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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기고

통속적인 것은 통속의 뇌

by 인-무브 2026. 10. 9.

통속적인 것은 통속의 뇌

 

 

수차미

 

 

절대로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대의 움직임, 사람의 꿈, 계승되는 의지. 인간이 자유의 답을 찾는 한 그것들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KMDb에 올라온 박인성 평론가의 글 ‘공통언어로서의 마스터플롯’을 읽었다. 이 글은 저자가 쓴 책인 『마스터플롯』을 스스로 소개하는 성격으로 쓰였고, 집필 과정에서 고려했던 요인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건 마스터플롯이 일종의 과잉 개념처럼 여겨졌다는 저자의 고백이다. 기본적으로 텍스트비평이 하나의 작품에 대해 서술한다면, 이를 넘어서는 것은 애초에 없던 것을 보는 일이나 다름없으므로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메타비평의 어려움이라고나 할까. 같은 이유로 텍스트를 벗어나기에 이러한 관점은 절차와 검증이 정교해야 하는 연구에 적용되지 못한다. 텍스트비평은 우리가 한 작품을 최대한 100%에 가깝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하지만 텍스트비평은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나머지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마스터플롯은 “작품과 병행하고 교차하며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큰 틀의 이야기 골격”을 다룬다. 이 둘 사이에 연결고리를 입증하지는 못해도,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플롯을 구상해 낸다. 일종의 관점으로서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발명한다고 보아도 좋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통해 이를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구현해 내는 게 바로 이들 플롯의 역할이다.

 

세부적인 면을 보지는 못해도, 이를 두루 살펴봄으로써 인식하게 되는 패턴이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은 결과적으로 시선을 인식하는 능력과도 같아서 소위 말하는 눈치를 형성한다. 이처럼 한 개인의 자아가 세계에 있되, 이를 인지하는 게 패턴 인식의 능력이라면 어느 대상은 텍스트의 내부가 아니라 이를 관찰하는 외부 세계 전반에 걸쳐 탐색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텍스트는 그저 시선을 담는 그릇일 뿐 아무런 내용물이 없을 수 있고, 이 경우 연구자들에게 대상은 속이 투명한 무엇처럼 보일 것이다. 텍스트의 내부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이를 바라보는 쪽에 분산되어 자아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추론해 내야 한다. 문어처럼 다리 하나하나가 별개의 판단 장치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중앙의 뇌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더 나아가면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패턴을 인식하는 게 하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과정과 같다면, 오늘날 AI 서비스가 패턴을 쪼개 이를 하나로 출력하는 과정에도 동일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특정한 능력들을 인공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것뿐, 이를 두고서 자아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도구는 그 자신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탐색하기를 먼저 나서서 요청하지 않는다.

 

외부에 비추어 존재하는 패턴들을 통해서는 내부를 발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를 텍스트로 이해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마스터플롯은 이런 점에서 특이하다고 여겨진다. 책을 집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작품이나 글들을 엮어 만든 이 책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를 바라보며 엮는 방식에서 하나의 패턴을 구성하는 것이 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제와 규범으로 대변되는 공통 언어로서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한 개인의 고백에 기대는 사회적 유대 형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 AI의 패턴 인식과 출력은 그것이 실질적인 지능을 갖는다기보다 어떠한 정보들의 연결고리와 유대를 발굴해 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무런 것도 담고 있지 않다는 말은 비하나 폄하가 아니다. 무언가를 담을 수 없는 것은, 애초에 담을 만한 그릇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힘을 있는 그대로 방향을 바꾸어 돌려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도리어 패턴을 인식하며 부여하는 능력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패턴으로서 바라보는 일을 전제하므로 자기복제와 전파, 확장의 개념에 유리하다. 누군가는 아무런 내용물도 없는 게 증식해 봐야 무의미만 더 늘어날 뿐인 게 아니냐고도 하겠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는 그러한 유산을 발굴하고서 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용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미래의 어느 순간, 핵전쟁으로 망한 세상에서는 컴퓨터 기판이 화살촉이 되리라는 말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떠올려 보고 싶은 것은 결국 중앙과 지역의 관계다. 어떤 세대나 무리를 하나의 칭호로 정리하는 일은 이를 분석하기에는 유용하더라도 내부의 구성원들에게는 반발을 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를 패턴화하는 능력 자체에 중점을 둔다면, 구성원들이 어떻든 간에 내부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들을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다. 이 안에서 각각의 구성원들이 어떤 형태로 있는지는 또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확실한 건 이와 같은 일반화가 그 안의 대상을 종속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소위 중앙과 지역의 관계란 어떠한 구심점을 토대로 다시 재회와 파훼를 반복하는 것이어서 중앙의 특징들을 나머지 구성원들이 일부 갖는 형태를 띤다. 이를 두고서 중앙이 지역을 거느린다고 보기보다, 반대로 지역 간의 패턴을 발견한 결과물이 바로 중앙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덕분에 거대한 위기에서도 모두가 멸종되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있다. 더 먼 곳에서 바라보는 세대론은 이들 구성원의 의지 등을 계승하는 데 역할이 있으며, 도리어 개인의 관점과 주체성을 억압한다고 여겨졌던 의지가 다른 이가 넘긴 것을 다시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은 한 개인이 함유하는 가치나 능력이 아니라 그에 의해 바라보이고 지명되는 세류 의식이다.

 

이 대목에서 박인성 평론가가 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다뤄 볼 수 있다. 박인성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명예를 버리는 방식으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허구 개념의 이중성’을 설명한다. 국가가 회수한 존엄을, 공동체가 국가 바깥의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것. 이 플롯은 현실에서도 어느 정도 적확하게 들어맞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단지 패턴의 유사성을 분석하는 데에만 그친다. 패턴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로 많은 것들이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가령 중앙에서 회수한 것을 지역에서 보강하는 일은 그게 본래부터 중앙에만 있던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뜻한다. 혹은 이들 간의 구분이 철저하지 않아서 인적 이동에 의해 그 가치가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중앙은 대개 고립계가 아니며 그러므로 전반적인 패턴 인식이 아니더라도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교류는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대라는 말을 가리켜 인용할 때는 이 두 가지가 오인되기 쉬우므로, 이를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는 게 우리의 과제다. 패턴을 발견한 결과물이 중앙이라면 반대로 그런 패턴들이 개별로 내부를 갖는 것은 아니므로 도리어 이들 중앙은 어떠한 거대한 외부로서 바라보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바깥이며, 개인들의 인식들이 발휘한 공명의 효과다.

 

마스터플롯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반대로 어떤 패턴들을 익혀, 공통의 외부를 감각하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등진 것들을 다시 인지에 돌려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떠올려 보면 영화들도 특정한 장면들이 이어지는 것일 뿐, 이를 인과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안에서 쇼트의 리듬이라고 하는 패턴을 관객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패턴들은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짜여 이를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모든 관객들이 이를 자신과 같은 패턴으로 겹쳐 보지 않으며 이는 곧 같은 시간에 사는 것이 동일한 시대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가리킨다. 패턴들은 공간적인 개념에 더 가깝다. 어떠한 패턴에서 특정한 주체의 출현을 예견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서 패턴을 구성하는 일이 가능하다. 패턴들은 기본적으로 시각 정보에 대한 회신을 기반으로 하므로 그러한 유사성들에서 내부를 가두지 않는다. 즉, 마스터플롯을 통해서는 내부를 가둠으로써 중앙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시대정신은 실체를 갖고 생동하는 자아가 아니라 인간 사이를 유랑하며 실체화한 괴담에 가깝다. 그리고 마스터플롯은 그런 괴담들을 알뜰히 기록해 만들어 낸 교훈집이라 할 수 있다.


위 원고에 인용한 글은 kmdb의 아래 글입니다.

https://www.kmdb.or.kr/story/956/10091
 

 

공통언어로서의 마스터플롯, 『마스터플롯』

© 나비클럽 마스터플롯, 공통언어로서의 서사 『마스터플롯』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H. 포터 애벗(H. Porter Abbott)의 『서사학 강의(The Cambridge Introduction to Narrative)』(2002)에서 정식화한 마스터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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