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기계들”과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문학 (3부, 끝)
저자: 발레리 포도로가 (러시아학술원 철학연구소)
번역: 김수환 (한국외대)
3) 에테르, 전자기 또는 광학 기계. 플라토노프가 가장 좋아했던 기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의 값싼 에너지를 활용하는 전기장치다. 이 기계는 『체벤구르』의 드바노프, 『사유의 악마』의 보굴로프, 『마르쿤』과 『불가능한 것』의 주인공, 『달의 폭탄』의 페테르 크레이츠코프, 『많은 흥미로운 것에 관한 이야기』의 주인공 이반 코르치코프, 『태양의 후예』의 등장인물, 『바클라자노프의 모험』의 주인공 옐피디포 바클라자노프 등이 발명한 기계다. 제작자의 비전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놀라운 가능성을 구현한 결과물에 해당한다. 그와 같은 기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의 놀라운 힘은 우주의 가장 강력한 힘인 전자기력에서, 그러니까 자연의 죽은 물질의 ‘살아있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모든 존재자에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드러날 것이다. 플라토노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모든 기계는 의심할 여지없이 현대 과학, 특히 전기공학 분야의 이런저런 발견 및 발명과 관련된다. 여기서 곧장 떠오르는 사람이 틀림없이 플라토노프도 매우 잘 알고 있었을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이다. 실제로 플라토노프의 주인공들이 표현하는 모든 아이디어는 테슬라의 가설과 이론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과 다름 없다. 플라토노프의 다양한 사색과 기획(다양한 유형의 전기 기계장치 및 가전제품들)은 세부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테슬라를 특징짓는 마법적 기술철학을 반영한다. 테슬라의 아이디어와 플라토노프의 기계 유토피아 사이에 존재하는 “광-전기적” 친족관계를 보여주는 더 확실한 증거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니콜라 테슬라
모든 생명체는 우주의 순환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이다. 언뜻 보기에는 [가까운] 주변 환경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부 영향의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되어 있다. 막연하고 망상적인 점성술이 아니라 엄밀하고 정확한 물리학적 의미에서 말하건대, 무한한 우주 공간의 모든 심연에 자리한 별자리나 성운, 별이나 행성, 밤하늘을 떠도는 방랑자, 그 무엇도 자기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없다.
(....)
무기물이라고 불리며 죽은 것으로 간주되는 물질조차도 자극에 반응하며, 자기 내부에 살아있는 원리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움직이는 것이든 정지된 것이든, 모든 것은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사이에는 간격도 없고, 연속성이 끊어지지도 않으며, 특별히 독특한 생명 원리도 없다. 동일한 법칙이 모든 물질을 지배하는 바, 우주 전체는 살아있다(테슬라 1915).
지구의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미래의 거대한 발전소 프로젝트. 파이프에서 순환하는 물은 파이프 바닥에 도달하여 증기 상태로 상승하고, 증기는 터빈을 구동시키며, 다시 액체로 변한다. 이와 같은 순환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지구 내부의 엄청난 열에너지는 인간 수요에 비춰볼 때 사실상 무한하며, 지구 내부 고열지층의 질량은 수십억 톤으로 추산된다(테슬라 1931).
... 바다 깊은 곳에서 에너지를 끌어온다. 표층의 열이 더 차가운 다른 층과 상호 작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데 사용됨으로써 대규모 전기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한다. 이 주목할 만한 기사에서 [플랜트] 운영에 관한 이론적 근거뿐 아니라 개념의 실제 구현 전망의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테슬라 1931).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우주 전체는, 정확하게 말해, 저장고, 즉 전기에너지의 배터리다. 왜냐하면 우주란 무엇보다 공간이며, 공간은 무엇보다 교번(交番) 전자기장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역사를 유일한 에너지 문제의 실질적 해결로 간주한다면(이 문제의 최종 해결책은 전혀 인간 노동력을 소비하지 않은 채로 우주를 100% 완전히 활용하는 것이다), 산업에서 빛을 활용하는 것만이 우리 시대 에너지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식물 세계의 기반이 빛임을 기억하고, 인간 세계의 기반으로도 빛을 삼아야 한다. 모든 기술은 광(선공)학으로 귀결되어야 하며, 모든 물리학(아마도 화학도)은 전기 공학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광학은 태양광을 전기 모터에 적합한 일반 작동 전류로 변환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설계해야 한다. 이 메커니즘은 이미 절반 정도 완성되었다. 이는 광전자공진변압기라고 불린다. 이것의 목적은 천상 전류인 빛을 지상의 인간 전류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 기술적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된다면(여기서 그 세부 사항을 논의하지는 않겠다), 빛(그리고 더불어 전체 우주)은 인류의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수세기 동안 고갈되지 않을 것이며, 인류는 그 어떤 기계, 저항, 혹은 장치로도 이 에너지를 다 소진하지 못할 것이다. 러더퍼드 원자 분열 에너지조차도 빛의 대양의 에너지에 비하면 별 게 아닌 것이다(플라토노프 2004b: 219-220).
인간 정신의 기본 상태를 정의하는 가장 미세한 전자기 진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사람, 고상하고 지적인 대의명분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인위적으로, 자유롭게 이러한 진동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사람만이 세상을 정복할 것이다.
이러한 전자기 진동은 그 형태가 빛과 유사하지만 파장이 더 작고 간격이 더 짧아야 한다...
심령적 질서의 전자기 진동을 얻는 수단은 햇빛을 분산시키거나 스펙트럼으로 조절하는(복잡화하고 다중 굴절시키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햇빛은 (이러한 전자기 진동의) 원재료이며 그로부터 제품이 얻어진다. “심령 전류”가 그것이다.
심령 전류 만세!
그 생산을 위한 실험실 만세!(플라토노프 2000: 258).
... 전자기(더 정확하게는 리듬 방법)는 정확하게 계산된 파장과 주기의 전자기파를 외부에서 전달함으로써 물질을 파괴함을 기초로 한다. 이 같은 파동은 (각각의 요소와 복잡한 구성소를 위해 "개별적으로" 엄격하게 정의된) 원자의 내적 리듬과 완벽하게 일치하여 물질을 파괴하는데, 이러한 내외부의 리듬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전기가 통하면서 물질이 생성된다. 요점은 각각의 원소와 화합물이 엄격하게 정의된 고유한 원자 및 분자의 내부 진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물질의 파괴와 생성에 관한 수수께끼가 담겨 있다(플라토노프 2004b: 213).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여 지구 깊숙이 구멍을 뚫어 어머니 바다의 결정화(結晶)화된 무덤을 열거나, 영구 호수나 대초원 바다를 형성할 만큼의 충분한 수분을 추출할 수 있는 광대한 수자원에 도달한다. 그와 더불어 즉시 화염의 볼트를 사용하여 모든 소프코즈(집단농장)의 목초지와 가축 떼를 위한 그리 깊지 않은 우물을 뚫는다. 불이 켜진 대지의 모든 곳, 스텝에서 에너지를 얻기(플라토노프 2011a : 426).
위대한 목표는 가장 저렴하고 무궁무진한, “죽은” 자연의 에너지를 획득하는 것이 다. 물질의 깊은 곳에는 최고로 위대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숨어 있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발견하고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우주 물질의 개별화된 시간성들 사이의 경계, 이를테면 하늘과 땅, 여성과 남성, 산 자와 죽은 자,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경계를 없앨 수도 있다. 1 이것은 노동력을 쓸모없이 낭비하는, 노동자들을 상호 착취하는 방식으로 실현되는 노동의 ‘저주’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높이/깊이의 기계는 우주에까지 이르고 지구의 최종적 심연을 관통한다. 텅 빈 깊이가 아니라 에테르의 값싼 에너지를 향해가는 통로로서의 심연이다. 이 생명기계는 수직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물질의 순수한 힘의 산물을 지구 표면으로 추출하는 리프트 터널이다. 플라토노프는 이런 기이하고 놀라운 기계에 관해 설명할 때 종종 생물학적 은유를 사용하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행동 영역이 제한된 경화된 메커니즘이 아니라 오르가즘의 맥동으로 보도록 자극한다. 이 기계들은 일종의 환상기계, 꿈 기계, “죽음을 모르는” 초생산적인 기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생명 기계로서의 에테르 기계는 죽음 기계와 기능적으로 일치한다. 예를 들어, 수평적 차원으로 번역될 때 에테르 기계는 테러 기계, 폭력 기계, 피로 기계와 다르지 않다. 힘의 적용 대상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대체될 뿐(즉, 인간의 몸에서 지구의 몸으로) 행동의 기본 원칙은 동일하다. 인간과 지구의 우주적 단일성에 대한 걱정 없이 수동적인 자연의 몸으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해 그것을 대규모로 소비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4) 대뇌 기계. 플라토노프의 반유토피아 소설은 기술(모든 기계와 오토마톤)을 혁명적 변화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한다. 혁명적 변화는 자연을 장악하면서 인간에게 전이되어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2 새로운 우주 존재론, 매크로-마이크로 우주에 관한 갱신된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자의식을 지닌 합리적 기계라 해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발명가[테슬라]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감각에 작용하는 외적 자극에 반응하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며 움직이는, 행위를 수행할 능력을 부여받은 오토마톤[자동기계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이 점점 더 확실해진다.”(Tesla 2008: 122).
지속적으로 진동하는 파동(전자기) 매체 속의 ‘살아있는 우주’라는 가설은 개별화될 수 없는, 즉 전유될 수 없는 단일한 우주적 인식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인간은 외부 영향에 성공적으로 반응하는 능력, 곧 반응성으로 인해 세계와의 관계가 구축되는 정신적 오토마톤이다. 나아가 인간은 단지 뇌일 뿐인데, 그러나 그 뇌는 곧 생각이고, 생각은 만일 그것이 진실하다면 다른 공명기제인 무한 우주와 공명하기에, 결국 생각이란 우주의 리듬이 된다. 예컨대,
사르토리우스는 청년 시절 내내 물리학과 기계공학을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무한성 작용에 관한 경제적 원칙을 찾아내고자 애쓰면서, 인체처럼 무한한 대상을 계산하는데 몰두했다. 그는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서, 자연이 공명을 일으킬 때 작용하고, 바로 그 때문에 자연에 담긴 모든 진실을 반영해 내는 생각을 발견하고 싶어 했으며, 설령 그것이 생생한 우연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생각을 연산공식으로 만들어 영원히 못 박아버리길 희망했다. (플라토노프 2011b: 49; 『행복한 모스크바』 148쪽).
이런 구절도 있다.
마티센의 뇌는 우주의 깊은 곳에서 새로운 몽타주를 만들어내는 신비한 기계였다. 이 뇌는 테이블 위의 장치에 의해 활성화되었다. 사람의 일상적인 생각, 즉 뇌의 평범한 움직임은 세상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뇌 입자의 소용돌이가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세계의 물질이 폭풍에 의해 흔들리게 될 것이다."(플라토노프 2011c: 64).
플라토노프는 아무 것도 ‘고안’해 내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신의 기계 환상을 통해 기술 발전의 혁명적 가속화에 부응하려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아방가르드 세계관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흥미로운 기계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의 뇌를 기계 발전의 정점에 놓았다. “...나는 새로운 지구적인(terrestrial) 두개골이 아닌가, 그 두뇌에서 새로운 개화(開花)가 이루어지고 있고, 새로운 철로 된 세계가 돌아가는 제련 공장이 형성되며, 보편성의 벌집으로부터 우리가 발명이라고 부르는 생명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레비치 1995: 158).
또 다른 용어의 관점에서 볼 때 뇌는 직관이다. 말레비치는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직관은 무한의 핵심이다. 지구상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 속에 분산되어 있다. 형태란 무한을 정복하는 직관적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운동의 도구로서 형태의 다양한 변형이 생겨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1995: 172). 직관은 행동하는 세계의 급진적 쇄신이며, 사고 그 자체다. 직관 앞에서 세계는 무명이며, 극복 도구의 속도에 종속될 뿐이다. 플라토노프의 작품들에서처럼 여기서 기계의 활동은 물질의 원자화로 귀결된다. 아방가르드의 위대한 혁신은 자연을 극복할 도구의 힘을 증대시키는데 있다(“무한 사고의 핵심”인 입자로 쪼개기). 오직 사고만이 당면한 과업의 무한에 상응한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기술 세계는 극복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각각의 도구는 새로운 세계의 우주적 무한함 속에서 인간 정신의 역동적인 힘을 드러내 보여준다.
기계는 ‘시간의 끝’을 불러온다. 그것은 (인간 육체를 포함한) 모든 곳에서 에너지를 독재적으로 추출하여 다시 소멸시키는 파국적 기계, 곧 ‘죽음 기계’인 것이다.
5) 수공예 기계. 플라토노프 작품 중 상당수는 불멸의 이념에 관한 실험 현장에 해당한다. [그 실험은] “영구 운동 기계”에서부터 실용적인 목적을 단번에 추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치 및 물건들 3에까지 이른다. 따라서 수공예 기계라고 부를 수 있는 굉장히 특이한 기계 장치가 여럿 등장한다.
이런저런 간단한 도구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그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에게도, 들판에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무관심한 상냥함으로만 대했다. 겨울 저녁에는 가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만들기도 했다. 철사로 만든 탑, 지붕의 함석 조각으로 만든 배, 종이비행기나 다른 것들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였다. 이런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 그는 이따금 들어오는 누군가의 우연한 주문을 미루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나무 드럼통에다 새로 테두리를 끼워달라는 주문을 받았지만, 태엽 장치 없이 지구의 자전만으로도 시계가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무로 된 시계 장치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플라토노프 2011a: 11; 『체벤구르』 15-16쪽)
여름 동안 자하르 파블로비치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물건을 나무로 다시 만들었다. 움막과 그 주변에는 자하르 파블로비치의 장인다운 솜씨를 보여주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농기구 일습, 기계들, 산업용 또는 가정용 기구들이었다. 이상한 것은 단 하나의 물건도 자연을 본떠서 만든 것은 없다는 점이었다.(플라토노프 2011a: 13-14; 『체벤구르』 19쪽)
이제 에피쉬카는 빛을 발명했다. 그는 햇빛이 자기장을 진동시켜 전류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자석을 설치했다. 이 전류를 이용해 에피쉬카는 직접 만든 배를 타고 자신이 태어난 강을 따라 내려갔다. 태양과 달빛이 처음으로 이상한 사람을 물 위로 데려다 주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아무도 필요치 않았다. 에피쉬카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작은 기계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모두가 부자가 되었다.
[...]
아라라트의 한 주민이 지하 배를 만들었고, 에피쉬카의 작은 기계의 힘으로 배를 땅속으로 몰고 들어가 아라라트의 남자가 사라진 곳에 집을 만들었다(플라토노프 2011d: 314).
[…]
드바노프는 태양열을 전기로 바꾸는 기계를 고안해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고프네르는 체벤구르에 있는 모든 거울을 틀에서 빼냈고, 유리란 유리는 작은 조각이라도 다 모았다. 이것으로 드바노프와 고프네르는 복잡한 프리즘과 반사경을 만들었다. 햇빛이 이 도구를 지나면서 뒷부분에서 전류로 바뀌도록 한 것이었다. 기구는 이틀 전에 이미 준비되었지만, 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기타인간들은 드바노프의 빛을 내는 기계를 보러 왔다. 그 기계가 비록 작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필요한 것을 찾아낸 것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두 명의 동지가 자신들의 육체적 노동으로 기계를 고안하고 만들어냈다면, 그 기계는 올바른 것이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플라토노프 2011a: 380; 『체벤구르』 598쪽)
집들 사이는 다니기에 너무 좁았다. 게다가 기타 인간들이 자기들이 만들던 물건을 완성시키려고 여러 가지 발명품들을 이곳으로 가져다 놓아 이제는 전혀 지나다닐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2사젠짜리 나무 바퀴가 가로로 놓여 있고, 철제 단추, 드바노프를 포함해서 좋아하는 동지들의 모습을 닮은 진흙 기념비, 망가진 자명종으로 만든 자동으로 돌아가는 기계, 체벤구르의 모든 이불과 베개의 내용물이 다 들어가 있지만 제일 추위를 타는 한 사람만이 그곳에서 몸을 녹일 수 있는 저절로 데워지는 난로 등이었다. 그리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세르비노프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물건들도 널려 있었다. (플라토노프 2011a: 380; 『체벤구르』 598-599쪽).
그 순간 베르모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미래에 관한 소나타를 연주했다. 그가 발명한 소리를 염두에 둔 채로 우유와 버터의 거인이 고귀한 지구를 걸었는데, 그 거인은 일부 신체가 금속으로 된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질병으로부터 그것을 보호하고 지속적인 생산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가령 턱은 강철로 되어있으며 장은 (대변분해로 인한 질병에 대비하여) 거의 완전히 기계화되어 있고 유선(乳腺)은 전자기적으로 완벽해져야만 했다(플라토노프 2011c: 393).
체푸르니도 역시 [야코프 티티치를 위해] 뭔가 끓여주기를 원했지만, 얼마 전에 벌써 체벤구르에 성냥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고프네르는 알고 있었다] 어느 버려진 정원의 작은 우물 옆에 있는 나무 펌프를 물 없이 가동한다면, 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펌프는 이전에 사과나무 아래 땅을 적시기 위해 물을 뿜어 올렸으며, 풍차가 펌프를 돌렸다. 고프네르는 언젠가 이 동력장치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제 이 펌프를 물기 없이 피스톤 마찰을 시켜서 불을 얻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프네르는 펌프의 나무 실린더를 짚으로 싸고 풍차를 돌리라고 체르푸니에게 지시하고는, 짚에서 연기가 나면서 불이 붙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플라토노프 2011a: 338; 『체벤구르』 535쪽)
마르쿤은 허리를 숙여 도면을 보았다. 그의 터빈은 여섯 개의 나선구조가 직접 연결되어 동력이 곧바로 배가되는 방식이었다. 즉 여섯 배로 가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때 물은 마지막 여섯 번째 나선에만 들어갈만큼만 있으면 됐다. 다른 나선들도 물로 작동되기 때문이었다.
이론이라고 하는게 사실 경험으로 입증되지 않는 이상 거짓과 다를게 없다고 마르쿤은 생각했다. 세계는 무한하고, 그에 따라 세계 안의 에너지도 무한하다. 나의 터빈은 이를 증명해 보였다.
그때 이런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만일 저항이 무한하고 내구성도 무한한 금속을 발견한다면? 그런데 그런 금속도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런 금속도 저항의 형태로 존재하는 에너지의 한 종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와 그 무한한 형태에 관한 법칙에 근거한다. 나의 기계는 우주를 한 순간에 집어삼킬 구멍이며, 우주는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다. 또 나는 그렇게 새롭게 태어난 우주를 다시 엔진의 나선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는 동력이 두제곱, 세제곱으로 증가하는 터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기계의 구멍에 따뜻한 남쪽 바다를 넣어 극지방으로 옮겨놓을 것이다.
만물이 만개하여 영원한 기쁨에 떨고 스스로의 전능함에 도취되도록 할 것이다. (플라토노프 2004a: 143; 『마르쿤』, 『예피판의 갑문』 219-220쪽).
아마도 기계와 사물의 이런 대립이야말로 특이한 사물들에 ‘기즈모’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려했던 바일 것이다. 4
기계와 사물은 상호 배타적이다. 기계는 완성된 형태이고 기즈모는 타락한 형태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자는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후자는 상상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서로 종류가 다르다는 의미에서다. ‘기계’는 특정한 실제적 전체를 가리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구조화하지만, ‘기즈모’는 순전히 형식적인 작동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체에 대해 작동한다. 기즈모의 미덕은 현실 속에선 무력하지만 상상의 측면에서는 보편적이라는데 있다. (보드리야르 1995: 97). 5
‘기즈모’는 이름을 갖지 못한 모든 것의 이름이 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의 목적을 알 수 없는, 하지만 목적이 있다고 믿어지는 어떤 사물이 있다면 그것은 기즈모가 될 수 있다. 그러다가 문득 이름, 어구, 그리고 그 사물을 식별가능하게 만드는 어휘 목록을 기억해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제트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나 기술 장치가 될 것이다. 기억과 발화의 실패로서의 기즈모. 이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기즈모가 기술적 판타지의 유희 속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동하지 않는’ 가제트가 아니라 다른 것, 미래의 기술적 완성도의 가장 높은 형태(가령, UFO)가 되기. 이때의 기즈모는 우리가 그 목적을 설명할 수 없는 미래의 특별한 기술적 구축물에 해당한다. 이럴 경우에 기즈모는 현실 원리를 부정하고 그것을 뛰어넘는다. 기즈모 현상에 대한 설명에서 리비도적 잔여물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그것이 돌연 사물들의 세계의 남근적 차원의 일부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역설적이게도 체벤구르의 모든 원시적 장치와 기계들은 기즈모가 됨으로써 그것의 목적이 기술적 쓸모와 충돌하게 된다(“그것들은 작동하지 않는다”). 전통적 아방가르드에는 “기즈모”가 없으며 모든 것이 명확하다. 사물은 이상적 논리, 특정 종류의 모델(즉 샘플과 금형)로 축소된다. 가령, 르코르뷔지에의 모듈러나 말레비치의 아키텍톤이 그러하다. 거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회나 인간뿐 아니라 우주를 재구성할 수 있는 보편적 기계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야심이다.
- 끝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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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латонов, Андрей (2011e). Фабрика литературы. Литературная критика, публицистика. Сост., коммент. Н. В. Корниенко. М.: Время, 2011.
Семенова, Светлана (1990). Николай Федоров. Творчество жизни. М.: Советский писатель.
Тесла, Никола (2008). Статьи. Самара: Агни.
- 플라토노프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원초적 친족 관계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했다. 자연은 어머니, 기계는 아버지다. 기계와 함께 새로운 친족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아버지 없이 ‘존재’하지만 열정적으로 아버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기계는 멸망한 죽은 아버지를 아들에게 되돌려주는 가장 높은 아버지-신이다. 방황, 방랑, 노숙(자), “고향과 따뜻함”의 결핍은 모성적이고 여성적인 어머니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아버지에게로의 회귀의 결과다. “기타인간 중 누구도 자기 아버지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잃어버린 평온에 대한 육체의 흐릿한 슬픔으로만,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텅 빈 슬픔으로 변화되었던 그 애수의 감각(toska)으로만 어머니를 기억했다. 태어나고 나면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법이다. 아이는 어머니를 사랑하며, 고아였던 기타 인간들조차 자기를 버리고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에게 결코 분노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자라나면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버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이미 생의 끝까지 자연의 힘과 어머니의 감각으로 충만해 있다. 아이는 호기심 많은 얼굴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연을 인간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끈덕진 따스함 이후에,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의한 삶의 압박 이후에, 아버지가 그의 최초의 친구이자 동지가 되는 것이다. (플라토노프 2011б: 284; 『체벤구르』 449-450쪽) 바로 이것이 만연한 부친 부재 상태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바로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인 것이다. [본문으로]
- 플라토노프의 재고목록 중 하나. “그는 기계가 살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기계를 사랑했다. 그것은 철과 모든 죽은 자들이 인간과 함께 되살아나는 부활, 말하자면 완전히 살아있는 미래의 이미지였다.”(플라토노프 2000: 240). [본문으로]
- [옮긴이주] 포도로가는 이 물건들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단어로 슈투코비나(shtukovina)를 사용하는데, 이에 대응될 수 있는 프랑스어 단어가 바로 ‘machin’이다. 둘 다 일상적 용법에서 우리말 ‘거시기’와 유사한 “그것”에 해당한다(이에 관해서는 아래 18번 각주를 보라). 포도로가 논문의 영어 번역자는 이 단어를 gadget으로 옮기고 있는데, 가제트 혹은 기즈모(gizmo)는 장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와 『사물의 체계』에서 제시했던 개념이다. 최대한 간략히 말해 그것은 본래적인 유용성과 목적성에서 탈각하여 유희적 성격을 띠게 된 사물 일체를 가리킨다. “기계는 공업사회의 상징이지만 가제트는 탈공업사회의 상징이다. 가제트에 대한 엄밀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소비 대상이 일종의 기능적 무용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가제트야말로 소비사회에서의 사물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물은 가제트가 될 수 있으며 또 잠재적으로 가제트이다. 가제트를 정의한다면 그 정의는 잠재적 무용성과 유희적 조합에 의해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2, 158쪽. [본문으로]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을 참조하라. “이러한 유사성에는 놀라울 것이 없다. 미지의 대상, 즉 기능이 불분명하거나 그 효과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대상을 프랑스어 용어인 트뤼크(truc)나 마샹(machin)으로 부를 때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럽긴 하지만 동일한 비유를 수행하는 것이다. 마샹의 어원은 기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힘 또는 권력을 뜻한다. 트룩의 어원은 게임에서의 우연한 행운이나 저글러의 성공적인 던지기를 뜻하는 중세 용어에서 유래했다...”(1987: 54-55). 구어체 러시아어에는 잘린 천(직물의 단순한 절단)을 가리키는 단어가 존재한다. 길이가 12미터 정도 될 경우에 ‘슈투카(shtuka)’라고 불렀다(1950~1960년대 소련인들은 모스크바에 기성품 옷가게가 없었기 때문에 소규모 양복점에서 옷을 사 입었고, 그래서 “아트레즈”라는 잘린 천을 뜻하는 이 명칭이 드레스 천의 길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본문으로]
-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다. 결국 분명한 것은, “작동하지 않는” 모든 기계,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로 발명한 그 기계들은 정확히 “가제트들”이라는 사실이다. 페르낭 레제, 마르셀 뒤샹, 프란츠 카프카, 윌리엄 버로스, 앤디 워홀의 기계뿐만 아니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모든 환상적 기계들도 마찬가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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