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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 서평

배경진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처음으로 벨 훅스를 알게 되었을 무렵 나는 페미니즘이야말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young)한 페미니스트였던 나는 세상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고 점점 지쳐갔다. 페미니즘이 참 밉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던 그때, 벨 훅스를 만났다. 끊임없이 글을 쓴,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벨 훅스 말이다. 벨 훅스를 알게 된 후, ‘페미니즘이고 뭐고 세상에 희망은 없다!’고 느낄 때마다 자연히 벨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유쾌한 페미스트가 되려고 했지만, 상당히 화가 많았죠."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中


『벨 훅스 같이 읽기』에도 벨의 이론이 어떻게 일곱 명의 저자의 삶에 스며들게 되었는지 담겨있다. 일곱 명의 사람이 각자 한 권씩 벨 훅스의 책을 읽고 이 책이 자기 삶과 철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서술한다. 벨 훅스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각 장이 시작되기 전, 벨 훅스의 저서에 담긴 핵심 내용 발제문도 함께 실려 있어 글쓴이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벨 훅스의 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 있는 이들에게 벨의 이야기가 어떻게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고, 깊은 깨달음을 주는지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이 가진 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책이 바로 벨 훅스가 원하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향한 실천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단어로 뒤덮인 책 대신,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페미니즘이 어렵거나 두려워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님을 쉽게 깨닫게 해줄 수 있는 책 말이다. 일곱 명의 저자는 각자 다른 책을 읽었고,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이들이 벨 훅스를 통해 얻은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일맥상통한다. 조금은 낯간지러운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페미니즘을 도구이자 무기로 활용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이런 희망이 때론 끓어오르는 분노보다 더 큰 힘을 주기도 한다.

처음으로 페미니즘이란 개념을 접한 20대 초반,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간 은연중에 불쾌함이나 불편함을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게 신났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라는 거대한 넷페미 물결과 함께 성장한 나에게 이 세상은 온통 부당한 것 천지에, 깨부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흥분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와 우울로 바뀌게 됐는데, 내가 아는 페미니즘으로는 속시원하고 깔끔하게 해결되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아! 나는 왜 레즈비언이 아닌가? 될 수는 없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나와 함께 가족 내 가부장제의 부당함과 불평등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는 부모님께 용돈 따박따박 받아서 쓰고, 월세 받아 사는 친구들이 미웠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내 인생을 망치고 있다고 느낄 때, 벨 훅스를 알게 됐다. 이날 이후로 나를 망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성공적인 페미니스트라는 얘기는 아니고, 다만 페미니스트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는 생각한다. 『벨 훅스 같이 읽기』의 저자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벨을 통해 희망, 용기, 혹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었고 그 이야기는 책을 통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페미니즘이 도저히 뭔지 모르겠고, 나만 혼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싶을 때, 혹은 이 세상이 절망으로 가득 차 보일 때, 복잡한 이론으로 점철된 책 대신 이 책을 추천한다. 벨 훅스를 읽은 일곱 명의 이야기가 큰 희망으로 다가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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