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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우리 시대

정치와 탈근대 4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
번역: 연구공간 L 기획, 주현‧이승준 옮김

 

1장 스피노자

내재성과 민주주의의 이단아

 

 

데카르트 사상의 정치적 함의를 다루고 얼마 뒤에 나는, 내가 근대 이데올로기의 “합리적 정치”라고 부른 것의 개요를 제시하면서, 그것의 상이한 발전 노선과 대안의 범위를 그려낸 바 있다.[1] 나는 최근에 나의 데카르트 독해와 지난 30년간의 새로운 데카르트 독해를 비교하면서 이 주제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찍이 발표했던 논문들을 찾았다. 그 글들은 초기 자본주의의 발생 및 발전에 초점을 맞췄으며, 나아가 ‘자본의 시초축적’(절대주의 국가의 구축을 통한)에 상응하면서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제3신분의 형성 및 장기간의 공고화에 상응하는 정치적 형태를 구축하려 했던 시기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택한 선택지에 초점을 맞추었다.[2]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의 기관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협했던 지방과 도시의 봉기—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들이었던 장인의 봉기—를 진압할 것을 요청받고 제3신분의 “합리적 이데올로기” 내에 특권화된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데카르트 시대에는 어떤 정치사상의 스펙트럼에 서 있는지와 상관없이, 절대적 주권과 그것의 효과적 작동을 위해서 초월성에 대한 일정한 참조가 요구되었다. 자본의 품에서 조직되었으며, 자본의 발전을 허용하고 자극했던 권력은 필연적으로 스스로 초월의 절대성에 뿌리를 두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자본이 직면했던 저항의 강도를 고려한다면 초월의 절대성에 뿌리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당시의 신학적 필요성이 자본의 발전과 현재의 철학들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다. 바로 이것이 근대의 존재론적-신학적 형이상학이 제도화된 방식이다.

 

달리 말해 근대 세계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열어젖혔을 때, 새로운 생산력(무엇보다도 산 노동)은 권력의 영원한 옛 형상에, 그리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권력의 절대적 성격에 종속되어야 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이러한 사태에 도전하는 모든 시도가 저주받을 만한 이단으로 간주되었으며, 이 일반적인 사고틀을 교정하려는 모든 열망은 고도로 이론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그리고 매우 신중하고 명료하게 생산관계를 건드리는 경우에만 허용될 뿐이었다. 바로 이것이 정확히 데카르트가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과제 중 일부는 근대 형이상학(형이상학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또한 늘 어떤 식으로든 신학에 관해 말한다)이 자신의 정치적 구실을 갈고 닦으면서 강화시켰던 정도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형이상학은 늘 정치적이었다.

 

권력에 대한 이론이 근대 시대에 발전한 것은 바로 그러한 온건함과 과묵함에 지배되는 분위기 안에서였다. 초월의 정치 사상가들이 헤게모니를 잡은 것이다. 근대적 주권이론은 토마스 홉스에게서 탄생했다. 그것은 장 보댕이 그의 잘 알려진 지성으로 이미 시도했던 것으로, 그 결과 그가 주장한 것은 모든 정부 형태가 논리적으로는 군주제적이라는 것이다. 군주정은 귀족정과 민주정을 모두 포함하는데, 그들 모두가 일자의 원리에 의해 통치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귀족정과 민주정은 권력이 입혀준 위선적인 정당성의 망토가 무엇이든 군주제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 자체가 권력의 절대적 성격의 구축에서 근본적이 되는 홉스를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홉스를 통해 얻은 것은 시민 주체들이 지닌 역능이 주권으로 이행한다는 점이다.

 

이상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민의 역능이 주권으로 이행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영국의 내전 때문에? 그러나 주권권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 그리고 시민사회가 그 자체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리바이어던 덕분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시민사회 이전에 내전이 있을 수 있는가? 홉스는 그러한 동화같은 이야기로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늘 리바이어던의 권력을 무효화하면서도 정당화하는 신의 권능에 기대곤 한다. 시초축적이 촉발했던 민족들 간의 진정한 내전(그리고 공통적인 것의 강탈이 유발시켰던 폭력의 잉여)에서 어떤 비판적 시선이 훈련되었는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것도 비판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단지 신학적인 주권권력에 의해서만 즉각 정당화되고, 필수적이 되고 합법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더 한 것이 있다. 주권적 통치를 부과하고 그래서 자본의 쇄도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체들은 그들 자신의 특이한 역능을 인식하는 능력을 빼앗겨야만 했다. 그 역능의 강탈 그리고 그들 자신의 양도에 대한 의식이 필연적 상태로 정당화되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로 일어난 봉기에 대한, 가능한 저항에 대한 모든 정당화가 억눌려져야 했다. 따라서 [힘의] 양도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역설적이게도 이로운 것이 되었다. 이러한 상태의 구축은 주권의 초월성을 둘러싸고 발전한 정치이론의 본질적 축을 나타낸다. 발생한 이행은 공적인 것의 발명이다. 시초축적의 과정 동안 전개되었던 공통적인 것의 강탈이 공공사업의 발명을 통해 변형되고 신비화된다. 이런 맥락에서 루소의 일반의지 이론은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지성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헤겔은 시민사회의 국가로의 변증법적 지양(Aufhebung)을 통해 — 사실상 산 노동의 주권권력으로의 필연적 종속을 완성하면서 — 공적인 것과 주권에 대한, 지배와 진보에 대한 자신의 종합을 이뤄냈다.

 

그렇지만 근대 시대는 아주 다른 형태를 띠며 성장한 철학의 다른 계열의 등장을 목도했다. 그것은 근대기 내내 되풀이된 투쟁‧봉기‧혁명과 함께 한 사상이다. 그것은 내재성의 규칙을 중시하고, 내재성의 정치에 구현된 사상이다. 스피노자의 사상과 보댕과 홉스의 사상을 비교한다면 이러한 입장이 아주 분명해질 것이다. 우리가 방금 살펴보았듯이, 보댕과 홉스가 보기에는 모든 정부는 반드시 일자의 정부이다. 그와는 달리 스피노자가 보기에는 민주적 코나투스가 없다면 더 이상의 어떠한 국가도 없다. 민주주의가 없다면 어떠한 정치적 삶도 권위도 없다. 군주정은 늘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으며, 이는 절대주권이 불가능하며 그것이 시민들과 모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방식으로 귀족정도 절름발이이다. 폴리스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재성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재성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재성은 여기 이 세계에는 어떠한 피안도 없음을 의미한다. 즉 내재성은 이 세계 내부에서, 여기 아래에서 살고(이동하고, 창조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내재성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 안에서 발견하는 바로 그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가 내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단지 우리 존재에 의거해서 일어나기 때문에(그리고 또한 항상 우리 존재를 작용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그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그 존재는 개방적인 ‘되기’이지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예시되거나 미리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사르트르의 문구 ‘엉 시츄아시옹’[상황 안](en situation)에 우리 자신을 집어넣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생산관계가 지배하는 것이 아닌 생산력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귀결되는가? 나는 진심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초월의 정치이론가들이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로 ‘상황’ 속에 있다. 초월의 정치이론가들에 따르면 생산관계—노예로 태어난 누군가는 반드시 한 명의 노예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는 신의 신성함에 의해 보장된 필연성을 구성한다. 신학자들과 정치이론가들이 우리에게 말했듯이, 만일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권력이 창조의 DNA 안에 있다면(이 이미지를 쓴 것을 용서해주길) 내재성은 ~에 반대하는 존재(being-against)라고 답하는 것이 정언명령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근대의 주류적 주권 전통과 관련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별종들”을, 즉 근대 정치사상사의 핵심에 있는 내재성의 사상가들에 의해 정립된 예외와 파열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홉스가 자연주의적이고 계약주의적인 방식으로 — 다시 말해 개인주의적이고 소유적인 관계의 역사를 지시한다고 가정하면서 — 그 자신의 절대권력 이론을 구축하는 데 이용할 내전 이론에 앞서서, 마키아벨리는 역으로 갈등적인 권력이론을 예상한다. 아니 마키아벨리가 말했듯이 갈등은 늘 현재진행형이고 권력은 늘 어떤 관계이므로 승자와 패자가 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동화를 말하지는 말자. 권력을 가진 자는 단지 더 큰 힘을 가진 자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경험이 우리에게 말한 그대로라면, 반드시 그에 뒤이어 나오는 것은 권력은 주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지배는 오로지 늘 저항을 억눌러서 혹은 저항에 맞서서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저항은 늘 역으로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그 문은 권력의 민주주의적 이론에 개방되어야 하지 않을까?

 

 

스피노자가 개입하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3]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사회가 구성되기 위해 권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체들만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아니 더 올바르게는 주체들은 계속해서 특이성의 역능을 유지함으로써, 다중을 횡단하는 열정을 통해서, 모든 형태의 국가를 생산한다. 그래서 모든 국가 형태는 주체들이 주권과 얽혀있는 관계에 의해서만 혹은 그 역인 주권이 주체들과 얽혀있는 관계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적 사태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면 어떠한 “신성한 역사”도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행복에의 욕망을 다중의 운동과 변형을 통해 발명하는 자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생산한다. 그러나 생산의 힘이 모든 측면에서 쿠피디타테스[욕망들], 열정/정념의 힘인 한에서, 그래서 정치적인 것의 구성에 열려있는 다중인 한에서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이론이 이미 자신의 시대로 돌아가 예상했던 것이 입증되는 것을 본다. 지배 형태는 다중의 활동에 종속된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에게 있어, 갈등/되기와 생산/역능의 쌍은 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해 화해된다. 마르크스는 근대의 별종들이 생산했던 이러한 “예외적” 과정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의미가 바로 코뮤니즘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의미를 역사 내의 어떤 텔로스와 혼동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일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제도의 얼굴에 틀을 부여하는 것은 투쟁이며, 사회관계를 생산하고 결국에는 전복하는 것은 생산력으로, 생산관계 안에서 생산력은 역설적이게도 고정되고 제한된다.

 

마르크스 이후에 코뮤니즘을 지향하는 대안이 마찬가지로 종종 내재성의 영역 위에서 그 자신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초월성은 영원히 배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헤겔의 ‘거대한 종합’(grand synthesis) - 절대정신의 리듬을 따라 처음부터 초월론적이며 또한 그 전에는 아주 길게 초월적이었던 - 조차 역사적 과정의 물질성 즉 투쟁‧저항‧혁명의 물질성이라는 회오리바람에 사로잡혀 있으며, 내재성의 정치이론가들이 자신을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러한 물질성 안에서이다. 그리고 내재성의 정치이론가들은 주권이 점점 더 불안해진다는 점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래서 적합성propriety과 신중함의 감각은 그러한 대안들이 마찬가지로 내재성의 영역 위에서 스스로를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 대안들이 완전히 우세했던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역이 손때가 많이 탔다는 점에 주의하도록 하자. 내재성은 우리에게 코뮤니즘에 반대하여 필연성의 관념—이는 해방과정과 해방의 유효한 실천을 봉쇄하고 부정한다—을 정치적 담론에 재도입한 이론적 경험을 제시했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물신이 되었다.

 

너무나 자주 관념론과 연결되는 철학자이지만 사실 원래 한 명의 계몽주의자이자 계몽의 저자인 칸트는 자신의 글 󰡔학부들의 논쟁󰡕에서 이렇게 예상한 적이 있다. 자유(liberty)의 긍정으로부터 그리고 자유를 넘어서, 생산력을 억압하는 새로운 사례들이 역사적 과정에 대한 정의 안에서, 그 합목적성의 조직화 안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흘러나올 권력의 구조 안에서, 출현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반동적인 실험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칸트가 우리에게 떨궈준 힌트를 주워서 그 중 몇 가지를 분류해보자.

 

첫째, “우매함주의(Abderitism)” (원자론)의 실험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세계를 비합리적인 우연성이나 환경의 조화(존재를 지배하는 형이상학적 필연성의 맥락에서)의 총화(ensemble)로 환원하며, 결과적으로 결정론적 합목적성으로의 역사 발전에 종속되는 불투명한(opaque) 유물론에 대해 얘기한다. 바로 이것이 예컨대 루이 알튀세가 때때로 우연(hazard)과 필연을 연결시킬 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튀세 훨씬 이전에 그리고 훨씬 덜 우아하고 훨씬 덜 개념적으로 유연하게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이 이러한 방식의 내재성 활용의 강력한 사례였는데, 그것들이 내재성을 활용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근대의 “별종 철학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을 나타내는 존재론적 창조성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달리 말해 그리고 다시금 자유의 흔적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자유에 대해 말할 때 내가 정신적 본질에 대해서가 아니라 상상과 발명을 수반하는 저항과 반란에 대해 말한다는 것에 주목하라. 발명은 영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몸, 협동, 새로운 노동형태에 대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지식의 비극이, 정치적인 것의 비극이 이후 수십 년간 이 지평 안에서 펼쳐졌던가.

 

칸트로 돌아가 보자. 반면에 칸트는 “공포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이 말로 칸트가 의미한 바는 무엇인가? 칸트에게 있어 ‘공포주의’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정립하는, 따라서 인민을 죽음의 현존에로의 노예로 붙잡아둠으로써, 그것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인민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어떤 이론이다. 그들의 매일의 욕망을 죽음의 그림자의 무게 아래에 납작 엎드리게 함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입장 및 그 입장을 구현하는 저자들은, 칸트의 사상과는 거리가 먼데, 이 20세기에 내재성을 신비화하는 실험을 낳은 두 번째 집단을 이룬다. 필연을 수반하는 수동성, 피할 수 없는 욕망의 패배의 불확실한 의식에서 나온 무기력, 이러한 상태의 대척점에서 유지되는 자기만족 등은 오늘날의 철학의 무대 위에 새로운 초월 윤리의 징표를 나타낸다. 오늘날 하이데거에서부터 탈근대의 나약하고 주변적인 변형태에 이르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이러한 형태들 아래에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의 기원을 특징지었던 이론적 충돌—별종‧예외‧파열—에서 그 탄생지점을 정확히 찾고자 했던 이런 종류의 내재성 사상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4]

 

이런 식의 한 더미의 고발이 어찌하여 이 광범한 반동적 계보(lineage)의 문 앞에 놓여있을 수 있었던가. 물론 파시즘적 공포나 스탈린주의적 공포의 끔찍한 잔학행위에 이른 역사와 철학, 실천과 이데올로기가 문제가 아니라, 수사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종종 헤게모니적인 경향, 그것의 본질적 의미가 무력감이나 심지어 어떤 힘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비판적이길 바라는 열망)인 그러한 경향이 문제이다. 이 입장들 중 일부(가령 자크 데리다나 조르조 아감벤의 작업을 생각해보라)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반대하여 스스로를 이단아적인 입장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상상했던 방식과는 정말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단아는 지식분야의 질서에서의 단절이자, 더 정확히 말해 긍정적 흘러넘침이며, 스스로를 창조성으로 표현하고 따라서 현재의 존재론적 특이성을 고양시키는 이론적 발명의 산물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입장들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약하고 주변적인 변형태이며, 윤리적으로는 쓸모없는 것(otiose)이다. 그게 아니라면 다소간 미학화된 숭고함에서의 경이로움과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삶의 아름다움을 만나며, 투쟁으로부터의 탈주를 만나며, 역사적 결정들에 대한 경멸과 만나며, 흘러넘침과 진정한 저항을 대신하는 자유를 파괴하는 회의주의와 만난다. 슬픈 정념의 승리란 이런 것이다.

 

둘째, “이단”은 그 모든 형태에서 초월의 거부를 의미하며, 그래서 이단은 개념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불일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단적 개념은 더 이상 보편적이려고 애쓰기보다는 공통적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이단은 명령과 제도화된 지식의 습관을, 또한 자신의 목적을 아는 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이단은 비판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습관에 저항한다. 이단아는 특수하고 특정한 관점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 지성인으로, 그 관점이란 총체성의 관점이 아니라 파열의 관점이며, 따라서 저항과 투쟁의 공통 기획에 의해 조건지어진 상황적 지식 및 행동의 형상을 구축한 관점이다. 바로 거기에서 이단의 흘러넘침이 스스로 개방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무엇에게 개방한다는 것인가? 공통적인 것의 넉넉한 구축에게.

 

그래서 우리는 초월의 정치이론가들과 내재성의 정치이론가들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결정적 요소에 도달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일군의 이단아들에게 시선을 둬보자. 다른 많은 이들이 있지만 이들은 특히 근대 비판과 오늘날의 철학적-정치적 배열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나는 잠시 이 이상한 전복적 사상에 머물고자 하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여러 사상들(<사회주의냐 야만이냐>에서 상황주의에 이르는) 중에서도 아주 상이한 수천의 계곡을 통해 우리를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쁨의 발명으로, 정치적으로 더 고되고 그들의 방식으로는 더 복잡하게 미셸 푸코와 같은 이들로 안내했다. 나는 같은 시기—상이한 장소들에서이지만 고도로 일관된 방식으로—에 이 이단의 구축을 위해 애쓴 다른 무리의 “전복적 사상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는데, 그것들에는 내 자신의 것도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공산주의 투쟁을 경험하게 만들고 해방주의적 열정을 실행하게 했다. 이들 중에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거부하고 소련의 계획과는 다른 관리를 구축한 소비에트 비판사상을 포함해, 이탈리아의 노동자주의, 피식민·탈식민 사상의 몇몇 흐름들 등등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저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명백한 정치적 논쟁의 지형뿐만 아니라 새로운 철학적 지평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2차대전 전후의 프랑스 사상의 몇몇 측면들에 나는 “전복적”이라는 특성을 부여했다. 가령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몇몇 페이지들(나는 단편집 『기호들』에 실린 글들과 1960년 1-2월에 쓴 『기호들』의 엄청난 서문을 떠올리고 있다)은 계급투쟁의 바로 그 내부에서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지평에 대한 재정의가 무엇이어야 할지를 분명히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5] 나는 여기서 그것을 비판의 장소 혹은 더 정확하게는 내재성의 철학적 무기를 휘두르려고 선택한 “관점”이 무엇일지를 증명하기 위해 언급한다. 메를로-퐁티가 우리에게 말했듯이, 우리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부다페스트 노동자 봉기를 명시적으로 언급할 때, 우리는 양심의 자유나 철학적 관념론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에, 달리 말해 주어진 상황에서 정확히 환경의 조합으로 우리가 집어 넣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파열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어떤 우주를 파괴한다. 메를로-퐁티는 이어서, 방금 말한 헝가리 노동자들이 객체-존재라는 특정한 관념을 거부했으며 따라서 사회주의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을 도입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유로운 인간들의 것인, 그래서 투쟁 중의 특이성들인 차이의 실천을, 즉 구성적 반란의 실천을 도입했다. 그들은 무수한 차원들을 가진 존재—일종의 “다원-우주”, 집단적으로 구축된 존재 생산—의 관념 및 실천을 채택했던 것이다. 우리가 정당 내부나 외부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만 하는가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구체적인 역사 내부나 외부 중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가의 문제는 실제로는 철저히 규칙을 위반하고 역사를 재발명하는 공통 행동에 달려 있다. 객체-존재와 주체-존재, 이것들은 너무나 많은 야만주의를 갖고 있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반드시 타인을 발명해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곧 해방될 것이라고 희망해야 한다. 간략히 말해 우리의 과업은 공통 행동의 역능—실제로 그것이 존재한다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자들과 전사들이 이 길을 걸었고, 이러한 저항의 표현에 주체성 생산이라는 기본적이고 강력한 물질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조직화의 도구들이자, 구축을 기다리는 미래를 현재의 투쟁의 우연성과 연결시키는 경향들이다. 즉 이러한 것들이 현재 겪는 폭력을 파괴하는 즐거운 미래의 밑그림이다. 우리는 변증법적 인간이 아니며 무력한 인간도 아니다. 우리가 말한 모든 입장은 유토피아적이지 않으며, 긍정적이고 구성적이다.

 

그러므로 메를로-퐁티가 『기호들』 서문에서 폴 니장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듯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피노자주의에 매료됐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6] 그 이유는 무한에 대한 사유가 필연성에서 벗어나 세계를 재발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담한 결론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무한에 대한 사유]을 역사적 결정론과 창조적 역능의 존재론 사이에서 이행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즉 파열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고도 상황 속에 있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자. 현실 세계를 비판적으로 마주하기 위해서, 현실 세계를 비판적인 방식으로 횡단하는 행위의 경로를 결정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심도 없이 무한 개념에 대한 스피노자의 사용방식을 비판하고 그 대신 훨씬 더 무한하게 스피노자적인 영원성 개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만일 우리가 약간 더 빨리 앞으로 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역사의 한 조각에 우리 시선을 향하게 한다면, 거기에는 한 가지 더 덧붙일 것이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실제로 비오스로 정의될 수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해방을 향한 정치적 투쟁이 일어날 수 있고, 또한 삶 전체와 관련해, 혹은 몇몇 사람들이 말하듯이, 전체 삶정치적 맥락과 관련해 그리고 공통적인 삶의 신체 및 제도들이 얽혀있는 전체 짜임새(fabric)와 관련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러한 관점이 어느 날 강력하고 환원할 수 없는 관점에 대한 강한 긍정으로부터 나올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투쟁의 필수 과정 “내부의” 특수한 상상작용으로부터? 그렇게 환원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관점이 특수하고, 결정적이며 따라서 참된 인과성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실천적이며, 또한 그것이 창조적 역능의 도구들에 의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어난 일이 모세에게 일어난 일이다. 󰡔신학정치론󰡕의 구절을 상기해보다. 거기서 스피노자는 모세가 이집트에 남았던 반항적인 유대인들을 위해 헌법을 세웠던 방식이 두려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희망에, 달리 말해 강력한 상상작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추상적 조건(가령 필연 대 자유라는 형이상학적 양자택일과 마주하면서)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역사적 조건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 조건에서는 저항과 공통적인 것의 구성이 스스로를 해소되어야만 하는 긴장의 맥락으로 제공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리를 이 조건 안에 두고, 우리를 우리 앞에 열어놓은 상이한 방향 혹은 상이한 일탈과 동일시해보자. 가령 질 들뢰즈는 이러한 유형의 조건으로 뛰어든다. 우리는 기 드보르와 똑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 그 둘이 내놓은 대답은 완전히 다르다. 들뢰즈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저항이 역사 “바깥에” 있음을 인정하라고 강요받았던 것이 아닐까? 그의 최종 대답은 “소수”는 결코 역사 바깥에 있지 않은데, 소수가 구체적인 저항과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기 드보르에게 있어 저항은 실제로 “바깥”, 어떤 예외적인 사건이다. 그가 보기에 저항은 즐거우면서도 슬픈 역사이다. 물론 들뢰즈에게도 간간이 다시 등장하는 “바깥”의 유혹이 있는데, 그것은 정신분석과 분열증의 경험, 한계의 출현 및 월권에 대한 특정한 담론 형태들에서이다. 때때로 그 어조는 거의 자연주의적인 형태를 띤다. 사용가치를 추구하는 들뢰즈·가타리? 때로는 우리가 그와 같은 것을 상상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모든 경우에서 우리를 구원할 어떤 고정점이나 척도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이 위대한 철학에서는 모든 것에 대한 반항으로 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추론이 ‘구세주의 출현’(epiphany)을 기대하면서 스스로의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사건은 역사를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은 일시적일 뿐이다. 자신들의 위대한 철학적 “낭독”(recitation)에서 들뢰즈·가타리가 성취했던 주된 일은 비-유토피아의 구체성을 재발명하고, 창조적 주체의 열정 및 투쟁과 대결의 현실을 뒤섞은 데 있었다. 초월의 이론, 복종의 실천, 그리고 정체성의 인정이 모두 전복되었을 때 내재성은 실제로 무엇일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필연과 자유의 형이상학적 관계를 분석하는 일로 후퇴하거나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이미 현실의 존재론주체성 생산의 토대로 만드는 관점에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위치시킨다. 여기에서는 “외부”에 대한 어떠한 향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전적으로 “내부”에 있다. “사용가치”에 대한 어떠한 호소도 없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교환가치”에 몰입된다. 그것은 나쁜 일인가? 아니다. 그것은 실재이며 우리의 삶이다. 바로 이 “내부”에서, 즉 역사적으로 위치지어진 여기 이 안에서 우리는 “사용가치”의 재전유를 중심적 목표로 제시할 것이다. 잠재적 관계는 오늘날 다른 어떤 표현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용가치”가 거대한 존엄을 소유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것은 공통적인 실재이다. 즉 더 이상 순수교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방식으로 구축되고 공고화된 실재이다. 사용가치는 공통 형식 하에서 발생한다. 노동 생산물은 탄탄해졌다. 그것은 거기에 있다.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다. 어떠한 “외부”도 없다. 가령 오늘날의 금융 세계를 생각해보자. 누가 금융없이 행위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금융 세계는 이제 땅과 유사하다. 그것이 근대의 도입기에 강탈된 공유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공통적 실재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왔고, 우리로부터 떠나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을 되찾고 싶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유대 역사에서 희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모든 빚이 탕감되고 시민의 물질적 평등이 회복되는 때였다. 또한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그는 로마 공화국의 역사에서 “농경법”의 중심성에 대해 주장한 바 있다. 당시의 주권은 평민의 토지 재전유를 통해 생산자들의 민주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이 사례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향수를 가지고 사용가치를 보아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교환가치의 세계, 상품의 세계 및 상품유통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순수하고 시초적인 어떤 것을 획득할 — 아니 더 정확하게는 순수하고 시초적인 어떤 것으로 되돌아갈 —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 근본적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 얽매여 지금 여기에서 계속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교환가치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우리 스스로 공통적인 실재를 재전유하는 일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공통현실은 노동과 착취 모두에 의해, 협동과 이윤/판매 모두에 의해 창출되는데, 이들 용어 각각은 자신의 “상대방” 안에서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에 맞서면서 작동한다.) 즉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이러한 공통현실을 재전유한다는 것, 그것들이 권력형태 속에서 우리에게 등을 돌리려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 이러한 공통현실을 재전유하자는 것이다. 우리를 “가치화의 공통” 속에서, “자본의 코뮤니즘” 속에서 “착취당하는 빈자”와 “주체들”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이러한 현실을 전복하자는 것이며, 그와는 다른 방향에서 그것을 우리 스스로 “산 노동의 공통”으로서 재전유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문제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가 공통적인 것의 문제를 처음으로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느낀다고 해서 놀라지는 말자. 공통적인 것은 그 탄생부터 시초축적에 의해 우리로부터 떼어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공통적인 것은 단지 노동력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투쟁 경험에 의해, 공통적인 앎의 재전유에 의해 배가된 노동가치의 새로운 일관성이다.

 

새로운 공통적인 것. 사적 전유와 공적 전유를 넘어서는 공통적인 것. 그래서 오늘날에는 실제로 사적인 것의 도구에 불과한 공적 권력에 맞선 투쟁의 주체로서 나아가고 있는 공통적인 것. 공적인 것에 맞서는 공통적인 것. 공통적인 것은 잉여이며, 인류가 쌓아올린 역능이자, 명령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적 몸짓으로 계속해서 쌓아올릴 수 있는 역능이다. 공통적인 것은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에 맞서 구축하고 있는 파열이 발생하는 환경이자 동시에 이 파열의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현실의 존재론은 주체성이 공통적인 것에서 자기 자신을 생산하고 구축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더 정확히 말해 다양한 특이성들이 공통적인 것 속에서 존재의 구성적 효력의 기호를 발견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다중이 공통적인 것의 구축을 계승하는 것은 오로지 주권의 해체, 초월성의 주체/형상의 해체를 통할 때뿐이다. 민주적 구축? 그렇다. 우리가 다중이 “환경의 특수한 배열”이 아니라 쿠피디타스라고 믿는 한에서 말이다. 쿠피디타스는 늘 열려있는 구축과정 내에 있는,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는 중단없는 노력 속에 있는 무수한 특이성들의 긴장이다. 다중은 끊임없이 활기찬 제도들의 총화이다. 유대 역사에 대한 스피노자의 분석만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존재론과 주체성 생산 사이에서 계속 진행 중인 변형과정을 강조하는 철학적 인간학도 있다. 다중의 힘(Potentia multitudinis)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겸손한 추론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 추론은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여러 다른 사상가, 예언자, 그리고 그 추종자들이 있다)와 함께 반란과 저항이 일어나는 근대에 시작했다. 즉 비판이 처음으로 생산관계에 대한(그리고 그에 맞서) 생산력의 우위를 주장하려 했던 근대에 시작했다. 오늘날 적어도 이 생산력은 그들이 권력과 생산관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여기에 들뢰즈가 언급한 내재성이 있다. 무한으로 분해되는 영원의 사유가 아니라 정확하고 절대적인 방식으로 실현된 강력한 행위. 거기에서 당신은 내재성의 정치라는 영혼을 가진다. 정치적 행위는 공통적인 것의 인식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공통적인 것의 분명한 구축과 생산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야만적 별종』에서 발전시킨 철학적 명제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해보자. 『야만적 별종』이 제시했던 것은 포텐샤[역능]의 반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역능의 구축과정은 스피노자에게서 연속적인 통합과 제도적 구축을 통해 코나투스에서 쿠피디타스로, 그리고 나아가 아모르의 합리적 표현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의 핵심에 쿠피디타스가 있다. 쿠피디타스는 아페티투스[욕구]의 물리적 성격과 코나투스의 육신성이 사회적 경험에서 스스로를 조직하면서 상상을 생산하는 순간이다. 상상은 제도 구축에 대한 기대이다. 즉 상상은 합리성의 가장자리에 도달해 자신의 여정을 구조화하는 역능, 이러한 진보를 표현하는 역능이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사상을 “표현의 철학”이라 부른다. 특이성을 끌어내고 특이성을 ‘~에 대한 저항’에서 공통적인 것으로 넘어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상상이다. 쿠피디타스는 바로 여기에서 행동한다. 바로 이 행위에서는 “이성에서 나온 욕망이 과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7] 거기에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선언하는 내재성을 가지는데, 여기서 쿠피디타스의 전략은 포텐샤와 포테스타스의 비대칭성을, 즉 구성적(사회적·집단적) 욕망이 명령규범의 생산(필연적이긴 하지만)으로의 발전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스피노자 사상의 변형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을 무력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모든 이론들이 삭제하려 하는 것은 바로 이 비대칭성, 이러한 초과이다. 즉 상상을 통해 쿠피디타스의 행위와 아모르의 긴장 사이에서 스스로를 구축하며, 존재의 가장자리에서 영원을 발명하는 이러한 해방적 이성의 영원한 흐름을 말이다.[8]

 

스피노자의 윤리적 쿠피디타스를 무력화하려는 모든 이들은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스피노자의 정치사상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에티카』보다는 그의 정치적 텍스트들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스피노자의 정치사상은 그와 유사하거나 그의 사후에 나온 그 어떤 저작 그 이상으로 그의 존재론—『에티카』—에 근거지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만 한다. 정치적 포텐샤를 무력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모든 이들이 발을 헛디디는 곳은 쿠피디타스와 아모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에티카』를 한쪽으로 치워둠으로써 쿠피디타스가 ‘최고 권력’(summa potestas)을 구축하고, 아모르가 계속 나아가게 해, 레스 푸블리카, 공통체(commonwealth)를 앞지른다는 점을 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텐샤와 포테스타스의 비대칭성은 그것을 위로부터(즉 그것의 생산적 성격을 고양시키는 쿠피디타스-아모르 연결의 실현을 통해서) 보든, 아래로부터(여기서 포텐샤는 무한한 열림의 관점에서 형태를 띠며 작용한다) 보든 동일한 강도로 파악될 수 있다.[9]

 

 

결론을 내려보자. [첫째] 스피노자에게 있어 정치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의 일반화된 매개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행위를 위한 하나의 연장으로서, 사회적 구조의 능동적이고 이행적인 속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서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의 매개체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오히려 그것이 영구적 원천이기 때문이자 부단히 다시 시작되는 구성적 단절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모든 척도를 초과하는 역능, 존재론적 비대칭인 흘러넘침인 것이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헤겔이 생각했듯이 범신론적 존재관의 무-우주론에 대해 비난받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무-우주론에 대해서도 비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스피노자에게 있어 정치적인 것이 결코 도구적일 수 없고 그와는 반대로 개체와 집단 간의 역동적 관계 안에서, 그리고 특이성과 공통적인 것 간의 변증법(이는 절대 변증법적인 것이 아니다) 안에서 스스로를 구축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는 항상 구성과정과 관련해 잉여가 발생한다. 이 잉여는 제도적·소통적이며, 따라서 개체적이거나 상호개체적인 것도, 실체적(개체적) 마디의 축적도 아닌, 양태적(특이한) 역능의 절합인 것이다. 스피노자의 일원론은 신의 역능에게 양분을 제공받는다. 그래서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은 바로 이렇게 암스테르담의 유대 철학자를 “이단아”로 만드는 엄격하게 내재주의적인 선택지를 통해서 신을 일하게 해 한가한 신이 아니라 바쁜 신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있다.

 

셋째이자 마지막 논점. 스피노자의 사상에서 긍정적 역능과 부정적 역능, 즉 “~로의 힘”과 “~에 대한 힘”은 조금도 구별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스피노자에게는 고정된 이율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특히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오로지 역능, 달리 말해 무에 대립하면서 공통적인 것을 구축하는 해방의 힘만이 있을 뿐이다. “이성의 지도를 받는 사람은 국가[키비타스] 안에서 더욱 자유롭다. 거기서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고독 속에서보다는 공통의 법령에 따르며 산다.”[10] 바로 이것이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1] Antonio Negri, Political Descartes: Reason, Ideology, and the Bourgeois Project, trans. Matteo Mandarini and Alberto Toscano, London: Verso, 2007.

[2] Antonio Negri, “Postface to the English Edition”, in Political Descartes.

[3] 이에 대해서는 Negri, The Savage Anomaly: The Power of Spinoza’s Metaphysics and Politics, trans. Michael Hard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1. [한글본] 안토니오 네그리, 『야만적 별종: 스피노자에 있어서 권력과 역능에 관한 연구』, 윤수종 옮김, 푸른숲, 1997을 보라.

[4] 나는 이 책 2장과 “Giorgio Agamben: The Discreet Taste of the Dialectic”, in Giorgio Agamben: Sovereignty and Life, ed. Matthew Calarco and Steven DeCaroli,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7를 포함한 몇 편의 글에서 이 점을 언급할 자유를 누린 바 있다. [한글본] 안토니오 네그리, 「조르조 아감벤 : 변증법의 신중한 맛」, 이승준 옮김, 『진보평론』, 통권 65호, 2015년 가을호, 324-348쪽.

[5] Maurice Merleau-Ponty, Signes, Paris: Gallimard, 1960. Merleau-Ponty, Signs, trans. Richard McCleary, Evanston, Ill.: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64.

[6] [옮긴이주] 폴 니장Paul Nizan(1905-1940)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언론인으로, 1930년대 주요 지식인들 가운데 하나로서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1939년 독소 불가침 조약 이후 공산당에서 탈퇴했다.

[7] Spinoza, Ethics, part IV, prop. LXI. [한국어본] 스피노자, 『에티카』, 황태연 옮김, 도서출판 피앤비, 4부 정리 61, 285쪽.

[8] Negri, Kairòs, Alma Venus, multitude, trans. Judith Revel, Paris: Calmann-Lévy, 2001. [한글본] 안토니오 네그리, 『혁명의 시간』,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04.

[9] Gilles Deleuze, “L’immanence: une vie …,” in Philosophie, no. 47, Paris: Minuit, 1995. [한글본] 질 들뢰즈, 「내재성: 생명...」,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 509-517쪽.

[10] Spinoza, Ethics, part IV, prop. LXXIII. [한글본] 스피노자, 『에티카』, 4부 정리 73,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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