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소유한다는 것
LA PROPRIÉTÉ DE LA TERRE
사라 바눅셈 Sarah Vanuxem
번역: 박기형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장. 대지와의 연결에 따라 검토한 세 가지 소유 형태
프랑스 사법(私法)상의 물권법은 소유에 관한 다양한 관념을 제공한다. 모든 것을 망라하려는 것은 아니나, 우리는 소유를 대지와의 연결 속에서 사유하는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대지의 효용들을 향유하게 해주며, 프랑스 혁명과 함께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동시적 소유 체계. 둘째, 1804년 민법전 채택 이후 형성되었으며, 부동화된 대지의 지배를 허용하는 고전적 소유 이론. 셋째, 1980년부터 전개된, 땅에서 유리된(hors-sol) 배타적 향유로서의 갱신된 소유 학설이다.⁶
1-1. 대지의 효용들에 대한 향유 — 동시적 소유 체계
첫 번째 소유 형상은 다원성(pluralité)을 그 표지로 삼아 나타난다. 이는 서로 맞물리고 얽혀 있는 소유들의 체계로, 1832년 8월 16일 낭시(Nancy) 법원의 판결 이후 더 일반적으로 "동시적"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체계는 동일한 하나의 토지(fonds de terre)에 복수(multiplicité)의 소유권이 병존함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1832년의 이 판결에서 동일한 부지(terrain)에 대한 서로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권리상 동등한" 소유들, 곧 그루터기와 목재에 관한 권리가 단 한 명의 소유자가 아니라 국가와 브레스(Bresse)의 코뮌에 각각 귀속된다.
이 첫 번째 형상은 아마도 대지의 사용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동시적 소유 체계는 우리의 이른바 민법 전통 안에서 대지의 사용으로서의 소유(propriétés-usages de la terre)를 그려내는 듯하다. 왜냐하면 동시적 소유들은 무엇보다 대지와 관련되며, 오직 대지를 사용할 권리만을 부여하고, 관행과 관습(us et coutumes)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안-마리 파토(Anne-Marie Patault)는 『물권법 역사 입문(Introduction historique au droit des biens)』에서 동시적 소유들을 "순수하게 관습적이고 경험적인" 체계로 정의한다. 이 체계에서 서로 다른 각각의 소유는 동일한 하나의 토지의 "구별되는 효용"과 관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대지의 하나 또는 여러 효용을 향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역사가는 "효용의 향유로서의 소유(propriété-jouissance d'utilité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⁹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동시적 소유가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었는지 엿볼 수 있다. 동브(Dombes)에서는 레셰르(leschères)라 불리는 정비된 습지가 많은데, 이 습지들은 인공 연못을 배수하고 다시 물을 채울 수 있게 하는 수문을 갖추고 있다. 건조지 이용의 해(assec)에는 말라붙은 땅이 경작되고, 양어지(養魚池) 이용의 해(évolage)에는 물이 찬 땅이 다시 양어지가 된다.[1] 곡물 재배자들과 어부들은 동일한 하나의 토지(fonds) 위에서 각각의 건조지 이용권과 양어지 이용권을 차례로 행사한다.¹⁰ 알프-마리팀(Alpes-Maritimes)에서는 방디트(bandite) 권리가 이른바 방디오트(bandiotes)에게 방목권, 곧 자신들만이 효용을 독점하지 않는 대지에서 가축을 풀어 먹일 권리를 부여했다.¹¹ 이동 방목지가 한 해의 일부 동안 경작되는 경우, 방디트 권리를 가진 목축민은 그곳으로 가축 떼를 몰고 가기 전에 과실과 수확물이 완전히 거두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아르데슈(Ardèche) 고원에서는 구둘레(Goudoulet)의 자유민들이 13세기 초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에그벨(Aiguebelle) 수도사들의 숲에서 방목권과 산림 이용권, 곧 땔감 채취권(affouage)과 건축재 채취권(marronnage)¹²을 행사했다. 이는 수도사들이 허락한 영구적 엠피테우시스 임차(bail à emphytéose perpétuel)[2]에 근거한 것이었다.¹³
이론적 차원에서, 필연적으로 지역적이고 우연적인 동시적 소유의 장치는 하나의 개념, 곧 세진(saisine)에서 출발하여 설명될 수 있다. 세진은 정당하고 보장된 점유를 근거로 어떤 대지의 특정한 효용들을 향유할 권리를 가리킨다. 세진은 토지의 효용들에 접근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대지 사용자들의 집단에 속할 권리다. 어떤 대지의 세진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대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하고 공적으로 인정된 권한을 갖는다는 뜻이다. 13세기 노르망디의 한 관습법서¹⁴에 따르면, 어떤 대지의 세진 안에 있는 자는 "그것을 점유하고, 수확하고, 경작하며, 그 과실과 산물을 거두는 자"이다.¹⁵ 물론 이 개념은 복잡하며, 세진은 여러 형태를 띤다. 클림라트(Klimrath)는 1835년 「중세 관습법서에 따른 세진에 관한 역사적 연구」(Étude historique sur la saisine d'après les coutumiers du Moyen Âge)에서 사실상의 세진, 권리상의 세진, 단순한 세진, 진정한 세진을 구별한다. 예컨대, "1년 1일의 취득시효"는 진정한 세진을 구성한다.¹⁶
몇 가지 역사적 표지를 세워보자. 프랑스 관습법상의 소유법은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세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동시적 소유라는 구조물은 12세기부터 로마법이 재발견되고 그에 결부된 개인적·절대적 소유 관념이 수용되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구조물은 16세기 개인주의의 부상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 17세기에는 중농주의자들이 옹호한 토지 인클로저¹⁷를 거치며 크게 쇠퇴했고, 마침내 혁명가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¹⁸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적 표지는 세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한편으로, 동시적 소유는 프랑크법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그 뿌리는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왜냐하면 프랑크인들은 대지와 자신들이 살아가던 환경(milieux), 곧 흙, 숲, 연못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rapport d'identification)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마리 파토가 설명하듯, 소유는 대지의 효용들을 향유할 권리로 이루어졌으며, 이 권리는 관련 인간 집단이 뒷받침했다.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 혁명 전야에도 여전히 널리 존재하던 동시적 소유들은 혁명과 함께 완전히 사라질 수 없었다.¹⁹ 앞서 인용한 1832년 판결이 이를 증언한다. 그 판결은 동시적 소유 체계에 명칭을 부여했다. 또한 1963년 7월 8일 법률에 의해 뒤늦게 폐지되긴 했지만 방디트 권리가 잔존했던 것²⁰, 그리고 오늘날 생물다양성의 이름으로 보호되는 습지 관련 계약에 관습법상 소유법이 간섭하는 것과 같은 현대적 현상들 역시 이를 증언한다.²¹
이러한 세부 사항들은 중요하다. 동시적 소유들은 오랫동안 봉건-영주제와 결부되어 왔고, 흔히 그것과 동일시된다. 그래서 관습법 체계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것이 인간들 사이의 상호의존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충성, 심지어 예속까지 수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진 개념이 프랑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동시적 소유가 본질상 봉건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봉건-영주제 아래에서도 알뢰(alleu)²²처럼 인신(人身)상의 종속이 없는 동시적 소유들(propriétés simultanées sans dépendance personnelle)이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관습법상 소유법이 반드시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은 아님을 입증한다. 또한 혁명가들이 동시적 소유 전체에 일률적으로 맞섰는지도 확실하지 않으며,²³ 민법전을 기초한(起草, rédiger) 사람들이 1804년에 옛 물권법과 완전히 단절하고자 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의 민법전은 동시적 소유 체계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을 담고 있을 수 있다. 1835년 클림라트는 심지어 물권법에 관한 민법전의 모든 조항이 올바르게 이해되려면 세진에 비추어 읽혀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²⁴
그럼에도 소유에 관한 법률 조항들을 해석할 때 다수설이 따르는 것은 세진이라는 프리즘이 아니라 로마법의 도미니움(dominium)이라는 프리즘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2. 부동화된 대지에 대한 지배 — 고전적 소유 이론
11세기 말, 볼로냐의 법학자들은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Justinien) 황제가 모은 로마법 문헌들을 재발견한다. "주해(glose)에 실려", 로마법은 12세기부터 프랑스 관습법 안으로 "침투하고 그것을 재형성한다."²⁵ 그 결과 대지의 지위가 변화한다. 동시적 소유의 모태였던 프랑크법은 지속하는(durables) 사물과 소멸하는(périssables) 사물을 구별한 반면, 로마법은 고정된 사물과 움직이는 사물을 구분하였다. 대지는 프랑크법의 범주에서는 인간의 향유에 제공되지만 그 자체로는 전유될 수 없는, 영속적(pérenne)이고 생산적인 사물들에 속했다. 그러나 대지는 곧 로마법상의 부동산 범주로 넘어가며, 동산과 함께 재산의 범주, 곧 전유된 사물들의 범주 안에 놓이게 된다.²⁶
대지(terre), 더 정확히 말하면 토지(fonds de terre)²⁷는 다른 부동산들—건물, 물레방아나 풍차, 관, 수확물, 과실, 목재 등—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이 점에 주목하자. 과거와 현재의 민법전 주석가들에 따르면, 토지는 실제로 "탁월한 부동산", 곧 그 원형이다.²⁸ 어떤 이들은 "엄밀히 말해", 토지가 "그 본성상 진정으로 부동성을 지닌 유일한 사물들"이라고 가르치며,²⁹ 다른 이들은 부동산 가운데 "제대로 말하자면 그러한 것은 토지뿐"이라고 확인한다.³⁰ 관념적 부동산으로서의 지위와 함께, 대지에 대한 법적 관념은 변화한다. 대지는 더 이상 그 사용을 위해 '세대들의 계승과 모두의 연대'³¹를 요구하는 '우주'의 살아 있는 요소, 곧 문자 그대로 먹여 살리는 생산적 사물이 아니다. 이제 대지는 코르셋에 옥죄이고 부동화되고 무력화되어(neutralisée) 수동성에 처해진 존재물이 된다. 지표면 또는 지각의 한 부분이나 조각으로 환원된 토지는 이제 연장 실체(res extensa) 또는 유체적 실체(substance corporelle)에 불과하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토지를 유체적 사물로 동화시키는 것은 가이우스(Gaïus)가 세운 res corporales와 res incorporales, 곧 유체적 사물과 무체적 사물 사이의 로마법적 구분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이는 법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오직 법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사물들 사이의 구분이다. 대지는 법 바깥에 존재하고 구성된 것의 질서가 아니라 주어진 것의 질서에 속하기 때문에 유체적 사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res corporales로서의 지위는 대지가 전유될 수 있는 사물의 범주 안으로 들어섬을 뜻한다. 왜냐하면 해석가들은 도미니움, 곧 사물에 대한 완전한 권력인 plena in re potestas를 로마적 소유 모델로 선택했으며, 가이우스가 자신의 사물 구분 안에서 그러한 제도를 어째서 언급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유가 무체적 사물들, 곧 권리들(jura)의 목록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해서 유체적 사물의 항목에서 언급되는 것도 아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로마법학자들은 소유가 암묵적으로 res corporales에 참여한다고 상정한다. 가이우스가 자신의 사물 구분에서 도미니움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로마법상 소유가 그것이 미치는 현실 세계의 사물들과 하나로 뒤섞일 만큼 강한 역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res corporales 안에 편입된 로마법상 소유는 따라서 유체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³²
Res corporales로서, 대지는 전유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동시에 대지는 주인에게 예속된 노예처럼,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사물이 된다. 이는 토지소유가 더 이상 대지의 하나 또는 여러 효용을 향유할 능력을 뜻하지 않고, 대지를 종속시키고 지배할 권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부동화되고 물질로 환원된 대지는 자신의 소유자에게 전적으로 종속된다. 그 소유자는 대지를 "하늘에서 지옥까지"³³ 처분할 자유를 가지며[3], 대지를 좋게 또는 나쁘게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함부로 다루거나 남용할 수도 있다. 동시적 소유가 "자연 앞에서 개인의 열등성", "자신은 하나의 고리에 불과한 세대들의 사슬 앞에서의 열등성"을 표현했고, 대지 사용권 이외의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던 반면, 새로운 로마법적 소유 관념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 "집단"에 대해서도 "개인의 우월성"을 상정하고, 그 개인에게 유체적이고 배타적인 도미나티오(dominatio, 지배권)의 권력을 부여한다.³⁴
이렇게 절대주의적(absolutiste)이고 개인적인(individuelle) 소유 관념은 일반적으로 혁명가들의 바람에 응답하여 나폴레옹 법전이 승인한 유일한 소유 모델로 제시된다. 그 근거는 민법 제544조이다. 이 조항은 소유를 "법률이나 규정으로 금지한 사용을 하지 않는 한, 사물을 가장 절대적인 방식으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한다. 법학자들은 어떤 사물의 소유자가 그 사물의 "주인이자 영주"와 같다고 가르친다. 마르카데(Marcadé)는 소유자가 자신의 사물에 대해 "절대적 전능, 완전한 전제적 지배"를 갖는다고 쓴다.³⁵ 이러한 소유 관념은 권리주체의 자유로운 의지, 곧 인격-소유자를 권리객체의 수동성, 곧 전유된 사물과 대립시킨다. 이는 근대 서구의 법 관념에 속한다. 많은 법학자들은 여전히 이러한 관념에 동의할 수 있는데, 이들은 사물과 인격의 summa divisio를 법의 근간으로 간주하거나, 데카르트(Descartes)를 인용하면서 인간을 "둘러싼" 세계를 인간의 "놀이터"로 바라본다.³⁶
그럼에도 같은 학자들³⁷은 소유권에 부과된 제한들을 기꺼이 강조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토지소유자가 해당 토지의 모든 효용을 자신의 손안에 모으고 대지 자체까지 지배해야 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토지 위에 홀로 주권자로 군림하는 소유자의 형상은 실제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준거 모델이며, 여기서 여러 제한과 제약이 파생된다. 먼저 민법 제544조가 예정한 제한들, 그리고 이웃관계의 비정상적 방해와 권리남용에 관한 판례법적 제한들이 있다. 또한 여러 제약이 뒤따르는데, 이는 지역권 설정, 도시계획·환경 규칙의 준수, 운영자나 사용자들—예컨대 대지의 차지농(借地農)-사용자들—에게 점진적으로 부여된 권한들, 그리고 특히 건축된 부동산의 구분소유[4] 같은 집합적 소유 형태의 인정에서 비롯된다. 소유권 행사에 부과된 제한들이 담긴 이 목록으로부터 레노(Raynaud)와 마르티(Marty)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소유자의 이익, 하물며 소유자의 이기심의 충족이 더 이상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적어도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과거에 전부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³⁸ 이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위세를 떨쳤던 주권적 소유가 더 이상 법적 현실을 충실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 나아가 그것이 애초에 법적 현실을 반영한 적조차 없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레유-소미에르 후작(marquis de Vareilles-Sommières)의 말을 옮기자면, "소유자가 사물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권리를 갖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³⁹는 점만이 아니라, 소유자가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진 적이 애초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소유 관념은 결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소유권의 "사회화 운동"을 받아들이면서, 뒤기(Duguit)나 조스랑(Josserand) 같은 교수들은 이미 1920년대부터 절대적 소유라는 신화를 버리고 소유를 사회적 기능으로 정의했다.⁴⁰
프레데릭 제나티-카스탱(Frédéric Zenati-Castaing)은 『소유에 관한 시론(Essai sur la propriété)』[이하 시론]에서, 소유자 권한의 이러한 상대화가 법의 변천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소유에 대한 잘못된 정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정의는 민법전 채택 이후 형성되었지만, 민법전을 기초한 사람들과 혁명가들의 바람—즉 동시적 소유와 단절하고 로마법적 · 절대주의적 소유 관념을 승인하려는 바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⁴¹ 설명해보자. 이른바 고전적 소유 학설의 지지자들은 물권과 채권의 구분에서 출발하여 소유를 물권, 곧 용익권처럼 그 객체인 사물에 직접 미치는 권리로 정의하고, 채권처럼 그 사물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권리로 정의하지 않는다. 고전 이론에서 소유는 완전성을 특징으로 하는 물권을 구성한다.⁴² 그러나 소유권이라는 물권의 완전성이 소유자가 권리객체-사물(chose-objet de droit)에 대해 완전한 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다른 물권들, 곧 불완전한 물권들이 소유권과 같은 본성을 지닌다는 것 또한 뜻한다. 그리고 그 반대로 소유권은 불완전한 물권들의 결합일 뿐이라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고전적 소유 이론의 지지자들은 이 권리가 예컨대 용익권과 나소유권(裸所有權, nue-propriété)[5] 사이에서 잘라 나뉘거나 분할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유를 제시하기 위해 유명한 삼항 구도인 usus–fructus–abusus에 의존한다. 결국 소유는 전유된 사물들을 사용할 권리, 향유할 권리, 처분할 권리로 이루어진 권능들의 묶음(faisceau de prérogatives)을 부여하는 셈이다.
프레데릭 제나티-카스탱은 이로부터 고전적 소유 이론이 중세적 소유 관념과 단절하지 않는다고 추론한다.⁴³ 왜냐하면 이 학설은 민법상 소유권의 단일성(unicité)과 절대성(absoluité)에도 불구하고, 소유권이 여러 권리들, 곧 jura로 분해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적 소유 이론이 패러다임의 역전을 수행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분할 가능해진 소유는 동시적 소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동시적 소유는 처음부터 복수적인 반면, 분할된 소유는 단 하나의 총체적인 소유권이라는 물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프레데릭 제나티-카스탱은, 특히 티에리 르베(Thierry Revet)와 함께, 단일한(unitaire) 소유라는 도그마⁴⁴를 지키고, 혁명적 사유와 로마법의 도미니움 사이의 어긋난 만남을 뒤늦게라도 성사시키고자, 갱신된 소유 이론을 제안한다.
1-3. 땅에서 유리된(hors-sol), 배타적 향유 — 갱신된 소유 이론
민법상 소유의 단일성을 옹호하기 위해, 『시론』의 저자는 "소유란 그 안에서 하나의 권리가 소멸하는 사물"이라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말한다.⁴⁵ 그에 따르면, 소유는 유체적 사물들 안에 편입된 "슈퍼" 물권이 아니라, 유체적 사물이든 무체적 사물이든 사물들을 종속시키거나 장악할 수 있는 인격의 성질 또는 능력이다.⁴⁶ 다시 말해, 소유는 재산도, jus라는 의미의 권리도 아니라, 로마에서 pater familias(가부장)가 지녔던 도미니움처럼 인격에 부착된 역량, 곧 유체적 사물들뿐만 아니라 물권 같은 권리들(jus)에도 미칠 수 있는 권력(pouvoir)이다.⁴⁷
정리해보자. 동시적 소유 체계에서 소유는 결코 대지의 효용들에 대한 권리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전 이론에서 토지소유는 대지 자체에 미친다. 다만 전유될 수 있는 사물의 범위는 res corporales, 곧 법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그러나 대개는 유형적 사물들로 제한된다. 용익권과 같은 권리들, 정신적 저작물과 같은 비물질적 사물들은 전유를 벗어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토지가 보여주는 경관과 같은 물질적 사물들의 비물질적 차원 역시 소유자에게 장악될 수 없다. 반면 갱신된 소유 이론에서 소유는 다음 세 가지에 모두 미칠 수 있다. 첫째, 권리들 또는 jus, 예컨대 타인의 토지 위를 지날 권리. 둘째, res corporales, 곧 법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들로서 토지나 전통지식 같은 것. 셋째, 토지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같은 물질적 사물들의 비물질적 차원.⁴⁸ 따라서 소유는 권리들, 무형(intangible)의 사물들, 유형(tangible)의 사물들이 지닌 무형적 차원을 통해 비물질적인 것에 열린다.
소유 영역의 이러한 확장은 생명공학적 발명에 관한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의 존재를 설명하고, 다시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는 숲의 소유자가 자신의 나무들이 격리한 탄소나 그 뿌리들이 보유한 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상상할 수 있게 하며, 그리하여 사물들이 낳는 이 새로운 과실, 곧 생태계 서비스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전유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⁴⁹ 갱신된 이론은 또한 대지 사용권의 일종의 지위 하락을 초래한다. 실제로 사용권은 더 이상 동시적 소유 체계에서처럼 진정한 소유권을 구성하지도 않고, 고전 이론에서처럼 축소된 소유권을 구성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유체적 사물들과 같은 자격에서 전유될 수 있는 사물들, 곧 잠재적 권리객체들이 된다. 마지막으로, 갱신된 이론이 계속해서 사물에 대한 서구의 근대적 관념을 전달한다는 점을 보자. 고전 이론에서처럼, 소유는 물질적 기저 또는 유체적 연장체로 이해된 사물에 미치는 권력을 의미한다. 이는 소유가 비물질적인 것의 질서 안으로 새롭게 진입하는 일이 사물에 대한 물질적 표상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것이 권리이든, 물체이든, 무형적 존재물이든, 모든 사물은 인격들 외부에 있는 물질적 객체의 상태로 환원된다.
의미심장하게도, 갱신된 소유 학설의 지지자들은 "소유는 주체의 의지가 사물들 위에 군림함을 표현한다"⁵⁰고, 사물과 인격의 summa divisio, 곧 권리객체와 권리주체의 대립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여전히 근본적이다"⁵¹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이 소유가 사물 안에 편입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소유권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소유에 흡수된 사물⁵² 또는 그 소유자의 인격 안에 용해된 사물⁵³, 곧 용해 가능한 물체의 이미지를 거리낌 없이 불러낸다. 특히 이들의 공동소유 분석은, 이들이 어떤 낱말을 고르든, 실제로는 사물을 물체처럼 도식화하여 추론한다는 점을 입증한다. 실제로 공동소유는 비정상적인 소유 형태로 제시되며,⁵⁴ 그것은 공동소유자들 사이의 끝도 휴전도 없는 "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절대적 무기력"⁵⁵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집합적으로 전유된 사물을 평온하고 실효적으로 향유하기 어렵다고 보는 까닭은, 무엇보다 사물을 물체로 보는 이 이미지에 있다. 한 공동소유자가 다른 이들에게서 일부를 빼앗거나 그들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지 않고서는 그 사물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⁵⁶
공동소유가 모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은 더 나아가 갱신된 학설에서 소유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배타성이다. 공유(共有, indivision)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공유가 "배타성이라는 소유의 본질적 차원"을 훼손하기 때문이다.⁵⁷ 소유는 "그 권리자와 재산" 사이에 "배타적 관계"를 수립한다.⁵⁸ 따라서 개인적 소유는 소유의 한 양태가 아니라 소유 그 자체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유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어떤 사물의 효용들을 향유할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그 효용들로부터 "모든 제3자를 배제할" 권한(pouvoir)을 부여받는 것이다.⁵⁹ 소유권은 사물 사용에 접근할 권리를 뜻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밀어내는 "배척-권(droit-repoussoir)"⁶⁰ 또는 배제권을 뜻한다. 이 새로운 정의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의 전제로서 제시된다. 소유가 근본적으로 배타성의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없으며, "거기에 소유의 실체 자체가 있다는 점은 의심스럽지 않다"⁶¹는 것이다. 민법 제544조가 소유를 어떤 인격과 어떤 사물 사이의 배타성 관계로 정의하지 않고,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사물들을 가장 절대적인 방식으로 향유하고 처분할 권리—그것도 여럿이 함께라면 왜 안 되겠는가?—"로 정의하고 있는 이상, 이 명제는 입증하기 까다롭다는 점을 주목하자. 무엇보다 공유(indivision)[6], 담의 공유(mitoyenneté)[7], 건축된 부동산의 구분소유를 예외적 상황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컨대 사용권이나 용익권 같은 권리들이 어떤 사물에 설정될 수 있으면서도 어떻게 소유자의 고독을 깨뜨리지 않는지 설명해야 한다. 특히 바로 그 향유권이 용익권자에게 귀속될 때, 소유자가 자신의 사물을 향유할 권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는지 설명해야 한다.⁶²
이러한 난점들과 관련해, 갱신된 소유 학설이 제시한 해결책은, 정확히 말해, 용익권자의 향유권과 소유자의 향유권 사이에 본성의 동일성이 있음을 부정하는 데 있다. 민법 제578조와 제544조에 언급된 향유권들은 이름만 같을 뿐, 신중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 결과, 용익권자와 소유자 사이에는 경쟁도 협력 관계도 없게 된다. 용익권자가 "효용의 향유"를 누리는 반면, 소유자는 "배타성의 향유"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⁶³ 예컨대, 전자가 어떤 대지의 효용들을 향유한다면, 후자는 그 대지와 맺는 자신의 배타성 관계를 향유한다. 따라서 용익권자는 대지를 사용해 그 과실을 거두는 반면, 소유자는 자신이… 소유자라는 처지 자체를 향유한다. 실제로 그의 향유는 사물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 관계 안에 있다. 그의 향유는 전유 그 자체, 곧 어떤 사물을 오직 자기만을 위해 갖는다는 사실에 자리한다. 소유자에게 향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물을 배타적으로, 따라서 홀로 향유한다는 뜻이 된다. 물론 소유자의 이러한 향유 방식, 애처로울 만큼 시샘 많고 외로운 향유 방식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완결된 사용 개념과 소유 개념 사이의 단절이다. 소유자의 향유권이 배타성 또는 전유의 관계 이외에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면, 토지소유는 더 이상 대지의 사용들과 관련될 수 없다.
이렇게 [소유가] 대지의 사용들로부터 분리된다는 점은 소유자의 처분권을 검토할 때에도 드러난다. 갱신된 이론의 지지자들에 따르면, 민법 제544조에 규정된 소유자의 처분권은 사물들을 물질적으로 지배할 권한을 수반하지 않는다. 이 학설에서 향유권이 두 가지 의미, 곧 "효용의 향유"와 "배타성의 향유"를 포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분권도 "물질적 처분"과 "법적 처분"으로 이중화(doublement)된다. "효용의 향유"와 마찬가지로, "물질적 처분"은 소유권의 "외재적 차원"이다. 다시 말해, 사물의 실체와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용, 곧 사물을 변형하고, 소비하고, 파괴할 권리는 소유권에 본질적으로 속하지 않는다(consubstantiel). 반대로 "법적 처분", 곧 전유된 사물에 대해 법률행위를 할 권리는 소유권 "정의의 구성요소"이다.⁶⁵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처분권과 abusus를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어떤 사물을 양도하거나 그 사물에 권리를 설정할 권리로, 원칙적으로 소유자에게서 박탈될 수 없다. 후자는 사물을 제거하거나 소진하거나 위태롭게 할 권리로, 소유자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비물질적인 것으로의 소유 영역의 확장은 처분권의 제한에 의해 마치 보상되는 셈이 된다. 그 처분권은 토지소유자에게 자신의 토지를 파괴할 권리를 의미할 수 없다. 그러나 토지소유는 동시에 대지와의 연결(lien à la terre)을 잃어버린다.
실제로 사용권 역시 소유의 정의에서 배제된다. 민법 제544조가 소유객체-사물들에 대해 금지된 사용을 하지 말라는 조건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갱신된 학설의 지지자들은 해당 조항이 소유를 사용할 권리가 아니라 향유하고 처분할 권리로 제시한다는 이유에서, 사용권은 소유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갱신된 이론에서 토지소유가 대지를 남용하고 유린할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그것은 대지를 사용하고 그 과실을 거둘 권리로부터도 분리된다. abusus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fructus 및 usus와도 구별된 소유는 이제 하나의 추상물일 뿐이다.
특히 토지소유의 탈육화(désincarnation)는 명백하다. 여러 법학자에 따르면, 토지는 그 '본성'상 진정한 부동성을 지닌 유일한 사물이지만,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실제로는 가동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비에 흠뻑 젖으면 땅의 표면이 변할 수 있고, 그 구성요소들, 곧 바위, 모래, 광물은 실려가고 옮겨질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어 ‘meuble’[8] 은 작업하기 쉬운 무른 흙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이러한 물리적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갱신된 소유 이론의 지지자는 부동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관념을 제안하게 된다. 따라서 레미 립샤베르(Rémy Libchaber)에 따르면, 땅은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 표면"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관념적 부분" 또는 "지각(地殼)을 추상적으로 잘라낸 구획"으로 보아야 한다.⁶⁷ 어떤 토지를 부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토지가 지표면에서 늘 동일한 하나의 조각을 가리킨다는, 이른바 지형학적 의미에서다. 토지소유는 지구의 추상적인 한 부분과 맺는 배타적 관계일 뿐이며, 말 그대로 땅에서 유리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더 이상 동시적 소유 체계에서처럼 대지의 효용들을 향유할 권리를 의미하지 않으며, 고전적 소유 이론에서처럼 대지의 살을 지배할 권리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토지소유는 지적(地籍)상 배타적 연결[9]일 뿐이다.
소유에 대한 관념은 확실히 갱신된다. 예컨대 타인에게 자신의 사물에 대한 권리를 설정해주는 일은, 더 이상 [그렇게 함으로써] 권력이 줄어든 군주의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그 행위 가운데 자리한 소유자-주권자의 이미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갱신된 학설이 중세적 소유 관념[10], 특히 "상급영유(上級領有, domaine éminent)"와 "용익영유(用益領有, domaine utile)"⁶⁸의 봉건적 분할과 실제로 단절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소유자는 다른 이들이 유용하게 이용하는 사물에 직접 연결된 영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토지소유가 더 이상 대지를 사용할 권리, 그 효용들을 향유할 권리, 또는 그것을 물질적으로 처분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활한 "상급영유"가 아닌가? 타인의 사물에 대한 권리의 소유자들, 예컨대 사용자, 임차인 또는 용익권자는 용익영유의 소유자들, 곧 더 낮은 등급의 소유자들이 아닌가? 이러한 의미에서 안-마리 파토는 권리의 소유를 인정하는 것이 옛 법의 동시적 소유와 다시 연결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본다. 타인의 사물에 권리가 접목(接木)되거나 분지(分枝)되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갱신된 소유 이론은 중세적 관념에 가까워진다. 고전 학설은 총체적 소유권이 축소된 권리들로 분할될 수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옛 체계와의 연속성을 지킨다. 갱신된 학설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신의 사물에 대한 소유와 타인의 사물에 대한 권리의 소유를 대립시킴으로써 소유의 복수성(la multiplicité), 즉 동일한 하나의 사물에 여러 소유가 공존함을 허용한다. 그러면 사정은 마치 다음과 같이 되는 듯 하다. 동시적 소유는 처음부터 복수적인 것(le multiple)에서 비롯하는 반면, 소유는 하나의 줄기에서 태어난다. 다만, 그 줄기는, 고전 이론에서는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고, 갱신된 이론에서는 접목을 받아들이면서도 통일성(unité)을 지킨다. 동시적 소유 체계가 리좀형(de type rhizome)이라면, 고전 학설은 수목 모델(au modèle arborescent)을 따르고, 갱신된 학설은 대목이라는 장치(le dispositif d'un porte-greffe)를 제공한다.
소유의 통일성을 지키려는 이 목표가 달성되었든 아니든, 그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민법 제544조가 중세의 수많은 소유(la multitude des propriétés)를 로마법적 소유 관념으로 대체하려던 혁명가들의 바람을 실현하는지조차 그리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⁷⁰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모든 혁명가가 모든 동시적 소유를 단죄하고자 했는지⁷¹, 또 민법전을 기초한 이들이 소유에 관한 단 하나의 배타주의적 모델을 승인하고자 했는지가 확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⁷² 로마법의 토대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우선, 로마법상 소유에 관한 법은 도미니움이라는 단 하나의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다. 갱신된 소유 이론의 지지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의 로마법이 아니라 여러 로마법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따라서 그 안에서 "단일한, 불변하는 소유 개념을 발견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도미니움은 고대 로마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화정 말기에야 등장했다.⁷³ 따라서 로마법상 소유를 도미니움과 동일시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다음으로, 갱신된 학설의 지지자들은 로마법의 도미니움이 순전히 개인주의적인 제도가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 "좋은 소유자란 자신이 이끄는 가족의 가산(家産)을 신중하게 관리하는 자"라는 점, 그리고 그가 "민법전의 소유자"처럼 "스스로 이기적으로 굴도록 허용"하거나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⁷⁴ 이는 자의적이고 고독한 권력으로서의 소유 관념과 그 준거 제도인 로마법의 도미니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체적 사물과 무체적 사물에 관한 로마법적 구분은 잘못 해석되었을 수 있다. 얀 토마스에 따르면, 가이우스는 두 종류의 법적 사물, 곧 res corporales와 res incorporales를 구별하려 한 것이 아니라, 비법적 사물(res corporales)과 법적 사물(res incorporales)을 대립시키려 했다.⁷⁵ 그런데 모든 res iuris, 곧 "법적 사물들"이 무체적이라면, 고전 이론가들처럼 소유가 유체적 사물들 안에 분류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든, 갱신 이론가들처럼 소유가 유체적 사물과 무체적 사물 모두에 미칠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든 로마법을 원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윤곽을 넘어서 보면, 갱신된 학설은 로마법의 도미니움과 어떤 사물에 대한 완전하고 전면적인 권력이라는 생각에 충실한 소유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소유자를 세계로부터 고립된 주권자로 그린 이 놀라운 초상화는 권리주체라는 범주—즉 자연에 대해 절대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역량의 담지체—에 대해, 나아가 법 자체에 대해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얀 토마스의 말에 따르면, 법 자체는 땅에서 유리된 학문 분과이거나 사실들을 "탈자연화(dénaturation)하는" 기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과 법에 대한 관념들, 권리객체와 권리주체의 범주들, 그리고 소유 제도 사이에는 긴밀한 연결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에 대한 법적 파악에서 다시 출발하여, 사물과 인격에 관한 개념들을 재검토하고, 동시적 소유 체계와 단절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활용하는(jouer avec) 소유의 정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체계야말로 대지의 사용들에서 유래하는 소유의 형상이다.
각주
6. 미하일 지파라스(Mikhaïl Xifaras)는 자신의 저작 La Propriété. Étude de philosophie du droit (PUF, 2004)에서 1804년 민법전의 초기 주석가들에게서 소유를 사유하는 세 가지 방식을 발견한다(앞의 책, p. 19: (…) “소유에 관한 단 하나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가지 개념화 방식이 존재한다 (…)”). 이 법학자-철학자는 이러한 개념화 방식들을 “주권적 장악(maîtrise souveraine)”, “재산적 귀속(appartenance patrimoniale)”, “향유의 유보(réservation de jouissance)”라고 부른다. 우리의 논의와 연결해 말하자면, “향유의 유보”는 동시적 소유들의 체계에 해당한다. 다른 두 모델, 곧 “주권적 장악”과 “재산적 귀속”의 모델은 여기에서 고전적 소유 이론이라는 제목 아래 함께 묶인다. 이 저자가 어느 정도는 이 두 모델을 함께 묶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앞의 책, p. 483). 갱신된 소유 이론의 경우, 미하일 지파라스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그 이론은 그가 검토하는 역사적 시기보다 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을 참조하라. M. Cornu, H.-J. Lucas (dir.), Les Modèles propriétaires du 21ᵉ siècle, actes du colloque international en hommage au professeur Henri-Jacques Lucas, LGDJ, 2012.
7. A.-M. Patault, Introduction historique au droit des biens, PUF, 1989, p. 244, §. 209.
8. 같은 책, §. 9.
9. 같은 책, §. 10.
10. J. Fromageau, 「Le droit de l’environnement, l’exemple des zones humides」, Bibliothèque de l’École des Chartes, Tome 156, janvier-juin 1988, p. 173-185; J. Fromageau, 「La rémanence des usages et coutumes dans les zones humides」, in Repenser la propriété, 앞의 책, pp. 71-82.
11. 분명히 해두자면, bandiote는 광범한 권능을 누렸다. 그의 권리는 임대될 수 있었고, 저당 설정될 수 있었으며, 무상 또는 유상으로 양도될 수 있었고, 사망을 원인으로 이전될 수 있었다. bandiote에게 유보된 기간 밖에서는, 관련 공동체의 주민들이 반드시 방목권을 박탈당한 것은 아니었다. 다음을 참조하라. M. Ortolani, 「Le droit de bandite dans le pays niçois. Étapes d’une réflexion」, Propriété individuelle et collective dans les États de Savoie, Nice, Serre, 2012, pp. 111-130; M. Ortolani, 「Les bandites du pays niçois. Une forme singulière de propriété simultanée」, in Repenser la propriété, 앞의 책, p. 59-69; M. Ortolani, 「Droit de bandite (pays niçois)」, Dictionnaire des biens communs, M. Cornu, F. Orsi, J. Rochfeld (dir.), PUF, 2017.
12. affouage와 marronnage는 마을 공동체의 주민들에게 각각 난방용 및 건축용 목재의 벌채를 실행하거나 그러한 목재 벌채분을 받을 수 있도록 부여된 권리들이다.
13. 이 권리들은 프랑스혁명기에 폐지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구둘레(Goudoulet) 코뮌 분구의 권리들이 되었다(다음을 참조하라. S. Vanuxem, 「Les sections de commune pour la protection des paysages? Le cas du Goudoulet, section du plateau ardéchois」, Carnets du paysage - Les Communs, 2018).
14. 관습법서(coutumier)는 관습 규칙들을 모은 책이다.
15. A.-M. Patault, 앞의 책, § 9.
16. 진정한 세진은 “1년 1일 동안 공공연하게, 평온하게, 소유자로서, 방해도 이의제기도 없이” 지속된 점유로 증명되는 것이다(H. Klimrath, 「Étude historique sur la saisine d’après les coutumiers du Moyen Âge」, 1835, in Travaux sur l’histoire du droit français, recueillis, mis en ordre et précédés d’une préface par M. L. A. Warnkönig, Joubert, Veuve Levrault, 1843, pp. 338-399, 특히 pp. 353 이하; M. Xifaras, 앞의 책, pp. 457-458).
17. 영어 단어 enclosure는 “영주 권력의 효과로 인한 코뮌 공동재산과 개별 보유지의 침탈”을 뜻한다. 이 단어가 영국에서 “사회로부터 빼앗긴 재산의 사적 전유”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면, “인클로저 또는 코뮌 공동재산의 침탈은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에 공통된 사실이었다”(F. Gauthier, 「Enclosure」, Dictionnaire des biens communs, 앞의 책).
18. A.-M. Patault, 앞의 책, 특히 § 23 및 70.
19. 같은 책, pp. 87-89, § 74.
20. M. Ortolani, 앞의 글.
21. J. Fromageau, 앞의 글.
22. alleu는 “상속으로 취득되고 모든 의무나 부담금에서 자유로운 소유”를 뜻하며(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informatisé), “상속적 소유, 모든 의무나 부담금에서 자유로운 소유”를 뜻한다(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 9ᵉ édition). “살리카법에서 alleu는 가족의 대지, 곧 집과 그것을 둘러싼 부지(terrain)를 가리킨다. 이 대지는 (…) 상속으로 전해진다. 그것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 프랑크 문헌에서는 최근에 취득한 대지와 대비된다 (…). 10세기부터 봉건 현상의 압력 아래 alleu라는 낱말의 뜻이 바뀐다. 그것은 어떤 영주에게도 예속되지 않은 대지, 곧 봉건적 은대지 관계망에서 벗어난 대지를 가리키게 된다 (…).”(A.-M. Patault, 앞의 책, § 37, § 38 및 43도 참조).
23. Y. Bosc, 「Loi du 10 juin 1793 sur le partage des biens communaux」, Dictionnaire des biens communs
24. M. Xifaras, 앞의 책, pp. 435-440, p. 473. H. Klimrath, Essai sur l’étude historique du droit et son utilité pour l’interprétation du Code civil, Levraut, 1833, pp. 39-40; 「Étude historique sur la saisine, d’après les coutumiers du Moyen Âge」, in Travaux sur l’histoire du droit français, 앞의 책, pp. 340-342.
25. A.-M. Patault, 앞의 책, p. 86, § 70.
26. 같은 책, pp. 90-91, § 75-76.
27. 물권법, 더 정확히는 부동산법, 곧 토지법에 관한 민법전의 여러 조항들에서는 "fonds de terre"라는 표현이 나온다. 민법 제518조, 제583조 및 제687조 참조. 또한 "fonds rural"이라는 표현과 관련지어 살펴보라.
28. Fr. Terré, P. Simler, Les biens, 7ᵉ éd., Dalloz, 2006, p. 53. 또한 다음을 참조하라. C. Demolombe, Cours de Code Napoléon, t. 10, 3ᵉ éd., Auguste Durand, Hachette et cie, 1866, p. 42; K.S. Zachariae, Cours de droit civil français, traduit de l'allemand sur la 5ᵉ édition (1839) et revu et augmenté avec l'agrément de l'auteur, par Aubry et Rau, contenant le texte des lois qui ont modifié la législation en Belgique, la jurisprudence de la Cour de cassation, 3 t., 2ᵉ éd., Melin, Cans et comp. libraires-éditeurs, 1850, p. 162; P. Gulphe, L'Immobilisation par destination, thèse Paris, 1943, p. 1; F. Zenati-Castaing et Th. Revet, Les Biens, PUF, 1997, p. 85; C. Atias, Les Biens, Droit civil. Les Biens, 10ᵉ éd., Litec, LexisNexis, 2009, p. 30.
29. C. Aubry et C.-H. Rau, Cours de droit civil français. D'après la méthode de Zachariae, t. 2, Librairie Marchal et Billard, 1935, p. 11.
30. Baudry-Lacantinerie et Chauveau, Traité théorique et pratique de droit civil. Des biens, L. Larose, 1896, pp. 21-23.
31. A.-M. Patault, 앞의 책, p. 89, § 74.
32. F. Zenati-Castaing, Essai sur la nature juridique de la propriété, contribution à la théorie du droit subjectif, Université Lyon 3, Jean Moulin, 1981, pp. 194-196, p. 228.
33. A.-M. Patault, 앞의 책, pp. 144-145.
34. 같은 책, p. 236.
35. Marcadé, Explication théorique et pratique du Code Napoléon, t. 2, 5ᵉ éd., Cotillon, 1859, nº 405.
36. Y. Strickler, 「Avant-propos」, in Volonté et biens. Regards croisés, Y. Strickler et F. Siiriainen (dir.) L'Harmattan, 2013, p. 10.
37. 예컨대 H., L. et J. Mazeaud, F. Chabas의 Leçons de droit civil 가운데 Fr. Chabas et M. de Juglart가 집필한 Biens. Droit de propriété et ses démembrements, 8ᵉ éd., Montchrestien, p. 15에서 "소유권의 사회화"에 할애된 § 1 303 참조. 또한 다음을 참조하라. G. Baudry-Lacantinerie et M. Chauveau, Des Biens, 앞의 책.
38. G. Marty, P. Raynaud, Droit civil, par P. Raynaud, Les Biens, 2ᵉ éd., Sirey, 1980, p. 35, §. 36.
39. P. de Vareilles-Sommières, 「La définition de la notion juridique de la propriété」, Revue Trimestrielle de Droit Civil, 1905, p. 452.
40. L. Duguit, 「La propriété fonction sociale」, 「Le droit subjectif et la fonction sociale」, Les transformations générales du droit privé depuis le Code Napoléon, éditions la mémoire du droit, 1999, réimpression de l'édition de 1920; L. Duguit, Le Droit social, le droit individuel et la transformation de l'État : conférences faites à l'École des hautes études sociales, F. Alcan, 1908; L. Josserand, De l'esprit des droits et de leur relativité. Théorie dite de l'abus des droits, 2ᵉ éd., Dalloz, 1939. 이 사조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J. Rochfeld, Les Grandes Notions du droit privé, 2ᵉ éd., Paris, PUF, 2013.
41. F. Zenati-Castaing, Essai sur la nature juridique de la propriété, 앞의 책, p. 183.
42. 같은 취지로는 Lexique des termes juridiques(S. Guinchard, T. Debard (dir.), 20ᵉ éd., Dalloz, 2013)에 실린 물권(droit réel)의 다음 정의를 참조하라. “고전 이론에 따르면, 사물에 직접 미치는 권리. 물권은 채권(droit personnel)과 대립된다. 주요 물권은 한편으로 소유권이다. 소유권은 세 가지 권능, 곧 사물을 사용할 권리, 그 과실을 수취할 권리, 그것을 처분할 권리를 포함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요 물권에는 소유권의 분할된 권리들이 있다. 이들은 그 보유자에게 이 권리에 부착된 세 가지 권능 중 일부만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지역권, 용익권 등이다.” 따라서 고전적으로 소유는 물권으로 규정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유는 usus, fructus, abusus, 곧 하나의 사물에 대해 가능한 권능들의 총체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물권의 모델로 제시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유가 아닌 다른 물권들, 예컨대 사용권과 거주권은 소유와 같은 성질의 권리로 나타나지만, 부분적이고 위축된 권리라는 점에서 소유와 구별된다. 이 관점에서도 소유는 완전한, 곧 충만하고 온전하며, 여러 물권으로 분해될 수 있는 권리로 나타난다.
43. 같은 책, pp. 321-322, pp. 333-334, p. 432.
44. 같은 책, p. 20.
45. 같은 책, p. 17.
46. 같은 책, p. 279.
47. 같은 책, pp. 129-130, pp. 201-204, pp. 211-217, pp. 254-264, p. 362, p. 785.
48. 여기서는 예컨대 커피잔과 같은 유체적 사물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시각, 우리가 그 사물에 대해 갖는 이미지, 그리고 예컨대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것을 만들어냄으로써 복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다. 법에서는 어떤 재산의 소유자가 그 재산 이미지의 소유자로도 간주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후술하는 제3장 첫 문단 참조.
49. S. Vanuxem, 「Les services écologiques ou le renouveau de la catégorie civiliste de fruits?」, Revue de droit de McGill, vol. 62 : 「Environnement, personnes, pouvoir, droit : déconstruire et reconstruire les perspectives」.
50. F. Zenati-Castaing, 앞의 책, p. 441.
51. F. Zenati-Castaing et T. Revet, Les Biens, 앞의 책, 1997, p. 18, § 6.
52. S. Ginossar, Droit réel, propriété et créance. Elaboration d'un système rationnel des droits patrimoniaux, LGDJ, 1960, p. 34, p. 45, p. 116.
53. R. Libchaber, 「La recodification du droit des biens」, in Livre du bicentenaire du Code civil, Dalloz, 2005, §. 9.
54. F. Zenati-Castaing, 앞의 책, pp. 518-522.
55. 이 표현은 Vareilles-Sommières의 것이다(앞의 글, pp. 470-471, § 52-53). 그러나 F. Zenati-Castaing도 이 취지에 동의한다(앞의 책, p. 130, p. 574, § 415, p. 562).
56. M. Xifaras, 앞의 책, p. 136: "사물 또는 사물에서 끌어내는 효용들을 연장된 실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상하려 한다면, 자기 것과 공동적인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 반드시 논리적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57. F. Zenati-Castaing, 앞의 책, p. 555.
58. 같은 책, p. 541, p. 575.
59. R. Libchaber, 「Biens」, Répertoire de droit civil, Dalloz, mars 1997.
60. T. Revet의 표현을 빌리자면, cours de droit des biens, master 2, université Paris 1, 미간행, 2010.
61. F. Zenati-Castaing, 앞의 책, p. 541.
62. 민법 제578조는 다음과 같이 정한다. "용익권은 타인이 소유권을 갖는 사물들을 소유자 자신처럼 향유할 권리이되, 그 실체를 보존할 부담을 지는 권리이다."
63. F. Zenati-Castaing, 앞의 책, p. 424; pp. 426-427 note 21: 그의 향유는 "전유의 향유(jouissance d'appropriation)", 다시 말해 배타성의 향유이다; p. 537: 소유자가 효용의 향유(jouissance d'utilité)에서 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권리의 구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외재적 차원일 뿐"이며, "소유자의 향유, 그리고 따라서 나소유권자(nu-propriétaire)의 향유의 특수성은 바로 이 배타성의 향유라는 생각의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효용의 향유는 따라서 소유를 구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유를 이해하는 데도 사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pp. 444-445: 소유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사물의 "배타적 전유(appropriation privative)"이며, 소유자는 자신의 사물에 용익권이 설정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보존한다; p. 541: 소유자는 "자신의 권리를 향유함으로써 사물을 향유한다. 따라서 권리의 향유가 표현하는 배타적 연결은 사물 자체로 이전된다"; 소유자의 향유의 특수성은 "usus-fructus가 아니라 배타적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p. 465: 소유란 무엇보다도 자기 사물에 대해, 불가분적으로, 경쟁자 없이, "하나의 재산을 배타적으로 향유할 권력"이다; p. 575: 민법 제544조가 가리키는 향유권은 "배타성 원리의 번역"이다.
64. 같은 책, p. 598.
65. 같은 책, p. 590.
66. 많은 법률가들은 이러한 물리적 현실을 인정한다. G. Baudry-Lacantinerie et M. Chauveau, 앞의 책, pp. 21-22; F. Malapert, Essai sur la distinction des biens, A. Durand, 1844, p. 2; C. Aubry et C.-H. Rau, 앞의 책, p. 11의 각주 n° 1 bis; M. Planiol et G. Ripert, Traité pratique de droit civil français, t. 3, 2ᵉ éd. par M. Picard, LGDJ, 1952, p. 74의 각주.
67. R. Libchaber, 「Biens」, 앞의 글, p. 19, § 91.
68. A.-M. Patault, 앞의 책, p. 111, § 93: 이른바 이중영유론(théorie du double domaine)—용익영유(domaine utile)와 상급영유(domaine éminent)의 이론—은 중세 법학자들의 구성물로서, 동시적 소유들을 도식화한 뒤 체계화할 수 있게 해준다. 용익영유가 토지의 과실과 수입을 가져가는 소유, 곧 보유농의 소유를 가리키는 반면, 상급영유는 영주의 이른바 직접소유에 해당한다.
69. A.-M. Patault, 앞의 책, p. 249, p. 257.
70. 제나티-카스탱 또한 이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민법전은 하나의 동일한 재산과 관련하여 소유들의 복수성을 설정하는 체계를 소유에 대한 단일한 관념으로 대체함으로써, 혁명에 의한 봉건제의 폐지를 확정한다. 이것이 민법전 제544조에 의해 제도화된 소유의 절대주의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기로 합의한 의미다. 그러한 관념은 소유가 한 인격의 손 안에 권능들의 총체를 집중시킨다고 가정한다 (…)"(앞의 책, pp. 74-75). 혁명기 법학자들이 봉건적 소유 관념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 하나의 인격만이 하나의 재산의 소유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서로 다른 인격들에게 속하는 복수의 물권들로 이루어진 전유 양식을 단죄할 수밖에 없었다"(pp. 321-322). "(…) 민법전이 로마적 관념을 명확히 선택했다는 점이 만장일치로 인정된다면, 그것이 분할된 소유라는 봉건적 관념을 부인했다는 점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p. 364). "민법전의 주요 관심 가운데 하나는 토지소유와 관련하여 혁명의 성과들을 확정하려는 의지에 있다. 이러한 관심은 민법전의 작성에 참여한 모든 인물들의 발언에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토지보유 체계와 이중영유론이 허용했던 것처럼 하나의 토지에 대해 무제한의 인격들이 권리들을 가질 수 있음을 함축했던 봉건적 토지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단죄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소유는 단일해야 하며, 그 행사는 예외적으로만 제약되어야 한다. 그 결과 하나의 토지에는 필연적으로 단 하나의 소유자가 있다"(p. 375). 또한 "구체제에 뒤이어 등장한 사회체계가 더 이상 봉건적 정치권력의 특수성이 요구했던, 땅에 대한 전유가 여러 갈래로 쪼개진 상태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에는 "토지와 모든 형태의 부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p. 404).
71. 위의 각주 17을 참조하라. 후술하는 본 책의 제3장 두 번째 절도 참조하라.
72. 위의 각주 8 및 15를 참조하라(클림라트(Klimrath) 앞의 글, 지파라스(Xifaras) 앞의 책).
73. F. Zenati-Castaing, 앞의 책, p. 191, p. 199의 각주 29, p. 201.
74. 같은 책, p. 439.
75. Y. Thomas, 「Res, chose et patrimoine (Note sur le rapport sujet-objet en droit romain)」, Archives de philosophie du droit, 1980, tome 25 : La Loi, pp. 413-426, 특히 pp. 417-418.
옮긴이주
[1] 동브 지역의 양어 관행에서 ‘건조지 이용의 해(assec)’는 못의 물을 빼고 바닥을 경작하는 국면(보통 1년), ‘양어지 이용의 해(évolage)’는 다시 물을 채워 물고기를 기르는 국면(보통 2~3년)을 가리킨다. 두 국면이 여러 해 단위로 번갈아 운용되어, 같은 땅이 곡물 경작지와 양어지로 교대된다.
[2] 엠피테우시스(emphytéose)는 그리스어 emphyteusis에서 유래한 로마법·프랑스 민법의 장기 토지 임차권으로, 임차인이 오랜 기간(때로 영구적으로) 토지를 점유·경작하고 그 과실을 수취하며 사실상 물권에 준하는 권리를 갖는 제도다. 단순 임대차(bail)와 달리 양도·상속이 가능하고 물권적 효력을 지닌다. 한국 법제에는 대응하는 제도가 없어 음차한다.
[3] ‘하늘에서 지옥까지’라는 표현은 라틴어 법격언 Cujus est solum, ejus est usque ad coelum et ad inferos("토지를 소유하는 자는 그 위로 하늘까지, 그 아래로 지하 끝까지 소유한다")에서 온 표현이다. 토지 소유권이 지표면에 그치지 않고 그 위의 공중과 아래의 지하에까지 수직으로 미친다는 원칙을 나타낸다. 중세 주석학자들에게서 비롯하여 근대 민법에 수용되었다.
[4] 구분소유는 한 건물(집합건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소유하는 형태로, 각자가 자기 구분 부분(예: 한 세대)을 단독 소유하면서 복도·계단 등 공용 부분만 공유한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사물을 함께 소유하는 공동소유(공유 등)와 구별된다.
[5] 나소유권(裸所有權, nue-propriété)은 용익권(usufruit)이 설정된 소유권에서 사용·수익 권능을 뺀 나머지를 가리킨다. 소유자는 처분권만 보유하고, 사용·수익은 용익권자가 행사한다. 용익권이 소멸하면 나소유권자가 완전한 소유권을 회복한다.
[6] 공유(共有, indivision)는 여러 사람이 지분에 따라 하나의 사물을 분할되지 않은 채 함께 소유하는 상태로, 공동상속재산이 전형적인 예다. 한국 민법의 공동소유 세 유형(공유·합유·총유) 가운데 지분형인 공유(제262조)에 해당한다. 누구도 분할 전까지 특정 부분을 단독으로 차지하지 못하므로, 배타적 단독 소유의 예외가 된다.
[7] 담의 공유(mitoyenneté)는 이웃한 두 부동산의 경계에 있는 담·벽을 양쪽 소유자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프랑스 민법의 제도다(제653조 이하). 한국 민법의 경계담 공유(제239조)에 가깝다.
[8] 프랑스어 meuble은 명사로 "동산(動産)"을, 형용사로 "무르고 부슬부슬한"을 뜻한다. 그래서 갈기 쉬운 흙을 terre meuble(무른 흙)이라 부른다. 토지는 부동산(immeuble)의 전형인데도, 정작 그 흙은 meuble이라 불리는 셈이다. 본문의 '부동성/가동성'도 이 어근과 이어져, 부동성(immobilier)은 부동산(immeuble)과, 가동성(mobile)은 동산(meuble)과 짝을 이룬다. 저자는 이 다의성을 빌려, 부동산이어야 할 토지가 '동산'을 뜻하는 말(meuble)로 불린다는 역설을 통해 토지의 부동성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인다.
[9] 지적(地籍)은 토지의 위치·경계·면적·소유자 등을 등록한 공적 장부(지적도·토지대장)를 말한다. 토지소유가 "지적상 연결"로 환원된다는 것은, 소유가 물질적 대지가 아니라 지적도상에 추상적으로 구획된 한 부분과의 배타적 관계로 축소됨을 뜻한다.
[10] 상급영유(上級領有, domaine éminent)와 용익영유(用益領有, domaine utile)는 봉건제에서 하나의 토지에 대한 권리가 둘로 나뉘어 중첩되던 형태다. 상급영유(라틴어 dominium directum)는 영주가 갖는 상위의 권리이고, 용익영유(dominium utile)는 봉신·경작자가 갖는 실제 사용·수익의 권리다. 후대에 각각 상급소유권·하급소유권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나의 토지를 영주와 경작자가 등급을 달리하여 함께 보유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단독 소유와 대비된다. 저자의 상세한 설명은 각주 68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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