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가 해법
: 팔레스타인 사회학자 모하메드 바미예와 이스라엘 정치학자 유리 고든의 대담
모하메드 바미예(Mohammed Bamyeh) · 유리 고든(Uri Gordon)
번역: 박기형(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일러두기]
이 소책자는 The No State Solution: A Dialogue with Palestinian sociologist Mohammed Bamyeh & Israeli political scientist Uri Gordon을 녹취한 것이다. 이 행사는 2024년 1월 22일 이른바 점령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에 있는, 양도된 적 없는 레쿵언(Lekwungen) 영토에서 실시간으로 열리고 녹화되었다. 문법상 오류 몇 곳은 바로잡았지만, 연사들의 원래 녹취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Shuli Branson, No State Solution (2023)과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옮긴이의 말]
이 글은 2024년 1월 22일에 열린 공개 대담의 녹취 전사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2024년 5월 27일 The Anarchist Libaray에 게시된, 주최측인 ANVI가 펴낸 소책자(zine)를 기준으로 하였다. 굵은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강조한 것들이다. 옮긴이가 보충한 부분은 []로 표시하였다.
*대담 영상: https://youtu.be/9sgAB74HjFE?si=DoN0w7mXZkkacz_S
**원문 출처: https://anarchistnetwork.info/wp-content/uploads/2024/05/ANVI-NoStateSolution.pdf
사회자:
팔레스타인 사회학자 모하메드 바미예와 이스라엘 정치학자 유리 고든을 모시고 나누는 오늘 대담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유리 고든 선생님은 영국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 행사를 개최해주신 제이슨과 선셋 랩스(Sunset Labs)에 감사드립니다. 행사 준비에 도움을 주신 카마스 북스(Camas Books), 빅토리아대학교 아나키스트 아카이브(University of Victoria’s Anarchist Archive), ANVI에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지금 송히스(Songhees) 네이션과 에스콰이몰트(Esquimalt) 네이션이라는 두 원주민 집단으로 대표되는 레쿵언(Lekwungen) 사람들의 고유 영토 안에서, 조개가 서식하는 작은 만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 행사를 열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 땅에는 한때 원시림(old-growth forests)과 초원이 있었고, 원주민들은 그곳에서 꽃을 피우는 카마스 식물을 길렀습니다. 이 식물의 알뿌리는 중요한 식량원입니다. 백인우월주의와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힘입어 진행된 식민화는 송히스 네이션과 에스콰이몰트 네이션에게서 땅과 문화를 빼앗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이에 맞서 우리는 송히스 네이션과 에스콰이몰트 네이션의 저항과 회복력, 문화적 부흥에 연대하며, 이곳과 세계 곳곳에서 식민주의적 폭력의 구조를 저지하고 탈식민화를 촉진하는 데 다시 한번 헌신할 것을 다짐합니다.
피츠버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모하메드 바미예는 『질서로서의 아나키: 시민적 인류애의 역사와 미래』(Anarchy as Order: The History and Future of Civic Humanity)의 저자입니다. 『살아 숨쉬는 아나키!: 실천에서 이론으로 나아가는 반-권위주의 정치』(Anarchy Alive!: Anti-Authoritarian Politics from Practice to Theory)의 저자인 유리 고든 박사는 현재 영국에 거주하는 독립 연구자입니다. 모하메드와 유리,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에는 하나의 국가, 곧 이스라엘 국가가 존재합니다. 이 국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모하메드 바미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제시되어 온 해법들에 관해서라면, 도덕적으로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여러 해법이 제시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 비록 실행 가능하지 않을지라도 현 상태, 곧 점령(occupation)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상적인 해법은 아니고, 지금으로서는 실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령보다는 낫습니다.
그보다 더 나은 것은 한 국가 해법(one-state solution)입니다. 한 국가 해법은 실제로 우리가 이미 처해 있는 현실에 맞춘 해법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지금으로서는 실행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무국가 해법(No State Solution)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앞서 말한 두 해법보다 더 낫습니다. 그러니까 선호하는 순위가 있는 셈입니다. 제가 무국가 해법을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 다른 어떤 해법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 지금처럼 우리가 제노사이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제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선호하는 순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두 국가 해법이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형태의 구조라는 외피 아래 식민주의적 상황이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국가 해법은 국가중심적 해법이고,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외교적·국제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해법이 실현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정착촌 정책입니다. 이를 [정착촌이 이미 현실로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 중 하나를 해야 합니다. 양측의 주민들을 대규모로 추방하거나, 두 국가를 두되 각 국가가 자국 시민 가운데 상당수가 다른 공동체 출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후자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상황에 비해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방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이런 해법[두 국가 해법]조차 그 어떤 이스라엘 정부도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네타냐후[정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슬로 협정(Oslo Accords)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에도 두 국가 해법은 최종적인 해결책으로 공식 인정된 적이 없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국가입니다. 비민주적인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이 국가가 통제하는 영토에 사는 인구의 절반은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국가 해법을 옹호할 때, 자유주의적·민주주의적 원칙을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물론 한 국가 해법도 또 다른 장애물에 부딪힙니다. 유대인의 고향 땅이라는 시온주의의 근본적인 이미지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국가 해법을 말할 때, 저는 우리가 공상에 불과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도 아닙니다. 지금 제시되는 해법들이 현실적이라고 주장되고 있지만, 사실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존 현실 너머를 바라봐야 합니다.
유리 고든:
[모하메드의 견해에] 이번에도 크게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다만] 일종의 절충안으로 국가연합이라는 구상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방안 역시 다른 외교적 해법들보다 실행 가능성이 더 높거나 낮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두 국가가 연합하는 방식이죠. 각국 시민이 상대 국가의 영토에도 거주할 수 있고, 자신이 시민권을 가진 국가에서는 의회 선거에, 다른 국가에서는 지방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난민들을 이른바 ‘48년 이스라엘’(48 Israel)[1]에 받아들일 수 있고, 정착민들도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요르단을 포함하는 세 국가 연합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예루살렘을 국제 구역으로 만들어 유엔 본부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방안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모두 그럴듯한 외교적 해법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실행할 정치적 의지가 없습니다. 현장의 불균형과 불평등, 비대칭성을 바로잡는 것을 뜻하게 될 어떤 상황을 이스라엘이 받아들이도록 초강대국들이 압력을 가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국가 해법도 다른 두 해법에 못지않게 그럴듯하다는 모하메드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해법이든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게 무국가 해법은 하나의 지평입니다. 현장의 사회관계를 탈식민화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유일한 지평입니다.
왜냐하면 한 국가 해법이 실현되더라도 그 국가는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일 테고,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어떤 분할선에 따라 구획된, 일종의 두 민족으로 이루어진(bi-national) 계급사회로 상상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지금은 무언가 아주 긍정적인 것을 상상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다시 당장의 필요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우선 멈추고, 가자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적어도 견딜 만한 수준에 이르게 하는 일 말입니다.
사회자: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집단적 해방(collective liberation)은 어떤 모습일까요?
유리 고든:
집단적 해방이 어떤 것이냐고요? 글쎄요, 국경을 걷어내고, 무기를 파괴하고, 돈을 모조리 없애고, 계급 없는 사회를 이루고, 가부장제를 폐지하는 것, 그 밖에 온갖 좋은 것들이겠죠. 그러니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은 궁극적으로 사회문제(social question)의 해법과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유토피아적 지평(utopian horizon)이죠. 그렇지 않나요?
지금 시점에서 그러한 지평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반-국민주의(anti-national)·반-파시스트(anti-fascist) 전선에서 우리가 조직활동을 하는 방식에도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에 수평적 구조들을 갖추려는 시도에도 방향을 제시하죠. 그 시도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 속에서 가능한 한 [그 지평을] 예표(豫表, prefigure)하거나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것입니다.
집단적 해방은 어디서나 다른 모습이지만,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는 어디서나 같은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것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기에,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일상적인 노력 속에서 그 비전의 편린 같은 것들을 엿보는 정도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인권의 차원이나 심지어 인도주의의 차원에서 노력한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모하메드 바미예:
그 점에 대해서는 유리와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상상하고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해방(emancipation)의 한 형태는, 억압과 그에 맞선 저항 때문에 우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어 버린 국민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에 대한 헌신(commitment)[달리 말해, 무언가를 고수하려는 태도]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갈등 상황에 놓여 있고, 국민성(nationality)을 기준으로 권리가 부정되거나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의 국민됨(nationhood)에 바치는 헌신이 오히려 배가되고, 권리는 국민성에 따라—오직 국민성에 따라서만— 부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헌신 역시 배가됩니다.
이상적인 해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국민주의(nationalism)에 대한 헌신에서 거리를 둘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국민주의에 대한 이러한 애착(attachment)을 낳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948년 이전에도 이를 위한 역사적 시도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중동이라는 더 넓은 지역을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이 지역이 실제로 제대로 기능했던 유일한 시기는 국경이 개방되어 있거나 [국경에 따른 제한이] 최소한에 그쳤던 때, 그래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이는] 유대인 공동체가 이 지역의 자연스러운 구성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던 때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라크, 이집트, 예멘,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말입니다. 유대인 공동체들은 여러 아랍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살아왔고, 비교적 잘 지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은 식민주의가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산물들, 곧 이 지역의 국가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끝나갔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국가들은 모두 실패작임이 드러났습니다. 이 국가들이 이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패권을 놓고 다투는 것뿐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도, 통치자들이 이해하는 국가의 논리가 원래 그렇다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에게 정당성(legitimacy)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아는 국가들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 국가들은 적을 고안해냄(constructing)으로써 정당성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다시 각 국가가 공동의 정체성이라는 기치 아래 외부의 적에 맞서 주민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해방은 식민주의적 과정을 거쳐 이 지역에 이식된 근대적 통치와 근대적 폭력이라는 속박(straitjacket)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는 것입니다. 식민주의의 유산을 제거하는 일은 팔레스타인에서 특히 시급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 전체에서도 시급합니다.
사회자:
모하메드, 선생님께서는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상호의무, 연대, 신뢰로 이루어진 아나키적 체계들을 만들어왔으며, 이러한 체계가 우리의 집단적 안녕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종족 갈등을 끝내기 위해 이러한 가치들을 동원할 길이 있다고 보십니까?
모하메드 바미예: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경험에서 중요한 점 하나는 팔레스타인 사회가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뒤에도 계속 존재했고, 1948년 이후에는 디아스포라에서도 존속했다는 사실입니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난민캠프에서 자기 자신을 재창조했고, 디아스포라에 처한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회는 이미 지니고 있던 사회적 전통에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하면서 스스로를 재구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등지의 난민캠프를 살펴보세요. 1948년부터 1960년대 말, 그리고 그 이후까지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살펴보면, 커다란 도움이 된 요인 하나는 상호부조와 지원, 관대함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의 마을 문화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난민캠프에서는 재산권이 비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아무런 문서도 없었고, 어떤 증명서도 없었으며,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알려주는 정부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나디아 하지(Nadya Hajj) 같은 연구자들은 전통문화와 전통적 유대가 어떻게 정부나 그 어떤 집행 장치도 없는 극도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사회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했는지를 기록하는 연구를 많이 해왔습니다.
물론 그러한 전통만이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난민캠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이러한 전통은 이전보다 더 자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1960년대 말에 다른 문화, 곧 혁명문화가 합류하는 가운데서도 모든 이들이 서로 인정하는 전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난민캠프들을 가로질러 활동하는 근대적인 혁명조직입니다. 이 조직들은 유력 가문 출신인지에 좌우되지 않는 지도력의 원칙을 내세웠고, 대체로 능력주의를 따랐으며, 여러 난민캠프에 걸쳐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혁명문화는 난민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마을 문화와 나란히 살아 있었습니다.
저는 사회적 전통만으로 종족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런 기대는 사회적 전통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전통이 [실제로] 하는 일도 아닙니다. 사회적 전통이 하는 일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사회가 존속하도록, 연대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령 가자에서는 오늘날의 고난이 아니라 10월 7일보다 수십 년 앞선 때부터 겪어온 고난을 거치며 확대가족(extended family) 제도가 훨씬 강해졌습니다. 이는 주민들이 살아남는 데 바로 그 제도가 더욱 긴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확대가족이라는 사회제도는 고난이 심해질수록 그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그러한 고난은 사회의 다른 모든 상호부조 제도까지도 가동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는 근대적인 혁명조직의 창설도 포함됩니다. 그 조직들 역시 사회서비스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가족 제도는 줄곧 거기에 존재해왔고, 고난이라는 조건은 그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헌신을 [달리 말해, 그 제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하여 사실 이러한 전통을 이야기할 때,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때로는 이런 전통이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길러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성이 난데없이 생겨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 의지하도록 도와주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 보수성은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사회자:
유리, 선생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침입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한 연대활동에 참여해오셨습니다. 이스라엘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도 그러한 활동의 하나입니다. 그 밖에 어떤 활동들이 있는지, 또 그러한 활동들이 어떻게 국가의 지배를 교란하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유리 고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상황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만한 활동이 많았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지난 10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병역거부자 지원단체인 뉴 프로파일(New Profile)에 복무 거부나 회피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청년들의 전화가 수백 통 걸려 왔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공개적인 병역거부만큼이나 이른바 ‘회색 병역거부(gray refusal)’[2]도 지원합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되는 조짐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는 훨씬 더 가혹하게 탄압받거나, 아예 시위 자체가 열리지 못하도록 저지당했습니다. 어제는 텔아비브 중심가에서 수십 명이 시위를 벌였고, 다섯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 시위는 제노사이드와 전쟁에 반대하는, 명시적으로 그런 성격을 띤 시위였습니다. 인질들의 귀환을 명분으로 내세웠거나, 기껏해야 네타냐후 정부에 맞선 시민 봉기를 다시 불 붙이려던 앞선 시위들과는 달랐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이 현장에 참여하는 동행 및 감시 활동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고통을 겪고 있는 서안지구, 그 가운데서도 남부 헤브론 구릉지대(South Hebron Hills)와 요르단 계곡(Jordan Valley) 일대에서 이러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20년 전쯤 존재했다고 할 만한 이스라엘의 급진좌파는 지금 훨씬 약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고무적이라고 할 만한 활동을 많이 꼽을 수도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동 투쟁 네트워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점에서 우리는 정말 최저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무국가 해법을 생각하고 논의할 때, 우리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모델로 떠오르는 것은 시리아 민주평의회(Syrian Democratic Council)와 로자바(Rojava)로도 알려진 북·동시리아 자치행정부(Autonomous Administration of North and East Syria)입니다. 이는 분권화된 자치 구역들로 이루어진 다민족·다당제 연합체로, 지역 차원에서 자치를 주장하며 유기적으로 확산해왔습니다. 이 사례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모하메드 바미예:
아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동안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고, 저는 이를 현재 진행 중인 실험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모든 실험이 그렇듯 실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그 실수에서 배우기를 바랍니다.
로자바에 관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외부 세계가 로자바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둘째는 로자바가 이른바 아랍의 봄(Arab Spring)이라 부르는 것에 속하는 다른 운동들과 어떻게 공명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로자바를 쿠르드족의 실험으로 재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묘사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영화 제작자들이 그곳에 가서 쿠르드인들은 훌륭하고 아랍인들은 나쁘다는 식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묘사에는 어느 정도 자유주의적 인종주의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로자바의 정신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묘사는 단지 [로자바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준-아나키즘적 실험(quasi-anarchist experiment)에 일종의 종족적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로자바의 현실뿐 아니라 로자바의 전제 자체를 왜곡합니다.
둘째, 로자바는 아무런 배경 없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전통에 어느 정도의 조직 역량이 더해져 나온 것입니다. 실제로 이 지역 전체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로자바의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1년과 2019년의 아랍의 봄 운동들을 보면, 제가 ‘반란에 관한 아나키즘적 방법(an anarchist method of rebellion)’이라고 불러온 것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회적 전통에 깊이 배어 있는 듯합니다. 이 운동들은 중앙에서 조직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이끌어줄 정당을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지도부에도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대신 수평적 조정(horizontal coordination)과 상부상조(mutual help), 그리고 운동의 기예로서의 자생성(spontaneity)에 의존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들은 바로 그러한 특징 때문에 비판을 받았습니다. 성과나 결과를 보고 싶어 했던 논평가들은 아랍의 봄 운동들이 조직의 부재 때문에, 아나키즘 때문에 모두 실패했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학적으로 제게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봉기에 참여한 보통 사람들이 조직이나 지도부, 그와 같은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 곧 통치받지 않는 것(not being governed)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혁명의 한가운데, 그 열기 속에 있을 때가 바로 통치받지 않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그 경험을 즐기고, 혁명 이후에 올 사회의 조건이 되기를 [그래서 그것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아랍 봉기를 일으킨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 아나키즘에 관한 책을 읽었다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아나키즘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언제나 사회적 전통의 일부였던, 몸에 배어 있던 유기적 아나키즘(organic anarchism)에 가깝습니다. 이 아나키즘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와 상반되는 다른 전통들과 함께 존재해왔습니다.
한편으로 보통 사람들은 마을에서 자발적이고 연대에 기초하며 즐거움을 주는 사회적 활동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로 그 사람들이 나라 전체가 계몽 전제정(enlightened despotism) 아래 놓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되는 두 충동이 같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랍의 봄을 이전의 혁명운동들과 비교해보면, 이전 운동들은 유기적 아나키즘과 거의 관계가 없는 다른 성격을 띠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 전체에서 일종의 학습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 과정은 직관적인 성격을 띱니다. 조직된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을 겪는 사람들 스스로도 그것을 학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 해방을 위한 시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그러한 방식에 대한 판단도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혁명에는 카리스마적 지도부가 있었지만, 최근의 혁명에는 그런 지도부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그런 방식을 시도해봤고, 카리스마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같은 마음속에서 해방을 위한 또 다른 묘책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로자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다른 무엇과도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한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로자바는 이 지역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 폭넓은 정서가 표현된 사례로 보입니다. 그 모든 것은 전제정과 폭정을 넘어선 일종의 체계, 어떤 식으로든 통치받지 않는 것을 포함하는 체계를 바라는 열망에 이끌렸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자기-의식적 아나키즘(self-conscious anarchism)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같은 마음속에서 다른 사고방식들과 뒤섞여 있던 유기적 아나키즘입니다. 저는 로자바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정치적 질서에 관한 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들 사이의 차이를 좀 더 분명히 해주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유리 고든:
저는 로자바에 가본 적이 없고, 그곳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합니다. 방금 모하메드가 한 분석은 매우 통찰력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로자바만 있는 게 아니라 치아파스(Chiapas)의 사파티스타 공동체(Zapatista communities) 사례도 있습니다. 이 공동체들은 최근 조직구조를 한층 더 분권화했습니다. freedomnews.org.uk를 보시면 관련 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리덤》(Freedom)은 영어로 발행되는 가장 오래된 아나키스트 신문이고, 저도 이 신문을 만드는 집단의 일원입니다. 저희는 그 문제에 관한 특집 기사들을 몇 편 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현대의 준-아나키즘적 사회조직 사례들은 모두 불가피하게, 그것들을 성공하거나 성공할 수 있게 한, 혹은 그렇지 못하게 한 어떤 지정학적 국면에 놓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로자바를 보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로자바와 미군 사이에는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로자바의 무장세력은 미군과 협력하여 무장 지하디스트 집단에 맞서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로자바는 강대국들에게 방해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지정학적 국면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들도 라틴아메리카에서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주변적인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곳에는 이들이 대체로 간섭받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하는 조건이 어느 정도 충분히 존재했습니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멕시코-과테말라 국경을 넘나드는 카르텔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이들에 대한 위협이 훨씬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사례에서는 언제나 모하메드가 언급한 요인들과 어떤 외부의 국제적·지정학적 요인들이 결합되어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우리는 아직 그런 것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무엇보다 전쟁범죄를 중단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틀,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을 마련해서… 현지에서 어떻게든 인간다운 상황을 다시 세워가기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 밖의 것들은, 그러니까 우리의 유토피아적 지평에 속하는 것이죠.
사회자:
민주사회를 위한 운동(Movement for a Democratic Society)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 가운데 하나는 생태적 재생(ecological renewal)입니다. 공동체들이 이것이 자신들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인식하면 협력과 연대가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태적 활동이 팔레스타인에서 국가 구조를 대체하는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을까요?
모하메드 바미예:
두말할 나위가 없죠.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에도 그러한 생태 의식을 강조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전쟁은 막대한 환경 훼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 전쟁만으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룬 연구를 봤습니다. 폭발물과 그에 수반되는 군사 수송에서 발생한 배출량까지 포함한 연구였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난 10월 7일부터 오늘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니 이 전쟁은 환경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수자원을 이용하는 방식은 언제나 이 갈등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물 부족이 심각한 곳인데, 정착민들은 원주민보다 물을 사용할 권리를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자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었을 때, 가자에는 유대인 정착민 7천 명과 팔레스타인인 150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착민 7천 명은 팔레스타인인 150만 명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양만큼의 물을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서안지구(West Bank)의 상황도 별로 낫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고, 현재의 기후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이미 물 부족을 겪고 있던 곳입니다. 앞으로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지역적 협력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갈등의 한 측면은 동일한 희소 자원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둘러싼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갈등이 환경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갈등이 지구적 환경 위기를 심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유리 고든:
오염도 해결책도 국경을 모릅니다. 지하수위에 미치는 영향과 하수·폐수 방류 문제를 비롯한 모든 것이 이 지역의 물 관리 방식, 불평등한 권력관계, 수자원의 불평등한 배분과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슬로 협정 시기에는 환경협력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여겼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은 흔히 매우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진행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측이 이러한 상황에서 대등한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나 권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앞서 모하메드가 이야기한 것과 연결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생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 곧 유역(watersheds), 생물군계(biomes), 기후 지대(climate regions)의 관점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국민주의적 사고에서 차츰 벗어나는 하나의 길이라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국민주의적 사고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다른 시각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정치적 평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인들이 누리는 것과 똑같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인간적 존엄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매우 긍정적인 잠재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해법을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대대적인 국제적 압력과 이스라엘 정부가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훨씬 더 강력한 국제운동이 있기 전까지는 이러한 시도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겁니다.
사회자:
초정통파 유대교(ultra-Orthodox Judaism)와, 달리 마땅한 표현이 없어 이렇게 부릅니다만, 이슬람 근본주의(fundamentalist Islam)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에 세속적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모하메드 바미예:
아, 그건 쉽죠. [청중 웃음] 이것은 제가 많이 연구해온 주제입니다. 바로 근대적 종교성(modern religiosity)에 관한 문제죠. 이에 대한 제 견해는 우리가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 자체는 아니라는 겁니다. 근본주의는 어떤 문제의 징후입니다. 하마스(Hamas)를 한 가지 사례로 들어보죠. 1948년에는 하마스가 없었습니다. 1967년에도 하마스는 없었죠. 하지만 팔레스타인에는 실제로 전적으로 세속적인 저항운동이 존재했습니다. 이 지역 곳곳에서 다른 정부들에 맞서 벌어진 저항운동들도 1970년대 말까지는 거의 전적으로 세속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그보다 나중에 자라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었을 때조차, 근본주의는 기존의 사회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갈등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아주 뒤늦게 갈등의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가 생겨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정치적 권리 박탈(Disenfranchisement)을 겪은 지 거의 40년이 지난 1987년이었습니다. 그때 ‘근본주의’는 다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해법임을 자처하며 나섰습니다. 이 지역의 나머지 곳에서도 우리가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라는 식으로 출현하게 된 바탕, 이를테면 여러 사회적 압력들과 사회문제들, 사회적 와해(dislocation)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급진성(radicalism)을 종교적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가 기본적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담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종교를 독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평범한 일반인들, 더 넓게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주민들 누구나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언어가 되었습니다.
근본주의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곳들을 살펴보면 비슷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서구에서의 근본주의는 사정이 다릅니다. 시간이 된다면 그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논의하는 이 지역에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눈앞에 마주하는 것은 이와 같은 종류의 하마스와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의 급진적인 반(反)-식민주의입니다. 이는 식민주의 기획 자체의 타협 없는 급진성에 같은 방식으로 응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본주의는 겉보기와 달리 유연한 강령(program)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근본주의적이라고 부르는 운동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똑같은 강령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변화합니다. 어떤 때에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국가를 전복하려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선거에 참여합니다. 예를 들어 2006년 하마스는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선거에 출마했고, 그 선거강령에서는 종교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종교를 아예 빼 버린 것이죠. 그리고 하마스가 승리한 2006년 당시 선거운동의 초점은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의 부패 척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마스가 당선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실제로 더 청렴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더 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조직들보다 덜 부패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저는 근본주의 자체를 하나의 사고틀로만 바라보면, 근본주의가 사회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상당 부분 놓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들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대화 상대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입니다. 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그들보다 더 계몽되고 교육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무시당합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은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근본주의가 무엇의 징후인지, 어떤 집단적 문제가 근본주의를 낳고 있는지 살피지 않고, 근본주의 자체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리 고든:
이 말씀에 힘을 보태자면, 근본주의와 세속주의를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세속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도 분명, 국가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면 또 하나의 종교국가가 아니라 세속국가에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종교적 틀과 신앙의 틀이 사람들의, 특히 노동계급의 자기-인식에 아주 깊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이 세속적인 서구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식민주의적 사고방식(colonial mindset)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다고 봅니다.
유대인 노동계급, 대체로 우파 성향을 띠는 사람들을 살펴보세요. 이들은 더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근본주의적이거나 정통파인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대체로, 그러니까 앞서 모하메드가 이야기한 옛 오스만제국 권역 출신입니다. 저는 종교적 실천이나 전통과 근본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더욱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특히 젠더 평등을 비롯한 여러 측면의 평등을 향해 움직이는 다문화적 존재 양식들, 나아가 급진민주주의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게 중요한 것은 종교적 신앙이나 전통을 거부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는 그것을 정치적 권력에서 떼어내는 일입니다. 종교조직들을 국가에 대한 후견주의(clientism) 관계에서, 곧 국가의 피후견자라는 지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죠. 피식민자 쪽 종교조직이든, 아니면… 카타르 국가의 클라이언트[피후견 조직], 이스라엘 국가의 클라이언트, 이란 국가의 클라이언트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겠죠. 국민주의 권력과 종교 사이에는 이처럼 단절해야 할 제도적 연결이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세속주의나 서구 계몽주의의 이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라고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중-1:
미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저는 아나키즘이, 제가 보기에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아랍인들의 자기-조직화 방식이라 할 만한 형태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도 중동의 역사를 돌아볼 때, 아나키즘을 발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거나 팔레스타인인 다른 동시대 아나키즘 사상가들이나 그와 같은 운동이 있습니까?
모하메드 바미예:
제 생각에는 아나키즘을 사고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식적 아나키즘입니다. 이는 19세기 중엽에 조직된 사상체계이자 운동으로, 조직들과 임계 규모에 이른 지식인 집단을 갖추면서 그 이력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사상은 그보다 일찍 등장했고, 계몽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유기적 아나키즘이라고 불러온, 더 넓은 아나키즘의 역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크로포트킨(Kropotkin)은 이에 관한 설득력 있는 역사를 개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전 세계의 사회적 전통에 배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나키즘에 관한 제 책에서 이슬람 정치철학, 힌두 세계 등 세계 여러 전통의 정치철학을 다뤘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나키즘에는 더 넓은 역사가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두 접근법은 자발적 결사에 기초한 삶(voluntary associational life)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인 유기적 아나키즘은 찾아보면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사회생활에 대한 다른 접근방식들과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오염된(contaminated)’ 아나키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물론 저는 ‘오염된’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표현이 있다면 그걸 쓰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실용적인 성분들이 섞인, 사회생활에 관한 이상적인 구상입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그 속에서 아나키즘이라는 ‘순수한 성분(pure substance)’을 찾아내려면 그것을 증류해내야 하는 것이죠.
팔레스타인인 아나키스트도 있고, 아랍인 아나키스트도 있고, 이란인 아나키스트와 튀르키예인 아나키스트도 있습니다. 이 지역 전체에 자기-의식적 아나키스트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므로 대규모 정치운동이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슬람 안에서, 또 이슬람의 관점에서 아나키즘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사람들이 다른 권력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려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접근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슬람의 외침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와 같은 종교적 구호도 있습니다. 이 말은 흔히 ‘신은 위대하다’라고 부정확하게 번역되지만, 문자 그대로는 ‘신은 더 위대하다’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더 위대하다는 걸까요? 사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어떤 폭정보다도 더 위대하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입니다. 신을 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신은 정부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물론 신이라는 관념을 이용하는 정부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신이라는 관념은 폭정보다 더 강력한 힘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닙니다.
저는 이슬람에 관한 최근 저서에서 역사적 샤리아(Sharia)를 준-아나키즘적 체계로 논의했습니다. 샤리아는 흔히 ‘이슬람법(Islamic law)’이라고 번역되지만, 사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법(law)’이라는 개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역사적 샤리아에는 사회생활의 준-아나키즘적 체계로 볼 수 있게 하는 세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샤리아에는 하나의 원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학파가 있습니다. [둘째,] 현대법과 달리 서로 모순되는 판단들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셋째,] 샤리아는 정부나 입법기관이 정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활동한 종교 학자들이 정립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국가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여러 원천을 지닌,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체계였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필요에 맞춰 규칙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스스로 통제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나키즘적 특징을 지녔던 이러한 역사적 샤리아도 오늘날 누군가 그것을 국가법(state law)으로 바꾼다면 권위주의적 체계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유기적 아나키즘을 우리의 역사적 전통 속에 배태된 것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길은 많습니다.
사회자:
행사 시작 무렵 발언하셨던 분과 관련해서, 이제 답변하실 기회를 드리기 위해 그분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행사가 팔레스타인인들의 관점에서 열린 것입니까, 아니면 아나키스트들의 관점에서 열린 것입니까?
모하메드 바미예: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팔레스타인인의 관점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나키스트의 관점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의 관점을 어떤 공동체에 강요하려 하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단단하게 굳혀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제 관점과 아나키스트로서의 제 관점만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나 다른 아나키스트들도 제 관점에 동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흥미로운 존재인 까닭은, 공동체 전체가 단 하나의 견해와 하나의 입장만을 갖는 것과는 달리, 이처럼 다양한 입각점(standpoints)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청중 질문 두 개를 하나로 묶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오히려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라고 보거나 믿는 것이 왜 그토록 널리 퍼져 있을까요? 왜 이스라엘 인구의 상당수, 심지어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와 연결되는 질문도 있습니다. 설령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노사이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왜 그토록 알아차리기 어려워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그것이 정치적으로나 인도주의적으로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점을 왜 그토록 알아차리기 어려워하는 걸까요?
유리 고든:
대부분의 이스라엘인이나 유대인이 지금 자신들이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마스의 잔혹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이 분명히 있고, 가자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와 전쟁범죄를 때로 축소하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국가뿐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 사회의 공적 기관들까지 사실상 일종의 적대적 장악, 혹은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은 장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것은 [미국] 공화당과 연계된, 어쩌면 노골적인 파시스트라고까지 할 수 있는 세력들입니다. 이 세력들은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을 동일시하고, 유대인들의 자기인식에 시온주의의 눈가리개를 씌우며,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인 것으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물론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실제로 반유대주의적 목소리가 나오거나, '내 적의 적'이라는 식의 흑백논리에 따른 어리석음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것 역시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는 이제 상당히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선전 노선(propaganda line)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공화당 내의 그 동맹 세력들이 이러한 선전 노선을 밀어붙여 왔고, 이제는 공적 담론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핵심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 선전 노선은 홀로코스트에서 비롯된 유대인들의 집단적 트라우마에 관한 인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렇게 자극된 인식이 왜곡되어 현재 상황에 잘못 적용되는 것이죠.
또한 이스라엘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분노의 일부 표현 때문에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이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정부의 행위에 대한 어떤 반대에도 위협을 느끼게 된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선전 활동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아주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그리고 주류 언론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발언을 조직적으로 침묵시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역시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두 분이 말하는 무국가 해법이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아나키즘 사상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나아가 전 세계에서 무국가 해법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저작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리 고든: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유토피아적 지평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무국가 해법이란 무엇일까요? 주변의 다른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무국가'라는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무국가 해법은 중동 전체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해방되고 평등하며, 국경이 없고 계급도 없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일종의 청사진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극도로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가 여전히 어떻게든 이 지평과 이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함께 조직활동을 하고 정치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느냐입니다.
모하메드 바미예:
역사적으로 아나키즘 사상에서는 자치 코뮌(self-governing communes)이나 소규모 단위들로 이루어진 세계 연합(world federation)을 일종의 이상적인 세계로 상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민주주의가 소규모에서만 가능하다는 민주주의에 관한 초기 사상 가운데 하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국가들과는 대조되는 것이죠. 그러니 그러한 구상은 물론 존재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국가들이 세계 지도를 지배하고 있고, 국가라는 형태의 정치생활만이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대체하는 형태로 해방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무국가라는 현실은, 만약 언젠가 실현된다면, 오늘날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엇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설득(persuasion)을 통해서만 확립될 수 있습니다. 강제로 이뤄낼 수 없는 유일한 정치적 강령입니다. 국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국가’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 원칙은 아나키 일반에도 적용됩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나키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아나키 자체의 논리에 내재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바로 그 점에서 아나키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윤리적으로 더 우월합니다. 아나키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설득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일종의 계몽의 기획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감각에서 더 큰 호응을 얻는 기획이죠.
현재 존재하는 국가들은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갈등이야 말로 그 국가들이 계속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특히 오늘날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무국가 해법의 타당성은 기존 국가들에 대한 경험과 그 국가들이 거듭해온 실패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군가 나서서 옹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실제로 어떻게 생겨날까요? 이 생각이 타당하다는 데 설득된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질 때 생겨납니다. 그러면 물론 그러한 확신에서 하나의 구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 맞춰가는 실용적인 조정 과정입니다. 현재 현실의 거듭된 숱한 실패들, 무국가가 국가라는 문제의 해법이라는 사회적 합의의 확산, 그리고 현재의 강요된 질서가 끊임없는 전쟁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산출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속에서 그 과정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기 전에는, 이를 이론적인 형태로 제시할 수 없습니다.
이제 현실주의에 대해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결국 세상은 대개 비현실적인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왔습니다. 덧붙이자면 시온주의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시온주의가 처음 운동으로 출발했을 당시에는 전혀 현실성 있는 제안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보세요,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많은 혁명운동을 살펴보세요. 볼셰비키 혁명이나 다른 혁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몽상가들이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혁명은 ‘정확한 현실 분석’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현실적인 사람들, 곧 기존의 패러다임과 실제로 존재하는 권력구조 안에서 사고하던 사람들은 대개 그 구조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실적 분석’이 이끄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하나의 구조로 이해합니다. 이는 그 구조를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래서 그것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국가 해법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기존 현실을 거부할 뿐 아니라 현실주의를 하나의 관점으로서 거부하는 태도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과 그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위대한 순간들은 바로 저항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1936년의 총파업, 패배 이후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1960년대 후반 난민캠프의 동원이 그렇습니다. 제1차 인티파다도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을 잊어버린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 생애에 목격한 주목할 만한 운동들, 사람들이 하나의 관점으로서의 현실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난 운동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제입니다. 제노사이드를 막기에는 현실주의적 관점이 부적합하다는 것이죠.
청중-2:
서아시아에서 전쟁과 지배에 맞서는 저항을 조직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유리 고든:
각자 자신이 처한 지역적 맥락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저는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행동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말을 굳게 믿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어떤 반군사주의 활동이든, 무기 거래에 반대하는 어떤 활동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파급효과를 통해 자연히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기후행동이 되고, 반자본주의 행동이 되기도 합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그다지 급진적이거나 혁명적이지 않은 것으로는 자원을 도움이 될 만한 곳에 쓰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기부할 수 있는 곳 몇 군데를 제시한 슬라이드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렇죠? 그 슬라이드를 다시 보여줄 수도 있겠고, 사회자들이 나중에 그곳들을 다시 한번 소개해주셔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뜻이 맞으면서 동맹자든 공범이든, 뭐라고 부르든 함께할 사람들을 찾는 팔레스타인 운동이 있다면, 그 운동과 함께 활동할 가치가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 주변의 아주 구체적인 지역적 조건을 살펴보고, 현장에서 이미 누가 조직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견해와 가장 가깝고 자신의 힘을 쏟을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물론 아까 슬라이드에 나온 곳들을 당장 지원하는 일도 함께하면서 말입니다.
모하메드 바미예:
유리가 한 말 가운데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보이콧의 중요성입니다. 보이콧은 어떤 운동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체계는 상당 부분 전 세계적인 보이콧 덕분에 무너졌습니다. 그 보이콧은 이러한 인종주의적이고 비윤리적인 체계가 현대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전 세계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보이콧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으며, 보이콧 운동을 짓누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에게는 보이콧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도록 로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기관들을 보이콧하자고 단지 요구하는 것조차 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죠. 특정 기업에서 물건을 사지 말자고 요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운동이 얼마나 중대한 운동인지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비폭력적인 운동이기도 합니다. 그 효과는 설득력이 있고 널리 전달될 수 있다는 특성에서 나옵니다.
사회자:
앞서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도 여러 사상적 학파가 있고, 연대운동을 조직하는 데에도 여러 사상적 갈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살펴본 한 가지 사례는 아나키즘적 입장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의 팔레스타인 청년운동(Palestinian Youth Movement)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은 사회주의해방당(Party for Socialism and Liberation, PSL), 앤서 연합(ANSWER Coalition), 피플스 포럼(The People's Forum) 등과 나란히 조직활동을 해왔습니다. PSL, ANSWER, 피플스 포럼 등은 대체로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 단체들로, 시리아인, 아프가니스탄인, 위구르인, 우크라이나인 등의 투쟁에 관해 문제가 있는 입장과 수사적 표현을 보여왔습니다. 이는 상호 국제주의적인 연대가 부족하다는 점을 더욱 드러냅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전 세계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지금까지 무엇을 잘해왔고, 어떤 점에서 개선될 수 있을까요?
모하메드 바미예:
저는 모든 사람이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사회도 다른 모든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합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점령과 권리의 부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문제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런 억압이 왜 나쁜지 설명하려고 굳이 철학책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연대운동은 정의라는 것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임을 부각하는 직접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권리의 언어를 사용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예컨대, 인권이 그렇습니다. 물을 사용할 권리, 먹고살 권리, 존엄을 누릴 권리, 시민권상의 권리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면, 우리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사회자:
보이콧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국제적인 BDS 운동, 곧 보이콧·투자철회·제재 운동(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movement)이 이스라엘 내부의 급진좌파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유리 고든:
이스라엘 급진좌파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 BDS를 지지해왔고 지금도 지지합니다. 저 역시 ‘내부로부터의 보이콧(Boycott From Within)’이라는 단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최초의 호소문이 나온 뒤 아마 1년도 되지 않아 결성되었을 겁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인들(Israelis Against Apartheid)’ 같은 단체와 구성원이 겹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내부에도 BDS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스라엘의 급진좌파는 규모가 매우 작고 지금도 후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반대운동은 러시아의 반대운동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는 시위 등이 허용되는 여지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의 포위 심리(siege mentality),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군사주의, 언론을 비롯한 공적 담론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자신들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 등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급진좌파에 대한 반응은 적어도 감정적인 차원에서는 언제나 그들을 본질적으로 ‘적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보는 식입니다. 여기 ‘캐나다’에서 조직활동을 하시는 여러분이라면, 앨버타(Alberta)에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볼지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이스라엘에서 급진주의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청중 웃음]
사회자:
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어떤 해법이든 미국 정부에서 시작해 미국 정부에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그러면서 그들 자신도 반유대주의적입니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유리 고든:
글쎄요, 행운이라도 빌어야죠. 그 사람들이 곧 백악관을 차지할 것 같고, 그러면 우리는 정말 큰일입니다.
모하메드 바미예: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우리는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미국이 옳은 일을 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다른 어떤 국가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국제관계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갈등에서 한쪽은 매우 강하고 다른 쪽은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강한 쪽에는 아무것도 양보할 유인이 없고, 약한 쪽에는 자신들이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것조차 얻어낼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구도에서는 외부에서 제3의 요인이 개입해 해법을 강제해야 합니다. 통상이라면 미국이 그 역할을 맡았겠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미국의 주류 정치인 누구에게도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유럽 국가들에도 우선순위가 아니고, 심지어 아랍 정부들에도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제3의 요인은 실제로 이 구도를 바꾸는 저항운동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효과가 있었던 것도 바로 그것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다시 세계의 관심 속으로 끌어올렸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국가 차원에서 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관심이 생겨난 것은 언제나, 오로지 팔레스타인인들이 현상유지 질서(status quo)를 뒤흔드는 극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제야 국가들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저기에 문제가 있군.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어.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겠어.”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0월 7일 이전에는 누구도 두 국가 해법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랍 정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잊어버리는 것을 뜻했습니다. 우리가 향하고 있던 방향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마스가, 하마스를 어떻게 평가하든 또 하마스가 어떤 일을 했든, 적어도 팔레스타인을 다시 세계의 관심 속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바이든이 두 국가 해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것은 전혀 진정성이 없는 태도입니다. 실제로 두 국가 해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정부들 역시 해법을 실현하려는 진정한 의지가 없고, 10월 7일 이전의 현상유지에 만족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은 순전한 위선입니다. 해법을 찾는 데 좀 더 진정한 관심을 가진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운동은 오직 자신들만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존재하는 유일한 동력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으로 효과를 발휘해온 유일한 동력과 같습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국제적 관심을 끌 수 있는 방식으로 투쟁하거나 저항을 계속하면서 자신들을 다시 세계의 관심 속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식민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 과정의 행위주체가 되는 일이 거듭되어온 것입니다.
사회자:
유대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비유대인,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인간화하려는 경향을 막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리 고든: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고 하죠.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린 법이죠.] [청중 웃음] 문제는 이스라엘 지도부가 신학적 우월주의와 인종주의 담론을 주류화했다는 데 있습니다. 네타냐후뿐 아니라 지금 중도적 대안으로 제시되는 세력까지 극우에 굴종해온 정도도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비인간화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렇게 해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사고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금세기 초 미국 주류 대중 가운데 상당수가 아프가니스탄인과 이라크인들을 비인간화했던 일을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제게 비인간화하는 사고방식은 실제 권력의 불균형이 낳는 일종의 담론적 증상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기제입니다. 선량한 사람이고 싶은 자기 이미지와, 자신의 이름으로 잔혹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양립시킬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죠. 그 둘을 양립시키는 방법은 그러한 잔혹행위의 피해자들을 하나같이 위협적이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위험한 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합의할 뜻이 없으며, 증오와 반유대주의 등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려내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묘사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았듯이… 팔레스타인 여론조사에서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앞서 모하메드가 이야기한 바로 그 행위주체성의 요소 때문이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상황은 이스라엘 측이 15~2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사실상 어느 쪽으로도 한 발짝 움직이기를 거부해 온 탓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악마화를 담론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적 권력관계의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담론을 상상하려면 다른 지도부를 상상해야 하고, 사회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상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글쎄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도 남아프리카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순간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매우 긍정적일 것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지기 1~2년 전만 해도 누구도 그런 일을 실제로 예견하지 못했으니까요. 아파르트헤이트의 붕괴나 소련의 해체는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에서 여전히 희망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정말이지 아주 가느다란 한 줄기에 불과합니다.
모하메드 바미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유리의 말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여론이 바뀌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아니,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설득의 과정입니다. 이를 안보에 관한 사람들의 이야기 방식과 연결해 논의할 수도 있겠죠. 그보다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것은 지금의 상황에 큰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 점령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월 7일 이전에 팔레스타인의 대의가 거의 완전히 잊힐 지경에 이르렀던 것은, 이스라엘 안팎과 다른 정부들 사이에 점령은 어떤 정부에도 아무런 비용을 초래하지 않으므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월 7일에 일어난 일은 점령에 비용을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이콧을 비롯해 점령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다른 어떤 방법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회자:
앞서 모하메드가 근본주의와 세속주의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을 더 알아보려면 어떤 자료를 읽으면 좋을까요?
모하메드 바미예:
요즘 관련 문헌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책을 한 권 추천하겠습니다. [청중 웃음] 『이슬람의 생활세계들』(Life Worlds of Islam : The Pragmatics of a Relig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9)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 운동의 기원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러한 분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다룹니다. 제 책을 홍보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책도 앞서 다른 연구자들이 해온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유리 고든:
저도 꼭 제 책을 홍보하는 건 아닙니다만, 모하메드 압두(Mohamed Abdou)가 ‘아나코-이슬람(Anarcho-Islam)’에 관한 책[Islam and Anarchism: Relationships and Resonances, London: Pluto Press, 2022]을 내는 데 힘을 보탠 적이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하신 책이고, 지금 그 행사장에도 아마 있을 겁니다. 플루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이슬람의 아나키적 이즈티하드(Anarchic Ijtihad)의 가능성을 꽤 세밀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압두가 원전들과 아나키즘적으로 씨름하는 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이죠.8
사회자:
마지막 질문은 유리에게 드리겠습니다. 유리 씨 뒤에 걸린 그림은 이 갈등을 나타내는 건가요?
유리 고든:
아뇨, 전혀요. 네, 뭐, 거기에 ‘공존하라’느니 뭐니 하는 말이 쓰여 있다는 건 압니다. 이건 제가 아마 20년쯤 전에 경계 박물관(Museum on the Seam)에서 구한 포스터예요. 그곳은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의 경계에 있었던, 유대인과 아랍인이 함께하는 일종의 갤러리였습니다. 실은 독일 예술가가 만든… 초상화예요. 아무튼 아닙니다. 무엇보다 저는 공존(coexistence)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제가 믿는 것은 공동 투쟁(joint struggle)이며, 그곳 현지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운명을 함께한다는 것[공동 운명]입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존재하는 비대칭성을 없는 것처럼 지워버리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그림에 관해 질문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 전 연인이 구한 물건인데, 어쩌다 보니 계속 집에 남아 있었어요. 하지만 아닙니다. 이 그림이 그 갈등을 나타내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회자:
유리와 모하메드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관해 유리와 모하메드가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서, 여러분의 좌석마다 직접행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안내하는 전단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뜻깊은 오후를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1] 48년 이스라엘’(48 Israel)은 1948년 전쟁 후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간 지역, 통상 1949년 정전협정선(그린라인) 안쪽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정치적·역사적 표현이다. 1948년에 정전선이 획정된 것은 아니며, 1949년 정전선도 영구적으로 최종 국경을 확정한 것이 아니다. 참고: UN, Armistice lines of 1949, https://www.un.org/unispal/document/auto-insert-195604/
[2] 옮긴이: ‘회색 병역거부’(gray refusal)는 복무 거부를 정치적·양심적 행동으로 공개 선언하지 않고, 법률상 면제 사유를 활용해 징집을 피하거나 복무를 중단하는 방식도 포함한다. 고든이 언급한 뉴 프로파일의 설명은 다음을 참고하라. https://newprofile.org/en/refusing-and-avoiding-military-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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