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기계들”과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문학
발레리 포도로가 (러시아학술원 철학연구소)
번역: 김수환 (한국외대)
요약
이 글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저작의 핵심 중 하나인 기계의 테마를 고찰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기계가 아니라 혁명적인 기계, 그것의 목적이 삶과 자연, 그리고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에 놓인 기계다. 그런데 이 변화는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가? 유토피아와 안티유토피아 중 어느 일방으로 분류될 수 없는 플라토노프의 아방가르드적 성찰의 배후에 놓인 혁명의 개념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유토피아와 안티유토피아는 공히 미래와 관련을 맺고 있지만, 플라토노프의 기계가 무대에 오를 때 그 시간은 미래와도 현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한 혁명적 시간, 자연이 황폐화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완결된 행성적 재앙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혁명적 시간의 주체성을 구현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기계인 것이다.
***합본 파일***
[번역]발레리_포도로가_플라노토프_혁명적_기계_합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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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 인간적인 것 자체가 전체로서의 기계의 일부임이 밝혀진다. 아예 기계가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이것은 달성될 수 없는 불가능한 행복이다) 부분일지언정 기계의 힘과 아름다움에 속하려는 욕망, 될 수 있는 한 최상의 존재에 속하려는 욕망이 생겨난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부분이 전체로서의 기계가 되고자 열렬히 소망한다.
플라토노프는 아무 것도 ‘고안’해 내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신의 기계 환상을 통해 기술 발전의 혁명적 가속화에 부응하려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나 인간뿐 아니라 우주를 재구성할 수 있는 보편적 기계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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