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사회주의 통치성
강길모 (현대정치철학연구회)
1. 사회주의에는 통치성이 있는가
1979년 1월 31일, 미셸 푸코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생명정치의 탄생』 강의에서 인상적인 말을 한다. 사회주의에는 역사적 합리성이 있고, 경제적 합리성이 있으며, 행정의 합리성도 있지만, 자율적인 사회주의 통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 1년 가까이 이어져온 이 연재 글들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주장을 풀어서 말하자면, 현실의 사회주의는 독자적인 통치의 합리성을 형성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다른 통치성에 접속하여 작동해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사회주의의 이념은 어떤 경우에는 경찰국가적인 행정의 내부논리로 기능했고, 다른 경우에는 자유주의적 통치성 안에서 그것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원리로 작동했지만, 그 자체로 고유하고 자율적인 통치합리성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이 발언은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한편으로는 푸코 자신이 사회주의와 최종적으로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선언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무렵 푸코는 프랑스 공산당과 정통 맑스주의에 강한 불신을 표명하고 있었고, 동시에 신자유주의를 이전의 자유주의와는 다른 독자적인 통치합리성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에는 자율적인 통치성이 없다는 그의 말은 결국 사회주의에는 더 이상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판단이었을까.
그러나 푸코의 말을 조금 더 면밀히 읽으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푸코는 사회주의적 통치성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현실에 존재해온 사회주의가 아직 자신에게 고유한 통치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사회주의 통치성은 사회주의의 기존 문헌 속에서 완성된 형태로 발견될 수 있는 것도, 사회주의의 몇몇 기본 원리로부터 자동적으로 연역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푸코의 문제제기를 더 밀고 나간다면, 사회주의 통치성은 발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명되어야 할 것이 된다.
이 짧은 언급은 푸코의 저작 전체에서 특별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여러 문제의식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읽어본다면, 푸코가 오랫동안 마주해왔던 중요한 정치철학적 난점들이 이 문장 안에 응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맑스주의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맑스주의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통치되어야 하는지, 혹은 서로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답을 제공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기술까지 함께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했는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변혁하는 것과, 그 생산관계를 떠받쳐온 규율과 행정, 지식과 정상화의 기술을 변형하는 것은 동일한 과정이었는가.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문제와, 혁명 이후 공동의 삶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문제는 과연 같은 문제였는가.
푸코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완성된 답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여러 차례 이 문제의 주변을 맴돌았고, 때로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으며, 다른 순간에는 그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이 문제는 푸코 자신에게서도 미완으로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푸코에게서 사회주의 통치성의 의미를 찾는 작업은 그가 남긴 숨겨진 청사진을 복원하는 일이 될 수 없다. 이 글이 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푸코가 어떤 문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통치성의 부재라는 진단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그 진단 이후에도 왜 대안적인 통치의 형식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한다. 다시 말해 이 글은 푸코에게서 이미 완성된 사회주의 통치성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문제와 공백을 통해 사회주의 통치성을 다시 하나의 정치철학적 과제로 제기하려는 시도다.
2. 맑스주의자도, 반맑스주의자도 아닌 푸코
푸코와 맑스주의의 관계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연구와 해석 역시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우선 푸코 자신의 생애와 자기진술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한 사상가의 저작을 그의 생애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푸코 자신이 맑스주의와의 관계를 여러 시기에 걸쳐 반복적으로 회고했고, 그 회고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경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우회는 이후의 논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젊은 시절 푸코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훗날 1950년 무렵의 자신을 “니체주의적 공산주의자”였다고 회고한다.2) 이 표현은 얼핏 보기에도 쉽게 결합되기 어려운 두 경향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젊은 푸코가 먼저 정통 맑스주의자가 되었다가 니체를 통해 그로부터 벗어났다는 식의 단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푸코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니체와 바타유를 읽는 경험은 그에게 공산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통로라기보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와의 급진적인 단절, 전혀 다른 삶에 대한 욕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의 공산주의 역시 그에게는 그러한 거부와 단절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푸코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와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일관된 충성이 처음부터 동일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푸코와 프랑스 공산당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의 여러 경험은 단순한 탈당 이상의 영향을 남겼다. 푸코는 1950년대 말 폴란드에서 생활하면서 공산당이 국가장치를 통제하고 당과 국가가 사실상 하나로 겹쳐지는 모습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훗날 이 경험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1950년대 초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던 의심이 폴란드에서 “잔혹하고 역사적이며 심층적인 진실”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표현한다. 푸코 자신이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게 된 계기를 이 시기의 경험에서 찾았다는 점은 분명 중요하다.3)
그러나 여기에서도 그가 무엇을 거부했는지를 세심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같은 회고에서 푸코는 자신이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의미를 동서유럽의 공산당들이 보여준 정치적 작동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맑스에게 참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으며, 굳이 그때마다 맑스의 이름을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인다. 폴란드의 경험이 그에게 맑스 자체의 폐기를 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푸코는 이후 튀니지와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를 서로 다른 형태로 경험했다고 회고한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머물렀던 튀니지에서 그는 정치적 저항과 국가폭력을 프랑스의 정통 맑스주의적 언어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접했다. 반대로 1968년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뱅센에서 경험한 급진좌파의 정치문화에서는 자신이 과거 프랑스 공산당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권력효과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조직의 형식과 정치적 수사는 달라졌지만 위계와 복종, 권위와 정통성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반복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푸코에게 문제가 된 것은 따라서 단순히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관료주의만이 아니었다. 혁명을 말하고 맑스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언어로 삼는 조직 내부에서도 어떤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특정한 담론이 어떻게 권위와 복종의 효과를 만들어내는가라는 문제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었다.4)
그렇다고 이러한 경험들을 공산주의자 푸코가 반맑스주의자 푸코로 변해가는 단선적인 과정으로 읽을 수는 없다. 1966년 『말과 사물』에서 푸코가 맑스주의를 상당히 강한 방식으로 상대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맑스주의가 부르주아 정치경제학과 첨예하게 대립하더라도 고고학적인 수준에서는 동일한 19세기의 에피스테메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맑스주의는 그것이 비판하는 정치경제학과 완전히 다른 인식의 질서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근대의 지식 전체에 대한 절대적인 인식론적 단절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5) 이 대목만 놓고 보면 푸코는 맑스주의가 자신에게 부여해온 이론적 특권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려 했다고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뒤의 작업과 푸코 자신의 회고를 함께 보면 상황은 다시 복잡해진다. 푸코는 맑스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맑스의 이름과 자신의 분석을 의도적으로 동일시하지 않았다. 1975년 「Prison Talk」 인터뷰에서 그는 『광기의 역사』가 애초부터 “주어진 사회 내부에서 하나의 과학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맑스주의자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룬 작업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맑스주의자들이 이 책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맑스를 명시적으로, 대량으로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광기의 역사』가 많은 맑스주의자들이 쓴 과학사만큼은 맑스주의적이라고 평가한다.6)
같은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푸코의 태도는 흥미롭다. 한쪽에서는 자신이 폴란드 이후 맑스주의자가 아니게 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맑스에게 참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맑스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먼저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푸코에게 그러한 질문은 어떤 주장이 무엇을 분석하고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묻기 전에 발화자의 정치적 신분을 먼저 확인하려는 요구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 자신이 분석해온 규율과 분류의 논리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푸코와 맑스주의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서로 다른 층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맑스라는 사상가, 맑스주의라는 이론적 전통, 공산당이라는 정치조직, 현실사회주의라는 국가와 사회의 역사적 경험, 그리고 맑스주의자라는 정치적이고 지적인 정체성은 푸코에게 하나로 겹쳐 있지 않았다. 그는 이 각각과 서로 다른 관계를 맺었다. 맑스주의자라는 정체성과 공산당 정치에는 지속적으로 선을 그었고, 현실사회주의에는 갈수록 강한 불신을 보였다. 맑스주의가 자신의 이름을 통해 정치적 진리와 역사적 정당성을 보증하려는 방식에도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성, 노동과 생산, 계급과 신체, 사회적 투쟁이라는 맑스의 문제장까지 폐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푸코와 맑스주의의 관계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단순한 수용이나 거부가 아니라 선긋기와 전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운동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푸코는 맑스주의라는 정치적이고 지적인 정체성이 자신의 분석을 미리 규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맑스의 이름이 정치적 진리의 보증이 되고, 당이나 지식인이 그 진리의 해석권을 독점하며, 그 진리의 이름으로 특정한 위계와 복종이 다시 생산되는 것을 불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는 맑스가 제기했던 문제들을 폐기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았다. 오히려 푸코의 1970년대 작업을 따라가 보면, 맑스주의와 가장 강하게 선을 긋던 바로 그 시기에 맑스의 문제설정이 그의 작업 내부에서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묘한 광경을 만나게 된다.
3. 맑스를 버리는 대신 더 아래로 내려가기
1970년대 초의 푸코를 따라가 보면 맑스주의와의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푸코가 맑스주의라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정체성과 거리를 벌리는 시기에, 역설적으로 그의 실제 연구에서는 맑스가 제기했던 문제들과의 접촉이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두고 푸코가 이 시기에 다시 맑스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반대다. 푸코는 맑스주의의 몇몇 전제와 설명방식을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성, 계급투쟁, 부와 소유, 노동과 생산이라는 문제장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문제들을 다른 수준에서 다시 묻기 시작했다.
외견상 맑스주의와 상당히 멀어 보이는 1970년에서 1971년의 『지식의 의지에 관하여』에서도 이미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강의에서 푸코가 전면에 내세우는 사상가는 무엇보다 니체다. 그는 진리를 지식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나 인식주체의 보편적인 능력에서 설명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고 판정하며 승인하는 절차들이 어떠한 역사적인 투쟁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추적한다. 그러나 푸코가 이러한 니체적인 진리의 역사를 구성하기 위해 실제로 분석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법적 절차와 진리의 형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부와 토지, 화폐와 척도, 분배와 부채, 사회적 갈등과 계급투쟁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폐에 대한 푸코의 분석은 흥미롭다. 여기에서 화폐는 이미 완성된 경제적 교환관계를 단순히 표상하는 중립적인 수단이 아니다. 화폐와 척도의 도입은 부와 권력의 재편,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갈등, 사회적 분배질서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무엇이 공정한 교환이고 적절한 몫인지를 판정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이고 법적인 척도의 형성과도 관련된다.7)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푸코가 이 강의에서 경제문제를 다루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진리의 형식과 법의 형성이 부와 소유, 사회적 투쟁의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구성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식의 의지에 관하여』에서는 니체적인 진리비판과 사회관계에 대한 물질적인 분석이 이미 하나의 작업 안에서 겹치고 있다. 이것을 곧바로 맑스주의적 분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푸코가 진리와 지식을 관념의 역사로 설명하는 대신, 그것들이 어떠한 사회적 투쟁과 제도적 배치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묻고 있다는 점은 이후의 작업과 연결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971년에서 1972년의 『형벌 이론과 제도』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보다 직접적으로 권력과 국가장치의 형성으로 이동한다. 푸코가 이 강의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분석하는 것은 17세기 프랑스의 맨발의 사람들, 즉 누피에 반란과 그에 대한 왕권의 진압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의 국가가 이미 존재하고 그 국가가 반란을 억압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 자체에서 이전과는 다른 사법적이고 경찰적인 국가장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과 국가는 이미 완성된 상부구조로 존재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사후적으로 조정하는 장치로 등장하지 않는다. 법적 형식과 국가의 억압장치 자체가 투쟁 속에서 구성되고 변형된다. 푸코 자신이 이 강의에서 법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은 법원이나 판사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방식을 일정한 규칙 속에서 조직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법의 역사는 투쟁의 바깥에서 존재하는 규칙의 역사가 아니라, 투쟁이 특정한 형태로 제도화되는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의 푸코가 알튀세르를 포함한 당시의 맑스주의 국가론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그는 국가장치, 억압, 계급투쟁과 같은 어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국가장치가 최종적으로 어떤 계급의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장치가 어떤 구체적인 투쟁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법과 사법, 경찰과 행정이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합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국가장치를 이미 주어진 설명원리로 사용하는 대신, 국가장치 자체를 역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8)
이 점에서 『지식의 의지에 관하여』에서 『형벌 이론과 제도』로의 이동은 단순히 경제에서 국가로 주제가 바뀌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리와 법의 형식을 사회적 투쟁 속에서 분석했던 문제가 이제 그 투쟁을 포획하고 재조직하는 권력장치 자체의 역사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설정은 1972년에서 1973년의 『형벌사회』에서 한층 더 직접적으로 자본주의와 노동의 문제를 향한다. 이 강의에는 계급과 부랑, 재산과 절도, 노동과 태업, 불법행위와 생산성, 신체와 시간의 문제가 놀라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푸코와 맑스의 관계를 놓고 보더라도 『형벌사회』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강의에서 푸코가 형벌과 감옥을 분석하면서 묻고 있는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먼저 맑스와 푸코의 차이를 지나치게 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맑스에게도 노동력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에서 시초축적의 역사를 분석할 때 맑스는 생산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분리되는 과정, 토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부랑자로 전락하고 다시 노동규율에 강제적으로 편입되는 과정, 노동력을 시장에서 판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노동력의 형성과 강제의 문제는 이미 맑스에게 존재한다.9)
그러나 『형벌사회』의 푸코는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한 번 더 밀어붙인다.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인간이 곧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장치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노동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노동력을 내놓는 법적이고 경제적인 조건과, 실제로 자신의 삶과 신체를 지속적인 노동력의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푸코가 주목하는 것이 시간과 신체를 조직하는 일련의 권력기술이다. 노동자는 일정한 시간에 일터에 도착해야 하고, 하루의 시간을 연속적인 노동시간으로 조직해야 하며, 신체의 힘을 일정한 속도와 강도로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실업과 질병을 대비해 저축해야 하고, 자신의 임금을 파업이나 축제, 음주와 같은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낭비하지 않도록 요구받는다. 부랑과 게으름, 무질서한 이동과 향락은 이 관점에서 단순한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노동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치경제적 문제로 등장한다.
『형벌사회』 마지막 강의에서 푸코는 이 문제를 매우 명시적인 형태로 정식화한다. 산업사회의 문제는 임금을 통해 구매한 개인의 시간을 실제 생산장치 안에서 노동력의 형태로 통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노동력을 생산력으로 전환한다면, 그보다 앞선 수준에서는 삶의 시간을 노동력으로 변환하는 별도의 권력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완성된 노동력을 어느 날 우연히 시장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다. 휴식과 축제, 욕망과 우연, 이동과 불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는 삶의 시간을 연속적이고 반복 가능한 노동력으로 합성해야 했다.10)
이것이 『형벌사회』가 맑스와 가장 가까워지는 동시에 그로부터 중요한 방식으로 이동하는 지점 가운데 하나다. 푸코가 관심을 갖는 것은 착취관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착취가 가능하기 위해 어떤 신체와 어떤 시간, 어떤 습관과 어떤 주체가 미리 형성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자본이 노동력을 구매하기 이전에, 누군가는 자신의 신체와 시간을 노동력이라는 형태로 가지고 시장에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은 시장교환의 관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서 규율은 이미 존재하는 노동자를 외부에서 억압하는 장치만이 아니다. 노동할 수 있고, 시간을 지킬 수 있으며, 생산장치의 요구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적응시킬 수 있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권력기술이다. 이것이 나중에 푸코가 말하게 될 ‘규율’의 중요한 계보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이동을 단순히 푸코가 경제의 문제를 버리고 권력의 문제로 넘어간 것으로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적어도 『형벌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푸코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더 깊이 파고들면서, 그 생산관계 자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권력의 층위를 발견하고 있다. 경제관계와 무관한 별개의 권력이 추가된 것이 아니라, 경제관계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신체와 시간, 습관과 행동을 조직하는 권력의 미시적인 조건이 드러난 것이다.
1973년 브라질에서 행한 「진리와 법적 형태」 강연은 이러한 문제설정을 한층 더 명시적으로 정리한다. 첫 번째 강연에서 푸코는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을 다소 도발적으로 ‘아카데믹 맑스주의’라고 부른다. 경제적 존재조건이 인간의 의식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묻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푸코가 묻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실천 그 자체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지식의 대상과 새로운 지식의 주체, 새로운 진리의 형식이 구성되는가이다.
그러나 이 비판 역시 맑스의 문제를 버린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강연의 후반부에서 푸코는 오히려 자신의 논지를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의 생산과 연결한다. 인간의 시간이 노동시간으로 바뀌고, 인간의 신체가 노동력이 되며, 그 노동력이 다시 생산력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일련의 정치적 기술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초과이윤이 가능하려면 그 아래에 미시적이고 모세혈관적인 ‘하위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권력이나 지배계급이라는 거시적인 범주만으로는 이 층위를 충분히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11)
따라서 「진리와 법적 형태」에서 나타나는 푸코의 맑스주의 비판은 경제적 분석을 폐기하는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관계가 작동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을 훨씬 더 아래에서 분석하려는 비판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푸코의 작업은 맑스와 멀어지는 동시에 맑스의 문제를 더 미세한 수준으로 가져간다.
1975년의 『감시와 처벌』에서는 이 문제들이 다시 정리되고 일반화된다. 학교와 공장, 군대와 병원, 감옥은 각각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제도지만, 인간을 공간적으로 배치하고 시간을 세분하며 행동을 감시하고 능력을 평가하고 신체의 힘을 최대한 유용하게 만드는 유사한 권력기술을 공유한다. 이제 규율은 특정한 형벌제도에 한정된 기술이 아니라 근대사회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권력양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규율이 이렇게 일반화되었다고 해서 자본주의와의 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자본의 축적과 인간의 축적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대규모의 인간집단을 배치하고 훈련하며 유용한 힘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생산장치의 확대와 서로 조건이 되었다. 푸코가 이 대목에서 『자본』의 협업과 공장제 분석을 직접 참조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생산장치의 기술적 변화와 노동분업, 규율기술은 단순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가능하게 하고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를 이룬다.12)
이렇게 1970년에서 1975년까지의 작업을 하나의 흐름으로 놓고 보면, 푸코가 맑스주의에서 단순히 이탈해간다는 통상적인 그림과는 조금 다른 계보가 나타난다. 『지식의 의지에 관하여』에서는 진리와 법의 형식을 사회적 갈등과 물질적 관계 속에서 분석한다. 『형벌 이론과 제도』에서는 국가와 법 자체를 투쟁 속에서 형성되는 권력장치로 만든다. 『형벌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력이 어떻게 삶의 시간과 신체의 조직을 통해 구성되는지를 묻는다. 「진리와 법적 형태」와 『감시와 처벌』에서는 이 문제를 권력-지식과 규율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분석틀로 확장한다.
물론 이것을 푸코 자신이 처음부터 하나의 일관된 계획에 따라 수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1970년의 푸코가 이미 몇 년 뒤의 규율권력이나 통치성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사후적인 투사일 것이다. 여기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제한적이다. 푸코가 맑스주의와 자신의 거리를 점점 더 분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시기에, 자본주의의 생산과 노동이라는 맑스적 문제장을 파고드는 작업을 통해 경제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권력기술이라는 새로운 분석수준에 도달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13)
바로 여기에서 이후의 논의를 위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생산수단의 소유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시간, 행위와 지식, 정상성과 생산성을 조직하는 독자적인 권력기술을 필요로 한다면,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그 권력기술 역시 함께 변화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아직 『형벌사회』나 『감시와 처벌』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명시적인 질문으로 제출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시기의 분석으로부터 이후에 가능해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몇 년 뒤 푸코가 현실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제기하게 될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구별이 중요하다. 생산관계의 변혁과 권력기술의 변혁은 같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구별 말이다.4. 사회주의가 물려받은 권력
이러한 푸코적 구분은 현실사회주의에 상당히 곤란한 문제를 제기한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이론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관계였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제거하며, 사회적 생산을 집합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사회주의로의 핵심적인 전환으로 이해되었다. 물론 사회주의 전통 내부에서도 국가형태와 민주주의, 노동자 통제, 관료주의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논쟁되어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별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관계였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푸코의 권력분석을 받아들이면 생산관계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가 나타난다. 공장의 소유주가 사적 자본가에서 국가로 바뀌더라도 노동자의 시간을 세분하고 생산성을 측정하며 정상적인 노동자를 규정하는 기술은 남아 있을 수 있다. 교육이 공공적으로 운영되더라도 시험과 평가, 정상화의 장치는 남을 수 있다. 의료가 사회화되고 공공화되더라도 전문가 지식의 권위와 정상과 비정상을 판정하는 기술은 그대로 작동할 수 있다. 생산관계를 바꾼다고 해서 규율과 행정, 지식과 정상화의 기술까지 자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기술들을 단순히 자본주의의 잔재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푸코에게 규율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파생된 단순한 부차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체와 시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특정한 생산적 주체로 형성하며, 생산관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독자적인 권력기술이었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소유관계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러한 권력기술이 자연스럽게 소멸하거나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1976년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마지막 강의에서 훨씬 직접적으로 제기된다. 이 강의에서 푸코는 근대의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훈련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규율권력과, 인구의 출생과 질병, 건강과 수명, 위험과 우연성을 관리하는 생명권력의 결합을 통해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권력이 죽음과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주의라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고 분석한다. 푸코에게 인종주의는 단지 개인들의 편견이나 특정한 국가이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권력이 어떤 삶은 보호하고 어떤 삶은 제거하거나 방치할 수 있도록 인구 내부에 단절을 만드는 권력기술을 의미한다.
바로 이 맥락에서 푸코는 사회주의를 문제 삼는다. 그는 사회주의가 소유의 유형이나 생산양식의 경제적이고 법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권력의 작동방식 그 자체를 충분히 독립적인 문제로 만들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와 산업국가가 이미 형성해놓은 권력의 메커니즘을 다시 가져다가 투자하고 재배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주의는 18세기 말과 19세기에 형성된 생명권력의 기본적인 주제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 일부를 수정했을 뿐 그 토대와 작동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았다.
이 지적은 중요하다.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단순히 자본주의 국가와 비슷하게 관료적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나 사회, 혹은 국가를 대신하게 될 어떤 집합적 기구가 인간의 삶을 관리하고, 인구의 위험을 조절하며, 생명의 우연성을 줄이고, 정상적인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구별해야 한다는 통치의 전제 자체가 사회주의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를 문제 삼았지만, 누가 어떠한 지식에 근거해 인구의 삶을 관리하고, 어떤 기준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 생산적 삶과 비생산적 삶, 보호되어야 할 삶과 배제되어도 되는 삶을 나누는가라는 문제를 충분히 새롭게 구성하지 못했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푸코가 사회주의 국가의 인종주의를 언급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종주의는 단순한 민족적 적대나 혈통주의만을 뜻하지 않는다. 푸코는 소련형 국가에서 정신질환자와 범죄자, 정치적 적대자를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생물학적이고 진화론적인 인종주의의 논리가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 전체의 건강이나 발전을 위해 어떤 존재는 비정상적이거나 퇴행적이며 위험한 것으로 분류되고, 따라서 배제되거나 제거되어도 된다는 논리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평등이나 집합적 소유와 별개의 층위에서 작동하는 권력기술이다.14)
이 점에서 푸코의 현실사회주의 비판은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의 국가비판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을 가진다. 문제는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가 너무 크고 강력하다는 데 있지 않다. 국가소유가 사적 소유보다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푸코의 질문은 국가가 얼마나 큰가보다, 국가와 제도와 사회적 장치들이 어떤 합리성과 지식, 어떤 규율과 정상화의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행위를 조직하는가에 가깝다.
따라서 푸코의 문제제기를 단순한 반국가주의로 환원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치게 된다. 국가가 작아진다고 해서 규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사적 시장으로 권한이 이전된다고 해서 정상화의 기술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푸코가 분석하는 권력은 국가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병원, 공장과 가족, 전문가의 지식과 행정적 판단을 통해 사회 전체에 분산되어 작동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문제 역시 국가를 줄이느냐 키우느냐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문제는 사회주의가 어떠한 권력의 형식과 통치의 기술을 구성했는가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단순히 “민주주의가 부족했다”거나 “국가가 지나치게 비대해졌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설명만으로는 왜 특정한 정치적 형식과 행정적 관계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국가관료제는 어떠한 지식에 근거해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했는가. 경제계획은 어떠한 지표를 통해 사회의 필요와 발전을 측정했으며, 그 지표 자체를 누가 수정할 수 있었는가. 노동생산성은 어떤 규범과 규율을 통해 조직되었고,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시간과 신체는 어떻게 평가되었는가. 교육과 의료, 복지의 영역에서는 어떤 전문가 지식이 정상적인 인간과 정상적인 삶의 기준을 설정했는가. 정치적 이견과 비협조는 어떤 과정을 통해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비정상성과 후진성, 위험성의 문제로 번역되었는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어떤 생산적이고 도덕적이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주체로 이해하도록 요구받았는가.
이 질문들은 현실사회주의가 실제로 어떠한 통치의 기술과 주체화의 형식을 만들어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 층위에서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곧바로 사회적 관계 전체의 사회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생산수단이 집합적으로 소유되더라도 생산성의 기준과 전문가의 권위, 행정의 위계, 정상화의 기술이 이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소유관계의 변화와 권력관계의 변화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남을 수 있다.
여기에서 앞 절에서 살펴본 1970년대 초 푸코의 연구와 1976년의 사회주의 비판 사이의 연속성을 조심스럽게 읽어볼 수 있다. 『형벌사회』에서 푸코가 이미 사회주의의 문제를 직접 제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시간, 습관과 행동을 조직하는 독자적인 권력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석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는 사회주의가 경제적이고 법적인 소유관계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근대 산업사회와 국가가 발전시킨 권력의 메커니즘 자체를 충분히 재검토하지 못했다고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따라서 이 둘 사이에는 하나의 중요한 문제적 연속성이 존재한다. 생산관계를 변혁하는 것과 그 생산관계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온 권력기술을 변혁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소유형태를 바꾸는 것과 사람들이 어떻게 통치되고, 어떻게 정상화되고, 어떠한 주체로 만들어지는가를 바꾸는 것 역시 같은 일이 아니다.
이 구별을 받아들인다면 현실사회주의의 문제는 단지 사회주의가 자신의 이상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사회주의가 자신에게 고유한 권력의 형식, 더 나아가 자신에게 고유한 통치의 합리성을 실제로 만들어냈는가 하는 데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질문이 몇 년 뒤 푸코가 “사회주의에는 자율적인 통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문제적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된다.
4. 맑스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
1978년은 지금까지 살펴본 흐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한편에서 푸코는 자신의 권력분석을 ‘통치’와 ‘통치성’이라는 새로운 문제틀 속에서 재구성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맑스주의와 자신의 관계를 이전보다 훨씬 노골적인 언어로 다시 문제 삼았다. 두 작업이 동일한 하나의 기획에서 직접 나온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 푸코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고, 동시에 무엇을 새롭게 분석하려 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몇 년 뒤 사회주의 통치성의 부재를 말하게 되는 문제적 배경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1978년 1월부터 4월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진행된 『안전, 영토, 인구』 강의는 애초부터 통치성을 중심 주제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강의 초반 푸코가 분석하려 했던 것은 규율과는 다른 새로운 권력기술, 곧 인구를 대상으로 삼고 그 고유한 규칙성을 지식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위험과 우연성을 관리하는 ‘안전’의 장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을 진행하던 푸코는 2월 1일의 네 번째 강의에서 문제의 축을 갑작스럽게 바꾼다. 이후의 강의에서 중심적인 질문은 안전장치 자체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위를 인도하고 조직하는 ‘통치’라는 활동이 서구사회에서 어떠한 합리성과 기술을 통해 형성되어왔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이 전환은 앞에서 살펴본 푸코의 권력분석을 단순히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규율권력을 분석할 때 중요한 것은 신체가 어떤 공간에 배치되고, 시간이 어떻게 세분되며, 행동이 어떤 방식으로 감시되고 훈련되는가였다. 그러나 통치의 문제를 제기하면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통치는 단순히 어떤 행동을 강제로 명령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통치하는 자는 통치해야 할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어떤 목표를 위해 개입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또한 통치의 성공과 실패를 판정할 수 있는 지표와 진리의 형식도 필요하다.
따라서 통치성은 권력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행위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동원되는 지식과 계산, 제도와 기술, 목적과 자기제한의 원리가 서로 연결되는 특정한 합리성의 형식을 분석하기 위한 개념에 가깝다.15) 어떤 국가가 존재하는가만큼이나 그 국가와 여러 사회적 장치가 무엇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고, 그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며, 어떠한 목적과 기준에 따라 개입하는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통치성의 문제는 국가론과도 일정한 거리를 갖는다. 푸코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국가라는 실체가 모든 권력의 중심에서 사회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국가 자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여러 통치의 기술과 합리성을 집중하고 재조직한 결과라고 본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가 기독교의 사목권력에서 근대의 국가이성으로 이어지는 긴 계보를 추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을 세밀하게 인도하는 기술과 전체 인구를 관리하는 기술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근대적인 정치적 합리성 안에서 결합되어왔다.
이러한 문제설정은 앞 절에서 살펴본 현실사회주의 비판과도 중요한 접점을 갖는다. 사회주의 국가가 어떠한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를 갖는지, 국가기구가 누구의 계급적 이해를 대표하는지를 묻는 것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국가와 제도가 어떤 대상을 통치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그 대상에 관한 어떤 지식을 생산하며, 어떠한 목표와 기준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조직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문제는 국가의 소유자가 누구인가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통치의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흥미로운 것은 『안전, 영토, 인구』 강의가 끝난 지 불과 몇 주 뒤인 1978년 4월 25일, 푸코가 일본에서 요시모토 다카아키와 「세계인식을 위한 방법론: 어떻게 맑스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긴 대담을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제목만 본다면 이 대담은 푸코가 마침내 맑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했음을 선언한 문서처럼 보인다. 실제로 푸코는 이 대담에서 맑스주의를 상당히 강한 언어로 비판한다. 그러나 그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 하는지를 조금 더 세밀하게 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우선 맑스의 텍스트를 더 이상 읽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맑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수행했던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분석 전체가 무의미해졌다는 주장도 아니다. 그보다는 맑스주의가 맑스라는 이름을 일종의 진리의 보증으로 만들고, 정치적 실천과 역사의 의미를 그 진리로부터 연역하려는 방식이 중요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맑스의 텍스트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을 판정하는 기준이 되고, 당과 조직이 그 텍스트의 올바른 해석을 독점하며, 지식인이 역사의 필연적인 방향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위치에 서게 될 때, 맑스주의는 단순한 분석의 도구를 넘어 하나의 정치적 진리체제로 작동하게 된다.
이 점에서 1978년의 요시모토 대담은 앞서 살펴본 푸코의 맑스주의에 대한 오랜 불신을 보다 명시적인 형태로 반복한다.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맑스주의의 몇몇 명제가 참인가 거짓인가라는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담론이 스스로를 과학적 진리로 정당화하면서 정치적 조직과 결합할 때, 그 진리가 어떠한 권위와 위계를 만들어내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맑스주의를 정치적 실천의 유일한 진리로 만드는 순간, 그 진리를 해석하는 조직과 지식인의 위치 역시 특권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푸코에게 ‘맑스주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맑스가 제기한 모든 문제를 폐기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오히려 맑스의 이름으로 정치적 실천의 형식과 결과를 미리 보증받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에 가깝다. 어떤 사회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고 선언하거나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회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권력관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조직이 자신을 혁명적이라고 규정하거나 맑스주의적 진리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조직 내부의 위계와 복종의 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16)
이렇게 보면 1978년에 나타나는 두 움직임, 즉 맑스주의로부터의 거리두기와 통치성이라는 새로운 분석틀의 출현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정치의 진리와 정당성을 특정한 이론이나 역사철학으로부터 미리 보증받으려는 태도에 대한 거부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권력이 어떠한 합리성과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행위를 조직하는지를 그 자체로 분석하려는 시도다.
다시 말해 어떤 사회가 자신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는 충분하지 않다. 그 사회가 자본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혁명적인지 반혁명적인지에 대한 자기규정만으로 통치의 성격을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무엇을 통치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있는가, 어떠한 지식이 통치의 판단을 정당화하는가, 어떤 목표와 지표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측정하는가, 통치의 한계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별도로 분석해야 한다.
이것이 통치성이라는 문제틀이 현실사회주의를 분석하는 데 갖는 중요한 의미이기도 하다. 현실사회주의의 문제를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충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잔존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다른 생산관계를 구성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어떤 통치합리성이 형성될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생산수단의 집합적 소유로부터 특정한 행정기술, 계획의 방식, 전문가 지식의 권위, 개인과 집단을 평가하는 정상성의 기준이 자동적으로 연역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통치성의 문제는 앞 절의 권력기술에 대한 분석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앞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근대국가에서 발전한 규율과 생명권력의 기술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통치성의 관점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이 더 추가된다. 그러한 기술들을 선택하고 결합하며 일정한 방향으로 사용하는 통치의 합리성 자체는 무엇인가. 무엇을 사회적 문제라고 규정하고, 무엇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으며, 어떠한 지식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통치성은 단순한 국가운영론과 다르다. 그것은 혁명 이후 어떤 행정부처를 만들 것인가, 계획경제를 어떠한 제도로 운영할 것인가를 직접 처방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제도와 기술을 가능하게 하고 정당화하는 정치적 합리성을 분석하는 개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통치성이라는 문제틀은 사회주의 정치에 더 곤란한 질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폐지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 이전에, 무엇이 통치되어야 하고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하며 어디에서 통치를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를 묻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이론과 사회주의가 자신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은 동일하지 않다.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전략과 그 이후의 국가와 사회를 어떤 합리성에 따라 조직할 것인가 역시 동일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두 질문은 연결될 수밖에 없지만, 하나의 답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답이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맑스주의가 자본주의의 착취와 계급지배를 분석하고 그것을 변혁하는 데 강력한 언어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푸코의 문제설정은 그 다음의 질문을 별도로 제기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를 만들었다면 그 사회에서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할 것인가. 사회적 생산과 분배를 집합적으로 조직한다면, 그 집합적인 조직을 움직이는 지식과 판단, 규범과 개입의 원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통치의 합리성 자체는 어떤 방식으로 제한되고 수정될 수 있는가.
다만 여기에서 마지막 질문들을 곧바로 1978년의 푸코 자신의 질문이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안전, 영토, 인구』의 푸코가 사회주의 통치성의 적극적인 내용을 연구한 것은 아니며, 요시모토와의 대담에서 사회주의 통치의 새로운 원리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지금 제기한 것은 오히려 이 시기의 두 작업을 앞선 현실사회주의 비판과 함께 읽을 때 가능해지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별은 중요하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혁명하는 이론과 그 이후의 사회를 실제로 통치하는 합리성 사이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간극이 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뒤 푸코는 이란에서 기존의 정치적 질서를 거부하는 거대한 봉기와 마주하게 된다. 이란혁명은 그에게 바로 이 간극의 다른 측면, 즉 기존 통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출현하는 문제와 그 이후 새로운 통치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차이를 매우 극적인 형태로 드러내게 된다.
5. 혁명 이후
바로 이 시기에 푸코가 이란혁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통치라는 문제를 새롭게 구성하고, 맑스주의의 정치적 진리체계와 거리를 벌리던 1978년의 푸코에게 이란에서 벌어진 거대한 봉기는 서유럽 좌파에게 익숙했던 혁명의 문법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먼저 푸코가 이란혁명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정확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가 이란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새로운 경제정책의 모델이나 혁명 이후 국가의 구체적인 제도적 청사진이 아니었다. 푸코가 관심을 보인 것은 오히려 기존의 정치적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집합적 봉기의 형식이었다. 그는 샤 정권에 대한 저항이 단순한 이해관계의 결집이나 정당정치의 동원으로 설명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자신을 지배해온 질서 전체에 대해 다른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심은 푸코가 이란혁명을 해석하면서 사용한 ‘정치적 영성’이라는 표현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선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영성이란 단순히 정치에 종교를 결합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푸코가 주목했던 것은 사람들이 정치적 투쟁을 통해 외부의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의 방식까지 변화시키고자 하는 가능성이었다. 정치는 이미 주어진 이해관계를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집합적인 자기변형과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뒤 발견된 1979년 8월의 미공개 인터뷰에서 푸코가 정치적 영성을 ‘타자성에 대한 의지’와 연결하여 설명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란혁명 직후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17)
그렇다고 푸코가 이란에서 발견했던 것을 단순히 하나의 해방적 가능성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의 이란혁명에 대한 판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언어가 봉기의 정치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새로운 권위와 규율의 근거가 될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여성과 성적 관계를 어떻게 재조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푸코는 충분히 민감하지 못했다.
이 비판을 단순한 결과론으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이슬람 공화국이 이후 어떤 체제로 귀결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거의 푸코를 재단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혁명 이전인 1978년 11월, 『누벨 옵세르바퇴르』에는 이란 여성 독자가 푸코의 이란 관련 글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고 푸코는 이에 공개적으로 답변했다. 혁명 직후 여성의 복장과 법적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현실화되면서 이러한 비판은 더욱 강해졌다. 푸코가 종교를 단순한 허위의식이나 전근대적 잔재로 환원하지 않으려 했던 시도 자체와, 종교적 권위가 실제 통치의 장치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분석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18)
따라서 푸코의 이란혁명에 대한 개입을 평가할 때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단순화를 모두 피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그가 처음부터 호메이니의 신정국가나 이후의 이슬람 공화국을 정치적 모델로 지지했다는 식의 해석이다. 푸코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샤 체제에 맞서 등장한 봉기의 정치적 형식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집합적 주체화였다. 다른 하나는 반대로 그가 단지 순수한 봉기의 가능성만을 포착했으며 이후의 문제는 푸코와 무관하다고 정리하는 것이다. 푸코 자신이 그 봉기에 종교적이고 영적인 언어가 갖는 적극적인 정치적 가능성을 부여했던 이상, 그 언어가 실제로 새로운 통치의 권위가 되었을 때 생겨난 문제에서 그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도 없다.
1979년 2월 혁명의 승리와 이슬람 공화국의 형성은 바로 이러한 긴장을 현실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기존의 통치를 거부하는 집합적인 의지는 이제 새로운 법과 행정, 사법제도와 종교적 권위의 형태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혁명의 문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왜 목숨을 걸고 봉기하는가에 머물 수 없었다. 누가 재판할 것인가, 어떤 행위를 처벌할 것인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종교적 권위가 국가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혁명의 적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정할 것인가라는 전혀 다른 질문들이 등장했다.
푸코 역시 이러한 변화를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혁명 이후 이루어진 약식재판과 처형, 새로운 정권 아래서 나타난 인권침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1979년 4월에는 메흐디 바자르간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혁명정부가 자신이 투쟁했던 바로 그 권력의 관행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푸코가 혁명 이후의 억압을 보면서도 끝까지 이슬람 공화국을 무조건 옹호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의 이란 관련 글은 1978년의 기대와 1979년 봄의 비판 사이에서 분명한 긴장을 보여준다. 푸코의 이란 관련 글 목록에서도 바자르간 공개서한은 1979년 4월 14일, 「봉기는 무익한가?」는 5월 11일과 12일 『르몽드』에 발표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푸코는 동시에 자신의 초기 입장을 명시적으로 철회하지도 않았다. 특히 1979년 5월 「봉기는 무익한가?」에서 그가 방어하려 했던 것은 이란의 새 정권이 아니라 봉기라는 사건 자체의 환원 불가능성이었다. 어떤 봉기가 이후 실패하거나 새로운 억압적 체제로 귀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권력 앞에서 목숨을 걸고 일어섰던 사건의 의미까지 소급해서 무효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푸코에게 봉기는 역사적 필연성이나 혁명의 최종적 성공을 통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권력이 완전히 닫아놓은 것처럼 보였던 역사에 주체의 행위가 다시 개입하는 사건이었다.
이 지점은 중요하다. 푸코가 이란혁명에서 끝까지 붙잡으려 했던 것은 특정한 혁명정부의 정당성보다 봉기를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주체화의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후의 억압을 비판하는 것과 이전의 봉기를 무의미한 것으로 선언하는 것은 그에게 같은 일이 아니었다.19)
그렇다면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푸코는 이란혁명에 대한 자신의 초기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정치적 영성이라는 문제 자체를 철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1979년 8월 『누벨 옵세르바퇴르』와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다시 이 문제를 설명하며 종교, 혁명, 자기변형의 관계를 사유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 원고는 기록 속에 남아 있다가 훨씬 뒤에 재발견되었고, 영어 전문이 공개된 것은 2020년에 이르러서였다.
따라서 이란 이후 푸코의 태도를 단순히 ‘철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의 사유 내부에서는 정치적 영성의 문제가 계속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변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적어도 공개적인 정치적 개입이라는 수준에서 보면, 1979년 5월의 「봉기는 무익한가?」 이후 푸코는 더 이상 이란의 정치적 전개를 지속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이란혁명을 둘러싼 그의 적극적인 발언은 여기에서 사실상 멈춘다.20)
이 의미에서 ‘침묵’이라는 표현은 일정한 주의를 전제로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푸코가 자신의 판단을 내면적으로 철회했다거나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입을 닫았다는 심리적인 추측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8월의 미공개 인터뷰는 그러한 단순한 해석과 맞지 않는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침묵은 보다 제한적이고 명확한 의미의 공개적 침묵이다. 푸코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혁명의 후속 과정, 특히 이슬람 공화국이 하나의 구체적인 통치체제로 굳어져가는 과정에 대해 더 이상 공개적인 분석을 전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공개적 침묵은 이 글의 문제의식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푸코는 기존의 통치를 거부하는 순간을 탁월하게 포착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치받지 않으려 하면서 자기 자신과 정치의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주체화의 사건에도 민감했다. 그는 봉기를 이미 결정된 역사적 법칙의 결과로 환원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었던 정치적 주체가 역사에 개입하는 사건으로 사고하려 했다.
그러나 봉기로부터 새로운 통치가 출현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그만큼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혁명적 주체화가 새로운 법과 행정, 사법과 종교적 권위, 정상과 비정상의 새로운 기준을 구성하기 시작할 때, 그것을 어떠한 통치성으로 분석해야 하는가. 새로운 체제가 이전의 억압을 반복하는지 여부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진리와 지식, 어떠한 규범과 주체화의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행위를 이끌기 시작하는가. 그리고 기존 질서의 거부 속에서 등장했던 정치적 영성이 새로운 권위와 복종의 기술로 전환될 때 그것을 어떻게 분석하고 비판할 것인가.
푸코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체계적인 답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침묵을 그가 그러한 질문을 사유할 능력이 없었다는 증거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적어도 푸코가 공개적으로 남긴 이란 관련 작업에서는, 봉기의 정치와 주체화의 문제에 비해 혁명 이후 새로운 통치형식이 구성되는 문제는 현저하게 덜 전개되어 있다. 바로 이 비대칭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푸코의 비판과 이란혁명을 둘러싼 푸코 자신의 작업 사이에는 묘한 대칭과 동시에 중요한 차이가 생긴다. 현실사회주의가 혁명 이후의 문제를 사유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사회주의는 생산과 분배, 교육과 행정, 노동과 사회생활 전체를 조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제도와 통치기술을 만들어냈다. 푸코의 비판은 바로 그 통치가 자신에게 고유한 권력의 형식과 합리성을 충분히 새롭게 발명하지 못하고, 근대 산업사회와 국가가 이미 만들어낸 여러 권력기술을 상당 부분 물려받았다는 데 있었다.
반대로 푸코 자신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그는 기존의 통치질서가 중단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출현하는 순간을 예민하게 사유했지만, 그 이후 공동의 삶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적극적인 통치의 형식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현실사회주의의 곤란이 새로운 사회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면서도 그 조직의 통치합리성을 충분히 문제화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면, 푸코의 곤란은 통치의 거부와 주체화에는 강한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면서도 그 이후 어떤 집합적 통치가 가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훨씬 적은 것을 남겼다는 데 있다.
따라서 둘의 한계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두 공백은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서 만난다. 기존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소유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새로운 공동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통치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통치는 자신이 다시 하나의 고착된 지배형식으로 변해가는 것을 어떻게 문제 삼을 수 있는가.
흥미롭게도 푸코가 이란혁명의 전개를 지켜보고 있던 바로 그 시기, 1979년 1월 31일의 『생명정치의 탄생』 강의에서는 이미 또 다른 문장이 등장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에는 아직 자율적인 통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이었다. 이란혁명이 그 명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현실사회주의에 고유한 통치성의 부재를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영성과 봉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도 그 봉기 이후의 통치에 대해서는 결국 제한된 말만 남겼다는 사실은 푸코 자신의 정치철학이 도달했던 난점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준다.
6. 발명되어야 하는 것
이제 다시 1979년 1월 31일의 『생명정치의 탄생』 강의로 돌아가보자.
푸코는 여기에서 사회주의에는 역사적 합리성과 경제적 합리성, 행정의 합리성이 존재하지만, 자율적인 사회주의 통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앞에서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것이 사회주의에 대한 다소 갑작스럽고 강한 판정처럼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 푸코의 작업을 따라온 뒤 다시 읽으면, 이 짧은 문장은 이전보다 훨씬 두꺼운 의미를 갖게 된다.
1973년의 『형벌사회』에서 푸코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단순히 시장과 소유의 법적 관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석했다. 노동력을 실제 생산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삶의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만들고, 신체를 훈련하고, 습관과 행동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직하는 독자적인 권력기술이 필요했다.
1976년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현실사회주의에 돌려놓았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양식의 변화를 추구했지만, 근대국가와 산업사회가 형성해온 규율과 생명권력의 메커니즘 자체를 충분히 독립적인 문제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 결과 현실사회주의 역시 이미 존재하던 권력의 기술들을 상당 부분 다시 사용하고 재배치하게 되었다.
1978년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는 문제의 수준이 다시 한 번 확장된다. 이제 질문은 개별적인 권력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엇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고, 어떤 지식을 통해 그 대상을 인식하며, 어떤 목적과 기준에 따라 개입하고, 어디에서 통치를 제한할 것인가를 조직하는 보다 넓은 정치적 합리성이 문제로 등장한다. 푸코는 이것을 통치성이라는 이름 아래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을 거친 뒤 1979년의 푸코는 사회주의에 고유한 통치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세 단계가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된 이론적 발전을 이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1973년의 푸코가 이미 사회주의 통치성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작업 내부에서 생산관계와 권력기술을 구분하는 문제, 현실사회주의가 기존의 권력기술을 재사용한다는 문제, 그리고 그러한 기술들을 조직하는 통치합리성을 별도로 분석해야 한다는 문제는 점차 서로 접속하고 있었다. 1979년의 사회주의 통치성에 대한 언급은 이러한 여러 문제들이 만나는 한 지점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통치성이 없다는 진단만이 아니다. 푸코가 사회주의의 이론이나 문헌에서 이미 완성된 통치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사회주의가 어떤 고유한 통치합리성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이름이나 몇몇 원칙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나 계급지배의 폐지라는 원칙만으로는 실제의 통치가 어떤 지식과 기술, 어떤 기준과 자기제한을 가져야 하는지가 결정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같은 강의에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분석은 중요한 비교항을 제공한다.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자유방임의 부활이나 국가축소의 이념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특히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면서 그가 주목한 것은 시장이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국가는 그 시장을 방해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오래된 자유주의적 관념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쟁이라는 원리를 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제도설계와 법적 개입, 정책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는 통치를 포기하는 이념이 아니라 통치의 방식을 다시 구성하는 정치적 합리성으로 나타난다. 시장은 국가가 물러난 자리에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법제와 정책, 경제적 지식과 사회적 개입을 통해 경쟁의 조건을 만들어내고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통치기술과 지식, 개입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구성했다.21)
푸코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시도를 정치적으로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했는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왔다. 그의 강의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정한 호감이나 전략적 관심의 표현으로 읽는 해석도 있고, 그가 단지 새로운 통치합리성의 작동방식을 분석하고 있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이 글에서 이 논쟁을 완전히 판정할 필요는 없다.22) 중요한 것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푸코에게 신자유주의가 흥미로운 분석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단순히 기존의 자유주의를 반복하는 이론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사회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통치의 합리성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려 했다는 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를 향해서도 하나의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야 할 사회를 위한 고유한 통치합리성을 실제로 구성했는가.
물론 이 질문을 그대로 푸코 자신의 명시적인 질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푸코가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통치성을 발명했는데 사회주의는 왜 그러지 못했는가”라는 문장을 직접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푸코가 서로 다른 통치합리성을 분석하는 방식과 사회주의 통치성의 부재에 관한 그의 진단을 함께 읽을 때 이 글이 끌어내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사회주의 통치성의 부재를 단순한 이론적 결핍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을 연다. 문제는 사회주의 이론이 국가나 경제에 관한 충분히 정교한 모델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데만 있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에서 어떠한 인간의 행위를 어떤 지식과 규범을 통해 조직할 것인지, 그 통치의 목적과 한계를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지, 통치받는 사람들이 그 통치 자체를 어떻게 문제 삼고 수정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독자적인 정치적 합리성을 충분히 만들어냈는가 하는 문제다.
이 지점에서 ‘발명’이라는 말의 의미도 보다 분명해진다.
사회주의 통치성은 맑스의 텍스트 어딘가에 완성된 형태로 숨겨져 있어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도덕적 이상으로부터 자동적으로 연역되는 것도 아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한 제도들 가운데 좋은 것만 선별해서 다시 조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생산과 분배, 돌봄과 교육, 사회적 재생산과 공동재를 집합적으로 조직한다는 사회주의의 정치적 방향을 실제 통치의 형식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두 층으로 나뉜다.
하나는 무엇을 사회적으로 통치할 것인가의 문제다. 자본의 사적 축적과 시장경쟁을 사회 전체의 최종적인 조정원리로 두지 않는다면, 생산과 분배, 돌봄과 사회적 재생산의 조건을 어떤 방식으로 집합적인 결정의 대상으로 만들 것인가.
다른 하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집합적인 통치가 다시 새로운 지배의 형식으로 굳어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의 문제다. 계획과 행정, 전문가 지식과 사회적 규범이 필연적으로 일정한 권력효과를 만들어낸다면, 그러한 권력이 자신의 목적과 필요성을 이유로 스스로를 폐쇄하지 못하도록 어떤 장치와 실천을 만들어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이 없다면 통치성은 단순한 민주적 절차나 비지배의 일반론으로 남게 된다. 두 번째 질문이 없다면 사회주의는 다시 생산수단의 소유와 계획의 문제만을 바꾸고, 그 계획과 행정을 실제로 떠받치는 권력관계는 그대로 남겨둘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사회주의 통치성이라는 문제의 특수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단순히 더 민주적인 통치성을 뜻하지 않는다. 자본의 사적 축적과 시장을 사회적 재생산의 최종 원리로 두지 않고, 공동의 생산과 삶의 조건을 집합적인 정치의 대상으로 돌려놓으려는 통치성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은 그 집합적 통치 자체가 새로운 권력의 독점과 정상화, 관료주의와 지식의 폐쇄로 굳어질 가능성을 끊임없이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을 함께 충족시키는 통치성은 푸코의 저작에서 완성된 형태로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질문은 “푸코에게 사회주의 통치성이 무엇이었는가”에서 조금 달라져야 한다.
푸코가 사회주의 통치성의 부재를 지적했다면, 그리고 그 자신도 대안적인 통치의 적극적 형식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의 분석으로부터 무엇을 가져와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이후의 문제다.
7. 푸코가 남긴 재료
그렇다고 해서 이제 푸코의 후기 작업으로 돌아가면 사회주의 통치성에 대한 완성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푸코가 말년에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자기배려와 자기통치, 파레시아와 진실말하기의 문제를 곧바로 사회주의의 정치제도로 번역할 수는 없다. 『주체의 해석학』이나 『자기와 타인의 통치』, 『진리의 용기』 어디에도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분배를 어떻게 계획해야 하는지, 집합적 의사결정을 어떤 제도로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기 푸코를 숨겨진 사회주의 통치성의 이론가로 만드는 것은 그의 작업을 지나치게 멀리 밀어붙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후기 푸코에는 앞에서 제기한 두 번째 질문, 즉 집합적인 통치가 다시 하나의 폐쇄된 지배로 굳어지는 것을 어떻게 문제 삼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재료들이 남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후기 푸코를 정치에서 윤리로 후퇴한 사상가로 읽는 것도, 반대로 그의 윤리적 작업에서 새로운 정치제도의 청사진을 찾아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후기의 여러 작업은 권력과 통치, 자유와 주체화, 진실말하기의 관계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수준에서 다시 문제 삼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는 푸코가 후기의 여러 글과 인터뷰에서 권력관계와 지배상태를 구별한다는 점이다. 1982년 「주체와 권력」에서 푸코는 권력을 어떤 사람이 소유한 물건이나 실체로 정의하지 않는다. 권력은 다른 사람의 가능한 행동에 작용하는 행위의 관계다. 어떤 사람의 행동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단순한 물리적 강제와 달리, 권력관계는 상대방에게 여전히 일정한 행동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성립한다. 바로 이 때문에 푸코에게 권력관계는 자유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주체들의 행동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권력관계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러한 관점은 권력에 대한 문제를 상당히 복잡하게 만든다. 사회에서 모든 권력관계를 제거하는 상태를 상정하는 것은 푸코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둘 이상의 사람이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어떤 공동의 결정을 내리고,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순간 이미 일정한 권력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목표를 권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정의한다면, 집합적 삶을 조직하는 문제는 다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권력관계가 동일하며 모든 형태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푸코는 1984년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자기배려의 윤리」에서 이 문제를 보다 세밀하게 구별한다. 그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전략적 권력관계와, 그러한 권력관계가 장기간 고착되어 사실상 역전될 가능성이 크게 차단된 지배상태를 구별한다. 권력관계는 불균등할 수 있고 비대칭적일 수도 있지만, 그 관계를 구성하는 행위자들이 서로의 행동에 대응하고 관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반면 지배상태에서는 그러한 가능성이 극도로 제한되고, 특정한 권력관계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형태로 고정된다.
이 차이는 이 글의 문제의식에서 중요하다. 사회주의 통치성의 문제를 권력을 제거하는 문제로 설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생산과 분배를 계획하고, 사회적 필요를 판단하며, 공공서비스와 공동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지식의 차이와 역할의 분화, 판단과 결정, 규칙과 제재가 발생한다. 그러한 관계 자체를 모두 권력이라는 이유로 제거한다면 집합적인 통치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러한 권력관계가 어느 순간 특정한 행위자와 지식, 제도에 고착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 관계를 실질적으로 변경할 수 없는 지배상태로 굳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때 후기 푸코가 제시한 또 하나의 구별이 중요해진다. 1984년의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권력의 전략적 관계와 지배상태 사이에 ‘통치의 기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제도와 규칙을 통해 행동 가능성을 조직하는 여러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통치기술을 통해 유동적인 권력관계가 지배상태로 고정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미 고착된 관계를 다시 변화 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이 구별을 사회주의 통치성의 문제와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요한 분석적 단서를 제공한다. 사회주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이 존재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통치기술이 권력관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하고 있는가이다. 계획을 작성하는 전문가의 지식이 어떤 절차를 통해 권위를 획득하는가. 행정적 판단은 누가 검토하고 번복할 수 있는가. 사회적 필요를 측정하는 지표는 누가 만들며, 그 지표에서 포착되지 않는 경험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결정권의 위임이 언제 전문성의 독점으로 바뀌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권력관계를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지배상태로 고착되는 경로를 분석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통치성의 자기교정 가능성을 단순히 ‘민주적인 절차’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선거와 표결, 대표의 교체 가능성은 물론 중요하지만, 푸코적 문제는 그보다 미세한 수준에도 있다. 통치가 사용하는 지식과 범주, 평가기준과 정상성의 척도 자체가 다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통치받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진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정상이며 무엇이 사회적으로 필요한가를 규정하는 방식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가. 권력관계의 가역성은 사람을 교체하는 문제뿐 아니라 통치의 진리와 합리성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해야 한다.23)
바로 여기에서 후기 푸코의 파레시아 연구가 중요해진다.
푸코에게 파레시아는 단순한 표현의 자유나 솔직한 발언을 뜻하지 않는다. 그가 1983년에서 1984년에 집중적으로 분석했던 것은 진실한 명제를 판정하는 기준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는 행위 자체가 어떠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문제였다. 파레시아스트는 자신이 말하는 진실과 자기 자신을 연결하고, 그 말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이 관계 맺고 있는 권력자나 공동체에게 듣기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그러므로 파레시아에서 핵심적인 것은 진실의 내용만이 아니라 진실말하기가 권력관계 안에서 어떠한 위치를 만들어내는가이다.
푸코가 이 문제를 고대 민주주의와 연결해서 분석한 것도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존재한다고 해서 진실말하기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발언할 수 있다는 형식적 권리와, 공동체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말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은 동일하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누가 진실을 말할 자격을 갖는가, 다수의 의견과 진실말하기가 어떻게 충돌하는가, 통치자와 시민이 불편한 진실을 들을 수 있는가라는 고유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파레시아는 민주주의의 단순한 제도적 구성요소라기보다 민주적 정치가 스스로를 교정하기 위해 요구하는 불안정한 진실말하기의 관계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이 문제는 앞에서 현실사회주의에 대해 제기했던 질문과 직접적인 공명을 가진다. 국가관료제나 당, 전문가 집단이 사회에 관한 진리를 자신들의 지식으로 독점할 때, 문제는 단지 다른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부족하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이 사회의 필요이고, 무엇이 발전이며, 어떤 행동이 정상이고 합리적인가를 규정하는 권한 자체가 특정한 위치에 집중된다. 이런 상황에서 파레시아의 문제는 통치받는 사람에게 기존의 통치가 생산하는 진실을 다시 문제 삼을 수 있는 위치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파레시아를 하나의 제도적 해법으로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 위험을 감수하는 용감한 개인의 진실말하기에 사회의 자기교정을 의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안정적인 정치적 원리가 될 수 없다. 실제로 푸코의 파레시아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상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제도적 질서도 자신이 생산하는 진리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으며, 그 질서에 균열을 내는 진실말하기의 가능성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통치성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파레시아를 영웅적인 개인의 덕목으로 제도화하는 일이 아니라, 통치의 진리체제가 외부와 내부의 비판적 말하기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생각하는 것이다.24)
이와 함께 후기 푸코의 자기통치와 자기배려 문제도 다시 볼 수 있다. 이 개념들은 종종 정치에서 물러난 개인의 윤리나 오늘날의 자기계발과 비슷한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푸코가 자기통치를 문제 삼는 맥락은 그런 식으로 환원하기 어렵다. 그에게 자기와 맺는 관계는 타인을 통치하는 방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진리를 받아들이고, 어떤 규범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는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통치의 기술과 관계한다.
따라서 자기통치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읽는다면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잘 관리하는 개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를 외부의 통치기구가 완전히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국가나 당, 전문가나 공동체가 개인에게 무엇이 진정한 필요이고 올바른 삶이며 정상적인 욕망인지를 완전히 대신해서 결정한다면, 집합적 통치는 쉽게 삶 전체에 대한 후견적 통치로 변할 수 있다. 반대로 자기통치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완전히 독립한 자율적 개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과된 정체성과 규범을 다시 문제 삼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구성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뜻에 가깝다.
여기에서 자기통치와 타자통치는 서로 반대되는 두 원리가 아니라 하나의 긴장관계를 이룬다. 누구도 완전히 타인의 통치 바깥에서 살아갈 수 없고, 집합적 삶은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타인을 통치하는 권력이 그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까지 완전히 대체하려 할 때 통치는 쉽게 지배로 고착될 수 있다. 후기 푸코가 자기의 문제를 통치성의 문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후기 푸코에게서 사회주의 통치성에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정치이론을 추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여기에는 서로 연결되는 몇 가지 제한적인 단서가 있을 뿐이다.
첫째, 권력관계 그 자체와 고착된 지배상태를 구별해야 한다. 정치의 목표는 모든 권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완전히 비가역적인 형태로 굳어지는 조건을 문제 삼는 데 있다.
둘째, 권력관계와 지배상태 사이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통치기술을 분석해야 한다. 행정과 계획, 전문지식과 규범이 어떤 방식으로 결정권을 집중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 가능성을 제한하는지 보아야 한다.
셋째, 통치가 자신의 진리와 완전히 동일시되지 않도록 하는 비판과 진실말하기의 가능성이 필요하다. 통치받는 사람은 단지 통치의 대상이나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통치가 사용하는 지식과 규범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집합적 통치가 개인과 집단의 자기관계를 완전히 대체해서는 안 된다. 공동의 필요를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과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욕망, 정체성을 스스로 문제 삼고 구성할 가능성을 보존하는 것은 함께 사유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는 사회주의 통치성의 제도적 모델도 아니고 그것을 구성하기 위한 충분조건도 아니다. 그리고 푸코 자신이 이것들을 사회주의라는 이름 아래 묶은 적도 없다. 이것들은 이 글이 푸코의 후기 작업에서 선택적으로 끌어오는 분석적 재료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재료들은 앞에서 제기한 사회주의 통치성의 두 번째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준다.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을 집합적인 정치의 대상으로 만들면서도, 그렇게 만들어진 통치가 자신의 지식과 목적, 규범과 제도를 절대화하지 못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통치받는 사람이 통치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통치의 합리성 자체를 다시 문제 삼을 수 있으려면 어떠한 정치적 관계가 필요한가. 그리고 집합적으로 조직된 권력관계가 지배상태로 고착되는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고 다시 열어낼 것인가.
푸코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후기의 작업은 사회주의 통치성이 단순히 더 효율적인 계획이나 더 민주적인 행정의 문제에 그칠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사회주의 통치성이 가지는 정당성의 문제는 통치를 그저 잘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치가 자신의 진리와 필요성을 근거로 스스로를 닫아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만약 사회주의 통치성이 발명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권력효과를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돌려놓을 수 있는 통치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8. 사회주의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사회주의 통치성이라는 표현에는 분명한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이 말은 현실사회주의가 만들어낸 여러 통치의 형식을 새로운 이름으로 되풀이하자는 주장처럼 읽힐 수 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 계획과 행정의 확대, 당과 국가를 통한 사회의 조직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사회주의 통치성이라는 식의 오해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 통치성이 사회주의에 적합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기술, 곧 당과 국가가 바람직한 인간형을 규정하고 교육과 문화, 노동규율과 정치적 훈련을 통해 그러한 주체를 생산하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두 번째 위험은 특별히 중요하다. 현실사회주의뿐 아니라 현실사회주의 이후의 여러 좌파운동에서도 정치적 실천은 종종 특정한 인간형의 생산과 결합해왔기 때문이다. 올바른 계급의식, 올바른 정치적 태도, 올바른 감수성이나 품성, 올바른 생활양식이 하나의 정치적 역량을 넘어 사람 자체의 자격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변할 때, 운동은 자신이 요구하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통치장치가 될 수 있다. 어떤 행위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과 그 행위로부터 한 사람의 전체적인 품성이나 정치적 자격을 판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규범은 쉽게 전자에서 후자로 이동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주의 통치성은 사회주의적 인간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구별되어야 한다. 국유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행정기술과도 같지 않으며,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올바른 도덕적 품성을 요구하는 체계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사회모델을 위에서 아래로 구현하는 기술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것을 사회주의 통치성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자기교정 가능성이나 권력의 가역성, 통치받는 사람의 비판 가능성만으로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러한 원칙들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나 급진민주주의, 다양한 자치와 비지배의 정치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사회주의 통치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면 그 통치가 무엇을 정치적 결정의 대상으로 돌려놓으려 하는지에 대한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통치성의 첫 번째 조건은 자본의 사적 축적과 시장경쟁을 사회 전체의 최종적인 조정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생산과 분배, 돌봄과 교육, 주거와 의료, 공동재와 사회적 재생산의 조건을 시장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대신 집합적인 정치적 결정의 대상으로 되돌려놓는 것.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사적 축적의 성공 여부에 종속시키지 않고 공동의 문제로 구성하는 것. 이 방향성이 없다면 사회주의 통치성은 단순히 더 민주적인 통치 일반과 구별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로 현실사회주의의 경험이 보여주었듯, 생산과 재생산의 조건을 집합적인 결정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그 결정이 민주적이고 비지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획은 지식을 필요로 하고, 행정은 판단을 필요로 하며, 분배는 일정한 기준을 필요로 한다. 사회적 필요를 집합적으로 결정한다고 할 때조차 무엇이 필요인지, 어떤 필요가 우선하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판정하는 지식과 권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통치성의 두 번째 조건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권력효과를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완전한 외부를 상정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생산과 분배, 돌봄과 교육을 집합적으로 조직하는 순간 판단과 우선순위, 역할의 분화와 책임, 지식과 결정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권력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순수한 공동체를 가정하는 것은 집합적 삶을 조직하는 정치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통치성의 바깥은 이미 완성된 순수한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통치의 내부에 생겨나는 간극에 가깝다. 통치가 자신을 완전히 닫지 못하게 하는 다른 판단과 다른 지식, 다른 경험의 가능성, 이미 주어진 규칙이 수정될 수 있는 틈, 통치받는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통치의 합리성을 다시 문제 삼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저항은 통치와 완전히 분리된 외부에서 등장하기보다 통치관계 자체의 내부에서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배열하는 실천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편의상 통치성이라는 말을 단수로 사용했지만 현실의 사회는 하나의 통치합리성만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국가행정의 합리성, 시장의 계산, 전문가 지식, 가족의 규범, 공동체의 도덕, 사회운동의 윤리, 개인이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구체적인 장치 안에서 중첩된다. 하나의 사회에서는 자유주의적 통치와 규율적 통치, 복지국가적 관리와 시장적 경쟁, 도덕적 정상화와 자기통치의 기술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통치성을 하나의 새로운 총체적 합리성이 기존의 모든 통치형식을 대체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통치성의 발명은 하나의 중앙원리로 모든 사회적 관계를 통일하는 일이 아니라 생산과 분배, 행정과 돌봄, 지식과 교육, 자기관계와 집합적 결정의 여러 장치들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고, 그 중첩이 만들어내는 권력효과를 계속 정치화하는 작업,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의 통치형식들을 변형시키는 일에 가깝다. 푸코 자신의 신자유주의 분석, 또한 다르도-라발의 새로운 세계 합리성에서의 신자유주의 통치성 모델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어떻게 기존의 여러 장치들과 결합-변형하는지를 살펴본다면, 통치성의 발명은 장치들의 완전한 대체가 아니라 변형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25)
이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 통치성의 자기교정은 단순히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행정적 피드백을 의미하지 않는다. 통치가 사용하고 있는 목표와 기준 자체를 다시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행정이 관료적 전문성의 독점으로 굳어질 때 행정의 판단 자체를 다시 정치의 공간으로 열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생산성이라는 기준이 사회 전체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확장될 때 생산성이 왜 우선적인 기준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의 지식이 통치받는 사람의 경험을 비과학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으로 제거할 때 무엇이 유효한 지식인가를 결정하는 관계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집합적인 의사결정이 특정한 사람들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 때 이미 주어진 절차 안에서 그들의 의견을 조금 더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경험이 정치적으로 말해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절차 자체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자기교정이라는 말조차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자기교정은 통치가 자신의 원래 목적을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해 수단을 수정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적과 문제설정 자체를 다시 열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회적 필요라고 규정했던 것이 특정한 전문가 집단의 판단이었다는 것이 드러날 수도 있고, 해방적인 규범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정상화로 작동했다는 사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필요한 것은 더 효율적인 실행이 아니라 애초의 목표와 기준을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돌려놓는 일이다.
바로 이 점에서 후기 푸코의 파레시아와 자기통치 문제도 다시 의미를 갖는다. 통치받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결정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사람에 그쳐서는 안 된다. 통치가 사용하는 진리와 범주, 문제의 정의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역시 특정한 윤리적 인간형의 자격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비판적이고 올바른 주체만이 발언할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진실말하기가 다시 품성과 자격의 심사로 전환된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정상화 기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주의 통치성이 정치적 주체화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에는 언제나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행동능력이 형성된다. 문제는 그렇게 형성된 주체가 자기 자신을 정치의 최종적인 진실로 만드는 순간이다. 노동자, 민중, 여성, 활동가, 혁명가 등 어떠한 정치적 이름도 투쟁 속에서 강력한 집합적 주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누가 진정한 노동자인지, 누가 올바른 활동가인지, 누가 충분한 품성과 감수성을 갖추었는지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굳어지는 순간 주체화는 정상화의 기술로 이동할 수 있다.
사회주의 통치성은 따라서 주체를 생산하지 않는 통치성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내는 주체형식을 최종적인 것으로 고정하지 않는 통치성이어야 한다. 특정한 정치적 주체화를 가능하게 하되 그 주체가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다른 관계로 이동할 가능성까지 열어놓아야 한다.
푸코의 계보학은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제도와 범주, 주체형식이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사실로부터 어떤 새로운 질서를 선택해야 하는지는 자동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계보학은 가능성을 다시 열어주지만, 그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사회주의 통치성 역시 마찬가지다. 푸코에게서 하나의 완성된 모델을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특정한 사회주의 모델을 역사적 필연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도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사회주의가 하나의 규제적 방향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방향이 어떤 구체적인 제도와 주체, 규범으로 실현될지는 다시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주의 통치성은 완성된 체제명이라기보다 하나의 문제설정에 가깝다.
그 첫 번째 축은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조건을 자본의 사적 축적과 시장경쟁의 결과에 맡기지 않고 집합적인 정치적 결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두 번째 축은 그렇게 만들어진 집합적 통치가 자신의 권력효과와 지식, 규범과 주체형성을 계속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두 축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 집합적 결정의 능력을 지나치게 약화시키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을 실제로 조직할 수 없고, 반대로 집합적 조직의 능력을 절대화하면 행정과 전문가 지식, 조직의 권위가 새로운 지배상태로 굳어질 수 있다. 사회주의 통치성은 이 긴장을 최종적으로 해소하는 원리가 아니라 그 긴장을 계속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통치성이 완전한 외부를 약속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난 순간 모든 권력과 정상화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제도가 수립된 순간 정치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는 자신이 만든 제도와 지식, 규범과 주체화 속에서도 새로운 지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출발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를 약화시키는 주장이 아니다. 반대로 사회주의를 단순한 소유형태나 미래사회의 이름에서 다시 정치적 실천의 문제로 돌려놓는 주장이다.
푸코 자신에게서 이러한 사회주의 통치성의 완성된 형식과 내용을 찾을 수는 없다. 그는 현실사회주의가 자신에게 고유한 통치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어떠한 사회주의 통치성이 가능할지에 대한 적극적인 이론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란혁명 이후의 공개적 침묵은 기존의 통치를 거부하는 정치와 새로운 통치를 구성하는 정치 사이에서 푸코 자신이 남긴 공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푸코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주의는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만을 묻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공동의 문제로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과 분배, 삶의 조건을 집합적으로 조직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동시에 그 조직이 어떤 지식과 규범, 어떤 주체와 권위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지배로 굳어질 때 어떻게 그 관계를 다시 열 것인지 물어야 한다.
만약 사회주의 통치성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완성된 이상사회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이 두 질문을 동시에 포기하지 않는 정치적 실천의 이름일 것이다.
9. 결론: 주권론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딜레마
이 연재에서 다루어온 조르주 바타유,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벤야민과 웬디 브라운,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코는 서로 상당히 다른 철학적 계보에 속한다. 이들의 개념을 하나의 이론으로 종합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돌아보면,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했던 하나의 문제가 있다.
정치는 결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내린 결정을 최종적인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이것이 이 연재에서 ‘주권론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딜레마’라고 부르고자 했던 문제의 한 형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서 다루어온 주권이 하나의 동일한 개념인 것은 아니다. 바타유가 말하는 주권과 국가의 최종적 결정권, 정치공동체의 자기보존 능력을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이 연재가 관심을 가져온 것은 오히려 서로 다른 주권론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하나의 문제, 곧 정치가 자신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 능력이 자기 자신을 절대화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문제였다.
집합적인 정치에는 어떤 형태로든 결정이 필요하다. 무엇을 공동의 문제로 간주할 것인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지, 어떤 규칙을 적용하고 어떤 갈등을 중단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어떠한 정치도 이러한 순간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려진 결정은 제도와 행정, 지식과 규범, 습관과 주체형식으로 번역되어 지속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애초의 결정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관계와는 다른 종류의 권력이 형성된다. 주권의 문제는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이 어떻게 지속되고 반복되며 하나의 정상적인 질서가 되는가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바타유는 이 문제를 자기보존과 유용성의 바깥에서 사유했다. 그에게 주권적인 것은 유용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보존하고 축적하는 삶과 동일하지 않았다. 삶에는 생산과 생존의 목적에 환원되지 않는 소진과 과잉, 낭비와 향유의 순간이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바타유의 주권은 모든 것을 유용한 목적에 종속시키는 질서를 중단시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정치적인 난점도 나타난다. 소진의 순간은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공동의 삶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원리가 되기는 어렵다. 생산과 유용성에 환원되지 않는 삶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시 어떤 조직과 규칙, 결정과 지속성이 필요해진다. 바타유의 주권은 자기보존으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차원을 열어주지만, 그 주권을 어떻게 공동의 정치로 지속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문제다.
에스포지토에게서는 이 문제가 반대편에서 나타난다. 공동체는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 질병과 폭력, 위험과 파괴 앞에서 아무런 면역장치도 갖지 않는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과잉될 때 면역은 자신이 보호하려는 공동체 자체를 침식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위험을 차단하려는 논리가 내부의 차이를 제거하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보호가 구성원들의 삶을 억압하는 자기면역적 반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공동체가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자기보존이 최종적인 정치원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으면서도 그 방어가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다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벤야민과 브라운을 통해 살펴본 좌파 멜랑콜리에서는 이 문제가 시간의 차원에서 다시 나타난다. 정치적 주체는 자신이 속했던 운동, 패배한 역사와 상실된 가능성에 애착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바로 그 상실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보존한다.
이 경우 정치적 실패는 새로운 결정을 요구하는 사건이 아니라 이전의 결정이 여전히 옳았음을 확인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실패한 조직과 언어, 주체형식은 더 이상 실제 정치적 힘을 갖지 못하면서도 비판적 정체성의 대상으로 계속 보존된다. 패배는 자신이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경험이 아니라 세계가 자신을 배반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좌파 멜랑콜리는 과거의 결정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확실성에 대한 애착으로도 읽을 수 있다. 한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누가 정치적 주체인지 알고 있었으며,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확실성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적 결정은 바로 이 확실성을 상실하는 위험을 요구한다.
푸코는 이 문제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질문은 누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가에서, 결정 이후 사람들의 행동이 어떤 지식과 기술을 통해 지속적으로 조직되는가로 이동한다.
이것이 주권의 폐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푸코적 의미의 통치성 역시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며 개입의 대상을 선택하는 결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주권론이 결정의 순간을 강조한다면 통치성의 분석은 그 결정이 일상의 미세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어떠한 지식과 규범, 주체형식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푸코가 이 연재의 마지막에 놓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정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혁명을 결정한 이후, 사회적 소유를 결정한 이후, 공동체를 보호하기로 결정한 이후, 어떤 권력과 지식, 어떤 정상성과 주체가 만들어지는가. 푸코로부터 오는 이러한 질문들 때문에 정치적인 것의 문제를 주권적인 결정만으로 사유하기는 어려워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반대편의 위험도 있다. 주권적 결정의 문제를 통치성의 분석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도 없다. 모든 권력관계를 분석하고, 모든 규범의 배제효과를 드러내고, 모든 주체화의 위험을 비판한다고 해서 무엇을 공동으로 해야 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과 분배를 집합적으로 조직할 것인지, 어떤 영역을 시장의 조정에서 빼낼 것인지, 공동의 자원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어떤 위험을 함께 부담할 것인지는 결국 결정해야 한다. 권력의 효과를 분석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결정을 무한히 유보한다면 정치는 자신의 조직능력을 잃는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딜레마는 두 방향으로 존재한다.
한편에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정치가 있다. 모든 결정이 새로운 권력을 만들고 모든 규범이 누군가를 배제할 가능성을 갖는다는 이유로 결정을 끝없이 유예하는 정치다. 이런 정치는 비판에는 강할 수 있지만 공동의 삶을 조직하기 어렵다.
다른 한편에는 자신이 내린 결정을 다시 열 수 없는 정치가 있다. 혁명과 사회주의, 공동체와 안전, 책임과 역사적 필연성의 이름으로 이미 내려진 결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보증하는 정치다. 이런 정치는 강한 조직능력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조직 자체가 새로운 지배로 굳어지는 순간을 인식하기 어렵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은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제거할 수 없다.
정치에는 결단이 필요하지만 그 결단은 신성화되어서는 안 된다. 권한은 행사되어야 하지만 그 권한은 다시 회수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은 존재해야 하지만 책임이라는 말이 다른 가능성을 닫는 명령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는 자신을 보호해야 하지만 자기보존이 모든 정치적 판단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명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규범은 필요하지만 그 규범이 만들어내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다시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주체는 형성되어야 하지만 그 주체가 자기 자신을 정치적 진리의 최종적인 담지자로 만들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사회주의 통치성의 문제도 다시 주권의 문제와 만난다. 사회주의는 생산과 분배, 돌봄과 교육, 공동재와 사회적 재생산을 집합적으로 조직하려는 정치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에는 결정의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시장에 맡기지 않을 것인지, 어떤 필요를 공동으로 보장할 것인지, 사회적 자원을 어떤 원칙으로 배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자신의 결정이 만들어내는 권력효과를 심각하게 문제 삼아야 한다. 집합적인 결정은 그 자체로 민주적인 것도 해방적인 것도 아니다. 계획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고, 전문성은 지식의 비대칭을 만든다. 행정은 지속성을 필요로 하고, 지속성은 관료화를 낳을 수 있다. 분배에는 기준이 필요하고, 기준은 정상성과 가치의 위계를 만든다. 공동체는 연대를 필요로 하고, 연대는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인가를 판정하는 경계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문제는 주권적 결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을 통치의 과정 속에서 다시 정치화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어떤 결정도 한번 민주적으로 내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이후의 효과에 대한 책임에서 면제될 수 없다. 어떤 전문가 지식도 사회적 필요를 정확하게 대변한다는 이유만으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어떤 정치적 주체도 역사적 억압을 대표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권력관계를 비판받지 않을 권리를 얻을 수 없다. 이것은 정치적 결정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정을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와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바타유, 에스포지토, 벤야민과 브라운, 푸코가 다시 만난다. 이들이 하나의 해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작업은 정치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통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반전시킬 수 있는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생산과 유용성의 질서는 삶을 조직하려다 삶 전체를 생산성에 종속시킬 수 있다(바타유).
공동체의 보호는 삶을 지키려다 자신이 보호하려는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에스포지토).
패배의 기억은 실패를 보존하려다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브라운).
해방을 위한 집합적 통치는 공동의 삶을 조직하려다 새로운 지배의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푸코).
정치는 삶을 지나치게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바타유).
공동체는 자신을 지나치게 보호할 수 있다(에스포지토).
운동은 자신의 패배를 지나치게 사랑할 수 있다(브라운).
통치는 자신의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할 수 있다(푸코).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의 문제는 이러한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완벽한 제도를 발명하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제도를 상정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어떤 최종적인 정치형식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반전과 실패의 형태를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돌려놓을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생산성의 질서가 삶을 질식시킨다면 생산성 자체를 다시 물을 수 있는가. 공동체의 보호가 구성원을 위협한다면 보호의 범위와 목적을 다시 결정할 수 있는가. 과거의 정치적 정체성이 새로운 행동을 막는다면 그 정체성을 놓을 수 있는가. 집합적인 통치가 특정한 지식과 주체에게 권력을 고정시킨다면 그 통치의 원리 자체를 다시 열 수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사회주의 통치성은 더 이상 주권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주의적 주권이 어떻게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주권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가깝다. 여기에서 비주권화란 결정의 능력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결정의 최종성을 철회하고, 결정권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는가 자체를 다시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26)
공동의 삶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면서도 그 결정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 자기보존의 능력을 가지면서도 자기보존을 최고의 정치원리로 만들지 않는 것. 강한 집합적 주체를 형성하면서도 그 주체를 영원한 정치적 본질로 만들지 않는 것. 실패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그 실패에 자신의 정체성을 묶어두지 않는 것. 통치하면서도 자신이 통치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통치받는 사람들의 정치적 문제로 돌려놓는 것.
여기에 주권론을 둘러싼 정치적인 것의 딜레마가 있다.
정치는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 살아 있는 한 그 결정은 다시 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 통치성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모순을 해결한 완성된 체제의 이름이 아니라 이 모순을 제거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 정치의 이름일 것이다.
각주
1) Michel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8-1979, éd. Michel Senellart, Paris, Gallimard/Seuil, 2004, pp. 93–95. 푸코는 여기서 사회주의에 고유한 통치합리성이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회주의 통치성이 사회주의 문헌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2) Michel Foucault, « Entretien avec Michel Foucault », Dits et écrits II, 1976-1988, éd. Daniel Defert et François Ewald, avec la collaboration de Jacques Lagrange, Paris, Gallimard, coll. « Quarto », 2001, no 281, pp. 867–869. 이 회고에서 푸코는 니체와 바타유가 당시 자신에게 공산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기보다 공산주의에 기대했던 급진적 단절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3) 푸코가 자신의 공산당 경험과 폴란드 체류를 회고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Michel Foucault, « Entretien avec Michel Foucault », Dits et écrits II, no 281, pp. 860–914를 참조. 이 회고는 당대 사건에 대한 동시기 기록이라기보다 푸코가 훗날 구성한 정치적 자기서사라는 점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4) 튀니지와 뱅센 경험에 대한 푸코의 회고는 Michel Foucault, « Entretien avec Michel Foucault », Dits et écrits II, no 281, pp. 860–914를 참조. 푸코는 튀니지 학생운동의 위험을 감수한 실천과 프랑스 급진좌파 내부에서 반복되는 조직적 위계의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경험에서 중요한 계기로 서술한다.
5)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Paris, Gallimard, 1966, p. 274. 푸코는 이 대목에서 맑스주의가 19세기의 사유 안에서 ‘물고기가 물속에 존재하듯’ 존재한다고 표현한다.
6) Michel Foucault, « Entretien sur la prison : le livre et sa méthode », Dits et écrits I, 1954-1975, éd. Daniel Defert et François Ewald, avec la collaboration de Jacques Lagrange, Paris, Gallimard, coll. « Quarto », 2001, no 156, pp. 1620–1621. 푸코는 여기서 맑스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고 사용한다고 말하며, 물리학자가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사용할 때마다 인용 표시를 하지 않는 것에 비유한다.
7) Michel Foucault,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voir.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0-1971, suivi de Le savoir d’Œdipe, éd. Daniel Defert, Paris, Gallimard/Seuil, 2011, pp. 103–135. 이 구간에서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척도, 화폐, 부채, 토지, 분배와 진리형식의 관계를 분석한다.
8) Michel Foucault,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éd. Bernard E. Harcourt, Paris, EHESS/Gallimard/Seuil, 2015, 특히 1971년 11월 24일부터 1972년 1월 19일까지의 강의를 참조. 이 강의들에서 푸코는 누피에 반란의 진압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법적 국가장치와 억압체계의 형성을 추적하며, 법적 질서 자체를 투쟁의 형식 속에서 분석한다.
9) Karl Marx,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 1, trans. Ben Fowkes, Penguin, 1976, Part VIII, 특히 chs. 26–28. 맑스는 시초축적을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폭력적 분리, 토지로부터의 추방, 부랑자 처벌과 임금노동 규율의 형성 과정으로 분석한다.
10) Michel Foucault, La Société punitiv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2-1973, éd. Bernard E. Harcourt, Paris, EHESS/Gallimard/Seuil, 2013, pp. 233–236, 특히 p. 236. 마지막 강의에서 푸코는 삶의 시간을 노동력으로, 노동력을 생산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격리와 규율의 권력구조가 갖는 구성적 역할을 명시적으로 논한다.
11) Michel Foucault, «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 Dits et écrits I, no 139, pp. 1406–1491, 특히 pp. 1406–1408, 1489–1490. 첫 강연의 ‘아카데믹 맑스주의’ 비판과 마지막 부분의 노동시간, 노동력, 하위권력에 관한 논의를 함께 참조.
12) Michel Foucault, 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Paris, Gallimard, 1975, p. 257. 푸코는 자본의 축적과 인간의 축적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규율기술과 생산장치의 확대가 상호 조건이 되었음을 논한다.
13) 이 시기 푸코와 맑스의 관계, 특히 『형벌사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Stuart Elden, “A More Marxist Foucault? Reading La société punitive,” Historical Materialism, Vol. 23, No. 4, 2015, pp. 149–168, DOI: 10.1163/1569206X-12341438을 참조.
14) Michel Foucault, «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5-1976, éd. Mauro Bertani et Alessandro Fontana, sous la direction de François Ewald et Alessandro Fontana, Paris, Gallimard/Seuil, 1997, leçon du 17 mars 1976, pp. 232–234. 푸코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산업국가에서 형성된 권력메커니즘과 생명권력의 문제를 충분히 비판하지 못했으며, 소련형 국가에서 정신질환자, 범죄자, 정치적 적대자를 다루는 방식에도 진화론적 인종주의가 재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5) Michel Foucault, 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7-1978, éd. Michel Senellart, Paris, Gallimard/Seuil, 2004, leçon du 1er février 1978, 특히 pp. 111–112. 이 강의에서 푸코는 안전장치에 대한 분석을 ‘통치성’의 문제로 전환하며 통치의 대상, 지식, 장치와 합리성의 계보를 제시한다.
16) Michel Foucault, « Méthodologie pour la connaissance du monde : comment se débarrasser du marxisme », Dits et écrits II, no 235, pp. 595–618. 이 대담은 1978년 4월 25일 이루어졌고 같은 해 7월 일본 잡지 Umi에 처음 실렸다.
17) Michel Foucault, « À quoi rêvent les Iraniens ? », Dits et écrits II, no 245, pp. 688–694. 푸코가 이란의 봉기를 ‘정치적 영성’의 문제와 연결하는 대표적인 글이다.
18) Atoussa H., “An Iranian Woman Writes,” in Janet Afary and Kevin B. Anderson, Foucault and the Iranian Revolution: Gender and the Seductions of Islamism,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5, pp. 209–210; Michel Foucault, « Réponse de Michel Foucault à une lectrice iranienne », Dits et écrits II, no 251, p. 708. 이 비판은 혁명 이후의 결과를 소급한 것이 아니라 1978년 11월 푸코의 이란 보도와 거의 동시적으로 제기되었다.
19) Michel Foucault, « Lettre ouverte à Mehdi Bazargan », Dits et écrits II, pp. 780–782; Michel Foucault, « Inutile de se soulever ? », Dits et écrits II, pp. 790–794. 전자는 혁명 이후의 처형과 인권침해를 비판하고, 후자는 이후의 체제가 봉기의 사건적 의미를 소급하여 무효화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20) Michel Foucault, “Political Spirituality as the Will for Alterity: An Interview with the Nouvel Observateur,” Critical Inquiry, Vol. 47, No. 1, 2020, pp. 121–134, DOI: 10.1086/711138; Sabina Vaccarino Bremner, “Introduction,” ibid., pp. 115–120. 1979년 8월 이루어진 이 인터뷰는 푸코 생전에는 공개되지 않았고, 2020년에 영어 전문이 출판되었다.
21) Michel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특히 p. 124, pp. 154–155. 푸코는 질서자유주의에서 경쟁을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적극적인 통치정책에 의해 구성되어야 하는 원리로 분석하며,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사회를 ‘기업사회’의 방향에서 설명한다.
22) 푸코의 신자유주의 강의를 둘러싼 대표적인 논쟁으로는 Michael C. Behrent, “Liberalism without Humanism: Michel Foucault and the Free-Market Creed, 1976–1979,” Modern Intellectual History, Vol. 6, No. 3, 2009, pp. 539–568, DOI: 10.1017/S1479244309990175; Jason Read, “A Genealogy of Homo-Economicus: Neoliberalism and the Production of Subjectivity,” Foucault Studies, No. 6, 2009, pp. 25–36, DOI: 10.22439/fs.v0i0.2465를 참조.
23) Michel Foucault, « Le sujet et le pouvoir », Dits et écrits II, pp. 1041–1062, 특히 pp. 1054–1057; Michel Foucault, « 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 Dits et écrits II, pp. 1527–1548, 특히 pp. 1529–1530, 1538, 1547. 후기 푸코는 자유를 권력관계의 조건으로 설명하고, 전략적 권력관계와 통치기술, 고착된 지배상태를 구별한다.
24) 파레시아에 관한 후기 강의로는 Michel Foucault,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2-1983, éd. Frédéric Gros, Paris, Gallimard/Seuil, 2008; Michel Foucault, Le Courage de la vérité.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II.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83-1984, éd. Frédéric Gros, Paris, Gallimard/Seuil, 2009를 참조. 푸코는 파레시아를 단순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권력관계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실천으로 분석한다.
25) Michel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특히 p. 124, pp. 154–155; Pierre Dardot and Christian Laval, The New Way of the World: On Neoliberal Society, trans. Gregory Elliott, Verso, 2014. 다르도와 라발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시장방임이 아니라 경쟁과 기업의 규범을 제도와 주체화 전반에 확장하는 ‘새로운 세계 합리성’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통치성의 ‘발명’을 기존 장치의 전면적 폐기보다 장치들의 재접합과 변형으로 읽는 것은 이 글의 해석이다.
26) 여기에서 “비주권화”는 바타유나 푸코가 이 의미로 직접 사용한 개념이 아니라, 이 연재가 앞선 논의를 종합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는 결정 자체의 폐기나 무권력 상태를 뜻하지 않고, 결정의 최종성과 결정권 배치의 고착을 다시 정치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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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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