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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무브 Translation/In Moving Translation

사라 바눅셈, <대지를 소유한다는 것> 서문

by 인-무브 2026. 3. 3.

대지를 소유한다는 것

LA PROPRIÉTÉ DE LA TERRE

 

 

사라 바눅셈 Sarah Vanuxem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저자 소개: 사라 바눅셈은 법학자다. 그녀는 프랑스 남부 니스에 위치한 코트다쥐르 대학교(Université Côte d’Azur) 법학부에서 마이트르 드 콩페랑스(Maître de conférences)로 재직 중이며, GREDEG(Groupe de Recherche en Droit, Economie, Gestion) 연구 그룹의 일원이다. 파리 1 팡테옹-소르본 대학(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과 에꼴 데 오트 에튀드 앙 시앙스 소시알(EHESS)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12년 <Des choses saisies par la propriété>이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을 출판하였다. 새롭게 등장한 환경법과 제도 혁신이 전통적 민법(특히 물권법), 특히 소유권 관념과 어떻게 충돌하며 상호 변형되는지를 다룬다. 철학, 인류학, 법사학을 아우르며, 서구 소유권 모델을 생태학적 관점(특히, 에코페미니즘)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기후 위기, 멸종, 생물 다양성 손실을 마주한 오늘날, 대지와 자연의 권리를 재정의하려 시도한다. 농업권, 목축권, 생태 보상 제도, 농민 종자 네트워크, 커먼즈 등의 주제를 탐구하며, 방랑할 권리(droit de déambuler)와 같은 인류세 시대에 요구되는 법적 허구를 재구성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외 주요 저작으로 <La Propriété de la terre>(2018, Wildproject), <Des choses de la nature et de leurs droits>(2020, Quae), <Du droit de déambuler>(2025, Wildproject)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브뤼노 라투르, 니콜라 트뤼옹 지음, 이세진 옮김, 2025, 복복서가) 중 니콜라 트뤼옹의 서문(한국어판, p.33)에서 프랑스에서 라투르를 지지하는 지식 중 한 명으로 언급되었다.

 

*책 소개: <La Propriété de la terre>는 대중들에게 그녀를 알린 책으로, 분량은 짧으나 철학적, 법학적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근대 소유권 이론들을 검토하면서, 물권법상 소유권의 형성과 그 의미를 로마법, 중세법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찰한다. 그를 통해, 프랑스 민법에 담긴 소유 관념을 현대 환경법 및 관련 제도의 생태적 윤리의 측면에서 재독해한다. 그와 함께, 마르틴 하이데거 등 장소와 거주에 관한 자연 철학적 사유들에 기초하여, 자연을 '대상(object)'이 아니라 '살아가고/거주하는 환경 milieu'으로 파악한다. 이에 기반해, 기후 정의를 실현할 새로운 소유 관념과 그에 기초한 법제도들을 적극 발굴하고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는 이 책을 가리켜, 비록 100여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민법 전통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또한, 데스콜라는 Point of View와 2017년 7월 진행한 인터뷰 "The Ontology of Others: An Interview with Philippe Descola"에서 바눅셈의 아이디어가 매우 독창적이며 숙고할 만하다고 언급한다. 해당 인터뷰에서 그는 동물권에 관한 논의가 인간들로 구성된 클럽의 멤버를 확장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계하며, 여전히 사물과 인간의 전통적 법적 구분에 갇힐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다음, 이원론을 넘어서 사물을 사람들이 거주하고 살아가는 환경으로 재개념화하자는 바눅셈의 제안을 강조한다. 거기서 인간은 사물의 대표자가 아니라 사물 안에서 거주하며 사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에서만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위치한다. 이렇듯 생태주의적 법적 인격화를 향한  바눅셈의 사유는 최근 활발히 제기되는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객체 지향 존재론 등의 존재론적 전환이 지닌 법적 함의를 드러낸다.

 

*참고: https://amnerispointofview.wordpress.com/2017/07/30/the-ontology-of-others-an-interview-with-philippe-descola/

 

THE ONTOLOGY OF OTHERS: AN INTERVIEW WITH PHILIPPE DESCOLA

(July 2017) The following interview with Philippe Descola, titled “The Ontology of Others”, was published in the Journal of Philosophy, Aurora/2016, Curitiba. Descola is interviewed by Davide Scars…

amnerispointofview.wordpress.com

 

 


 

소유권은 법률이나 규정에 의해 금지된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 물건(choses)을 가장 절대적인 방식으로 향유(jouir)하고 처분(disposer)할 수 있는 권리이다.
- 프랑스 민법 제544조

 

공동체 재산(biens communaux)이란 하나 또는 여러 코뮌(communes)의 주민들이 그 소유권이나 수익(produit)에 대하여 기득권(droit acquis)을 갖는 재산을 말한다.
- 프랑스 민법 제542조

 

공화국 전역에서 황무지와 무주공지(terres vaines et vagues), 가스트(gastes), 가리그(garrigues), 랑드(landes), 방목지(pacages), 초지(pâtis), 가시금작화 군락지(ajoncs), 헤더 지대(bruyères), 공동림(bois communs), 에름(hermes), 공터(vacants), 팔뤼(palus), 늪(marais), 습지(marécages), 산지(montagnes) 및 그 밖의 온갖 명칭으로 알려진 일반적인 모든 공동체 재산은, 그 성격상, 해당 공동체 재산(communaux)이 위치한 영토의 코뮌 또는 코뮌 분구(sections de communes)의 주민 총체(généralité des habitants) 혹은 구성원들에게 귀속되며 그들의 소유이다 (...).
- 공동체 재산 분할 방식에 관한 국민공회 법령 (1793년 6월 10일 법률, IV, 1)

 

 

서문: 대지를 전유하기(S'approprier à la terre)

 

사회학자 자크 베르크(Jacques Berque)는 섹사와의 베르베르인들(les berbères des Seksawa)의 "자연적 환경에 대한/의 전유(l'appropriation au/du milieu naturel)"를 언급하며, 모로코에 위치한 하이 아틀라스 산맥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환경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것만큼이나 그 환경을 장악한다고 시사한다. 산악 지대인 슐뢰 드와르(douars chleus)에서, 장소를 전유한다는 것은 그곳을 자신에게 맞추는(à le conformer à soi) 것인 동시에 자신을 그곳에 맞추는(à se conformer à lui) 것으로 이뤄진다. 토지를 전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는(à se l'attribuer) 일인 동시에 스스로를 그것에 적합하게 만드는(à se rendre propre à elle) 일이다. 마찬가지로, 뉴칼레도니아의 카낙인들(les Kanaks de la Nouvelle-Calédonie)은 "인간-장소(hommes-lieux)"에 대지 어머니(tellus mater)를 수호할 의무를 부여하며, 인간과 대지의 "상호 귀속(l'appartenance réciproque)"을 확언한다. 이들에게 대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전유하다(approprier)'라는 동사의 이중적인 재귀대명사의 뜻을 참조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이중 의미를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민법학자들은 '전유하다'라는 동사를 굴복시키고 종속시키며 지배하는 권력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절대적인 주권 권력(d'un pouvoir souverain absolu)을 향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소유권에 대한 그러한 관념은 대지를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물질(matériau corvéable à merci)로 환원시키는 일과 결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오늘날 환경 문제들과 연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프랑스 민법은 환경 파괴를 허용하는, 비난받아 마땅한 소유권의 개념 정의를 전파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법에서 토지 소유권이 토지에 대한 전권(un plein pouvoir)을 일의적으로(univoquement) 부여한다는 이 견해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할까? 프랑스 사법(私法)의 물권법 교리가 토지를 오로지 소유자의 자의(bon vouloir)에 맡기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법학자들은 토지 소유자가 토지의 특성(spécificités)과 사용(usages)에 스스로를 맞추고(s'ajuster) 순응해야(se plier) 할 의무를 정말로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어떤 법학자도 소유권을 그렇게 단순하게 파악하지 않는다.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하에서 우세했던 ‘동시적 소유권(propriétés simultanées) 체계’를 살펴보든, 1804년 민법 제정 이후 구축된 ‘고전적 소유권 이론’의 지지자들을 보든, 아니면 1980년대부터 지노사르(Ginossar)[4]의 저작을 바탕으로 전개된 ‘갱신된 이론’의 지지자들을 보든, 토지 및 그 사용과의 연결 고리는 매번 달라진다. 갱신된 교리가 토지 소유권의 탈영토화(déterritorialisation)를 초래하는 반면, 동시적 소유권은 토지에 대한 이런저런 개별 사용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들을 지칭한다. 물론 고전 이론은 토지 소유권을 토지를 종속시키고 지배하는 권력으로 간주하는 통념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 지배력에 가해진 제한과 예외가 지닌 중요성 때문에, 다수의 학자들은 소유권이 ‘혼자서 자유롭게 행동할 권력’을 일차적으로 의미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그들은 소유권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혹은 수행해야 마땅할 역할, 즉 소유권이 담당할 수 있는 혹은 담당할 수 있을 사회적 기능(fonction sociale)으로부터 출발하여 소유권을 재정의한다(제1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접근의 지지자들도, 사회적 기능론의 초기 이론가들도, 갱신된 교리의 저자들도 토지의 그리고 토지에의 전유(l'appropriation de et à la terre)를 허용하는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소유권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동시적 소유권만이 토지 사용의 한 형태(figure)로 제시될 뿐이다. 그러나 이 체계는, 나폴레옹 법전이 그 증거라고 말하듯, 프랑스 혁명에 의해 휩쓸려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토지 사용과 직접적으로 공명하며 오늘날의 생태적 요구(exigences écologiques)에 응답하는 소유권에 관한 비전을 제안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된 교리들을 참고하고 프랑스 민법을 바탕으로, 생태 정치(politique écologique)를 뒷받침하는 소유자의 형상(figure propriétaire)을 제안하려 한다.

 

이를 위해 자연(nature)이라는 개념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의 민법 전통(흔히 로마-게르만 전통이라 불리는)에서 자연은 "법 밖에(hors-la-loi)" 있는 것으로 제시되며, 법적 세계와 그 구축물, 인공물(artefacts) 혹은 의제(fictions)들과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민법은 정의상 자연의 법이 아니라 시민(cité)의 법이다. 그러나 법사학자 얀 토마스(Yan Thomas)의 지도 아래 우리 법 전통의 로마적 기원으로 돌아가 본다면, 야생 상태나 자연 환경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이 법의 타자일 뿐만 아니라 법의 조력자나 보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사건이나 분쟁, 혹은 사안의 본질(essence)이라는 의미에서의 법적 사물의 본성(nature des choses juridiques)은 로마법의 지극히 과정적(processuel)인 성격을 드러내며, 로마에서 자연이라는 법적 범주가 법적 사물의 범주와 나란히 제시될 수 있다는 생각을 불가능하게 한다. 얀 토마스에 따르면, 법적 사물은 자연 상태에서 취해진 사물들, 즉 법학자의 작업이 그것을 해부하고(décortiquer) 그 법적 성질을 규정하기(qualifier) 이전의 사물들로부터 유래하거나 비롯된다. 다시 말해, 법이 하나의 구성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에 대립하는 인공물이 아니라, 때로는 자연에 맞서고 때로는 자연을 좇되, 항상 자연으로부터 빚어진 인공물이다. 얼핏 소유권 개념과는 무관해 보이지만, 로마법적 사물의 과정적 본성은 토지의 사용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면서 단지 토지에서의 거주(habitation)를 의미하는 소유권의 정의를 정교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제2장).

 

거주할 수 있는 능력(faculté d'habiter)으로서의 이러한 소유권 관념은, 소유권을 "법률이나 규정에 의해 금지된 사용을 하지 않는 한, 물건을 가장 절대적인 방식으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는 민법 제544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소유권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의미 규정(acception)을 통해, 우리는 코뮌이나 코뮌 분구 주민들의 공동체적 소유에 관한 제542조 또한 재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전유는 인간 타자들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동 거주(cohabitation)로 이해될 수 있다(제3장).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민법의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며, 생태적 덕성을 갖춘(écologiquement vertueuses) 일부 기존 제도와 법적 해결책들을 재활성화할 수 있는 한 생태적 전환을 돕기 위해 우리 법을 무너뜨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분명히 해둘 점은, 소유권을 거주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비전이 프랑스 사법의 물권법 전체를 읽어내는 틀을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프랑스 영토 내에서 현재 시행 중인 실정법(droit positif) 전체를 설명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물에 대한 접근 권리, 권리들의 묶음(faisceau de droits), 혹은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현대 소유권 관념들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주로서의 소유권(propriété-habitation)은 이러한 현대적 비전들과 공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