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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지워진 비문 - 예브게니 크로피브니츠키와 리아노조보 그룹 반쯤 지워진 비문- 예브게니 크로피브니츠키와 리아노조보 그룹 -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작년 말 우연히 삽기르 학술대회에 들렀다가 삽기르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나온 친구 홀린의 시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둘의 스승이었던 예브게니 레오니도비치 크로피브니츠키(Евгений Леонидович Кропивницкий, 1893-1979)의 시를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보통 러시아 현대시를 읽을 때는 1990년대 한국에 번역되었던 예브게니 옙투셴코,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벨라 아흐마둘리나 등을 큰 줄기로 삼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인들도 이 시인들을 잘 알고 이들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삽기르, 홀린, 크로피브니츠키는 요즘 러시아 사람들한테도 생소한 시인들.. 2018. 3. 11.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두 번째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두 번째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킴벌리 크렌쇼 번역: 마리온&단감/ 페미니즘 번역모임 I. 반차별의 프레임 A. 교차성의 경험과 교조적 반응 교차성의 문제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은 법원이 흑인 여성 원고의 이야기를 어떻게 프레임화하고 해석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다음에서 논의할 사건들의 기저가 되는 상황들을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흑인 여성의 주장을 법원이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흑인 여성의 경험의 일부이기 때문에, 원고가 흑인 여성인 사건들을 대강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차성을 사법적으로 고려할 때 내재하는 난점을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민권법 7조와 관.. 2018. 3. 7.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첫 번째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_첫 번째 반차별 독트린, 페미니즘 이론, 반인종주의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 [옮긴이] 페미니즘 학자 킴벌리 크렌쇼는 1989년에 발표한 이 논문을 통해 '상호교차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상호교차성은 흑인 여성이 인종 차별과 성차별 양쪽 모두를 경험한다는 사실이 여성으로서의 삶과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그는 인종차별, 성차별,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억압이 각각 개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차별을 감당하며 다중 전선에서 싸워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이 성차별과 동시에 맞서야 하는 여러 차별을 누락시.. 2018. 2. 20.
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1) 인권선언과 세 가지 정치 정정훈(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발리바르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받았던 충격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새로웠던 것은 그의 프랑스혁명해석, 특히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한 해석이었다. 나름 투철한 맑스주의자이자 유물론자로 자처하던 내게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이나 소위 ‘인권선언’은 부르주아지의 관념적 공문구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내게 맑스를 다른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이론적 관점과 맑스를 경유하는 정치를 사고하기 위해 유용한 개념적 수단을 제공해주던 발리바르가 프랑스대혁명의 인권선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여기서 인권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개념화하는 부분에서는 이 선언에 대한 나의 선입관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계기로 인.. 2018. 2. 14.
A 없는 A - 이고르 홀린의 시집 『서정시 없는 서정시』 A 없는 A- 이고르 홀린의 시집 『서정시 없는 서정시』 - 이 종 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두 달 전 를 처음 연재하면서 삽기르의 친구 이고르 세르게예비치 홀린(Игорь Сергеевич Холин, 1920-1999)의 시를 읽어보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홀린의 시들이 한데 모여 있는 선집을 중고거래로 구해서 읽어보았습니다. 300쪽 조금 넘는 길지 않은 책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고민이 듭니다. 도대체 이 시들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할까? 상징주의 시를 읽듯 시어가 상징하는 바를 추적하며 읽어야 할까? 아니면 아방가르드 시를 읽듯 시인이 만든 신조어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려는 것인지 가늠해야 할까? 재미있는 시들은 많은데 이걸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할지 출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웹진 인-무브의 .. 2018. 2. 13.
여섯 번째 엽서 여섯 번째 엽서 최원 | 독립연구자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에 엽서를 띠웁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사정들이 겹치면서 엽서를 쓸 여유를 좀처럼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엽서를 드리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뭐라도 좀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지난번에 약속드렸던 내용의 엽서를 쓰진 못하게 됐을 뿐 아니라, 더 나쁜 것은 저 자신의 글도 아닌 데리다의 논문 한편에 대한 발제문을 보내드리는 정도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발제문에서 요약하고 있는 「“발생과 구조”와 현상학」이라는 이 논문은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에 실려 있는 것으로 후설의 지적 여정에 대한 데리다의 설명이 잘 담겨 있는 논문이지요. 국역본에는 오역들이 상당히 있어서 .. 2018. 1. 28.
조르주 라비카 번역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 프랑스어 번역(엥겔스가 수정한 부분은 각주로 처리)   프랑스어 번역: 조르주 라비카(Georges Labica)한국어 번역: 배세진 (파리 7대학)   [옮긴이 앞글: 이 텍스트는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의 프랑스어 번역과 이에 대한 상세한 철학적 주해로 구성된 조르주 라비카의 저서 Karl Marx: Les Thèses sur Feuerbach에 실린 「포이어바흐에 관한 열한 가지 테제」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원본으로 삼아 번역한 뒤 이를 철학연구자 강유원의 신뢰할 만한 한국어 번역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이론과실천, 2008)과 비교하여 수정한 것이다(강유원은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또는 「.. 2018. 1. 24.
"마르크스의 철학" 재판 서문 "마르크스의 철학" 재판 서문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번역: 배세진 (파리 7대학) 옮긴이 앞글(1) 이 번역문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곧 도서출판 오월의 봄에서 출간될 발리바르의 저서 "마르크스의 철학"의 재판 서문이다. 웹진 게재를 허락해준 도서출판 오월의 봄에 감사드린다.    (2) “마르크스의 철학”은 1993년 “학생 대중과 교양있는 독자 대중”을 대상으로 한 라 데쿠베르트 출판사의 “입문 총서” 중 한 권으로 처음 출간되었으며[각주:1], 2001년에는 동일한 출판사의 “Repères” 총서 포슈판으로 (‘문헌 안내’를 재검토하고 증보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개정 없이 두 번째 출간되었다[각주:2]. 우리가 지금 출간하는 이 책은 2014년 동일한 출판사에서 출간된 재판(이 역시 포슈.. 2018. 1. 11.
6화 우리집 살인마 6화 우리집 살인마 지영(국문학 연구자) 1. 대중문화 속 재벌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대중문화 속에 재벌이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감정적인 위안을 받으려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 부절적한 욕망과 그에 대한 응징 등이 주된 서사를 이루었다. 드라마마다 한두 명의 부유층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들도 중소기업 정도의 경제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이 시기 드라마에서 재벌은 말 그대로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재벌은 ‘백마 탄 왕자’의 모습으로 가난하고 씩씩한 여주인공 앞에 자주 나타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여성과 강력한 재력을 지.. 2018.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