리 치유되어야 할 상처”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정치적 귀결을 갖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자기 사회에 대해 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한다. 그 길은 힘들 수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면 타인뿐 아니라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힌드의 목소리》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M. 게센(M. Gessen)이 지적했듯, 이 작품의 주제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죽음을 막으려 했음에도 그 죽음에 연루되고 만 사람들에게 가해진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이다. 도덕적 손상은, 의무가 비로소 정동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그 동요(disturbance)의 상태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한 동요가 없다면, 인정은 인지적(cognitive)이고 의례적인(ceremonial)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멜랑콜리아는 세계가 시정을 거부할 때 인정이 취하는 심리적 형식이다. 애도가 타자의 요구를 조용히 애도하는 이의 회복으로 바꾸어 놓는 반면, 멜랑콜리아는 자기 자신의 평정을 대가로 그 요구를 열어 둔 채 붙들어둔다. 멜랑콜리아적 주체의 자기비난이, 아무리 임상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해도, 결코 한낱 증상에 불과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아직 이행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되지 않을 의무의 흔적이다.

 

멜랑콜리아의 이러한 차원은 에이즈 위기 당시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가 행한 개입을 통해 한층 선명해지는 동시에 복잡해진다. 크림프가 처음 문제 삼은 것은 멜랑콜리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도덕화하는 이면이었다. 알다시피 프로이트가 묘사한 멜랑콜리아적 주체는 “자신의 자아를 쓸모 없고,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도덕적으로 비열한 것으로 그린다. 그는 자신을 책망하고 비방하며, 추방되고 처벌받기를 기대한다”(SE 14:246). 동성애혐오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자기비난은 자신이 내면화한 비하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었고, 게이 남성들로 하여금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미성숙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퀴어의 삶을 내부에서부터 겨냥할 때, 멜랑콜리아적 도덕주의는 동성애혐오의 증폭기(echo chamber)였다. 그러나 크림프의 입장은 변해갔다. 분리와 정상 상태로의 복귀로 이해되는 애도는, 비방받는 문화를 보존하기에는 불충분할 뿐 아니라 심지어 배신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애도는 너무나 굴복처럼 느껴진다”고 그는 꾸밈없이 시인했다. 대신 크림프는 정상화에 저항하는 애착의 한 형태로서 멜랑콜리아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내가 해석한 버전의 멜랑콜리아는, 내게 관습적 도덕주의에 대한 윤리적 대안을 보여준 어느 한 문화의 소멸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애도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게이들의 비탄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멜랑콜리아의 수행적 행위였다. 그것은 그들이 상실을 슬퍼하던 바로 그 애착을 지속시키면서, 그 비탄을 계속되는 윤리적·투쟁적 관여(engagement)의 장으로 전환했다. 애도가 투쟁성이 된다. 물론 이 말은 참이다. 하지만 멜랑콜리아는 이미 투쟁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비추어, 가자 이후의 멜랑콜리아적 도덕주의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크림프가 퀴어 주체들의 고통을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증거로 바꾸어 버리는 도덕주의에 저항한 것은 옳았다. 그러나 가자는 우리에게 정반대의 문제, 즉 도덕적 비난의 억압적 과잉이 아니라 도덕적 동요 자체의 완전한 소거라는 문제를 들이민다. 여기서 멜랑콜리아적 주체의 자기비난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대규모 폭력을 지켜보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도덕적 고지를 선점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야스퍼스가 형이상학적 죄라고 부른 것의 주체적 차원이며, 인정이 구속력을 갖게 되는 심리적 형식 가운데 하나다.

 

그 극한에는 애런 부시넬(Aaron Bushnell)이 있다. 이 젊은 미국 공군 병사는 자신이 “더 이상 제노사이드에 공모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워싱턴 D.C.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했다. 그의 분신은 수사적인 차원에 머물기를 거부한 형이상학적 죄의 비극적 증언으로 남는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자기고발이 행위를 양심에 구속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견디기 힘든 증거다. 멜랑콜리아적 도덕주의가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거듭해서 바로 이러한 성향에서 나왔다.

 

멜랑콜리아적 도덕주의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고지에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고발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말하며, 그럼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를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자기연루적 격분이 없다면 정동은 끄덕임의 스펙터클 속으로 흩어져 버릴 위험이 있다. 이미지는 보이고, 목소리는 들리며, 비탄은 느껴지지만, 그 어느 것도 목격자를 구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적 격분은, 혹은 그것의 결여는 불균등하게 분포한다. 많은 이들에게서 그것은 멜랑콜리아적 분노의 형태를 띤다. 종결을 거부하면서 상실에 지속적이고 자기성찰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서는 그것이 두드러지게 부재한다. 이 부재가 말해주는 것은 정동의 결여라기보다, 도덕적 동요가 생겨날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정신적 작동 자체가 폐제(foreclosure)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연한 후안무치

 

프로이트와 크림프가 시사하듯, 멜랑콜리아가 정상화를 거부함으로써 상실과의 비판적 관계를 지속시킨다면, 가자 이후 시급한 물음은 아랍세계에 멜랑콜리아가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균열이 난 정동적 지형이다. 한편에는 불균등하기는 해도 아랍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멜랑콜리아적 애착의 성향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여러 체제,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공중들의 차원에서 그러한 성향이 두드러지게 폐제되어 있다.

 

아랍 사회의 광범위한 층에서 가자에 대한 반응은 멜랑콜리아적 각성(vigilance)[4]의 형태를 취해왔다. 비탄과 격분, 분개는 뚜렷하게 감지되어왔다. 라바트에서 암만까지 이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슈퍼마켓 진열대를 전선(front lines)으로 바꾸어 놓은 보이콧 운동에서, 디지털 캠페인에서, 그리고 폭력이 추상 속으로 물러나버리지 못하게 하는 이미지들의 끈질긴 유통에서 그러했다. 이러한 경계심 가득한 각성이 엄숙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카페에서 오가는 대화, 독설 섞인 풍자, 우스꽝스러운 조롱, 신랄한 빈정거림처럼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멜랑콜리의 행위들 속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잔혹성만큼이나 아랍의 무력함도 가차 없이 난도질하는 대중적 농담들 속에서 활기를 띤다. 이것은 단순히 반응적으로 일어나는 정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재귀적이며 많은 경우에 자기비판적인 느낌이다. 그 비판은 바깥으로는 가해자를 향하는 동시에, 안으로는 행동하지 못한 아랍 지도부의 실패를 겨눈다.

 

이러한 성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크바에서 시작해 잇따른 전쟁과 정치적 좌절, 특히 1967년 나크사(Naksa)와 그 뒤 이어진, 점진적이면서도 거센 논쟁과 저항을 동반한, 정착민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금융 질서에 대한 굴복에 이르는 더 긴 상실의 역사, 곧 수탈과 패배와 유예된 해방의 역사 속에 퇴적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랍의 멜랑콜리아는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곳에서 논했듯 지속적인 “정신정치적 성향”이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들과, 온전히 인정되지도 훈습되지도(worked through) 않은 상실들로 포화된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랍의 멜랑콜리아에 전투적인 날카로움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애착의 지속이다. 이러한 지속은 부정의를 명명하고 배상을 요구할 뿐 아니라 그 둘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태세를 유지하게 한다. 페다인(fedayeen)에서 시작해 잇따른 인티파다들과 아랍 봉기들, 보이콧 운동을 거쳐 귀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에 이르는 계보가 이를 증언한다.

 

그러나 체제의 차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심리정치적 경제가 지배한다. 두드러지는 것은 가자 제노사이드 동안 연대에서 후퇴했다는 점만이 아니라, 도덕적 손상과 수치의 감정 자체가 상대적으로 부재한다는 점이다. 정상화는 제노사이드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심화했다. 아랍에미리트는 2022년 이스라엘과 체결한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으로 공식화된 교역관계를 유지했고, 오히려 확대했다. 라시드 칼리디(Rashid Khalidi)가 지적하듯,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대규모 가스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아무런 수치도 느끼지 않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출처를 얄팍하게 가릴 뿐인 미국의 위장 중개자를 통해 이스라엘산 무기와 안보 시스템을 구매해왔다.” 학살에 대한 공식적 대응은 탄디드tandīd와 이스팅카르istinkār, 곧 규탄과 비난이라는 상투적인 상징적 몸짓을 좀처럼 넘어서지 못했다. 이는 외교에서 이슬람 전통이 아드아프 알이만adʿaf al-īmān, 곧 가장 약한 믿음의 단계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이 모든 것에는 도덕적 동요의 가시적인 징후가 따르지 않으며, 하물며 격분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이러한 대응은 정동에 관여하기보다 그것을 무력화하는 실용주의와 안정, 국익의 언어를 통해 뚜렷이 표현된다.

 

이 부재를 단순한 무관심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페제다. 즉 수치와 죄책감, 멜랑콜리아적 자기비난이 생겨날 수 있는 심리적 조건을 선제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 논리는 환상의 논리다.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열린 상처이자 아랍의 수치와 죄책감의 주된 원천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원인과 대면하기보다는 수치심 자체를 극복하려는 유혹이 생긴다. 원인을 따져 묻다 보면, 결국 그 일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기 자신의 실패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후안무치는 바로 그 환상이 제도화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대의를 버리는 것은 더는 애도를 요구하는 상실로 경험되지 않고, 어떠한 정동적 총계(affective reckoning)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전략적 조정으로 경험된다. 따라서 실용주의의 언어는 심리적 완충재로 기능하면서 국가기계의 냉혹한 논리를 양심의 정동적·도덕적 동요로부터 절연한다.

 

이러한 후안무치에 심리적 대가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애착에 대한 심대한 부인이다. 곧 팔레스타인을, 통상의 경우라면 여러 번 나누어 이어지는 상실로 인해 애도를 요구했을 동일시의 대상으로 승인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뒤틀림이 한 번 더 존재한다. 아브라함 협정의 서명국들은 애초에 자신들에게 단념(relinquish)할 권한 따위는 주어지지 않은 대상을 단념해버렸다. 팔레스타인은 그들이 상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의 포기 선언(renunciation)은 다른 이들을 대신해 수행되며,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에게 역사적 팔레스타인에서 이미 잃어버린 것뿐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애착까지 내려놓으라는(give up) 암묵적 요구가 담겨있다. 그러나 부인된 애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전치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지속되며, 부인, 투사 또는 합리화라는 고통에 찬 연극적 몸짓을 통해 관리되어야 하는 긴장을 발생시킨다. 이를테면, 아랍에미리트는 협정 체결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부분 병합 계획을 막아낸 외교적 성취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날마다 이어지는 정착민의 침입은 그러한 주장을 완전히 반박한다. 팔레스타인을 버리는 일이 구출 임무로 치장될 때, 그것은 옹호의 행위가 아니라 후안무치의 증상이 된다. 따라서 이 변절한 체제들이 겉으로 보여주는 평정은, 해결되지 않은 애착을 끊임없이 시야 밖으로 밀어내어 기정사실(fait accompli)이라는 환상을 유지해야 하는 불안정한 구도를 감춘다.

 

따라서 아랍의 멜랑콜리아와 체제의 후안무치 사이의 대조는 단순히 서술적(descriptive)이지 않고 징후적(diagnostic)이다. 멜랑콜리아가 애착과 비판을 지탱하는 곳에서 후안무치는 분리(detachment)와 순응(accommodation)을 가능하게 한다. 전자가 상실한 대상이 여전히 존속한다고 주장하는 곳에서, 후자는 그 대상의 소멸을 더 이상 응답을 요구하지 않는 확정된 현실로 취급한다. 애착이 없으면 상실도 없다. 상실이 없으면 애도도 없다. 애도가 없으면 수치도 없다. 그리고 애도 작업이 결국 정상 상태로의 복귀를 약속한다면, 팔레스타인을 애도하는 일이 도대체 누구를 어떤 정상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반식민 투쟁의 탈식민적 지평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거기에 해당할 수도 있겠지만, 수탈자와의 정상화된 관계 속으로 굴복하듯 물러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한 정상화가 드러내는 것은 애도도 멜랑콜리아도 아닌, 둘 모두의 폐제다. 곧 적대자의 군사적 우위가 지닌 강제력이 그려 놓은 “새로운 정상”이다. 남는 것은 일종의 정동적 절연이다. 이른바 가자에서의 학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지하면서도 그것이 제기하는 요구에는 구속되지 않을 수 있는 정치적 태세다.

 

이런 의미에서 문제는 단순히 체제들이 대중의 정서(sentiment)에 부합하도록 행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전혀 다른 정동 체제—정권의 정동 체제—안에 존재한다는 데 있다. 그 체제에서는 가자가 도덕적·정치적으로 구속력을 갖도록 하는 심리적 작용들이 무력화되어 있다. 그 결과, 여전히 팔레스타인 대의와 정동적으로 얽혀 있는 대중과, 상당한 정도로 정동적인 것들을 모두 거둔 채 그 대의와 결별해버린 통치 구조 사이에 괴리가 생겨난다.

 

애도의 문턱들

 

이러한 순환과 규제, 폐제의 지역적이고 전 지구적인 배경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정동적 삶은 끊임없이 그것을 파편화하고 소진시키려 위협하는 조건들 아래에서도 끈질긴 자기주장으로 지속된다. 여기서 정동은 자유롭게 표현되지도, 온전히 인식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별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폭력 한가운데서 행해지고 지속된다. 가자에서 애도는 폭력 뒤에 덧붙는 추신 같은 게 아니다. 그것은 이후(after)라는 것 자체가 완전히 부재하는 가운데 펼쳐질 수밖에 없는 실천이다. 표준적인 프로이트 모델이 과거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안정된 현재를 필요로 한다면, 팔레스타인의 경험은 그러한 해결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1948년 이래 애도가 시작될 수 있는 문턱은 체계적으로 높아졌고, 시간을 무기화하는 봉쇄와 좀처럼 멈추지 않는 파괴에 의해 끝없이 물러나는 지평 너머로 더 멀리 밀려났다. 살해된 가자 주민들의 수가 산 자들이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쌓여가고, 굶주림이 비탄의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바로 그 몸들을 안에서부터 비워낼 때, 애도는 중단된 행위, 곧 파편적이고 임시변통적이며 끝없이 유예되는 행위가 된다. 이 어긋난 시간성은 이제 더 광범위한 지역적 재앙으로 번져나갔다.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전쟁이 가자 너머로 확대되면서, 힌드 라잡의 목소리에서 또렷하게 표현된 말 건넴의 장면은 이란에서 공격받은 여학생들의 절규와 베이루트의 잔해 아래 매몰된 가족들의 목소리에서 가슴을 짓누르듯 차마 잊히지 않는(haunting) 메아리를 얻는다. 이것들은 서로 동떨어진 비극들이 아니다. 응답받지 못한 이들이 하나로 모여 부르는 합창이며, 그 안에서 민간인의 몸은 관리된 분리가 시행되는 장소로 변모한다.

 

세계가, 아무리 불충분하게나마, 애도하는 데 동의하는 인물들—힌드, 레바논의 어머니, 이란의 여학생처럼—이 소녀와 여성이라는 점 역시 우연이 아니다. 허용 가능한 정동의 경제는 거의 언제나 젠더화된 경제다. 무고함은 여성적이고 유년적인 것으로 부호화되는 반면, 팔레스타인 남성들은 사전에 전투원으로 부호화되고, 그들의 죽음은 사전에 정당화되며, 그들의 애도 가능성은 사전에 차단된다. 설령 여성화된 희생자에게 동정이 베풀어진다 해도, 그것은 그 희생자의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쏟아지는 의심의 이면이다. 즉 둘은 동일한 인정 거부의 두 얼굴이다.

 

이처럼 계속되는 나크바의 지형에서는 죽음을 둘러싼 일상의 기반시설이 파괴되며, 가자 주민들은 재앙이 결코 끝나지 않는 유예된 상태를 헤쳐 나가야만 한다. 애도의 시간은 새로운 상실들과 폭력적으로 공존하도록 강요받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죽음 한가운데서 애도한다. 언젠가 이 문턱이 안정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은, 곧 팔레스타인인들이 시간 자체에 거주할 권리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미래의 상실이 예정된 장소가 아닌 현재에 거주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5]

 

그러나 비탄이 이렇게 지속된다고 해서 종결의 존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종결에 필요한 인정의 존엄은 더더욱 그렇다. 전쟁의 확대는 정동의 순환이 응답을 대신하고, 감정적 포화가 스스로를 소진한 끝에 무심함으로 변해버리는 전 지구적 질서의 궁극적 한계를 드러낸다. 라파의 불타는 천막, 납작하게 무너진 베이루트의 건물 구역, 피로 물든 이란의 교실 같은 이미지들이 증식하는 한편, 의무는 끊임없이 뒤로 미뤄진다. 이것이 가장 잔혹한 형태의 차등화된 정동 경제다. 이른바 비극의 미학을 소비하면서도, 그것이 제기하는 요구에는 구속되기를 거부하는 관객성(spectatorship)이다.

 

세계가 계속해서 이 상실을 인정의 구속력 있는 응답이 빠져 있는 끄덕임으로만 인지한다면, 애도의 문턱을 넘기는커녕 도달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그 대신 비탄은 영구적인 멜랑콜리아적 자기주장으로 변하도록 강제된다. 이건 팔레스타인인들이 잠시 멈춰 설 기회조차 얻을 틈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을 요구하는 세계에서, 죽은 자들을 단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인정의 존엄을 주장한다는 것은 앎(knowledge)으로 응답을 대신하기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 문턱이 대답되어야(answered) 할 요구로 인식될 때까지—힌드와 레바논의 어머니, 이란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실제로 결과를 낳는 구속력을 갖게 될 때까지—애도는 중단된 행위로 남는다.

 

애도가 진정으로 시작되려면, 폭력이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폭력은 미래를 다른 윤리적 질서에 구속하는 요구로 인정되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은 이 문턱에 머물며 멜랑콜리아적 각성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열린 상처들이 지구적 승인이 지닌 공허한 위신에 의해 봉합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듣기만 하면 되는 안전한 자리를 넘어, 원칙에 입각한 관여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급진적이고도 필수적인 불편함으로 나아갈 때다.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보이콧에서, 멈춰 세우는 파업에서, 달래지기를 거부하는 분노에서, 흐름을 끊는 거부에서, 정부 관료들이 움직이도록 영향을 행사하는 연대 행동에서, 정책결정자들을 괴롭히는 도덕적 죄책감을 부채질하는 데서. 마침내 무엇을 대답(answering)으로 말했는지가 아니라 이 현장(the ground)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평가될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저자 소개:

누리 가나Nouri Gana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비교문학과와 근동언어문화학과 교수다. 가장 최근 저서인 Melancholy Acts: Defeat and Cultural Critique in the Arab World (Fordham UP, 2023) 외에, 저서로 Signifying Loss: Toward a Poetics of Narrative Mourning (Bucknell UP, 2011 & paperback 2015)이 있고, 엮은 책으로 The Making of the Tunisian Revolution: Contexts, Architects, Prospects (Edinburgh UP, 2013)와 The Edinburgh Companion to the Arab Novel in English (Edinburgh UP, 2013 & paperback 2015)가 있다.


 

[1] 옮긴이: 영화계에서 영어 단어 nod는 ‘후보 지명’을 뜻하는 관용어다.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국제장편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 후보에 올랐다. 저자는 후보 지명이라는 뜻과 ‘고개만 끄덕여 알은체하는 몸짓’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을 병행하면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2] “애도 실천 없는 애도”라는 표현은 피터 호먼스(Peter Homans)에게서 빌려 왔다. 호먼스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분리가 굳어지면서 서구 사회에서 공동체 차원의 애도 의례가 사라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했다. Peter Homans, Symbolic Loss: The Ambiguity of Mourning and Memory at Century’s End (2000, University of Virginia Press)를 참고하라. 

[3] 이는 최근에 출판한 나의 책 Melancholy Acts: Defeat and Cultural Critique in the Arab World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23)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논점이다.

[4] 옮긴이: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저하되어 주변 환경에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멜랑콜리아적 각성의 상태는 우울감과 슬픔을 느끼면서도, 주변 환경에 극심한 불안이나 긴장감을 느낀다. 즉 주변 상황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이고, 그로부터 생겨날지도 모를 위험을 극도로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5] 나는 팔레스타인의 시간을 “이후성(afterity)”으로 보는 성찰을 “Poetry after Gaza”에서 더 길게 펼친다. 이 글은 곧 출간될 Middle Eastern Literatures 특별호에 실릴 서문이며, 특별호의 제목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