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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유실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연결은 어떻게 해제되고 있는가(1/2) 링크 유실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연결은 어떻게 해제되고 있는가(1/2)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 글은 2023년 2월 서교연 컨퍼런스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그 축약본이 제7호에 같은 제목으로 게제되었음을 밝혀둡니다. 에 실린 원고에서 지면상의 제한으로 충분히 다루지 못한 논의들이 인무브에 게제된 이 글에서는 완전히 전개되어 있습니다. 1.민주주의에서 법치주의로 법의 지배는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방식 중에 하나이다. 인치가 아니라 법치는 오랫동안 독재자의 자의에 의해 국가권력의 집행되던 시절을 경험한 대한민국에서도 중요한 정치적 지향점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법치주의는 반민주주의적인 함의를 가지게 된 듯하다. 물론 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가 보여주는 통치행태 때문일.. 2023. 7. 18.
10.29 이태원, 국가주의적 재난서사와 대항적 재난서사 (3/3) 10.29 이태원, 국가주의적 재난서사와 대항적 재난서사 (3/3)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이 글은 《문화과학》 113호(2023.봄)에 실린 글입니다. 인용시 《문화과학》 출판본으로 사용 바랍니다. 이 글은 다음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1. 재난은 서사를 통해 재난이 된다」 읽기 --> http://en-movement.tistory.com/447 「2. 실패의 봉합과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반복」 읽기 --> http://en-movement.tistory.com/448 3.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작동 실패?: 애도의 등급화와 피해자 혐오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태원 참사에서 반복되는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는 어떤 맥락에서 강화되는가. 보통 피해와 자선의 담론은 정치적 대립이나 주장보다 .. 2023. 7. 9.
10.29 이태원, 국가주의적 재난서사와 대항적 재난서사 (2/3) 10.29 이태원, 국가주의적 재난서사와 대항적 재난서사 (2/3)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이 글은 《문화과학》 113호(2023.봄)에 실린 글입니다. 인용시 《문화과학》 출판본으로 사용 바랍니다. 「1. 재난은 서사를 통해 재난이 된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전 글 읽기 --> http://en-movement.tistory.com/447 2. 실패의 봉합과 국가주의 재난서사의 반복 1 ) 가해서사의 축소와 과잉 : 재난의 ‘희생양’ 만들기 재난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은 위험과 위기를 관리하는 법과 제도, 매뉴얼과 그 작동성을 포함한 재난대응시스템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재난의 원인 규명은 ‘실패’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실패를 등록해 위험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확장하는 것을 의.. 2023. 7. 7.
10.29 이태원, 국가주의적 재난서사와 대항적 재난서사 (1/3) 10.29 이태원, 국가주의적 재난서사와 대항적 재난서사 (1/3) 전주희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회원 이 글은 《문화과학》 113호(2023.봄)에 실린 글입니다. 인용시 《문화과학》 출판본으로 사용 바랍니다. 1. 재난은 서사를 통해 재난이 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국가가 행위자(agent)가 되어 국민을 대상으로 집행하는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내걸었던 요구는 90년대 이후 발생한 재난·참사 희생자들의 요구로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과 구조와 수습과정에서 문제로 재난에 대한 ‘국가 부재’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면서 세월호 참사 이전의 참사를 포함해 사회적 참사들에 대한 진상규명의 부재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이뤄진 책임자 처벌의 문제 등이 다시 .. 2023. 7. 4.
『자본의 미시정치: 맑스와 현재 이전의 역사』 서문(2/2) 『자본의 미시정치: 맑스와 현재 이전의 역사』 서문(2/2)"현재와 같은 시간은 없다" 제이슨 리드번역: 이승준(연구공간L)  (계속) 일례로 알튀세르의 가장 도발적인 철학적 개념인 “혹은 내재적 인과성”—이 개념으로부터 “중층결정” 및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에 대한 그의 후기 연구가 뒤따라 나온다—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발전을 도표화하는 역사적 분기점의 수준에, 그리고 맑스 문헌의 “내재성”과 모순적 논리를 다루는 후기 연구를 열어젖히는 철학적 분기점의 수준에 위치시킬 수 있다.[1] 알튀세르는 『자본 』이 그가 구조적 혹은 내재적 인과성이라 부르는 인과성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원인과 결과의 분리—이 분리는 늘 결과를 그 기저에 깔려있는 본질의 단순한 외관으로 정립한다—.. 2023. 6. 27.
『자본의 미시정치: 맑스와 현재 이전의 역사』 서문(1/2) 『자본의 미시정치: 맑스와 현재 이전의 역사』 서문(1/2)"현재와 같은 시간은 없다"제이슨 리드번역: 이승준(연구공간 L) * 원문 – Jason Read, The micro-politics of capital: Marx and the prehistory of the present,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3.  맑스주의 이론은 역사에 뒤처질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도래했다고 믿는다면 그 자신에게도 뒤처질 수 있다. — 루이 알튀세르, 「철학에서 맑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간단한가?」 20세기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저 수적인 약어나 텅 빈 계열, 혹은 명목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 2023.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